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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도의 초보를 버리고
히브리서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중년신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배달의 후손인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동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흘러오고 있는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고 새 이스라엘이 세워 졌다는 진실에 대하여 확실히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고 새 이스라엘을 세우는데, 피로 이어지는 혈통으로 하지 않고 영의 백성을 택하여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였다. 이를 가리켜 성경에 표현한 내용으로 이야기 하면 썩어질 씨로 만들어진 백성이 아니고 썩지 아니하는 이삭으로 난 한 씨(=롬 9:29)로 새 이스라엘을 창조하였다고 하였다.
새 이스라엘은 혈통으로 이어진 중동 땅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말씀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백성을 뜻한다.
로마서 9:29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들 같은 이방인들은 혈통으로는 배달의 자손이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드려 거듭나게 되면 아브라함의 자손인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된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불어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백성은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태어나게 되는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천국을 건설한다.
갈라디아서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로마서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 하셨습니다.
로마서 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배달민족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어 하늘나라 백성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었으나, 중년신사가 열심히 자습해 가면서 성경 말씀을 읽으며 믿음을 키워 가는 도중에 경천지동할 말씀을 보게 되었다.
가.) 갈라디아서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나.) 히브리서 6:1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놓고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십계명을 지키고 십일조도 잘 내면서 의롭게 살려고 했는데, 그런 짓을 하면 예수에게서 끊어 은혜를 배풀어 주지 않겠다고 하니 성경 속에 적힌 엉터리 말씀을 찾아 낸 것이 황당하기만 했다.
한 술 더 떠서 아예 회개, 믿음, 세례, 안수, 부활과 심판에 대한 교훈의 터를 더 이상 닦지 말라 한다, 성경이 이토록 개망나니 식으로 기록된 것이라면 성경을 더 이상 읽는 다는 것이 미친 짓 같았다.
기독교 서적을 찾아가 성경 해설서를 사 보았지만 해답이 없었다. 중년신사는 히브리서 6장에 책갈피를 껴놓고 서울에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며 이에 대한 해답을 얻어 보려고 했다,
교회를 찾아온 사람이라고 해서 반겨 주었으나, 히브리서 6장을 보여주면 해답을 해주지 못하고 성경을 들이 파는 것은 은혜롭지 못하고 하면서 의심하지 말고 믿는 것이 최상이라고 답변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때 까지는 봉해 있다가 때가되면 열려지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진다. 때가 이르게 되면 꽃을 피우는 결실의 시기가 온다. 이런 것을 기록하여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고(=전 3:4)하였다.
요사이 한창 재미를 더해가는 가는 것은 지금의 복면가왕이 과연 몇 회까지 연승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현우로 보이는 복면가왕이 이번에도 연승을 멈추지 않고 8연승을 하고 28대 복면가왕이 되었다.
다른 가왕이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가왕의 길을 장기간 질주하고 있다. 복면가왕의 덕분으로 1988년에 발표된 [일상으로의 초대]가 원곡 발표 때 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복면가왕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18년전의 노래를 다시 해석하여 아주 감미롭고 가슴을 찌르르는 감동으로 심금을 울려주었다. 골목대장 복면가왕이 원곡 발표 때 보다 더 큰 감동을 주어 삽시간에 유트브 클릭수가 2백회를 넘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있을 때도
문득 자꾸만 네가 생각나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새로울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교회를 다니면서 굳게 믿어 왔던 믿음이 깨어지고 새로운 깨달음에 큰 충격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골로새서 2:21 말씀이다.
골로새서 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Do not handle! Do not taste! Do not touch!)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을 일게 되지만 무엇을 붙잡지 말라는 것인지 깨닫지 못하여, 기독교인들이 붙잡지 말라는 것을 놓지 않고 붙잡고 있다.
맛보지도 말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은 21절 말씀 전에 기록되어 있는 20절 말씀에 그 정체를 밝혀 두고 있는데 구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규례 (規例): 일정한 규칙과 정하여진 관례.)
국어사전을 펼치고 규례의 뜻을 찾아 성경을 읽으면 20절에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깨닫기 어렵다. 규례는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으로 만들어 진 법도를 말한다. 하나님이 만든 법도라면 율법이다.
골로새서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골로새서 2:20 말씀은 규례에 순종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것을 강조한 말씀이 2:21 말씀이다, 믿음이 온 후에는 율법을 버리라는 말씀으로 23절에서 다시 한 번 더 설명하고 있다.
골로새서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신학박사들이나 목회자들도 율법의 무익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십계명이 바로 율법이란 것을 깨우쳐 주지는 않고 있다.
십계명이 율법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바는 십계명을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것인데, 모든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이 십계명을 신주 단지로 모셔 놓고 빌고 있는 형국이다.
십계명이 율법이라는 말씀이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고 십계명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도 성경에 있다.
