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전라남도 문화상
1981년 서울신문사 향토문화상 수상.
1982년 문화훈장 수상.
88올림픽 경기 개,폐막식에서 고싸움놀이,강강술래를 연출하기도
하셨습니다.
한국 민속학의 거장을 뽑으라면 주저없이 꼽을 수 있는 분이죠.
-하얀용WhtDrgon.
巫 俗 信 仰
- 지 춘 상(전남대 국문과)
제 1 절 槪 要
우리 나라 무속의 정확한 시원을 밝힐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건국신화에 드러나는 巫俗素를 살펴보면 민족의 기원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온 종교 현상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자연 종교의 하나로서 샤먼계의 강신무(降神巫)와 사제계(司祭係)의 세습무(世襲巫)로 구분될 수 있는 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는 신앙 체계이다. 중•북부 지방에 산재하고 있는 강신무와 남부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세습무가 크게 대별되고 있지만, 점이나 독경을 주로 하는 사람들도 무속 신앙에 속하는 일 계열이라 할 수 있으며, 맹격(盲覡)과 같은 學習巫도 예외는 아니다.
전남 지방에서 무속에 관한 한 세습을 이루는 일종의 司祭巫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대해 강신한 점쟁이나 학습에 의한 盲覡 등이 산재하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세습계는 샤먼이 아니다. 샤먼이란 엑스타시의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入巫의 과정에서 필요한 巫病과 트랜스(또는 빙의), 이니시에이션을 거쳐 神權者로서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임에 반해서 세습무는 혈족에 의해 그 정통성이 연장되는 것이다.
本 道에서 이들 세습무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은 “단골”이라 부르며, 男系에 의해 세습된다. 무속을 구성하는 요소는 그 주제자인 巫堂과 무굿과 巫歌로 三大別 될 수 있는데, 원시 종교의 양대 지주인 제의 및 신화와 함께 직업적인 종교 지도자로서의 무당이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다른 민족 신앙과 가장 크게 대별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 巫儀 존재라고 하여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 구성 요소는 독자적인 의미보다는 상보적인 의미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巫에 대한 성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제의를 더불어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화란 말로 된 제의이며, 제의는 행위로 나타난 신화이기 때문에 양자는 하나의 종교현상으로 묶인다. 신화든 제의든 그것은 태초의 기원 행위와 관련을 맺는다. 우주창조신화, 인간창조신화, 문화창조신화 중 어디에 속하는 신화이든지 간에 그것은 태초에 신 또는 신적 존재가 벌였던 일련의 행위를 언어를 통해서 再演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신화의 주인공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그의 일대기를 말하고, 그가 이룩한 위업이 인간에게 영속적으로 유효하다는 전제 위에서 신화는 口演된다.
제의는 신화와 더불어 최초로 신화 주인공이 벌였던 행위를 모방•답습하는 것이다. 즉, 최초로 세계를 창조했던 신에 대한 제의라면은 그의 세계 창조 행위를 再演하면서 창조 당시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행위라고 하겠다. 이를 지탱하는 원리는 반복적 회귀라고 할 수 있다. 기원의 행위는 신화적 사실이며 신화적 사실은 반드시 신화가 再演됨과 함께 태초의 그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일정한 상황하에서 신화가 제의로 베풀어진다면 그것은 최초의 상황이 再現되면서 똑같은 건강성과 풍요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신화와 제의를 통해서 태초로 회귀할 수 있다고 하는 사고는 현대인의 합리적 사고와 상충하는 것이다. 원시 사고에서 時空의 개념은 영원한 수직적 이동과 변화라기보다는 소멸과 재생이 반복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모든 종교의 기본 원리인 죽음과 부활이 순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우리 무속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리로서 무당이 주재하는 하나의 ‘굿판’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굿을 하기에 앞서 금줄과 黃土로서 공간의 소거와 시간의 회귀를 마련한다. 곧 이 때의 상황은 태초의 상황임을 가정한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무굿과 무가는 제의와 신화로서 태초의 상황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기 때문에 무당의 기본적인 역할은 신화적 사실을 再演하고, 이를 통해 태초의 상황으로 회귀하여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굿하는 사람이 아니면 무당일 수 없다.
신은 자기의 근본(根本)을 풀어주면(본풀이) 즐거워한다. 인간은 자기의 비밀을 말하면 화를 내지만 신은 자기의 비밀을 말하면 기뻐한다는 제주도 속담이 이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무당에 대한 정의는 무굿을 통해서 신화와 제의를 말하고 관장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하나 첨언해야 할 것은 마레트(Marett, R. R.)가 원시 종교는 생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춤에서 나왔다(primitive religion is danced out, not thought out)라고 한 말과 더불어 무굿의 기본 형태가 춤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속신앙이 갖는 원초적인 성격은 물론 무당을 정의하는데 있어 도움말을 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여기에서 춤이란 藝能的 意味에서가 아니라 오신(娛神) 행사의 하나로서 원시 종교에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는 행위자 자신은 물론 참여자 모두가 한 무리로 봉사하는 신을 섬기는 태도이며, 이를 통해 신과 인간(혹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 가능해지고 갈등과 마찰이 이완되어 제재초복(除災招福)을 얻도록 하는 몸짓이다. 무당에게 일정한 돈을 내고 관중석에 있던 누구나 무굿판에서 함께 춤을 추는 “무감” 역시 춤의 종교적 의미에서 기인한 것이다. 무굿은 반드시 춤과 더불어 진행되며 춤을 추는 대행자가 무당인 셈이다. 굿의 대행자라고 하여도 춤이 없으면 擬巫라고 하겠다. 결국 本 道에서는 세습의 단골이 정통 무당에 속하며, 降神의 점쟁이나 學習巫 등은 擬巫에 속한다고 하겠다.
우리 나라 무속과 무당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서는 최초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로 소급된다. 檀君王儉이라고 하는 명칭이 벌써 祭政一致의 사제자와 君長을 가리키는 말이며, 단군이 누렸던 1908년의 壽가 일 개인이 아니라 보통명사로서 세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세습무의 원형을 지니고 있는 양상이라 하겠다. 「三國誌」 魏書 東夷傳 馬韓條에는,
信鬼神 國邑各立一人 主祭天神 名之天君
이라고 하여 天君의 사제자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三國史記」 雜志 祭祀條에 이르면,
按神羅宗廟之制 第二代南解王三年春 始立始祖赫居世廟 四時祭之 以親妹何老主祭
라고 하여 祭政이 분리되는 모습과 함께 여자의 사제권이 드러난다. 이는 한편 오늘날 女巫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의의가 크다. 백제권에 대한 기록을 상고하기는 어렵지만, 百濟本紀 溫祚王條와 義慈王條에 이르러서 巫가 나오는데, 이들은 왕을 補政하는 위치에 있는 國巫의 성격을 갖는다.
