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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사이펀문학토크
광주의 시인을 민나다
초청시인 – 박은영, 이창수 시인
*계간 《사이펀》에서는 최근에 발간되는 시집들을 대상으로 해당 시인을 초청하여 간단한 시 이야기와 낭독의 밤을 열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먼저 시작하여 2022년부터는 울산, 대구, 광주, 인천 등 전국을 순회하며 문학토크를 개최합니다. ‘사이펀 문학토크’ 대상은 가급적 지역 소재 출판사에서 발행된 시집들을 우선 초청합니다.
*이는 중앙주의(서울주의) 타파를 외치면서도 정작 본인은 서울로 가 책을 펴내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서입니다. 제대로 대우받으며 펴내는 출판이 아니라면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역의 출판사를 이용하여야 우리 지역의 전체적인 문화발전을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진행내용은 계간 《사이펀》에 토크내용과 시집의 대표시 등을 수록하여 전국으로 시인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일시: 2022년 7월 22일(금) 오후 5시30분 ■장소: 전남 나주시 남평카페 ‘강물 위에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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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사이펀 문학토크 광주의 시인을 만나다
시가 흐르는 여름밤, 첫 문학토크의 설레임
▮초대시인 : 이창수 시인, 박은영 시인 ▮대담진행 : 이재연시인
이재연 : 안녕하세요 이재연입니다. 계간 《사이펀》에서는 최근에 시집을 출간한 시인을 모시고 문학토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이펀의 문학토크는 부산에서 시작하여 각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광주에서 두 시인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현재 광주에서 생활을 하고 계시고 다른 한 분은 함평에서 올라오셨습니다. 이창수 시인과 박은영 시인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창수 시인은 최근 2022년 6월에 세 번째 시집 『횡천』을 발간하였습니다. 박은영 시인은 4월에 두 번째 시집 『우리의 피는 얇아서』라는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두 분에게 우선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저자에게 있어 출간된 시집은 늘 특별하지만 이번 시집을 출간하면서 특별히 느끼는 소회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분 시인께 청해서 듣겠습니다. 또 이창수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특별한 지역이나 지명이 들어간 시편들이 눈에 띄고요. 박은영 시인의 시편들 속에서는 가족사에 관한 편린들이 눈에 띕니다. 이에 관해서도 간단히 언급해 주실 수 있는지요?
이창수 : 안녕하세요! 이창수 시인입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사회자인 이재연 시인님께서 제 세 번째 시집인 『횡천橫川』에서 지역과 지명이 많이 등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서른 번 가까이 이사를 다녔습니다. 이사는 살던 곳을 떠날 때에는 낯설고 두려운 감정이 생기게 합니다. 살던 곳에서는 반드시 그곳과 연관된 사람이 있고 사건과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들이 어느 날 시로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문정희 선생님에게서 시집 잘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정희 선생님은 고향이 보성으로 저와 동향이며 존경하는 선배님입니다. 시집 낸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시는 선생님의 전화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모처럼 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의 유래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머리가 나빠서 지금은 가물가물해요. 아무튼 『횡천橫川』은 제가 서른 번 넘게 이사 다니며 머물던 공간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들이 시로 재구성되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두 번째 시집인 『귓속에서 운다』와는 공간의 차이 시간의 차이에서 변별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횡천은 하동군 횡천면 소재지를 관통하는 크지도 작지도 않는 하천입니다. 횡천을 따라 2-30킬로 올라가면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이상향으로 꼽는 청학동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횡천을 보다가 그 강을 건너가 보았습니다. 강을 가로질러 그물이 쳐져 있었는데 호기심에 그물을 들어보니 물고기 대신 나뭇잎이 가득 들어 있더군요. 그물을 친 사람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건지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시 「횡천」의 시작은 그런 만남과 사건 그리고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강을 건너야 합니다. 시집 『횡천』은 내가 건너야만 하는 강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박은영: 시는 삶이고 삶은 곧 시라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살다보니, 가족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처와 치유의 면이 있더라고요. 원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상처도 모르는 타인에게 받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사랑했던 사람, 믿었던 친구, 지인에게서 배신과 아픔을 전달받잖아요. 그런 면에서 제 시들은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상처가 상처로 끝나지 않고 비온 뒤, 땅이 더욱 굳듯이 치유로 회복한 나와 당신, 가족, 그리고 인연의 이러한 단단한 관계성을 구축하는 게 인간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시작詩作을 합니다. 