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은 6차 교육 과정의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가 7차 교육 과정에 와서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6차의 '홍길동전'에서는 너무 어려운 어휘가 많아서 학생들이 어휘 습득에 급급하다 보니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며 작품을 감상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7차에서는 어휘를 쉽게 풀어 놓아 학생들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게 고려하였다. 그러나 수록된 부분이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과 적서의 차별과 축첩제도라는 사회상을 이해하기가 좀 힘든 1학년 1학기에 수록되었다는 점이 문제로 남긴 하였다. 5차에서 시작하여 7차까지 연이어 수록된 <홍길동전>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
솔직히 어렸을 때 읽었던 '계몽사'에서 출간된 <홍길동전>과 교과서에 수록된 일부분이 독서량의 전부였던 본인에게 <완판 홍길동전>은 이런 내용도 있었구나 감탄을 하게 만든 부분이 적지 않았다. 신출귀몰한 홍길동의 영웅적 행태와 적서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 활빈당을 이끄는 의적의 두목이라는 점,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을 세웠다는 일반론적인 내용 외에도 고려할 부분이 많았다. 홍길동의 도술과 무예가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하다는 선입견을, 그러한 것들이 소설적 장치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급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하겠다.
다음에 크게 두 개의 맥락으로 나누어 작품을 다루어 보겠다. 첫째는 '홍길동의 영웅적 면모'를 중심으로 둘째는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교 사상과 길동의 인간적 고뇌'를 중심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첫째, 홍길동의 영웅적 면모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홍승상이 용꿈을 꾸고 얼떨결에(?) 태어난 길동은 출생 자체가 얼자였기에 태어날 때부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안고 태어났다. 태몽이 실제로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웅이라는 설정의 첫 장치로 특이한 꿈을 제시하였다. 길동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했다고 하겠다. 길동은 재주도 출중하여 모든 이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 시련을 겪게 되고 시련을 극복하며 신분 상승과 함께 활동 범위도 확대된다. 가정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국외로 확대되며, 그와 동시에 천비 소생에서 활빈당의 행수로,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율도국왕이 된다.
그럼 우선 가정에서의 활동을 보도록 하자. 길동은 자신이 태어난 가정에서 첫 번째 시련을 겪게 된다.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제도적인 모순과 초낭의 사주를 받고 등장하는 관상녀와 특자의 살인극이다. 결국 길동은 자객을 해치웠고 집을 떠나기 전에 홍승상에게서 호부호형을 허락받게 된다. 이는 천비 소생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시정한 것이고 길동의 승리를 의미한다.
두 번째로 국가에서의 활동이다. 길동은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 실력을 겨루어 당당히 우두머리가 된다. 길동이 싸운 대상은 조정이고 조정의 최고 책임자는 왕인데 왕이 길동의 '병조판서'라는 요구를 들어주자 길동은 깨끗하게 조선을 떠난다. 길동은 왕권에 도전하였으나 전면승부하지는 않았고 다만 자신의 능력이 알려지도록 했을 뿐이다. 해인사의 부패한 중들을 결박한 뒤 재물을 탈취한 사건, 팔도 수령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준 의적으로서의 활동 등을 보면 서양의 의적 '로빈 훗'과 무척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서양 모두 서민들의 진정한 바람은 공통되며 그것이 작품 속에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한 독자는 그것을 읽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가상의 세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국외에서의 활동이다. 길동은 군사를 길러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되며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였다. 그리고 모친도 모셔왔고 부친의 묘도 모셔와 사후 향화를 받들겠다고 했다. 율도국에서 길동은 원하던 바를 모두 이루었다. 봉건 사회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꿈에 그리던 이상 세계를 실현하였던 것이다.
둘째,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교 사상과 길동의 인간적 고뇌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길동이 '이름을 후세에 유전함이 대장부의 떳떳한 일'이라며 월하에 칼을 잡고 춤을 추던 것, '입신양명하여 위로 임금을 도와 백성을 건지고 부모에게 영화를 뵈일 것이거늘, 남의 천대를 분히 여겨 이 지경에 이루었으니 차라리 이로 인하여 큰 이름을 얻어 후세에 전하리라'며 草人 일곱을 만들어 팔도에 보내었던 것 등에서 유교의 '立身揚名, 流芳百世' 사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출세지향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길동은 자객을 죽인 후 분한 마음에 초낭까지 베려 하다가 '내 일시 분으로 어찌 인륜을 끊으리요.'하고 자제한다. 곡산 기생인 초낭은 홍승상이 길동을 낳은 춘섬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도 길동 같은 자식을 놓으라는 승상의 말에 길동을 더욱 미워한다. 이는 조선시대의 축첩제도를 볼 수 있는 한편, 첩과 첩 사이의 갈등도 심했음을 보여 준다. 길동은 초낭까지 제거하려다 그녀가 대감의 애첩이고 길동의 義母임을 상기한다.
