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글쓰지 않던 그리스도인, 아니 목사
신학부에 입학했지만 공부보다 찬양과 기도에, 신학보다 성경 읽기와 묵상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당시 채플 설교에 울려 퍼진 메시지에 순종한 결과였다. 정말 나는, 기도만 많이 하고, 성경만 많이 읽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만큼 순진했고, 무지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역을 시작하니 현장은 달랐다. 당장 설교를 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설교문’을 써야 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도움받을 곳도 없었다. 그래서 설교집을 사서 베끼기도 하고, 슬쩍 각색도 하면서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많이들 그렇게 하니 처음엔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삶도 오래가지 못했다. 내 안에 기쁨, 보람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자유가 없었다. 어딘가에 있을 양심에 혹독한 채찍질까지 느껴졌다.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 책을 무작정 찾았다. 초록빛 책에 명료한 제목을 가진 책에 끌렸다. 『글쓰는 그리스도인』(2009). 수많은 글쓰기 책 중에 그리스도인과 연결시킨 유일한 책이었다. 목차를 보니 실용적이었다. 단숨에 구입했다. 심지어 별매였던 워크북까지. 그러나 녹색 표지가 검정 표지가 될 때까지 읽지 않았다. 사람 습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노련하고 치밀한 글에 영혼을 부여잡으며 감명 깊게 읽었던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이, 『글쓰는 그리스도인』과 같은 저자, 김기현 목사님의 책이라는 것을.
세월이, 사역 연차가, 직분이 쌓여갈수록 ‘글쓰기’의 갈급함이 커져갔다. 장년 설교까지 맡다 보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기껏 찾아간 설교 세미나는 글쓰기 세미나가 아니었다. 도전은 됐으나 실익은 없었다. 문제는 현장 곳곳에서 터졌다. 가장 큰 고질병은, 준비한 설교 메시지가 정확히 전달 되지 않았다는 것. 성도님들이, 그리고 아내가 은혜받았다며 칭찬과 함께 은혜 나눔을 해주었다. 느낀점을 말해준 것이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고,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뜻으로 설교하지 않았다!’
다들 어려워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했다. 나 혼자 떠들었다. 좋은 책도 많이 보고 시간도 많이 들였지만 서로 피곤했다. 아내가 해준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쇼를 하며 먹는 남편의 모습이랄까.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누구 하나 내 설교를 정확하게 지적해 주지 않았다는 것’, 아니 ‘못했다는 것’이다.
2. <글쓰기 학교>로 글쓰기를 시작하다.
설교와 글쓰기에 갈급함, 막막함이 있던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김기현 목사님의 ‘설교쓰기 워크숍’이 온라인으로 열렸다. 그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부산 현장에서 진행되어 엄두도 못 냈다. 마음에 품고만 있다 결단하여 등록했다. 기독교 대표 작가의 지도와 첨삭을 받는다는 설렘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설교 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특히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개요 작성’과 ‘문단 나누기’를 확실히 배울 수 있었고, 여러 글쓰기 기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백미는, 사부님의 첨삭이었다. 빨간 펜으로 그려진 전문가의 평가와 진단에 묵은 체증이 말끔히 가셨다.
그래도 여전히 목말랐다. 이론은 배웠지만, 실전 적용이 쉽지 않았다. 마침 사부님께서 카톡으로 ‘글쓰기 학교를 추가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주저하던 나를 확 이끄는 손짓이었다. 몇 달 후 등록했고,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수강하며 달려왔다.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신기하게도, 평생 교회와 가정을 먹이고 살릴 비기(祕器)를 얻었다. 글쓰기학교 효과다.
도대체 글쓰기학교에는 무엇이 있어 지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그곳엔 스승과 글 벗, 그리고 서로를 향한 감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다.
1) 글쓰기 스승(사부)님
피아노를 꽤 오래 배웠다. 피아노를 배우며 뼈저리게 느꼈다, 배움에 스승의 지도는 필수라는 것을. 혼자 심취해 연주하다가도 스승 앞에만 가면 진짜 실력이 탄로 난다.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앞으로 성장할 방법을 배운다. 그렇다. 스승은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지도해 주는 특별한 존재다.
글쓰기학교의 김기현 목사님은 그런 스승, 사부님이시다.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해 주셨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 주셨고, 개선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언제나 명쾌했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당신이 가진 경험, 기법, 노하우를 주저 없이 방출하셨다.
가장 큰 감동 포인트는 정성스런 첨삭이다. 정돈된 책이 아닌, 멋대로 쓴 아마추어의 거친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고통이다. 게다가 첨삭까지 하려면, 스트레스 그 자체이다. 사부님은 그 중노동을 매주 해주셨다. 모든 수강생을 그렇게 살뜰히 섬기셨다. 곁에서 친절하게, 조곤조곤 가르쳐주신 덕에 글쓰기는 매주 성장할 수 있었다. 사부님은 작가뿐 아니라 스승으로도 탁월하신 분이시다. 글쓰기학교 아니었음, 사부님 같은 스승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2) 동행자, 글 벗
글쓰기학교의 또 하나의 자랑은, 함께하는 글 벗이 있다. 함께 쓰고, 읽으며, 같은 목적을 향해 동행하는 진정한 벗이다. 첫 번째 독자로 글을 나누며, 공감하며 박수 보내 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더라. 글쓰기학교에 오면 좋은 사람과 글로 교제하는 낭만을 누릴 수 있다.
누군가의 시선이 없다면 사람은 한없이 게을러진다. 그래서 혼자 목표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게을렀다기 보다, 너무 바빠 퍼지기 직전이었다. 매주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그때마다 시간과 글을 약속하고 공유한 벗들이 있어 분발했다. 때로는 그 상황을 이용해 나를 몰아쳤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실현되는 곳이다. 정말 함께여서 끝까지 올 수 있었다.