그래서 제 시집엔 가까운 삶의 형태들이 자주 등장하고 특히, ‘가난’은 단골 소재처럼 등장하는데요. 가난이란 물질의 부족함만 포함된 게 아니라 마음의 허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도 가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차적인 의미에서 저는 실제로 가난하게 살았고 지금도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자가정으로 생계 지원을 받아야 했고 글을 쓰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 이를 테면 피아노시간제강사, 시간제보육교사, 식당설거지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죽지 않을 만큼 벌고 나머지 시간은 글을 쓰는 데 모두 할애를 했고요. 문학인들에게 주는 지원금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것은 제가 글을 쓰기 위한 선택한 길이니까 고통스럽거나 비참하진 않고 조금 불편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에겐 못난 딸, 불효녀여서 항상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이러한 죄스럽고 무거워 바닥으로 침잠하는 마음, 가족사와 가난, 삶의 경험은 글을 쓰는 데 있어 훌륭한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시집엔 그런 가족사에 관한 편린들이 지면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이재연: 이창수 시인의 경우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운다』를 저는 잘 읽었습니다. 서사적 골격에 입혀지는 특유의 입담과 함께 위트 해학 유머 아이러니 등이 작동하는 데요. 이로 인해 때로는 슬픈 것이 슬프지 않게 다가오는 그것이 더 슬퍼지기도 하는 그런 시들을 눈여겨 읽었습니다. 아무튼 두 번째 시집을 잘 읽었는데요... 이번 시집에서도 이창수 시인의 특질인 서사적 시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좀 더 두드러진 것은 시편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좀 더 정적인 면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시인의 말씀처럼 지리산이 섬진강 등이 문명의 반대쪽에 있는 자연적인 공간이므로 시들이 그와 같은 정서를 담지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로 인해 시적 화자는 더 고요해지는 반면 사물들과 풍경들이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이 담백하고 올곧은 서정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화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하고요. 또 두 번째 시집과 세 번째 시집사이 어떤 변화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의 시작 방향 같은 것 혹시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이창수 : 제 시를 읽은 많은 분들이 제 산문시가 재밌다고 해요. 아무래도 절제된 서정시보다는 자유롭게 쓰는 산문시가 좀 더 발랄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시는 형식에 있어 절제되고 의미가 깊은 게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우리 시들이 형식에 있어 긴장이 떨어지고 의미가 모호하고 문장이 길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90년대 후반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런 시풍이 우리 시의 전형이 되어 버렸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이런 시를 실험시라고 극도로 칭찬하면서 환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 평론가들이 그런 시를 극찬했었고 언론이 이를 뒷받침해주었지요. 그들을 미래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시의 형식은 절제되고 내용은 깊어야 한다는 게 시에 대한 제 생각인데 사실 저도 그런 시를 추구할 뿐이지 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르게 익살스럽게 쓴 시들이 독자들에게는 재밌게 보이나 봅니다. 이런 시를 자주 발표하니 그게 저만의 특징이 된 듯도 하고 암튼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시는 세월이 흘러서도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많습니다. 영국의 대문호인 섹스피어의 해학적인 문장이나 조선말기의 우리 시에 해학적인 시들이 많습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도 해학적인 부분이 많은데 해학은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고 몰입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시보다 가벼운 시 그러면서도 진솔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는 팔십 평생을 고향에서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고향 자체이며 집입니다. 명절에 고향에 간다는 의미는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뜻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고향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의지할 집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올 이별을 쉰 살이 넘어 겪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앞에서 서른 번 넘게 이사 다녔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최근 사이 눈 여겨 본 공간이 지리산입니다. 삼사년 전부터 지리산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구례·남원·함양·산청·진주·하동 등 지리산을 둘러싼 여러 곳을 다니면서 거기에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시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지리산에는 시대별로 다양한 인물과 그 인물들이 겪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다음 시집에 담아볼 생각입니다.