고려에서는 불교가 숭앙되었지만 태조의 훈요십조에서 보듯 巫佛이 습합된 양상을 보이면서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아왔다. 그 전형적인 예가 팔관회라고 하겠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도 무속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로만 일관되지는 않았다. 「高麗史」 卷16, 世家 16, 仁宗 9年 8月條에,
이라고 하여 무속을 淫祀로 보는 고려 시대의 지배층의 태도가 엿보이고 있다. 특히 이규보의 古律詩의 하나인 “老巫篇”에서는 巫女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近世 朝鮮에서는 합리론적인 유교 사고에 의해 이중의 종교 형태를 외적으로 지니게 되면서, 무속은 서민을 대상으로 하거나 궁중이나 양반 사회에 음성적으로 신앙된다. 그러나 유학자들의 눈에 비친 모든 巫儀는 荒誕之事로서 그에 대한 부정적 관념 및 태도가 완강하였다. 때문에 巫는 사회적인 신분이 천민으로 낮아졌고 제약이 커갔다. 한편 제도적으로 巫의 신분과 巫儀가 보장되기도 했는데 太祖는 東西活人院을 두고 巫醫로 하여금 전염병을 치료하도록 했으며, 世宗朝에는 巫覡으로 하여금 각 里民을 분장하여 열병을 다스리게 하고, 이를 게을리 하는 巫는 벌하고, 많은 活人을 한 자에 대하여는 巫稅와 賦役을 면케 하였던 것이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巫佛이 습합하여 그 지지 기반이 든든했던 것에 비해서, 近世 朝鮮朝에서는 巫가 유교와 상충하여 사회의 저변으로 밀리게 되었다. 따라서 무속은 어떤 의미에선 의식적으로는 배타적인 반면, 무의식적으로는 지지를 받으면서 조선 시대를 관류하여 왔다고 하겠다.
舊韓末에 이르면은 당시 新文物에 접한 많은 지식인들이 서구화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면서 미신 타파의 명목으로 무속을 바라보게 되었고, 한편 천주교, 기독교 등의 일반화와 함께 크게 왜소해지게 되었다. 다시 일제 시대에 이르러 우리 것이 무조건 탄압을 받아 왔고 해방 후 근대화의 이름으로 그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으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巫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이해될 수 있듯이 제정일치 시대의 사회 최고권자의 신분에서부터 시대의 추이와 함께 그 신분이 하강하여 사회의 천민으로 격하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존재까지도 위험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전남 지방에서는 특히 정통 단골 무당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한 몇가지 이유를 들어 보면 첫째, 근대화의 과정에서 人智의 발달로 일반인의 巫에 대한 무속적 관심이 희박해지면서 다른 고등 종교에의 흡수가 그 원인이며, 둘째, 단골巫系의 연장성으로 인해서 단골의 자녀가 巫 신분으로부터 탈피하여 세습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 명두계의 점쟁이가 성하여 단골 제도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으며, 이는 일반인의 종교적 관심이 명두에 쏠리는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남 지방에서 지금까지도 부분적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巫權으로 단골판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골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일정 지역에서 일정한 단골 무당만이 巫儀를 할 수 있는 무당들의 내규이다. 이는 철저하게 지켜졌던 것으로 만약 이러한 규율을 어기는 사람은 무당의 집단으로부터 호된 벌책을 받게 된다. 또 한 단골판으로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이 이권과 관련되어 매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거의 마을마다 단골이 있어서 자기가 맡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종교적 특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특권과 더불어 巫의 생계와 관련된 巫儀權을 재산화하여 매매를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들 단골판은 男系를 중심으로 하여 세습되었다. 世襲巫圈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전남 지방에만 그 잔존 형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단골판과 관련해서 단골무당의 생계를 돕는 것으로 단골은 자기가 맡고 있는 지역에서 春秋로 나누어 錢穀을 받게 된다. 이는 그 지역의 당산제를 주재하는 사제자에 대한 사례이기도 하며, 한편 개인적으로 간단한 巫儀는 무보수로 해주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로 보인다. 매년 春秋로 나누어 각 가정 단위로 주는 錢穀은 어떤 강제성을 띠는 것도 아니며, 그 양이 애초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供與者의 사정에 따라서 부담을 하는 것이 통례였다. 수확을 하고 나면 단골은 가마니를 들고 집집을 방문하여 동냥을 하고, 고마운 뜻에서 떡을 해서 두 세 개씩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예는 찾아볼 수가 없고 단골은 단지 巫儀를 통해 그 수입을 충당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기도 한다.
단골과 부락민의 관계에서 공여되는 錢穀은 원래는 부락민이 종교적 주재자에게 공납하는 것이었으나 무당이 천민화한 후부터 거두어가게 되지 않았는가 한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서 진도에서는 매년 대장장이에게 春秋로 “쏙수”를 주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 유사할 수 있는 증례를 脫解神話에서 찾을 수 있다. 탈해가 治匠巫의 성격을 가졌다고 할 때, 이는 분명한 고대 무속의 한 잔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쏙수를 품삯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보면 또한 단골판의 성격과 흡사한 것이다.
전남의 단골과 점쟁이는 서로 적대자로서, 상보자로서 존재하고 있다. 단골은 단골대로, 신이 내려 점상을 받는 점쟁이는 또 그들대로 긍지를 가졌고, 따라서 유일한 종교적 지도자로 군림하기 위해 보이지 않은 암투가 있어 왔다. 현재는 단골의 수가 워낙 줄어들었고, 또한 그 조직력이 약화되어 이들의 외적인 갈등은 표면화되지 않고 있지만, 단골이 우세했던 과거에는 점쟁이는 점을 치는 일이나 간단한 비손 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과거 단골이 했던 여러 가지 巫儀를 맡아서 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는 바, 이는 우리 나라의 무속 현상에서 세습무와 강신무의 발전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공시적인 자료가 된다. 즉 고대 제정일치 이후 유일한 종교 지도자로 군림하던 세습무가 북방의 샤머니즘이 도래하면서 종교적 카리스마를 상실하게 되었고, 또한 그 지배 영역이 축소되는 사이에 남한 지방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강신무계의 점쟁이에 의해 그 명맥마저 위협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는데, 만약 어떤 사람에게 신이 내려 神病을 앓게 되면 단골은 “내림굿”을 해서 점쟁이로서의 입문을 돕게 된다. 이것은 중부 이북 지방이나 동북 아시아 일대의 入巫 儀禮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겠다. 입문의 또 하나의 의미는 사회적인 공인이라고 할 때, 단골은 점쟁이에 비해서 대사회적으로 종교적인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점쟁이의 경우도 역시 단골을 돕는 역할을 갖는데, 예를 들면 점을 치러 온 사람에 대하여 굿을 하도록 종용을 하고, 이에 따라 단골을 찾아가 굿을 청하게 된다. 때로는 점쟁이가 특정의 단골을 지정하기도 한다.
전남 지방에서 단골과 점쟁이는 서로 적대시하는 반면에 이렇듯 공생을 하였던 것이지만 지금에 이르러 단골보다는 점쟁이의 세력과 수효가 늘어남에 따라 양자의 관계가 소원해진 느낌을 준다.
巫儀는 일정 지역의 단골이 주재하여 인접의 단골을 청해서 함께 하는 형식을 갖는다. 巫儀에 필수적인 女巫와 樂師는 굿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독자적으로 치를 수 없는 관계로 다른 단골들과 협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祭主와 단골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면, 단골은 다른 단골에게 협조를 요청하게 되고, 임시의 동업자 관계가 된다. 굿의 계약에서 부부가 巫業에 종사하는 경우 반드시 男巫와의 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의 굿이 女巫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지만 巫權에 대해서는 男巫가 全權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巫系의 계승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임시 동업자 관계를 맺은 단골들은 그 수입 금액을 공동 균등 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수입금 이외의 수익, 예를 덜면 祭儀에 나온 쌀이나 베의 경우 당사자인 무당이 가지게 된다. 굿의 수익금은 계약 당시의 정해진 금액(또는 곡식으로 정하기도 한다)과 제의를 하는 도중 제주와 가족, 또는 관중이 내놓은 일체의 현금을 포함한다. 분배를 하는 것 역시 계약 당사자인 단골이 맡아서 하게 된다. 巫儀에 있어서도 지정 단골은 선점권을 갖게 되는데, 굿의 맨 처음 거리는 역시 그에 의해서 진행된다.
