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송 씨는 30년 동안 호텔 조리사 외길로만 걸어왔다. 조리사 출신이 대기업 계열(한화그룹) 호텔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그는 유학 및 전문학교를 거치지 않고 호텔 조리 현장에서의 성실성과 솜씨로 인정받은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
프라자호텔의 주방 옆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로 정태송 씨를 찾아가자, 하얀 조리사 복장의 정태송 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조금 전까지 일을 하고 있었던 듯,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사무실 벽에는 호텔 조리사 조직표가 붙어 있었는데, 100명이 넘는 조리사들의 맨 위에 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는 최근 그룹내 인사에서 상무보에 승진했지만, 여전히 아침 일찍 출근하여 주방을 챙긴다고 한다.
그가 조리사의 꿈을 꾼 것은 미 2사단에서 카투사 생활을 하던 때. 하얀 복장으로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여 취사병으로 지원했다. 막상 미군 부대에서 요리를 해보니, 자기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가 좋았고, 꼼꼼한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아 본격적으로 조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제대 후 바로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1973년 조선호텔 조리사로 일하다, 1976년 문을 연 서울프라자호텔에 스카우트되어 지금껏 외도 한 번 없이 호텔 주방을 지키고 있다.
물론 30년 동안 호텔 주방에서 일하면서 미국이나 호주에 진출해볼 생각도 있었고, 다른 호텔의 스카우트 제의도 수없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성격상 옮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 조금 더 받는다고 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있는 데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올바른 직업관을 가지고 있어야 자기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조리사를 뽑을 때도 약삭빠른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인사 청탁은 일체 받지 않는다. 적어도 이 곳의 조리사는 한 명도 학맥이나 연줄로 뽑은 사람이 없다고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1997년 서울프라자호텔 조리 총책임을 맡은 이후 차장에서 부장(1999년)으로, 다시 상무보로 초고속 진급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주방에 가장 먼저 출근해 그 날의 메뉴를 일일히 점검한다. 양식이 전문인 정태송 씨는 바닷가재를 비롯한 해산물 요리에 능하다. 그 동안의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1997년엔 서울특별시장 표창, 1999년엔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특히 1999년부터 국내 호텔 최초로 조리연구개발팀 ꡐ조리 7인방ꡑ을 운영해 후배 요리사들과 함께 한식과 양식을 조합한 ꡐ퓨전 메뉴ꡑ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전에는 후라이팬만 돌릴 줄 알면 요리사가 됐지만, 지금은 요리를 하기 위한 이론도 알아야 하고, 영어․불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양식 메뉴를 직접 짜기 때문에 영어, 불어는 수준급이라고 한다. 그는 조리사가 되려면 끝없는 연구와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처음 요리를 배워 1년 이상 5년 이하일 때는 선배들이 하는 기술을 모방하고 테크닉을 배우는 시기이며, 5년에서 10년 사이에는 자기 특기를 찾아서 개발해야 하는 시기,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남의 것을 배우기보다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며, 요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명장이라는 칭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남들을 위해서는 매일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면서 정작 본인은 음식 욕심이 없다. 그는 아침마다 콩나물국에 떡 네 쪽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외식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회식이 있으면 종업원 식당에서 미리 식사를 하고 갈 정도로 음식에는 담백하다. 음식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맛있는 음식이 된다며, 직원들에게도 정성이 들어가게 하라고 늘 강조한다고 한다.
그는 일할 때는 아주 꼼꼼하다. 손을 안 댔으면 안 댔지, 댔다 하면 아주 사소한 것까지 치밀하게 챙긴다. 요즘도 VIP가 오면 직접 요리를 한다는 그는, 다른 여느 조리사와 마찬가지로 손님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제일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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