이재연 : 사실 저는 박은영 시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고 개인적 교류도 전혀 없는 시인이었습니다. 우연히 시집을 읽고 또 이 지역에 살고 계신다는 정보를 듣고 반가워서 얼른 섭외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향, 가족, 성장기, 등은 시편 속에 늘 등장하는 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를 통해 독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려면 일정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시점이 한국 시사에 없었다 할 수 없는데요. 이번 박은영 시인의 시집에서 제가 느낀 것은 이러한 주제를 통해 자칫 빠질 수 있는 클리셔를 말끔히 극복한 시편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물론 언어이겠지요. 감각적인 언어와 함께 끝까지 자아(상처, 기억)를 들여다보는 내적 성찰이 진정성까지 확보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시집과 2시집의 터울이 짧은 편인데요. 시작을 어떻게 하고 계는지요? 또 1시집과 2시집의 차별성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또 이창수 시인과 동일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의 시작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박은영: 제가 다루는 소재는 앞서도 말했지만 가족, 삶의 경험이 많습니다. 진부함, 상투성을 벗어나기 위해 간극이 먼 재료를 사용해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글을 씁니다. 또한 관념적인 단어보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단어를 제시하고 묘사 속에 이야기, 의미를 집어넣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단지, 아름다운 문장으로만 그치지 않고 수식어를 최대한 절제하면서 가장 쉬운 언어로 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1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는 23행을 강박적으로 고집하던 시기인 등단 전에 쓴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등단이라는 틀과 시를 향한 열정으로 만들어진 시집이라면 2시집인 『우리의 피는 얇아서』는 그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나의 목소리를 담은 게 두 시집의 차이일 것 같습니다. 저는 퇴고를 아주 많이 합니다. 필력이 없어서 오래, 장시간 퇴고를 하는데요.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발코니의 시간」은 5년 간 퇴고를 했고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인디고」는 3년 정도 퇴고를 했습니다. 한 시만 붙잡고 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초고 시들을 일정한 기간을 두면서 계속 수정과 퇴고를 반복하여 완성을 하는데요. 제 시는 김치가 익어가듯 일정 기간 묵혀놓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좀 시작법이 달라진 것을 느껴요. 시를 쓴지 17년이 되고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니까 예전처럼 장시간을 요하는 퇴고는 하지 않아도 한두 달, 혹은 집중하면 일주일 정도 손을 보면 완성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의 계획은 17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의 세계관을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하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시를 쓰려고 합니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문학은 죽은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에게 읽히는 것, 이게 문학의 지향성과 명분이지 않을까요. 다시 언급하지만 가장 쉬운 언어로 한 세계를 보여주는 게 나의 목표입니다. 이 마음은 절필을 하지 않는 이상 변함이 없을 것 같네요. 저의 시 쓰기는 가족과 주변인들을 거쳐 나를 찾아가는 행로였습니다. 나를 찾는 길이 17년이 걸렸어요. 다음 시집은 오롯이 저의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재연: 다음은 두 분의 시를 낭송을 통해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낭송이 끝난 후 관객들이 두 시인에게 궁금한 점 등을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재연 : 오성인 시인과 김영진 시인이 각 각 두 분의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두 분 시인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질문이 되겠지만 편하게 질문하겠습니다. 편하게 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두 분에게 있어서 시란 무엇인가요? 쉬운 질문이면서도 어려운 질문 같기도 합니다.
이창수 : 솔직히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어요. 랭보의 見者론을 빌려서 말하면 시인이란 “진실을 발견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최소한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시인 아닌가 합니다. 그 진실은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일 수도 있겠습니다. 김지하가 말하는 흰 그늘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겠지요.
박은영 : 저는 고전적인 정의를 빌려,‘시는 마음의 창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시란 마음이라는 필터의 여과 장치를 통과해 문장으로 나오는 것이니까 시속엔 시인의 기운과 생각, 감정, 느낌과 더불어 필자의 영혼까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시는 무생물인 글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고 독자도 그런 기운을 느껴 공감하는 문학 장르가 바로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는 독자와 시인이 소통하는 공간이고 그 공간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이뤄질 수 있으니까 시는 단지 읽음과 씀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독자와 시인의 허기를 채워주고 아픈 구석을 어루만져줌으로써 무한한 효력을 발휘하는 게, 시의 본질이라고 여깁니다. 저도 시를 쓰면서 많은 치유를 받았고 시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처방약 같은 존재, 삶의 동아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오성인 시인님께서 낭송해주신 「나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시는 국민건강검진을 받은 부모님과 함께 식당을 가서 느꼈던 제 감정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저는 원래 감정을 최대한 누르고 연구자, 과학자(?)처럼 자료를 찾아 분석해서 시를 쓰는데요. 이 시는 초고를 쓰고 펑펑 울었습니다. 제 시집에 숨겨놓은 감정의 스위치를 찾아 낭송해주시니 그때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 울컥하네요.