단골을 다시 男巫와 女巫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巫系는 男巫 중심이지만 굿의 진행은 女巫에 의해서 관장되고 있다. 女巫는 祭場에서의 모든 굿을 주재하면서 스스로 사제권을 행사한다. 본래 巫人들은 巫系의 집안끼리 혼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신분과 직업에 한계가 분명하다. 女巫의 경우 처녀일 때는 巫業에 종사하지 않고 결혼 후에 媤家에 따라 巫歌와 巫藝를 익히게 된다. 물론 친가에서 이들을 학습하기도 하지만 媤家의 巫業을 계승해야 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친가에서 배웠다고 하더라고 媤母를 통해 기능을 다시 배우는 것이 통례이다. 巫系의 소녀 중에는 巫業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택하기도 하는데, 대개는 기생이 되며 가무와 미색을 겸비하였을 때만 이도 가능하다.
女巫에 대해 男巫는 巫樂을 맡고, 또한 굿에 부대적인 소도구를 만들며, 巫儀에 대한 계약을 한다. 또한 男巫 중에서도 技樂이나 가창에 뛰어난 사람은 그들대로 명성을 얻고 출세를 하지만 재질이 없는 사람들은 잔심부름을 맡거나 혹은 땅재주나 줄타기의 曲藝를 익혀 광대로 업을 삼는 사람도 있다.
전남은 일반적인 성향이 예능에 재질이 있고, 특히 음악성이 강하다는 것은 기왕에 빈번히 지적되어 온 바이지만, 특히 무당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문화된 사람들로 꼽힌다. 가창이나 춤사위 등에서 다른 지역의 예술성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뛰어남은 물론 판소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의 판소리 가창자를 그 출신지별로 분석하면, 전남 출신이 전체 161명 중 73명으로 45.34%에 달하고 있으며, 전남 북을 합하면 117명으로 72.67%에 달해서 판소리의 본고장으로 지적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많은 문화가 외래 의존도가 높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민간에서 성숙된 이러한 경우는 자생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된 좋은 예라고 하겠다.
巫儀의 종류는 그 기준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누겠으나 대체로 굿의 성격에 따라 慶事굿과 궂은굿으로 나뉘고, 규모에 따라서 비손, 푸닥거리, 告祀, 큰굿으로 대별된다.
경사굿은 혼인굿, 성주굿, 재수굿 등을 포함하여 吉福을 축원하는 굿이며, 궂은 굿은 씻김굿, 병굿 등 병이나 弔事와 함께 한다.
규모에 따라 분류되는 방법에서 巫女와 점쟁이 혹은 讀經장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비손과 푸닥거리가 있고, 1, 2人의 도움을 밭아 祝願굿을 주로 하는 告祀와 數人의 巫女와 樂師가 곁들여야 하는 큰굿이 있다.
큰굿의 종류는 그 굿의 목적에 따라 씻김굿, 곽머리 혼인굿, 망자 혼인굿, 용왕굿, 재수굿, 성주굿, 배서낭굿, 액맥이굿, 넋건지기굿, 당굿 등이 있다.
무당의 結社와 관련하여 本 道에서는 이미 장흥과 나주의 神廳 및 진도의 神廳이 조사 보고된 바 있고, 진도 지방에는 단골들만이 모여 살던 단골촌이 있었다고 한다. 神廳의 성격은 무당들이 선배 무당들의 位牌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거나, 巫儀나 技樂의 전수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었으며, 男巫들만의 殿堂인 한편 지방의 한량들이 평소에 함께 歌樂을 즐기던 곳이기도 했다.
神廳은 무당들이 모이는 하나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비이익 단체로서의 무당의 단체이기도 하다. 또한 무당들은 계를 조직하여 神廳을 운영하는 한편, 그들의 結社를 돈독히 하는 하나의 구체물로 삼았다. 이는 그대로 소급하면 하나의 신성 지역으로 신앙되던 성소였겠으나 시대의 추이와 함께 한량의 놀이터, 巫樂과 巫舞의 전수관 등으로 성격 전환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의 巫具는 징, 꽹과리, 북, 장구 등 농악에서 쓰는 四物과 絃과 笛을 사용하지만 중부 이북 지방처럼 방울이나 神칼을 사용하지는 않으며, 제주도처럼 그것들이 神聖한 것으로 관념되지도 않는다. 巫衣도 간단히 평상복 차림을 하며, 특별히 帝釋거리에서만은 長衫과 종이로 접은 고깔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 무당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대체 현상으로 점쟁이가 많아져 巫儀도 점쟁이에 의해 행해지는 현실이다. 비손, 푸닥거리 정도밖에 행할 수 없던 그들이 지금은 무당들만이 하던 諸祭儀를 행하고 있다. 즉, 점쟁이들이 서로 연대 관계를 맺어서 정통 단골이 행했던 巫儀를 대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점쟁이들은 단골들이 부르는 무가까지도 학습하여 독경에 그치지 않고, 무가와 巫舞로서 굿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대로의 신내림굿을 통하여 종교적 권능을 인정해 주고, 사회적인 공인도 그들에 의해서 보장되어 가고 있다.
전남의 단골이 갖는 세습적 사제권을 비롯하여 예능적 자질과 그 종교적 의미, 그리고 제의에 따른 종교 행사의 성격과 기능 등 많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만 시대의 추이는 그들을 現實圈外로 몰아내고 있어 지금이라도 그 보존을 서두르지 않으면 급속도로 사라져 갈 추세에 놓여 있다. 현재 진도 씻김굿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수되고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말고 종합적인 전수 대책을 세워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무속 현상에 대한 개괄적인 고찰을 하였는 바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 보고자 한다.
제 2 절 무속의 사례
1. 넋건지기굿과 씻김굿
1) 일시 : 1982. 9. 20
2) 장소 : 全南 珍道郡 智山面 佳峙里
3) 내용 : 亡者는 2인으로 祭主의 어머니와 동생이었다. 어머니 이두꺼비는 祭主 박현수(남, 35세) 씨가 7세에 죽었으며, 동생들은 5세, 3세였다고 한다. 어린 자식을 놓아 두고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恨풀이로 씻김굿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생 朴在洙 씨는 본래 조도면 대마도에서 정미소를 하고 있었으나 1972. 12. 21(음력) 목포에서 한성호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 파선하여 죽었다고 한다. 그 사이 넋건지기굿을 두번 하였으나 제대로 되지 않아 무당을 바꾸어 한번 더 해보자고 한다고 한다.
지산면 동구리에 사는 地官인 김근식 씨가 날받이를 했으며, 굿을 해야 할 時까지 일러주었다고 한다.
祭主의 단골은 지산면 금노리에 사는 韓長春 氏로 십만원에 굿을 계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굿판에 나온 쌀과 헌금을 모두 더하면 30만원 정도 되리라고 한다. 巫女 1인과 樂師 3인이 참가하였으며, 모두 진도에 거주하고 있다.
4) 巫覡(잽이)
이완순 : 진도군 고군면 오일시, 42세, 세습무.
김귀봉 : 진도군 임회면 송정리, 50세, 세습무.
강지성 :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 56세, 세습무.
한장춘 : 진도군 지산면 금노리, 42세, 세습무.
