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자. 지금 싹 뚝
召我 박정열
우리 동네는 금연아파트다. 구청에서 주민동의를 얻어 재작년부터 금연아파트로 지정하였다. 흡연자들은 귀찮지도 않은가 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그게 뭐 그리 좋은 거라고, 흡연지정장소까지 가서 피워댄다. 낮에는 잘 모른다. 밤이면 화장실에서 피우는 사람도 있나보다. 우리 집 화장실까지 담배냄새가 잔뜩 고여 있다. 나는 담배를 오랫동안 피운 경험이 있어 ‘그런가보다’ 이해하고 만다. 문제는 엘리베이터 안에 소통 창이라는 작은 화이트보드에나, A4용지에다 굵직한 매직글씨로 장문의 항의 글을 적어 붙여놓는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는 몰랐다. 간접흡연이나 그 불쾌감에 대한 애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기시작한 때는 군대 가서부터다. 자대에 배치되고 보니 사제담배가 지천이었다. 그 당시 최고급 담배는 파고다였다. 입대자들이 군수품을 받고 반납한 사제품이다. 다른 사제품은 모두 가족에게 송달했지만 담배는 그렇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병사는 내무반(생활관)내에서 드물었다. 졸병시절 기합 받고 울적한 기분으로 집 생각이 날 때는 담배 한 개비로 마음을 달래었다. 속내가 심란한 병사들끼리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피우는 담배는 향수를 달래는데 아주 제격이었다. 훈련병 때는 한 개비를 여러 명이 돌려가며 빨아댔다. 담배연기에 손톱이 노랗도록 빨아대는 그 속 풀이는 복무기한을 앞당기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3년이라는 세월동안 친해진 담배는 제대 후에도 결코 멀리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대다수의 남성들은 담배를 피웠다. 또 그것이 남자의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양 멋을 부리며 피워댔다. 담배연기를 쭉 빨아들이고 콧구멍으로 찻잔 위의 김발처럼 천천히 흘려 내는가 하면,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리며 하얀 동그라미를 수도 없이 튕겨내고, 다 빤 담배꽁초를 가운데 손가락 손톱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해 톡 튕기면 불똥이 폭죽처럼 흩어졌다.
그 뿐이랴. 묘령의 아가씨와 찻집에 마주 앉아 할 말을 잃을 때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연기로 동그란 원을 송골송골 뽑아내면 묘령의 아가씨는 동그라미에 손가락을 집어넣기도 하고, 손톱으로 튕기기도 하고, 손으로 날려버리거나 흩트려버리기도 했다. 분위기를 금방 호전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길거리 의자에 앉아 한 쪽 다리를 무릎에 얹고, 구두밑창에다 딱성냥을 스윽 그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옆에서 보는 이마저 ‘야 멋있다’고 느끼던 때다. 그때 분위기는 마치 자기가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된 기분이다. 입에 문 담배를 좌우로 돌리던 것도 한 멋을 했다.
가로수 길을 둘이 팔짱을 끼고 갈 때도 의례히 담배는 입에 꼬나물었다. 그러다가 으슥한 골목길을 만난다. 담벼락에다 그녀를 기대 세우기만 하면, 달달하게 입술을 전해 오던 일. 그 여인이 지독한 담배냄새에 절은 입에다 침을 한 가득 불어넣던 일이 지금에 와서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지금, 흡연자가 내 옆을 지나쳐가도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다. 문제는 그 피우는 담배냄새가 아직도 구수하다. 담배를 끊은 지 4년에서 한 달이 모자라는 이 시점에서도. 그 지독한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다니. 그 중독성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알만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그 냄새가 좋다.
어쩌다 술 한 잔 걸치고 난 뒤에, 친구가 옆에서 담배를 피운다. 하나 달래서 피워보면 두 모금을 못 빨고 버린다. 혹 당시 젊었던 그 여인의 속내도 이런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남성의 입에서 나는 냄새가, 재래식화장실 냄새 백배는 됐을 텐데, 그 입 안에 단내 솔솔 나는 침을 잔뜩 밀어 넣던 이유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를 일이다.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이 있다. 매일 먹어야하는 약의 처방전 때문이다. 지난주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와 상담을 했다. 가만히 들으며 컴퓨터에 입력을 하다 말고, 첫 마디가
“아직도 담배 태우세요?”