야고보서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율법, 십계명)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말씀 중에 더러 어려운 말씀이 있어서 이런 것을 풀어서 신도들에게 선포하여 하는 중요한 말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히브리서 6장의 말씀을 선포하여 교회에 찾아온 어린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어야 한다. 히브리서 6장의 1,2절 말씀을 풀어서 설교해 주는 교회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히브리서 해설서를 사서 읽어 보아도 1,2절 말씀은 해설하지 못하고 건너뛰어 말씀의 뜻이 무엇이지 알 수 없다.
히브리서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1절 말씀 중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라는 말씀에 이어 2절 말씀에, 세례, 안수, 부활, 심판에 대한 것들은 버리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으로 보이는데, 이런 것들을 깡그리 버리라고 한다면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지 참으로 히브리서 말씀은 난해한 말씀이다.
히브리서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관한 교훈의 터를 더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교훈의 터를 닦고 또 닦아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의 오류이던가, 아니면 틀린 말씀을 교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신학박사들이 그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풀지 못하고 있는 무능함에 분노가 일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 또 다른 보혜사를 만나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 하였는데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시고 둘째 날에 하늘을 만들고 셋째 날에 풀과 나무를 만들고 넷째 날에 해와 달을 만들고 다섯째 날에 물고기와 새와 들짐승들을 만들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시고 끝으로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였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고 나서 사람에게 준 사명은 =>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히 4:4) 하였다. 이 말씀은 도의 초보에 머무르고 있는 분들에게는 당연한 말씀으로 들리겠지만 도의 초보를 넘어선 장성한 믿음에 이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깨닫게 되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4:5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먼저 그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안식을 누릴 기회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히브리서 4: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이라는 날을 다시 정하시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앞서 인용한 대로 다윗을 시켜, "너희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뒤에 하나님께서 또 다른 날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 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강태공처럼 시간이나 낚는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히 4:5)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히브리서 4:10
이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의 일을 쉬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하늘나라에 입성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도의 초보를 벗어나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히브리서 4:11)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믿음의 장성한 분량애 이르려면 먼저 도의 초보를 벗어나야 한다.(=히브리서 6:1).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어떻게 벗어 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깨달은 바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넘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세례의 교리와 안수와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관련해서, 또다시 기초학습을 닦는 일이 없어야 한다.
믿음의 장성한 곳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은 아무나 도달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여야(=히브리서 6:3) 할 수 있는 것이지 세계적인 부흥사나 대형 교회의 당회장일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자기의 사적인 지식으로 헛소리하면서 사탄의 영으로 교회를 지배하게 된다.
삯군 목회자들은 교회를 차려 놓고 도의 초보만을 외치기 때문에 자기가 장악하고 있는 신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 하도록 방해하는 일만 한다.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사탄의 교리를 선전하는 못된 자로 전락하게 되어, 당회장의 직분이나 부흥목사란 칭호도 결국 불법을 자행하는 자의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기적을 일으키면서 교회를 몇십만의 성도로 이끌어 온 당회장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기록되어 있다.
장성한 믿음으로 가는 첩경은, 먼저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려고 회개하는 일은 다시 학습하지 말아야 한다. 첫 언약인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면서,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도의 초보란 율법을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우러러 보았던 십계명이나 십일조에 매달리는 신앙은 당장 끊어내야 한다.
십계명을 지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가 받을 축복이 신명기 28:12 말씀에 있다.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신명기 28: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십계명)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십계명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가 받을 저주는 28~30절 말씀에 있다.
신명기 28:28~30
야훼께서는 너희를 쳐서 미치게도 하시고 눈멀게도 하실 것이다. 너희는 정신을 잃고 앞이 캄캄하여 허둥대는 장님처럼 대낮에도 허둥대게 되리니,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짓밟히고 착취를 당하건만 너희를 빼내어 줄 이도 없을 것이다.
십계명을 지키는 자가 받는 축복과 지키지 못하는 자가 받을 저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데 있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에 기독교인들은 저주를 받을 일 외에 다른 길이 없게 된다.
하나님은 구원은 율법으로는 열리지 않고 믿음에 의하여 해결하는 방도를 준비해 두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은 십계명을 지키는 율법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약속으로 상속된다.
로마서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십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발생하게 되는 죄는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는 도의 초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보적인 도(=율법적인 신앙)의 터를 닦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히브리서 6장 1절의 말씀이다.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4 말씀도 알 것 같으나 알기 어려운 말씀이다.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말씀인지 이해하였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는 말씀을 해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더욱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더 이상 교훈의 터를 닦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신실한 신앙인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
히브리서 6:2
세례와 안수, 그리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같은 기초적인 교리를 다시 배우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기독교의 절대적 가치로 배웠고 지금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세례, 안수, 부활, 심판과 같은 항목이 기독교의 기본 정신 인줄 알고 있었으나 히브리서에서는 도의 초보에 속한 것으로 다시는 이런 일에 매달리지 말라고 한다.