이들 이외에도 마을 사람 중에서 북과 장구를 때때로 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넋건지기굿〕
넋건지기굿과 씻김굿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굿은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祭主의 집에서 조왕굿과 성주굿을 巫女 혼자 부엌과 마루에서 각각 올리고, 이어서 오전 10시 30분에 1km쯤 떨어진 바닷가에서 나가 오후 2시 50분까지 넋건지기굿을 계속했다. 바닷가에 간단한 祭床을 마련하고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서 대나무를 높이 세우고 굿을 하게 된다. 대나무를 “손대”라고 하며, 굿을 진행하는 동안 가족 중의 누군가가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망자의 부인이 손대를 잡았으나, 부인은 굿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이 내리지 않아 망자의 고모가 잡았다. 무당은 제상 앞에서 혼을 불러내는데 노래가 애절하여 그 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린다. 일단 넋이 건져지면 손대가 심하게 진동을 하며, 망자는 손대를 잡은 사람에게 接神하여 자기의 말을 전하게 된다. 이 날은 넋이 쉽게 건져지지 않아서 4시간 이상을 바닷가에서 굿을 하였다. 단골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넋을 건졌다고 하며, 가족들도 그렇게 믿었다.
〔씻김굿〕
넋이 건져지면 무당과 가족들은 다시 집에 돌아와 씻김굿 준비를 하게 된다. 마당에 차일을 치고, 병풍을 亡者床 후면에 둘러 치고 祭物을 준비한다.
祖上床과 亡者床의 후면 병풍에 紙榜을 붙여 놓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顯曾祖考學生府君
顯曾祖▩孺人慶州李氏 神位
顯祖▩慶州崔氏 神位
顯祖▩金海金氏 神位
顯祖▩完山李氏 神位
顯▩金海金氏 神位
顯考學生府君 神位
顯▩孺人金海金氏
顯▩孺人金海金氏 神位
顯兄學生府君 神位
亡弟學生在洙 神位
지방에 맞춰 祭床을 갖추고, 특히 씻김굿의 亡人인 어머니와 동생의 지방 밑에는 한지를 오려 만든 넋전을 붙여 놓았다.
祭床 앞에 액상은 10개의 밥그릇에 白米를 담고 수저를 꼽아 두었으며, 수저 자루에는 흰 실을 걸어 두었다. 또 각 그릇 마다에 촛불을 켜 놓고 있다. 그릇 위에는 각기 1,000원권 지폐가 한 두장씩 놓여 있다.
亡者床 옆에는 큰 떡시루에 떡을 넣고 白米 그릇을 올려 촛불을 켜 놓은 마시리床을 두었다. 이 床은 굿을 보러 온 여러 잡귀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후 8시가 되자 굿을 시작했다. 보통의 씻김굿에서는 마당에서 씻김굿을 하기 전에 집안의 ▩王과 成造神에게 알리는 굿을 부엌과 마루에서 한 후에 시작하는 것이지만, 넋건지기굿을 할 때는 바다에 가기 전에 미리 하는 것이므로 바로 씻김굿을 하게 된다.
씻김굿의 순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안당굿
집안의 조상과 각 신들에게 굿을 알리는 차례로 請神의 기능을 한다. 본래는 집안 마루에 成造床을 갖추고 하는 것이나 조왕굿과 성조굿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祭廳에서 했다. 女巫 혼자 징을 두드리면서 노래한다.
안당굿이 끝나면, 제주가 나와 유교식의 祭禮를 올리며, 특히 여자들도 모두 拜禮를 한다. 이는 일반 유교식 제례와 마찬가지로 초헌 아헌 종헌을 갖추지만 讀祝은 하지 않았다.
② 초가망석
조상들에게 굿을 시작했으니 오셔서 잘 놀다 가라는 내용이다. 巫女가 立唱을 하며, 巫歌 口頌이 끝나면 액상에서 쌀을 한 움큼 집어 祭床에 뿌린다.
③ 손님굿
동네굿이라고도 하며, 마을 사람들이 무병하기를 비는 내용이다. 巫女 혼자 북을 메고 서서 두드리면서 노래한다.
④ 제석굿
집안에 복을 받도록 비는 굿, 여기에서는 제석의 근본, 염불, 시주, 집터닦기, 집짓기, 업청, 노적 등의 순서로 집행되며, 특히 成造巫歌의 일부가 삽입되어 불러지고 있다.
제석의 근본을 풀 때는 立唱을 하나 그 나머지는 座唱을 한다. 제석굿에서는 한지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중이 입는 장삼을 입으며, 立唱時에는 양손에 밥그릇 뚜껑을 들고 이를 부딪혀 두드리면서 노래한다. 이는 佛敎樂에서 쓰는 바라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시주하는 장면에서는 祭主나 가족, 그밖에 마을 사람들에게 시주를 하라고 하며, 이때는 잽이들도 女巫의 말을 받아 시주하라고 소리친다. 뜻이 있는 사람은 액상 위에 돈을 가져다 놓고 합장을 하면, 무당은 복 많이 받으리라고 말한다.
노적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주인에게 쌀을 양푼에 가져오게 하여 앞에 놓고 노래하면서, 밥그릇 뚜껑에 쌀을 가득 담아 祭主 부인의 치마에 담아주면서 노적을 받아 가라고 한다. 祭主 부인은 그 쌀을 창고의 쌀독에 부으며, 이것은 많은 노적을 가정한 것으로 집안의 財福을 주는 주술인 것이다. 특히 제석굿은 한 시간 정도로 길게 진행되는 굿이다.
⑤ 조상굿
先靈굿이라고 하며, 紙榜을 보면서 차례로 각 조상을 불러 대접하는 내용이다. 각 조상에게 즐겁게 놀고 가라고 하면서 역시 후손에게 복을 내려 주기를 청한다. 특히 씻김굿을 받는 망자상 앞에서는 애절한 내용과 가락으로 온 가족을 울게 만든다.
굿 도중에 자손들이 나와서 제상에 돈을 놓고 합장을 한다. 각 조상을 불러낸 후에는 한데 어울려 춤추듯이 제청을 휘돌아 무당은 춤을 추는데, 이것은 娛神의 기능이 강한 거리이다.
⑥ 씻김
씻김거리는 씻김굿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대목이다. 이 씻김거리는 이승의 한을 씻어내 저승으로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굿이다. 씻김을 하기 위해서 ‘영돈말이’를 만드는데 이것은 가마니를 길게 펴서 그 속에 망자를 위해 만든 새옷을 한벌 넣고 말아서 짚으로 세 매듭을 묶어 세운다. 그 위에 또아리, 누룩, 또아리, 밥그릇, 솥뚜껑 순으로 올려 놓으며, 밥그릇 속에는 넋전을 넣어 둔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영돈말이를 세워 잡고 있으며, 먼저 어머니의 씻김을 하고, 다음 망자를 씻겼다. 쑥물, 향물, 정화수를 빗자루에 묻혀서 무당은 차례로 영돈말이를 씻으면서 무가를 구송한다.
이승의 한을 이렇게 쑥물, 향물, 정화수로 씻어내니 부디 저승으로 천도하라는 내용의 노래이며, 가족들은 그 옆에 엎드려 운다. 씻김이 끝나면 祭米를 한 움큼 집어 솥뚜껑 위에 뿌린다. 영돈말이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으로 보여지며, 모든 祭次가 끝난 다음에 마당에 내어 놓고 태우게 된다.