조정에서 길동을 잡으려 할 때 장자 길현의 榜書를 보면 '효'를 들어 읽는 이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
'팔십 노친이 백수모년에 너로 하여금 주야 우려하시던 중에 네 이렇듯 변괴를 지어 죄를 나라에 얻으니 놀라신 마음에 병이 되어 이제 눕고 장차 일어나지 못하게 되시니….'
이에 맞서서 여덟 길동이 울며 아뢰는 '길동의 辯'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밉게 여기사 적당에 빠졌사오나, 일찍이 백성의 재물은 추호도 취한 바 없고, 수령의 뇌물과 불의한 놈의 재물을 앗아 먹고, 혹간에 나라 곡식을 도적하였사오나 君父가 一體오니 자식이 아비 것 먹기로 도적이라 하오리까?'
길현이 방서에 노친을 들어 마음을 동하게 하나 했더니 '아비 것'을 먹었으니 죄가 아니라며 길동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부분은 심각한 상황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길동의 효사상은 승상이 별세한 뒤 빛을 발한다. 천문을 살피던 길동은 부친의 죽음을 예견하고 '내 몸이 만리 외에 있어 생전의 부친 안전에 뵙지 못함'을 슬퍼했고 부친이 죽은 후에는 사후향화는 자신이 받들어 불효지죄를 만분지일이라도 덜겠다며 대감 영위를 모셔 온다. 모친도 모셔 오는데 율도국에서 모친을 대왕대비로 봉하고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예절로 지키는 효성이 신민을 감동하게 할 정도로 길동은 극진히 효를 행하였다. 이는 효사상이 작품 전체에 두루 미쳤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해인사의 중을 속이고 재물을 도적질한 장면에서 당대의 불교의 현주소와 함께 '억불숭유'정책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절에 수만금의 재물이 있다는 것으로 부패한 승려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홍승상의 자제인 길동이 밥을 먹다 돌을 깨물었다며 모든 중을 결박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 것으로 보아 승려들이 권력 앞에서 너무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길동은 왕 앞에서 다음과 같이 변명을 한다.
'불도라 하옵는 것이 세상을 속이고 백성을 혹하게 하여, 갈지 아니하고 백성의 곡식을 취하며, 짜지 아니하고 백성의 의복을 속여 부모의 발부를 상하여 오랑캐 모양을 숭상하며, 군부를 버리고 부세를 도망하오니 이에 더한 불의지사 없사오며…'
당대의 부패한 불교의 실상을 길동의 입을 통하여 폭로하며 유교적인 입장에서 승려들을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홍길동전>에 대해 나름대로 검토해 보았다. 작자나 원본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홍길동전>은 개인적으로 허균이 지은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식이 문헌에 남긴 말과 '호민론'을 주장한 허균의 사상적 배경과 지배 체제에 불만을 품었던 허균의 행적 외에도 작품을 읽어 보고 확신이 들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판소리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의 유기적 연결성, 작품 전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교 사상(특히 충, 효, 예를 중시한 것)과 이상 세계 구축에 대한 열망(이는 허균이 아니고는 감히 표현을 못 했을 것 같다.), 백성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어 모두 잘 사는 평등한(?) 나라를 지향한 것, 어려운 한자어의 사용 등이 허균이 작가였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7차 교육 과정의 새 교과서에는 '작품에 나타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목표하에 <홍길동전>의 일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길동이 얼자 출생이라 호부호형을 할 수 없는 제도적 모순을 비관하며 부친께 호소하고, 모친 침소에 가 유방백세할 것을 고하고 떠나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에서 끝나지 않고 완결본을 읽게 한다거나 관련 자료를 제공하여 <홍길동전>이라는 작품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에 교사의 노고가 요구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다.
* 다른 원우들의 글을 보면 저의 생각이 없어지거나 흔들릴 것 같아 제 글을 올리기 전에 일부러 게시판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영웅과의 대화'와는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 '서자'와 '얼자'에 대해 논한 글을 보긴 했는데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국어 사전에서는 거의 비슷한 용어로 나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