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장 큰 나라는 하류(下流)라.
대국자(大國者)는 하류(下流)니 천하지교(天下之交)요, 천하지빈(天下之牝)이니라。빈상이정승모(牝常以靜勝牡)하나니 이정위하(以靜爲下)니라。고(故)로 대국(大國)은 이하소국(以下小國)하여 즉취소국(則取小國)하고, 소국(小國)은 이하대국(以下大國)하여 즉취대국(則取大國)하니라。고(故)로 혹하이취(或下以取)하며, 혹하이취(或下而取)니라。대국(大國)은 불과욕겸축인(不過欲兼畜人)이요, 소국(小國)은 불과욕입사인(不過欲入事人)이니, 부양자(夫兩者)가 각득기소욕(各得其所欲)이라. 고(故)로 대자의위하(大者宜爲下)니라。
빈(牝)/암컷 빈, 陰, 골짜기 모(牡)/수컷 모, 양(陽), 왼쪽 취(取) 취할 취 혹(或)/혹 혹, 언제나 혹자(或者) 겸(兼)/겸할 겸, 아울러 축(畜)/기를 축, 쌓다 의(宜)/마땅할 의
큰 나라는 하류니, 천하가 교류하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라. 암컷은 언제나 가만히 있으므로 수컷을 이기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아래가 된다. 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밑으로 내려감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밑으로 내려감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 어떤 나라는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얻고, 어떤 나라는 아래에 있음으로 얻는다. 큰 나라는 남을 함께 기르려는 것에 불과하고, 작은 나라는 들어가서 남을 섬기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니, 무릇 양자가 각기 그 바라는 바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또 큰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에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서로 윈윈하며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춘추시대 말기, 서로가 다른 나라를 빼앗아 큰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차, 참혹한 전쟁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자 할아버지는 진정한 의미의 큰 나라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먼저 큰 나라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자. ‘대국자(大國者)는 하류(下流)니 천하지교(天下之交)요, 천하지빈(天下之牝)’이란다. 큰 나라는 하류니, 천하가 교류하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라는 것이다. 노자 할아버지 생각에 큰 나라란 흘러흘러 온갖 물이 모여드는 아랫자리, 즉 하류다. 이 하류는 천하의 물이 다 모여 들듯이 천하의 온갖 것들이 모여 교류하고 함께 살아가는 현장이다. 국제 교류로 따진다면 온갖 작은 나라들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 교역하며, 협력하는 그런 자리가 바로 큰 나라가 감당해야 할 자리인 것이다. 또 큰 나라란 천하가 존재하도록 보살피고 양육하는 어미노릇을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착취하고 빼앗는 존재가 아닌 작은 나라를 돌보고 잘 양육함으로서 자기 자신에게도 이롭게 하는 슬기로운 나라여야 한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윈윈 관계를 만들어 나감으로 더 큰 풍요와 행복을 이뤄야 하는 책임을 가진 나라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작금의 국제관계에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WTO체제 하에,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국제법으로 강제하려고 하는 작금의 상황은 피도 눈물도 없는 무한 경쟁만 예고할 뿐이다.
그럼 세계정세를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 관계의 현황을 살펴보자. 천안함 사태 이후, 우리 정부와 미국은 의혹으로 가득 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한겨레21 제822호(2010.08.06)>에 실린 “신냉전을 향한 한-미의 ‘불굴의 의지’” 라는 특집 기사는 ‘천안함 출구 전략 대신 연합훈련·금융제재 선택한 한-미 동맹이 북한 핵무장과 동북아판 미사일 위기 등 자해적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기고 글의 내용을 요약해 본다.
<사실‘천안함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한-미 동맹의 초강경 대북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7월25~28일 동해에서 강행된 한-미 연합훈련 ‘불굴의 의지’에는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F-22 전투기, 독도함과 F-15K 전투기 등 양국의 최정예 군사력뿐만 아니라, 일본 해상자위대 장교들까지 동원됐다. 한-미-일 3국이 천안함 사태를 구실로 3각 동맹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대북 무력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한다. 9월에 서해상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것을 비롯해, “올 연말까지 매달 한 차례씩 실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 중략 …
이렇듯 한-미 양국이 출구를 닫아걸고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구사함에 따라 ‘자해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 우려된다. 여기서 자해적인 결과란 한-미 양국이 공식적인 대북정책 목표로 내세워온 한반도 비핵화가 물 건너가고 북한의 핵무장과 핵능력 강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핵 억제력 강화’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핵무기의 현대화’를 언급하고 있다. 맥락상으로 볼 때, 핵무기의 현대화는 핵탄두를 소형화해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양국의 강경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위를 유도해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 강화의 구실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일 3국의 MD 구축은 미국 군산복합체에는 ‘축복’이 되겠지만, 북-중-러 3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 ‘동북아판 미사일 위기’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에서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정세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남북 대결의 격화와 한-미 동맹 대 북-중 동맹의 대결 부활, 그리고 6자회담을 둘러싼 남방 3개국의 강경론과 북방 3개국의 온건론의 충돌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금융제재를 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자, 북한과 중국이 7월29일 상호경제기술협정에 서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 양국은 연일 중국에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한-미 동맹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면서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대북·대중 강경책이 ‘우리 관계는 순망치한’이라는 북-중 양국의 인식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 중략 …
천안함 사태와 이를 둘러싼 행위자의 선택이 야기한 대표적인 ‘나비효과’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격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G2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경쟁보다는 협력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기대를 모은 양국 관계가 오늘날에는 ‘신냉전’이 회자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심상치 않던 미-중 관계가 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함께 대규모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개입할 뜻을 내비치면서, 정면 충돌 조짐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관계 악화에 불안을 느낀 미국은 최근 군사 교류 재개를 제안했지만, 중국 쪽은 자국의 핵심적 이익이 침해받았다며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 중략 …
너무나도 안타깝고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생각을 달리한다면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주도하고 동북아의 신냉전 우려를 기우로 만들 수 있음에도 이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한-미 양국에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대화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불굴의 의지’와 금융제재 부과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미사일 시험 발사와 같은 군사적 대응을 자제한 것은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6자회담을 빨리 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6자회담의 조건 없는 재개에 동의한다면, 미국과 일본도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특히 최근 미-중 관계 악화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진전은 두 나라 사이의 갈등 치유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한반도 비핵화를 핵심적인 국익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6자회담 재개는 벌어지는 두 나라의 대북정책 목표를 다시 수렴하게 할 수 있다. 길도 있고 힘도 있으면서, 그 길을 거부하고 자해적 방식으로 힘을 구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한탄스러운 까닭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우리 정부의 능동적 대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미․일과 북․중․러의 관계가 지난 세월의 또다시 냉전체제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우선적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 되어야 한다.