하고 묻는다. 그 의사와는 그야말로 내 홈닥터처럼 건강에 대해 자주 상담을 한다. 걸핏하면
“담배 끊으세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절연切煙 사실을 말했었다. ‘담배는 백해무익’이라는 말은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요즘 흡연하는 사람은 재주가 참 용하다. 공중화장실은 물론, 아파트단지도 금연구역이고 심지어는 시내버스승강장도 금연구역이다. 가는 곳이 다 금연 장소이니 말이다. 담뱃갑에는 경고문구와 함께 보기도 흉측한 사진이 붙어있다. 그런가하면 TV도 건강프로그램 일색이다. 절연은 이제 자연스런 사회적분위기가 되었다. 문제는 흡연연령층이 점점 낮아진다 하니 이일을 어찌하나.
그나마 내 주변에는 절연한 사람이 많다. 열 명이 모이면 죽기 살기로 피는 사람은 한 사람 있거나 없거나. 흡연자 몸은 담배냄새로 폭 절여져있다. 앞에 있기가 거북할 정도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가는 사생결단을 내자고 덤빈다. 이러니 함께 사는 사람은 어떨까? 참, 내가 담배를 피울 때도 그런 애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그야말로 몰염치였다.
옛 말에는 담배가 심심초였다고 한다. 청상이 동지섣달 긴긴밤을 지새우든 밤 동무이었다. 남성들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그런 말이다. 요즘도 멋을 부린다는 젊은 여성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요염한 ‘오드리햅번’ 흉내를 내보려고 애를 쓴다. ‘흉보다 닮는다.’는 말이 있다. 득 되는 일이 아니면 흉내 낼 일도 없다. 습관은 고치기 참 어렵다. 애초 물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담배를 끊는 데, 자그마치 근 50년이 걸렸다. 하루에 한 갑씩 태웠다고 계산해 보면 36만 개피에 이른다. 요즘 담배 한 갑이 4천 5백 원이니까 3/1만 잡아도 2천7백만 원을 허비했다. 담배를 안 피웠다고 ‘그 돈이 쌓였다’는 말은 못한다. 어디 이뿐인가. 성냥과 라이터 값을 포함한다면 적잖은 돈이 될 것이다. 또 수도 없이 구멍 난 옷이며 부수적인 손해도 분명 있었다.
이런 것들은 차치하고 보자. 그 많은 돈을 들여, 내 몸을 시커멓게 그을리고 있었다니,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이런 한심한 짓을 하고 살았나’싶다. 나야 내가 저지른 일이니 죄 값이라 쳐도, 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인들 무엇으로 어떻게 속죄가 될까.
늦게나마 절연을 했으니 용서를 빌 수는 있게 됐다. 내가 담배를 끊은 동기는 간단하다. 지난번 담배 값 오를 때 이야기다. 아파트단지 내 가계에서 줄곧 보루 담배를 사다 놓고 줄기차게 피워댔었다. 이웃가게의 매상 걱정과 전매청 형편도 생각해 가면서 말이다. 정부가 담배 값 올린다는 경고를 한 뒤다. 2천5백 원짜리가 4천5백 원으로 오른다고 했다. 상당히 부담스런 금액이다.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가게에 갔더니 보루담배는 못 준다고 했다.
‘그래? 그러면 끊어야지’ 피우던 것만 피우고 ‘싹 뚝’ 잘랐다. ‘절연에는 용뺄 재주가 없다. 싹 뚝 자르고 안 피우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승리는 자기와 싸워 이기는 자의 것이다. 텅 빈 주머니는 가벼워서 좋다. 속빈 주머니는 지저분하지 않아 좋다. 냄새가 안 나서 좋다. 남 앞에 나서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용돈이 마뎌서 그 또한 좋다. 절연은 그저 좋은 일뿐이다. 이 좋은 걸 왜 못 끊는지 모르겠다. ‘끊자 지금 싹 뚝’ 지금 다시, 4년 전에 다짐했던 말을 떠올린다.*
첫댓글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귀한 수필 작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졸작에 칭찬을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