3) 서로를 향한 감탄
글쓰기학교에만 있는 전통이 있다. ‘감탄’이다. 서로의 글을 보며 감탄한다. 아이를 키워보니 사람은 감탄과 인정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자라면서 감탄보다 비판과 조롱, 무시당할 일이 더 많아진다. 인생의 비극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다가 글쓰기학교에서 감탄을 받으니 놀라고 어색했다. 비루한 글에 보내 주는 찬사가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또 싫지는 않았다. 때로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쉽지 않다.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보라. 스마트폰에 내 목소리를 녹음해 봐라. 눈감고, 귀막고 싶다. 내 글은 오죽할까. 왜 이리 못쓰는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영 애정이 안 간다. 그런데 글쓰기학교에서는 이 글에 감탄을 보내 준다. 자신감이 생기고, 더 잘하고 싶은 열정이 샘솟는다. 하다 보면 진짜 감탄을 자아내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긴다. 참 특이한 곳이다. 그래서 정말 소중한 곳이다.
글쓰기 학교에는 글쓰기 스승님, 마음 좋은 글 벗들, 기분 좋은 감탄이 있다. 글을 잘 쓰곳 싶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공간이다. 더구나 매일 글쓰기에 허덕이는 사역자에게는, 감히 ‘필수’라 말하고 싶다.
3. <글쓰기학교>로 얻은 예기치 못한 기쁨: 설교 그리고 출판
주변 동역자들에게 글쓰기학교 참 많이 소개했다. 숱하게 거절당했다. 이유는 너무 바쁘다는 것. 나도 전임 부목사를 하며, 세 아이가 있는 가정을 돌보며 정말 바빴다. 바쁜 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들어야 하는 세미나도, 익히고 배워야 하는 잡다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글쓰기학교’에 올인했고, 집중했다. 이유는, 지금 안 하면 수년 후에, 또는 담임목사가 되어서, 그때야 이 과정을 허겁지겁 수강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해 나중에 후회할 거라면, ‘지금 당장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판단이 옳았다. 가장 큰 효과는 준비한 설교가 청중에게 정확히 전달되기 시작했다. 은혜받은 지점과 설교의 포인트가 일치했다. 그러니 설교에 대한 피드백이 많이 좋아졌다. 예전엔 형식적인 인사였다면, 이제는 진짜 좋은 반응이었다. 쉽고, 재밌고, 들리니 설교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설교가 마쳤는데도 듣는 본인의 집중력이 살아있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논지를 이끌어가는 구조, 이야기와 해설의 적절한 배치, 단문 위주로 풀어쓴 문장, 모두 글쓰기학교에서 익혔고, 그 효과가 톡톡히 나타났다. 설교자로 갈 길이 멀었지만, 한 단계 도약한 것 같다. 뿌듯했다.
가장 큰 수확은 ‘출판’이다.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썼다. 사부님도 출판이라는 꿈을 계속 심어주셨다. 그러나 나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플루언서도 아니었고, 인기 있는 실용서나 다이나믹한 간증문도, 탁월한 문학적 가치가 있는 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했기에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얻은 게 많아 충분히 감사했다. 그런데 그런 나보다 사부님께서 출판에 더 열심을 내어주셨다. 몇몇 출판사에 직접 투고까지 해주시면서 말이다. 부담스러우셨을 텐데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죄송하면서 감사했다. 사부님의 열정에 나도 애써 부정했던 출판의 꿈을 조금씩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죠이북스>에서 연락이 왔다. 출간하자고. 믿기지 않았다. 지금도 이게 꿈인가 싶다. 출판 시장에 내세울만한 스펙이 없어 기대 안 했다. 그런데 오직 글만 보고 채택이 되었다는 게 너무 기뻤다. 책 출판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담임목사가 된 후에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 아득하고 먼 ‘미래’가, 글쓰기학교 1년의 과정으로 ‘현재’가 되었다.
이렇게 글쓰기학교 덕에, 형언할 수 없는 큰 변화와 축복이 나에게 찾아왔다.
4. <글쓰기학교>를 마치며..
『글쓰는 그리스도인』 책을 사며 읽지도 않던 내가, 이제는 글 쓰는 그리스도인, 글 쓰는 목사가 되었다. 글쓰기학교, 사부님, 글 벗들 덕분이다. 그래서 많은 분에게 권하고 싶다. 첫째는 글쓰기. 모든 사람은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쓰며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둘째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글쓰기학교이다. 장점은 끌어내고 단점은 보완해주시는 사부님, 서로 감탄하며 다독여주는 글 벗들이 있는 이 곳,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책 한권 쓰고 싶다’는 만인의 버킷리시트 아니던가.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편하게 잠을 잔 주일 밤이 거의 없었다. 월요일 수업에 올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주일 사역을 마치면 그때부터 글쓰기 시작이었다. 그간 카톡과 메모장 이곳저곳에 적어 놓은 아이디어를 정리하며, 서재에 있는 책들을 뒤져가며, 한 주씩 버텼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큰 보상을 받아 지난 세월에 감사만 남았다. 앞으로 열릴 새로운 삶에 기대까지 품고 있다.
그동안 글쓰기에 용기가 없어서, 방법을 몰라서 주저했던 많은 이들이 글쓰기학교에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같은 즐거움과 유익을 얻었으면 좋겠다. 책 출판이라는 꿈도 덤으로 실현하면 좋겠다. 끝으로, 글쓰기는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것, 글쓰기학교와 함께 하면 더 빨리,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