현재 북한은 잇단 수해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 가뜩이나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어려운 가운데 미국의 대북제제와 유래 없는 물난리는 북한 동포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보며 남한에서는 북한에 쌀을 지원을 하자는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5.24 조치'에 따라 영유아 등 취약계층 지원을 제외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보류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의 쌀 재고가 넘치고 있고, 정부가 `쌀값 안정 및 쌀 수급균형 대책'을 마련한 상황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쌀 지원을 하자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를 통해 천안함 사태로 꽉 막힌 남북관계에 물꼬를 터야 한다는 의견도 꼬리를 물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민주당, 한나라당내 일부 인사들까지 호응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북한 수해지원을 위한 민간 차원의 대북 쌀 지원에 대해 "민간에 의해서 긴급구호 성격을 갖는 대북 지원신청이 있으면 그것이 밀가루나 옥수수, 또는 쌀이든 전향적으로 (허용을) 검토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과 북․중․러의 관계 속에서 큰 나라는 미․일과 중․러이며 작은 나라는 남한과 북한이라 할 수 있다. 노자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라면 미․일과 중․러는 남한과 북한의 아래로 내려감으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남한과 북한은 미․일과 중․러의 아래 내려감으로서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국만이 아닌 서로를 윈윈하게 하는 목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대국(大國)은 이하소국(以下小國)하여 즉취소국(則取小國)하고, 소국(小國)은 이하대국(以下大國)하여 즉취대국(則取大國)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음 구절이 재미있다. ‘혹하이취(或下以取)하며, 혹하이취(或下而取)’란다. 즉, 어떤 나라는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얻고, 어떤 나라는 아래에 있음으로 얻는다는 것이다. 같은 문장이지만 이(以)와 이(而)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저절로 그리 될 수는 없는 일. 세상을 태평성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일부러 애써서 작은 나라를 존중하고 돌보려 하는 원칙과 태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큰 나라에게는 ‘써 이(以)’를 쓴 것이다. 반대로 작은 나라는 어차피 큰 나라의 그늘에서 큰 나라를 존중하고 자기 백성 섬기듯 섬기려고만 한다면 다툼과 분쟁 없이 태평성세를 이룰 수 있기에 순접의 의미로 접속사 ‘이(而)’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국(大國)은 불과욕겸축인(不過欲兼畜人)이요, 소국(小國)은 불과욕입사인(不過欲入事人)이니, 부양자(夫兩者)가 각득기소욕(各得其所欲)’이다. 큰 나라는 남을 함께 기르려는 것에 불과하고, 작은 나라는 들어가서 남을 섬기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니, 무릇 양자가 각기 그 바라는 바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어디까지나 이 얘기는 도의 편에서, 하느님 편에서 하는 이야기로 들어야 한다. 노자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큰 나라란 자기네 백성이 아닌 다른 나라 백성들까지 함께 기르려고 하는 나라며,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 사람들까지 섬기려고 하는 그런 나라일 뿐이다. 이 두 나라 사이에 분별이나 차별은 점점 사라져 결국은 사해동포(四海同胞)를 이루는 꿈을 그는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크든 작든 서로를 아끼고 섬기는 그런 세상, 지배하는 권력을 추구하는 이세상과는 다른 섬기는 권력을 지향하는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되어야만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되니 그러므로 큰 나라가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故)로 대자의위하(大者宜爲下)]는 것은 이 장의 당연한 귀결이랄 밖에.
앞 구절 ‘빈상이정승모(牝常以靜勝牡)하나니 이정위하(以靜爲下)’는 이 원리를 명확히 하고 있다. 큰 나라는 암컷이 가만히 있음으로 수컷을 이기는 것처럼 신뢰(信賴)와 정(情)으로 작은 나라를 이겨야한다는 것이다. 창칼이나 미사일 같은 무력이나 다국적 자본과 같은 경제력을 앞세워 작은 나라를 굴복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천하를 지탱하고 떠받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미래를 꿈꾸어 볼 수 있다면, 그야 말로 참사람, 참지도자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