⑦ 넋올리기
차례로 영돈말이를 씻으면서 무가를 구송한다. 이승의 한을 이렇게 쑥물, 향물, 정화수로 씻어내니 부디 저승으로 천도하라는 내용의 노래이며, 가족들은 그 옆에 엎드려 운다. 물씻김이 끝나면, 한지에 불을 붙여 마치 물기를 말리기라도 하듯이 영돈말이 주위를 돌린다. 이것이 끝나면 무당은 祭米를 한움큼 집어 솥뚜껑 위에 세번에 나누어서 소리나게 뿌린다.
물로 씻고, 불로 가시고, 쌀을 뿌리는 일련의 행위는 정화의 기능을 하는 것이며, 이 삼자는 일반 다른 민간 신앙과 민속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영돈말이의 씻김이 끝나면, 넋전만을 꺼내 놓고 나머지는 굿이 모두 끝난 후에 마당에서 태우게 된다.
씻김이 끝나고 나서 밥그릇에 넣었던 넋전을 꺼내 가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 때는 박재수 씨의 부인-의 머리 위에 올려 놓고 종이를 오려 만든 “돈(紙錢)”으로 들어 올린다. 지전에 올려진 넋전은 다시 손대 위에 놓는다. 넋전이 잘 오르지 않아 두 세번 거듭했다. 끝내 넋전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무당의 말에 따르면 부정하거나 굿을 믿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넋전이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이 때는 사람을 바꾸어 한다고 한다.
손대에 오른 넋전은 곧 영혼의 강림을 의미한다. 이어 곧 손대잡이가 시작된다. 그림과 같은 손대백이 (손대박이)에 세운 대나무 위에 넋전을 올리고 가까운 가족 누군가가 대나무 밑을 모아쥔다. 단골은 그 옆에 서서 내림굿을 하며, 망자의 혼백이 손대에 내리게 된다고 한다. 만약 손대에 혼백이 내리게 되면 그 증거로 손대를 잡은 사람은 몸을 심하게 경련하면서 숨이 거칠어지고 눈에 촛점을 잃는다. 곧 이어 잡은 손대로 마치 쌀을 씻듯이 쌀양푼을 휘젓는다. 이것은 망자가 손대를 잡은 사람에게 接神했다고 하는 증거이며, 의식이 혼몽한 상태에서 그는 망자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가족들은 모두 망자의 말을 듣기 위해 그 주위에 모여 앉는다.
어머니의 경우는 하지 않고 祭主의 동생인 박재수 씨의 넋전만을 올렸는데 망자의 부인이 처음에 손대를 잡도록 했으나 굳이 사양하므로, 망자의 고모가 대신 잡아 자기는 이제 물에서 건저져 저승으로 가니 자식들을 데리고 잘 살라는 당부를 그 부인에게 하는 내용의 공수를 하였다.
대개의 경우 손대잡이는 천수를 누렸다고 생각되는 망자의 씻김굿에서는 하지 않으며, 사고사나 요절 등 흔히 원귀가 되었다고 믿는 경우의 씻김굿에서만 한다고 한다.
손대잡이는 세습무가 보이는 유일한 초자연적 징후이며, 가족과 단골,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믿고 받아 들인다. 일반적으로 세습무와 강신무를 구별하는 기간 중의 하나로 공수를 들고 있는데, 세습무의 경우에 손대잡이의 接神은 역시 타인에게 憑依 能力을 미친다는 점에 있어서 강신무의 공수에 가름할 신화의 기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⑧ 고풀이
이승에서 맺힌 한을 풀어 주는 굿이다. 긴 白布에 다섯 매듭의 고를 내어 차일의 기둥에 묶고 무당은 가무와 함께 이를 잡아다녀 하나씩 풀어 간다. 고는 항상 홀수로 묶으며, 경우에 따라 고를 매는 갯수가 다르지만, 여기서 경우라는 말은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며, 굿의 규모나 무당의 건강 및 기분,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묶는다고 한다.
⑨ 희설
“시설”이라고도 발음하며, 저승문을 열어 망자의 혼이 극락에 천도하도록 축원하는 굿이다. 가무로만 진행된다.
⑩ 질닦음(길닦음)
고를 맺던 白布를 두 사람이 양쪽 끝에서 펴서 허리 높이로 잡는다. 폭은 대개 두 자(60cm) 정도이며, 길이는 5 ∼ 6m로 한다. 단골은 그 백포 위에 밥그릇을 올려 놓고 그 속에 넋전을 넣는다. 이것을 잡고 왕복하면서 저승에 이르는 길을 닦는 것이다.
이 때는 두 사람을 씻기는 것이므로 두 가닥으로 베를 잡고 그 가운데에서 단골은 천도굿을 하였다. 질닦음거리의 특색은 단골과 잽이가 선후창으로 상여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진도 지방의 상여소리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일반 洞民이 상여를 메고 부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전문적인 단골(男)이 喪主의 부탁을 받고 상두소리를 매기는 것이다. 후자는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일부러 단골을 고용하여 부르게 하는 것인데 그 상두소리가 바로 질닦음에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질닦음은 씻김굿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무당이 백포 위에 넋전을 넣은 밥그릇을 밀고 오가는 동안 가족, 친지, 동민들은 각기 백포 위에 망자의 저승 노자를 하라고 돈을 놓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祝禱한다. 이 때의 돈은 모두 단골의 수입이 되며, 따라서 단골의 격려금이기도 하다.
무굿의 길닦음은 우리의 死後觀을 명확히 보여 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이승과 저승이라는 二元 構造를 전제로 하고 산 사람은 이승에서, 죽은 사람은 저승에서 지내는 것이지만, 이승에서 원통하게 죽은 귀신은 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중천에 떠다니는 원귀가 된다. 그래서 그 원을 풀어 이승의 미련을 없애고 저승으로 천도하게끔 하는 것이 바로 씻김굿이며, 질닦음에 잘 나타나고 있다.
질닦음에서 위와 같이 밥그릇에 넋전을 넣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榮華龍船이라고 하여 소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직육면체의 상자(50×40×30cm)를 상여 모양으로 꾸며, 그 위에 넋전을 올리고 백포 위를 역시 밀고 오가면서 상여소리를 가창하는 것이다. 대개 榮華龍船을 사용하는 것은 규모가 큰굿이거나, 예술제나 문화제 때 시연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⑪ 중천멕이(중천먹이)
질닦음까지 끝나면 祭廳에의 굿은 모두 완결되며, 이어 대문간에 나와 댓불을 피우고, 망자의 옷(영돈말이에 넣었던 옷)을 왼쪽으로 세번 돌려 태운다. 밖에 놓았던 死者床(밥 세그릇에 수저만 꽂혀 있다)을 댓불 앞에 놓고 무당은 혼자서 징을 두드리면서 무가를 가창한다. 이는 마지막으로 망자의 혼을 대문 밖으로 전송하는 것이며, 또한 굿에 모인 잡귀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祭床에서 조금씩 떼어 낸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 밖에 뿌린다. 이것으로 모든 굿이 끝났으며, 이 때가 새벽 4시 15분이었다.
2. 진도의 씻김굿
우리 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어 있는 “진도의 씻김굿”의 종류와 순서, 그리고 무가는 다음과 같다.
1) 진도씻김굿의 종류
진도에 행해지고 있는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 있는 원한을 풀어 주어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굿이지만, 하는 장소와 시일에 따라 다음과 같은 종류로 분류할 수가 있다.