세례를 받는 일에서 대하여 올바로 알려면 할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할례와 물로 받는 세례는 모두 육체에 행하는 예법으로 동질의 내용이지 물세례가 할례보다 우월한 것이 없다.
여호수아 5: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로마서 2:25
할례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받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3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자기들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이 할례받기를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육체를 자랑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옛날,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에서 죽었는데 그 이유는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할례의 중요성이 생명 같은 것이었다. 율법시대에 육체에 시행하던 부싯돌 할례가 시대를 지나면서 마음의 할례로 바뀌었다. 육체에 하던 할례를 마음에 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이 중요한 것이지, 육체의 할례를 시행하여 자기 몸을 아름답다며 자랑하려고 하면 안 된다.
로마서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고린도전서 7: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갈라디아서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갈라디아서 6:15
할례를 받고 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할례의 의식이 변한 것과 같이 세례에 대한 의식도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교회에서는 아직도 물세례를 베풀어 주면서 세례교인을 만들어 내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할례가 폐지된 것처럼 이 시대는 물세례도 폐지된 것이다.
교회에서 직분 부여의 조건으로 세례교인 여부를 근거로 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세례 의식을 집행하면서, 혹은 안수 집사나 장로의 임직을 부여 하면서 감사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교인의 인격을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로, 바벨론 성전에서나 자행되는 일로 저주 받아 마땅한 불법이 이 시대에 자행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하나님의 뜻한바 대로 일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교회에서 암송하게 하고 있는 사도신경을 통하여 교회에서 배운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배운 것이 아니고 도의 초보에 관한 것뿐이다. 도의 초보란 참 진리위에 서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지 못한 덜떨어진 믿음을 말한다.
교회가 사도신경을 암송하게 하면서 그리스도가 외아들이라고 세뇌시키는 것은 예수님이 맏아들인 것을 알려주지 않고 숨기고 있는 것이 된다.
누가복음 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히브리서 1: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도 맏 아들이고 마리아의 아들로서도 맏 아들이지 외 아들이 아니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린 것이라고 거짓말을 날조하고 있지만, 빌라도가 예수님의 죄 없음을 알고 석방시키려고 노력한 것을 애써 숨기고 있다.
목회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분에 있는 자들인데, 유전적인 신앙을 타파하지 못하고 성경을 훼파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내려고 동분서주한 총독이다.
누가복음 23: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모든 교회에서 우리의 몸이 다시 살아난다며 육체의 부활을 가르치고 있다. 영이 부활한다는 진리를 감추고 육체가 부활한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 모형을 손수 보여 주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실상을 깨달아야 한다.
로마서 6:5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었다면 그분의 부활하심과 함께 우리도 틀림없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having been put to death in the flesh)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교회가 사도신경을 암송하게 하면서 도의 초보만 알려주는 것은 율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증거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기시키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한 분이다.
빌립보서 2: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십계명)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실체는 교회에서 알려준 참 하나님이 아니고 교회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이제 도의 초보에 해당하는 터를 더 이상 닦지 말고 우상으로 숭배해 왔던 가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올라가야한다.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고린도전서 4:1
사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목회자)이어야 한다면,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골로새서 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히브리서 6장은 교회가 알려주고 있는 거짓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더 완전한 곳으로 가라고 한다.
히브리서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진리의 성령 또 다른 보혜사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증거이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체를 깨우쳐 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종의 굴레를 벗고 참 자유인이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 속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십계명은 우리를 죽이는 원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죽기까지 순종하면서 우리들의 원수인 조문으로 된 십계명을 없애주었다.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이 십일조를 명분으로 신도들의 주머니를 터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십일조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세례의 뜻을 목회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기독교가 추구하는 방향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례를 베풀라는 것은 세례요한이 회개의 의식으로 베풀었던 물세례의 의미가 아니다.
마가복음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성령으로 베푸는 예수님의 세례가 요한의 세례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과 함께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다시 요한의 세례를 또 받을 필요가 없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예수님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주고 있다.
로마서 6:3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들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서, 우리들은 이미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다. 교회는 이런 진실을 교인들에게 선포해 주어야 한다. 목회자들이 참 복음을 감추고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 앞에 죄인이다. 목회자라면 바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디모테후서 1:2
아들같이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선포하는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그대에게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목회자들이 도처에 뿌려 놓은 도의 초보에 무너지면 안 된다. 도의 초보에 대하여 알아보았지만, 간단히 요약한다면 도의 초보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 도의 초보이다,
히브리서 6: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갈라디아서 5:4
율법(=십계명)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히브리서 6:2 말씀과 갈라디아서 5:4 말씀의 뜻을 명확하게 깨닫는 것이 도의 초보를 넘은 것이고 이상하게 생각된다면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웃에게 히브리서 6:2 말씀과 갈라디아서 5:4 말씀을 해설할 수 있어야 믿음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