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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굿 닥터
-나오는 사람들-
작가 이반 장관 아내 부인 주인 쥴리아 사제 조수 남자 여자 피터 남편 부인 건달 작가 경관 목소리 소녀 직원
지배인 여자 작가 아들 아버지 여자
[막] 2막
[장] 1장
"물에 빠진 사나이"
(조명, 밝아지며, 부둣가 한쪽의 뚝이 나타난다. 저녁무렵이고 안개속으로는 멀리 항구와 배의 불빛이 보이고, 가끔 안개 경보가 울린다. 작가가 지팽이에, 싸늘한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한 큰 코트를 입고 나타나다)
[작가]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객석을 향한다) 네, 머리좀 식힐겸, 바람좀 쐬러 나왔습니다! (심호흡 한다) 아,--- 상쾌하군요. 정말 좋습니다. 이 시원한 바다바람에 정말 온몸이 다 되살아 나는거 같습니다. (다시 심호흡) 자, 몸에는 힘이 나는데--- 머리속은 꽉 막혀 있으니 어쩌죠? 아무런 생각도 아이디어도 나오질 않다니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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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답지 않은데요. 보통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 흘러넘치는 우물 같은데--- 오늘밤엔 아무것도 없이 멍합니다--- 있다면 그저 뭔가 써야 한다는 의무감만 있거든요--- 하지만 뭐 너무 걱정마세요. 뭔가 떠오르겠죠. 항상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겁니다. 사실 이런일은 작가라는 직업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일이고 그래서 이걸 " 작가의벽"이라고 부르는데 --- 뭐, 대단한건 아닙니다. 곧 이겨낼 수 있는거니까요--- 그리구--- 아! 잠깐 --- 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는 군요--- 네, 음--- 아하--- 아, 이런 쯧쯧--- ! 죄송합니다. 엉터리에요. 엉터리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나쁜 아이디업니다. 아이디어 자체도 한심한 거지만, 벌써 한번 우려 먹은거니, 아, 큰일인데요--- 하지만 뭐 오래가진 않고 잠시 뿐일겁니다--- 그나저나 잠시치고는 꽤 길 모양인데요--- 아무런 생각도 안난다--- 이거 신경이 곤두서는데요--- 오, 하느님 절 도와주십소! 아, 아닙니다. 취소, 취소! 참 한심하군요. 하느님 한테 얘기를 쓰기위한 아이디어를 달라다니, 욕심도 너무 심했죠? 주여, 용서하십시오, 당장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자겠습니다.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요--- 하지만 저 혹시 밤동안에 좋은 아이디어 하나 떠오르시면 좀 알려주십시오.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라도 좋습니다. 그리구 뭐 꼭 오리지날이 아니라도 좋아요. 전 원래. 얘기를 슬쩍 바꾸는데 소질이 있으니까요-- 아--- 이거, 제가 지금 무슨소릴 했죠?--- 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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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니 하느님 한테 표절까지 하자구--- 아무래도 이거 증세가 더심해지기 전에, 집에가서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어떤 물체가 어둠속에서 그를 부른다)
[건달] 이보셔, 나으리, 시간있으면 잠깐 얘기를 합시다!
[작가] (돌아서 본다) 거기 누구요?--- 당신 사람이요? (그림자가 불빛으로 나온다. 낡은 옷에 면도도 안했고, 장갑은 손가락이 죄다 나와있는데 꽁초를 피우고 있다)
[건달] 아, 날씨 좋습니다. 나으리--- 에 혹시 재미보실 생각 없으슈?
[작가] (의심스레) 재밀보다니, 무슨 소리하는거요? (돌아선다)
[건달] 끝내줍니다. 아주 삼삼하고 짜릿하니까, 기분전환하는덴 최고죠. 어때요?
[작가] 뭔지 모르지만 난 관심없으니까, 저기 비켜요. 나같이 점잖은 사람한테 그런소리 해봤자 아무소용 없을꺼요
[건달] 헤, 그래두 이렇게 진진한건 못보셨을텐데--- 내 구라치는게 아니라 진짜 평생 한번 볼까말까한 삼빡한거라구요. 에이 나으린 궁금증도 없으슈?
[작가] 아, 난 원래 직업상 궁금증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덕적으로 타락할 만큼 바보는 아니라오! 자, 실례합니다
[건달] 아, 역시 겁이 많으시군! 하긴 심장 약한 사람한테는 너무 자극적일거요!
[작가] (재빨리 돌아선다) 아. 잠깐!
[건달] 헤헤--- 그소릴 들으니 못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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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좋습니다. 사실 궁금해서 묻기만 하는건데--- 그--- 재미난게 도대체 뭐요?
[건달] (가까이 다가와 은밀히 얘기한다) 저, --- 물에 빠저 죽은 사람 구경하는거라요!
[작가] (그를 쳐다본다) 뭐라구요?
[건달] 물에 빠져죽은 사람요, 짠 바닷물이 폐에 가득차서, 온몸이 퉁퉁 부어 죽은거--- 싸게해 드릴께!
[작가] 아니 그러니까 돈내고 물에 빠진 사람을 본다는거요?--- 당신 미쳤군, 여보쇼, 돈을 받아도 그런거 구경할 생각없소--- 아니 도대체 뭐하러 그런걸 보라는거구 왜 내가 그걸 보겠소? 제정신 아니가 본데 당장 꺼져요! (그를 지팡이로 밀어내고 걸어간다. 그러나 건달 다시 앞을 막는다.)