곽머리 씻김굿
“곽머리 씻김”은 초상이 났을 때 시체 옆에서 직접하는 굿을 말한다.
이때 만약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에서 굿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관 위에 질배를 걸쳐 뜰까지 늘어 뜨리게 한 후, 그 옆에서 한다.
시체 옆에서 직접하기 때문에 이를 “진씻김”이라고도 부른다.
小祥씻김굿
초상 때 씻김굿을 하지 않고 소상날 밤에 하는 굿을 말한다. 이 굿은 喪廳 앞이나 뜰에 차일을 치고 한다.
大祥씻김
“탈상씻김”이라고도 하는데 대상날 밤에 굿을 말한다.
날받이 씻김굿
그 집안에 우환이 있던가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날 때 점쟁이에게 가서 問卜한 결과, 조상 중에서 어떤 분이 해원을 하지 못해 가족에게 화를 미치게 한다는 말에 따라 그분의 넋을 위로하고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하는 굿을 말한다.
이 굿을 할 때는 점쟁이가 날받이를 해주어서 하기 때문에 “날받이 씻김”이라 부른다.
또 이 굿은 “곽머리 씻김굿”, “소상씻김굿”, “대상씻김굿”을 하지 못했던 집에서 날을 받아서 하는 수도 있다. 이 경우도 택일하여 하기 때문에 “날받이 씻김굿”이라 한다.
草墳移葬 때의 “씻김굿”
초분을 했다가 묘를 쓸 때 행하는 굿을 말하는데 묘를 쓴 날 밤에 뜰에다 차일을 치고 망자의 넋을 씻겨준다.
영화 씻김굿
조상 중에서 어느 한 분의 비를 세울 때 그분의 넋이 宗華를 누리라고 하든가, 또는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이는 조상이 돌보아준 은덕이라 생각하고 조상 모두를 불러 행하는 굿을 일컫는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굿은 “경사굿”이라고도 부른다.
넋건지기 굿
이 굿은 “용굿”, “혼건지기 굿”이라고도 부르는데 水死者의 넋을 건져 주고자 할 때 하는 굿을 말한다.
바다나 방죽을 비롯해서 물에 익사한 망자의 넋을 수중에서 건져내어 그 한을 풀어 주고 영혼을 씻겨주는 굿인데, 이 굿은 익사한 현장에서 하거나, 수중에서 넋을 건져 내어 집안으로 모시고 가서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굿을 할 때는 밥주발에 종이로 오린 “넋”을 넣어 이를 질베의 끝에 싸서 물속에 던져 넣고 한 쪽은 신대에 묶어 놓는다. 이 신대를 가족이나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잡고 있는데, 이 대가 흔들리면서 신이 들리면 넋이 건져졌다고 여기고 씻김굿을 한다. 이를 “진씻김굿”이라고 일컫는다.
저승혼사굿
“결혼굿”이라고도 부르는 이 굿은 총각이나 처녀로 죽은 사람들끼리 사후 혼인을 시키면서 하는 굿을 말한다.
미혼 전에 죽은 혼은 “몽달귀신”이 되어서 여러 사람 특히 가족에게 해를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혼들끼리 혼사를 시켜 해원해 주면 좋다고 해서 死後 결혼식을 올려 주고 이 굿을 한다.
특히 “저승혼사굿” 때의 씻김굿은 먼저 처녀망자의 묘를 총각망자 묘 옆으로 이장하든가 합장을 하고서 그 날 밤 총각망자 집에서 하는데 뜰에다 차일을 두 곳에 치고 각각 넋을 씻긴다. 그리고 길닦음을 할 때만 두 질베를 합쳐 부부씻김굿을 할 때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온전한 부부가 되는 것이다.
이상이 진도에서 행해지고 있는 “씻김굿”의 종류이나,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날받이 씻김굿”이다.
2) 진도씻김굿의 순서
진도 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는 씻김굿의 순서는 경우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가장 일반화된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조왕반
이 “조왕반”은 부엌의 큰방 솥 앞에서 하는데 씻김굿을 할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고 굿하는 날이 조왕 하강일이거나 조왕 도회일 때 한해서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조왕반은 그렇게 많이 볼 수 없는 대목이다.
2. 안땅
대청 마루에서 여러 조상들에게 오늘밤 누구를 위한 굿을 한다고 고하는 굿이다. 굿을 할 때는 징, 꽹과리, 장고를 두들기고 피리를 불며 아쟁을 켜기 때문에 여러 조상들께서는 놀래지 마시고 같이 오셔서 즐겨 주시라고 고하는 대목이다.
3. 혼맞이
이 “혼맞이”는 객사한 망자의 씻김굿을 할 때에 한해서만 하는 대목이다. 이 굿을 하는 장소는 그 집의 대문밖 길이나 혹은 마을 앞에서 하는데 객사자의 혼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공중에 떠도는 浮鬼이기 때문에 이를 맞이해야만 씻김굿을 할 수가 있다. 장례시에도 객사한 사람의 시체는 대문이나 사릿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담장을 헐고서 운구해 온다. 그렇기 때문에 객사자는 마귀에 속한다고 할 수 가 있다. 이 마귀를 맞이한 것이 이 대문이다.
4. 초가망석
초가망석은 초혼이랄 수 있는데 씻김을 하는 망자를 비롯해서 상을 차려 놓은 조상이나 생시에 친구였다가 망자가 된 영혼들을 불러들이는 대목이다.
5. 처올리기
초가망석에 불러들인 영혼들을 즐겁게 해주고 또 흠향하게 해 주는 대목의 굿이다.
6. 손님굿
손님굿은 두가지 복합된 뜻을 간직하고 있는데 첫째는 옛날에 가장 무서운 병인 마마신을 불러서 대접하는 것이고, 둘째는 망자가 이승에서 친했던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들여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두 뜻이 어느 것이 우선인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자가 본래적인 의미였으나 “손님”이라는 어휘 속에 客이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후자가 이에 복합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것은 마마신은 공포신이기 때문에 손님처럼 길게 대접하고 위로해야만 후환이 없다고 해서 전남의 어느 굿에서나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다. 그러나 친구들의 영혼을 위한 손님굿은 하지 않는 곳이 많다. 또 후자굿을 “마실이굿”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실”이란 “마을”의 전남 방언으로서 “마실 돈다”할 때는 친구집에 놀러다니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이 씻김굿을 할 때는 모든 조상들을 초혼하기 때문에 이승의 친구는 손님에 해당한다. 이 손님들을 대접한다는 것이 마마신의 손님과 어휘상 같으므로 이 손님굿에 부합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7. 제석굿
이 제석굿은 진도 지방 굿의 중심굿으로서 어느 유형의 굿에서나 모두 행한다. 이 제석굿 속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대목이 있다.
(1) 제석 근본을 찾는 대목 (10) 성주경
(2) 제석 맞이 (11) 벼슬궁
(3) 제석이 하강하여 팔도강산을 유람하는 대목 (12) 축원
(4) 시루받기 (13) 노적請
(5) 명당처 잡기 (14) 업請
(6) 성국터 잡기 (15) 군웅
(7) 지경 다구기 (16) 조상굿
(8) 집짓기 (17) 액막음
(9) 입춘 붙이기
등인데 여기서 조상굿을 할 때는 씻기는 망자 이외의 조상들은 많이 흠향하고 편히 가셔서 이 집안을 돌보아 주시라고 축원을 하면서 붙여 놓은 지방을 하나하나 뜯어 燒紙를 올린다.