이재연: 그리고 두 분의 시에서 공통으로 발견된 부분이 서사부분이었는데요 이것을 각자 풀어가는 방식은 좀 달랐어요. 두 분 시인께서는 상대의 시를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이창수: 박은영이라는 시인을 저는 오늘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박은영 시인이 우편으로 보내온 두 번째 시집을 읽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고향에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시인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형식은 절제 되었고 불필요한 서술이 없었으며 내용은 진실했습니다. 그녀의 나이나 사는 형편은 관심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들을 보여준 박은영 시인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이상 따로 드릴 말은 없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박은영: 저는 슈퍼마켓도 없는 시골 외딴곳에서 세상과 단절되어 글쓰기만 하느라 이렇게 훌륭하신 시인님께서 광주에 사시는 줄 몰랐어요. 시인님의 시집을 받아든 첫 느낌은 ‘맑음’이었어요. 시집 표지처럼 내용도 꾸밈이 없고 정갈하고 따뜻함이 읽혀졌습니다. 조미료를 넣지 않은, 식재료 본연의 맛이 담긴 오이냉국을 먹은 기분이랄까요. 문장 속에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욱 반가웠고 투박함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와 이창수 시인님의 우직하고 요동 없는 잔잔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표제작인 「횡천」을 읽고 제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어요. 한때 도시사람으로 살았을 때가 있었는데요. 뭐든지 편하게, 쉽게, 빠르게 살기 위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운전을 하면서 다녔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꼬집는 「횡천」을 읽으면서 그때의 제 모습이 떠올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시골 생활보다는 도시를 동경하는 저의 이기심, 욕심, 갈망, 이러한 마음의 작용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였습니다. 모든 길들이 포장되고 곧게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고 사람들이 직선을 숭배하는 지금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횡천을, 시대적 흐름으로 표현하여 그 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학이 날아다니는 청학동과 나무꾼이 등장하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사람도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그런 청정 무해한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횡천」 뿐만 아니라 밤하늘을 캄캄한 항아리로 연상한 「망초」, 옻나무의 독과 사랑을 연결한 「옻」 등을 비롯한 모든 시편이 많은 여운을 남겼던 시집이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제 영혼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재연: 두 분이 서로에게 호평을 해주셨습니다.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이제 두 분이 가장 마음이 가는 자신의 시 한 편씩을 직접 낭송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낭송시에 대한 시작에 관한 짧은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이창수: 제가 최근 2-3년 사이에 지리산을 자주 찾습니다. 90년대에는 버스로 이동하기 편리한 지역인 뱀사골과 피아골을 찾았는데 차가 생기면서 찾는 범위가 넓어져 함양이나 산청 방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지리산에 관련된 시가 스스로 찾아오는데 「지리산 2」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입니다. 이 시는 고등학교 졸업을 한두 달 앞두고 동창 서지우의 제안으로 난생처음 지리산 등산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 겨울의 산행이 지금까지도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박은영: 「큐리오시티」는 사랑에 관한 시이고 저의 고백적인 시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선 나의 자아, 집착, 생각의 무거움을 버리고 오직 심장 하나만 남아 사랑하는 이에게로 향하는 화자를, 화성탐사선인 ‘큐리오시티’를 통해 그려보았습니다. 발사체가 화성에 진입하기 위해선 자신을 감싸고 있던 캡슐을 떼어내고 낙하선 하나만 펼치고 착륙을 하는데요. 귀환을 포기한 채 생을 마칠 때까지 화성 표면을 다니며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그 고독하고 쓸쓸한 탐사선의 모습이 한 사람에게 매달려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더 넓은 의미로 본다면 집착이나 불통은 나 자신마저도, 아니면 사회마저도 화성처럼 생명이 살 수 없는 근원이 되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재연: 네 두 분 시인이 각자 선택한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가 꽤 진지하며 열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쉽지만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고영민 시인은 이창수 시가 주는 감동의 원천은 진정성이다. 그의 시는 정확하게 자기 삶의 방식, 태도와 일치하며 진솔하고 명징하다고 평했다. 공감이 가는 평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나아가 서정시의 전통을 오롯이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박은영 시인 역시 상처나 결핍을 통해“무거운 자아를 가”지게 되었고 그런 자아를 주시하는 일이 곧 상처나 결핍으로부터 나를 구원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알레고리와 은유를 통해 전해지는 삶의 곡절들이 감각 자체로 끝나지 않고 삶의 진정한 국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두 분의 시 잘 읽었습니다.
오늘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박은영 시인께서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또 드들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카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홍관희 시인께도 감사 말씀 드립니다. 또 부산과 여러 지역에서 오셔서 함께 동참해 주신 많은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두 분 앞으로도 좋은 시로 독자들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부산에서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신 배제경 발행인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