8. 고풀이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힌 채 저승으로 간 한과 원한을 의미하는 고를 차일의 기둥에 묶어 놓았다가 이를 하나 하나 풀어가면서 영혼을 달래주는 대목굿이다. 그래서 맺혀있는 고를 푼다고 해서 “고풀이”라 한다.
9. 영돈말이
시신을 뜻하는 영돈을 마는 대목이다. 굿을 시작할 때 씻기는 망자의 옷을 만들어 병풍 위에 걸어 놓는데 이 옷을 내려서 살아 있는 사람이 옷 입을 때와 꼭 같이 해서 돗자리라든가 가마니 위에 펼쳐 놓고 이를 똘똘 말아 일곱 매듭을 묶어 세운다. 그리고 그 위에 술을 만드는 누룩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사람 모양으로 오린 넋을 놋쇠주발 속에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솥뚜껑을 덮는다. 이 때 기혼망자일 경우에는 솥뚜껑을 덮으나 미혼망자일 때는 바가지를 씌운다.
10. 이슬털기
이슬털기를 “씻김”이라고도 하는데 씻김굿의 중심 대목이다.
앞에서 세워 놓은 “영돈”을, 쑥을 담근 쑥물, 향을 담근 향물, 淸溪水 순서로 빗자루에다 묻혀 머리로부터 아래로 씻겨 간다. 이 대목은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민속적으로 逐鬼的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쑥물과 향물, 그리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겨서 극락왕생하도록 기구하는 것이다.
이슬털기라 이름하는 것은 마르고 깨끗해야 환생할 수 있는데 원한이 이슬되어 젖어있기 때문에 이를 씻겨 주어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1. 왕풀이
“영돈” 위에 있었던 넋을 끄집어 내어 손을 들고 십왕풀이를 하는 대목이다. 진도와 인접되어 있는 해남 지방에서는 망자가 이승에 환생하여 무엇이 되었는가를 보는 “오귀굿”을 이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도에서는 이같은 굿을 하지 않고 넋만을 들고 십왕풀이를 한다.
12. 넋풀이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모두 풀어주는 대목이다.
13. 동갑풀이
이승에서 같이 태어났던 동갑들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자기 혼자만 죽은 억울한 원한의 넋두리를 풀어주는 대목이다.
14. 약풀이
망자가 먹었으면 살았을 약들이 이승에는 많았는데도 그 약을 못 구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한을 풀어주는 대목이다.
15. 넋올리기
씻김굿을 하는 家主의 머리에다 넋을 올려 놓고 망자의 맺힌 한이 풀어졌는가를 보는 대목이다.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넋”이 단골이 들고 있는 紙錢에 따라 올라오면 해원되었다고 한다. “영화씻김” 때는 “넋”이 잘 올라오면 망자가 잘 음향하여 만족함을 의미하고, 집안에 환자가 있을 경우 그 환자의 머리 위에 올려 놓은 넋이 잘 따라 올라오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또 건강한 사람도 돈을 앞에다 놓고 넋을 머리 위에 얹어 운수를 점쳐 보기도 한다.
16. 손대잡이
소쿠리에다 쌀을 담아 놓고 그 위에 대를 세워 놓은 것을 “손대”라 하는데 망자의 가족이나 친척이 이 손대를 잡고 있으면 망자혼이 내려 이승에 맺혔던 원한을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나 밤새도록 이 사람 저 사람이 손대를 잡아도 혼이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17. 희설
저승의 六甲을 풀어주는 대목인데 이때에는 단골 혼자 말로만 한다.
18. 길닦음
이승에서의 모든 원한을 풀어주었기 때문에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믿고 극락으로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대목이다. 질베(巫명베) 33尺을 큰 방문에서부터 대문쪽으로 펴 놓고 그 위에 “행기”(넋을 넣은 녹주발)로 길을 닦듯 문지르면서 하적을 고하는데 끝에 가서는 행기의 넋을 끄집어내어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반야용선”이라고 부르는 배를 만들어 그 속에 넋을 넣고 문지르면서 했다고 한다. 이는 저승은 바다 건너에 있다고 믿고, 그 뱃길을 닦아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겠는데, 이는 불교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19. 종천
“씻김굿”의 마지막 대목으로, 대문밖 길에서 굿할 때 태워야 할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나와 불사르면서 단골 혼자 징을 두들기면서 배송하는 대목이다. 이제 모든 원한을 다 풀어 주었으니 부디 극락왕생하고 가시는 길 편안하시라고 기구하는 대목이랄 수 있다.
이상이 진도 씻김굿의 순서이나 굿의 종류나 경우에 따라서 생략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같은 순서에 따른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순서에 의해 진행된다.
씻김굿의 제상 차림
진도에서 “씻김굿”을 할 때는 마당에다 차일을 치고 다음 도표와 같이 제상을 차려 놓고 한다. 그러나 그 집의 대문이 어느 쪽에 있는가에 따라 차림이 다른데 가령 대문이 집을 향해 좌측에 있는 경우에는 상의 좌측에서 上代 祖上代 床順으로 차려지고 반대일 경우에는 우측에서 차려진다. 다만 출가외인은 妻家床 앞에 차린다.
※ 병풍 위에는 망자의 옷을 걸어 놓는다. 병풍의 앞에 차려 놓은 제상에는 망자의 지방을 붙여 놓는다.
※ 부부는 겸상할 수 있으나 씻기는 사람의 겸상을 않는다. 왼쪽의 도표에서 父의 씻김을 할 때는 父만의 獨床을 차려야 한다.
진도씻김굿 무가 가사
노래 : 정숙자
노래 : 박병천
채록 : 지춘상
안땅
아! 인금아 공심은 젊어지고 남산은 본이로세. 조선은 국이옵고 발많은 사두세경 세경두 본서울은 경성부 동불산 집터잡아 삼십삼천 내리굴러 이십팔숙 허궁천 비비천 삼화 도리천 열시왕 이덕마련 하옵실쩍, 오십삼관 칠십칠골 충청도 오십오관 오십오골 돌아들어 관은 곽나주, 나주는 대모관, 영안은 군수구관, 해남은 선지선관이오, 우수영 금성문안에 진도는 지관이요, 골은 옥주골이요 앉으신면의 지덕은, 해동조선 전라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그 한 지덕은 김씨가문이요, 정중은 김씨 정중이요 김씨가문 김정중께서 정성이 지극허여 대궐같은 성주님을 모셔놓고 원근 선영님을 모셔놓고 이 잔치를 나서자 상책놓고 상날가려 중책놓고 중날가리고 생기복 덕일을 받아서 이 잔치를 나셨읍니다.
찬독술 왼독술에 산해진미 장만하여 마당삼기 뜰삼기 염천도우 시우삼기 야력잔치 나서서 불쌍하신 망제님을 씻겨서나 천도하자 이잔치 났읍니다.
좌우생천하니 하날이 생기시고 지에 축하니 축시에 땅생기고 인은상하니 인시에 이수 인간이 낳습니다.
천황씨는 철의인사를 통래하고, 지황씨는나서 지리역사를 통래하고, 인황씨는 인간구행 마련입니다.
태호 복희씨는 싹가죽 씨여내려 사마부화합지예를 마련했읍니다.
염제신농씨 농사법을 마련하고, 황제 혼휜씨 물을 마련하옵시고, 수인씨는 불을 비벼 화씨법을 마련하고 혼원씨는 배를내여 수중통래를 했읍니다. 그후 공자님나서 인의예지 삼강오륜 마련하고, 한나라 무고사는 신법마련 하옵시고 석가여래씨는 탄생하여 불법 마련했읍니다.
안으로돌아 들어올라 사십오세 십칠에 중궁자발 받던 우도감성주, 좌로감성주, 모루잡던성주, 대공잡던 성주입니다. 성주아관 모셔놓고 철리갔던 선영, 만리호상에 오실적에 명주머니 목에걸고, 자손치시 품에안고, 복줌치는 손에들고 배날듯이 실날듯이 청자받어 오실적에 김씨 할아버지 할머니 양위질성에 차리차리 오셔서 매진지 석반에 자수음 향하옵소서.
※ 장사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살먹은 김씨대주가 상업체로 지나나서 외상잡발은 자쳐놓고 맞전지전 관돈 줄돈 왕얼기 시얼기로 금전지화로 안을복을 재겨주고 받을복은 재겨 주옵소서.
※ 배타는 사람이 있을 경우
월강건너 대강건너 월타주거상을해도 맹지바다에 실바람없이 남주월북주월 다다녀도 거칠문적없이 모진 바람결 물결제사를 시켜주옵소사.
※ 군대 간 사람이 있을 경우
×살 먹은 자손이 색난옷을 입고 빛난 갓을쓰고 화살같은 총칼을 매고 산으로 들로 다다녀도 어둔데로 등도주고 밝은데로 앞을둘러 상관눈에 꽃으로밀로 상급시켜 권성덕화성을 입혀주옵소사.
※ 학교 다니는 사람이 있을 경우
×살먹은 자손이 타지타관에서 남의 부모를 친부모 삼에가지고 번개같이 지나나도 만인의 입담살이 천인에 해담살이 눈섭에 떨어진 관재구설은 제사를 시켜주고 글책명은 눈에안고 말책명은 속에안어 문접갑품을 도다주옵소사.
※ 아기들
×살먹은 자손 일년열두달 삼백육십일이 번개같이 넘어가도 먹는대로 살로가고 먹는대로 보신되야 해달크듯 노적이 불어나듯 키워주시오.
※ 아픈 사람이 있는 경우
우연히 득병하야 흐늘가지 드들가지 두활개 두질성 네활개 네질성 허리안 내안 숨든 가슴이 쑤시고 아프다니 바람결을 걷우어서 오색구름에 각색칠염 만물추심으로 시로 걷우고 때로걷우내서 기미도두고 식미도두고 기운설기를 돋아서 어출성납을 시켜주옵소사.
※ 아픈 어린애가 있을 경우
어린 지양자손이 겉머리 속머리 밴두머리 양두머리 코골고 배건간새를 시연히 걷우워 주옵소사. 청산에 그름걷고 만산에 안개걷듯이 어름위에 배밀고 수박에 백이걸듯 전나래 전지왕 우리나래 불사약먹고 우왕포룽환을 먹고 보고재근듯이 새왕산약물을 재겨주옵소사.
3. 占과 讀經
전남의 정통 무속은 아니지만 점쟁이와 독경을 주로 하는 판수나 맹격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무당과 마찬가지로 전문인이기는 하지만 그 계통이 전혀 다르다. 말하자면 전남의 단골은 세습무이지만, 점쟁이는 강신에 의해서 판수나 맹격은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특히 전남에 널리 산재해 있는 점쟁이는 거의 여자이며, 중부 이북 지방과 마찬가지로 신이 내려 점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큰굿은 하지 못하고 간단한 투닥거리나 비손을 한다. 그러나 현재는 그 지역의 점쟁이들이 규합하여 단골만이 할 수 있던 큰굿을 하고 있는 경향이 많다. 단골의 수가 극히 줄어들었고, 경비가 절감되기 때문에 오히려 단골쪽보다는 수요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쟁이는 말 그대로 본업은 점을 치는 것인데 점상을 받는다고도 한다. 상을 놓고 동전(옛날 엽전을 주로 사용함)을 던져 점괘를 읽거나 쌀을 던져 하기도 한다. 또한 손님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손이나 굿을 해주기도 하며, 단골에게 큰굿을 의뢰할 때는 날받이 등을 해 주기도 한다.
판수나 맹격의 경우는 대개 경문을 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점을 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세습도 강신도 아닌 학습에 의해 기능을 얻는다.
현재 두드러지는 현상 중의 하나는 점쟁이나 판수(또는 법사라고도 한다)들이 절을 만들어 기거하면서 점을 치거나 巫儀를 하는 경향이 많다. 또한 점쟁이와 판수가 연합하여 굿을 해주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점쟁이는 자기 집에 신당을 만들어 몸주를 모시거나, 절을 만들었을 경우 부처까지 모시는 경우가 있다.
이들 이외에도 주역을 놓고 사주를 보거나 날받이 (결혼, 사업, 여행 등)를 하는 역술가도 있고, 관상이나 수상을 보아주는 사람도 있다.
무속에서 다루어지는 이들을 모두 무당 또는 단골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데 특히 샤먼(Shaman)이라고 하는 것은 전남 지방의 경우 점쟁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제 3 절 結 語
전남의 무속 현상을 개관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으로 요약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전남의 正統巫는 세습무이며, 큰굿을 주도한다. 巫系는 男系로 계승되고 있으며, 무가의 가창은 女巫가, 반주는 男巫가 하는 것으로 분화가 되어 있으며, 사제권을 여자가 갖는 대신에, 男巫는 굿에 따른 계약과 그 주도권을 갖는다.
둘째, 굿의 종류는 성질에 따라 경사굿과 궂인굿으로 나뉘며, 규모에 따라서는 큰굿과 비손, 푸닥거리 등으로 나뉜다. 큰굿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골이지만 오늘날은 점쟁이들도 굿을 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단골의 경우는 영적 능력을 의심받고, 사회적으로 천시되며, 경비 부담이 많아서 수요자가 극히 줄어들고 있으며, 그 자체의 수도 현저하게 감소되고 있는 추세이다. 더구나 현대의 합리적 사고의 영향과 고등 종교의 확산으로 그 기반이 매우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실정에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점쟁이류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는 단골과의 상관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만, 한편 현대화의 그늘이 그만큼 짙기 때문에 오히려 찾는 사람이 많아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셋째, 무속 담당자를 나눠 볼 때 세습무, 강신무, 학습무로 분류할 수 있다. 세습무는 단골이 해당되며, 강신무는 점쟁이, 학습무는 맹격, 판수, 법사, 역술가 등이며, 샤먼에 속하는 엑스타시의 기능 보유자는 점쟁이가 해당된다.
넷째, 전남 지역에만 뚜렷하게 남아 있는 단골판을 역사적으로 소급하면 신권 정치와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일정 지역의 巫權을 지닌다고 하는 것과 春秋로 걸립을 한다는 점에서 제정일치 사회의 편모를 찾아볼 수 있다.
다섯째, 전남의 단골은 다른 어느 지역에 비교해서 가장 예능적이며, 이러한 현상은 신권 능력이 약화되는 것에 반해서, 판소리와 같은 새로운 문학과 음악의 장르를 만들어 내는데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 이밖에도 기생이나 광대로 출세할 수 있는 기능과 소질을 갖는데 크게 기여했다.
여섯째, 하나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현재 단골의 수가 극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예술적 능력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의 보호가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진도의 씻김굿이 國家指定重要無形文化財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지만, 지역적 특수성과 그 가치를 생각할 때 보다 넓고 종합적인 보호 육성 대책이 바람직스럽게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