[건달] 나리, 3루블에 해드릴깨, 네? 단돈 3루블만 내면 말예요. 쌈쌈한 놈이 하나 물에 뛰어들어서는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빠져죽는걸 처음부터 볼수 있다구요!
[작가] 아니, 그럼--- 그사람이 벌써 빠져 죽은게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다는거요?
[건달] 죽다뇨, 무슨소릴--- 멀쩡히 살아서 아주 팔팔한대다 아직은 물 한방울도 안묻은 채로 이렇게 나으리 앞에 서있지 않습니까? 네, 바로 제가 빠져죽은 사람이라구요!
[작가] 당신이? 오, 그러니까 나한테 3루블 받고 물에 뻐져 자살하겠단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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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자살하고 싶으면 하지 뭐 돈을 받으려는거요?
[건달] 에유, 나으리, 건 오해요. 누가 진짜 빠져죽나요? 그저 빠져 죽는척 하는거지. 저 찬물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잠시 물장구를 치면서 팔을 버둥대구, 살려달라고 소리치다가는 부글 부글 물속에 잠겼다가는 머리를 밑으로 하고 둥둥 떠올라 흐늘흐늘 하는건데, 어때요 듣기만 해도 짜릿하고 서늘하죠? 자, 개인 관람은 3루블이고 단체관람은 요금이 다릅니다. 자, 2분만 있으면 시작할건데, 안볼거요?
[작가] 가만있자,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물에 빠져죽는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거요?
[건달] 하, 뭘 모르시는군. 이건 그냥 흔해빠진 싸구려 오락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내면에 우리의 사회상을 표현하는 뭔가가 있고, 비극적이면서도, 보는이의 눈에 따라서는 아이러니가 들어있는 코메디라 이거뇨
[작가] 당신 아주 유식하구만, 그나저나 이게 뭐가 코메디요? 난 하나도 안우스운데!
[건달] 아, 입이 딱 벌어지고, 뺨을 불룩거리겠다. 눈알이 튀어나오는데 그게 안우스워요?
게다가 찢어지는 소리로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악쓰는게 꼭 돼지 같다구요. 뭐--- 사실 이근처에서 그런 솜씨를 가진건 나밖에 없수!
[작가] 당신보기엔 내가 물속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 내는거에 돈을 낼사람 같소?
[건달] 아니, 그럼 장사가 안되는게 내가 이짓하는거 같수? 올 씨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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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그래두 꽤이 벌이가 좋았죠
8월엔 매진이었구요--- 어떻습니까. 아예 디너쇼로 예약을 하시겠수?
[작가] 디너쑈요?
[건달] 뭐 내가 물에 들어가서 허부적거리다 생선을 한마리 던져주는거죠 요샌 여기 넙치가 많아요
[작가] 도대체 내가 여기서 지금 뭘하는지 모르겠소!
[건달] 그러니 어서 결정을 하셔야지. 이제 5분만 있으면 식당에서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시간이라, 물이 더러워져요. 저도 일을 깨끗한 분위기에서 하고자 하는 정도의 프라이드는 있으니까!
[작가] 프라이드? 프라이드 있는 사람이 이렇게 지저분한 수영선수 흉내내며 먹고 산다는 거요?
[건달] 아, 나리는 아주 잔안한 사람이구만요--- 거 남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약점을 잡는거, 그거 나쁜짓이요. 진짜 잔인한거라구요.
[작가] 잔인하다니, 난 그런건 아니었는데.
[건달] 좋쉬다, 뭐 제 직엄에 단점이 있다는거 인정하갔수! 하지만 말이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하는일 끝내고 나오는거 보셨우? 온 몸뗑이가 새카만거는 고사하고, 콧구명 귓구멍 까지두 석탄가루가 꽉 끼었고, 웃을때 보면 이빨 사이에두 새까맣게 끼어 있쉬다. 진짜 구역질 난다 이거요. 또 이발사는 어때요? 남의 머리카락 만지다 집에 돌아가서 저녁이라도 먹을라치면 이건 빵에 국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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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머리칼 투성이다 메슥메슥하죠. 또 외과 의사는 일할때 손을 어디다 쳐넣구 일하는지 아슈?
[작가] 아, 제발 좀--- -
[건달] 또 농부가 발을 디디고 일하는 땅에 뭐가 있는데요?--- 자, 보슈. 결국 사람이 일을 한다는건 뭔가 더러운걸 건드린다 이건데, 나야 닿는게 물밖에 더 있수? 뭐 몸을 적시긴 하지만, 물이란 깨끗한 거예요. 순수하다 이말요. 일 끝내고 집에가서 목욕할 필요 없는거구--- 어떻게 생각하쇼?
[작가] 난, 뭐 당신한테 내 용변 습관에 대해 토론할 생각은 없어요 아무튼 당신 때문에 난 지금 기분이 좋질 않아요. 여기 어디 마차가 있을텐데-- (소리친다) 마차! 마차!
[건달] 후회할거요, 나으리. 지금 이대로 가게되도 몇일 지나면 세상살이가 죽도록 지겨워서는 비참하게 물에 빠져 죽는 꼴을 한전 보고싶다 하고 느껴서, 여기 다시 와 봤자 난 없을떼니까--- 여기서의 공영은 오늘이 마지막이요. 내일은 일요일이고 담주는 얄타로 갈 예정이라우! (뒷쪽에 순경이 나타나다)
[작가] 이봐요. 저기 순경 오는거 보이죠? 내 앞에서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공갈죄로 고발할거요!
[건달] 아니 누가 공갈쳤다구 그래요? 난 해양 오락 사업 중인데!
[작가] 물에 빠져 죽는게 해양오락이요? 당신이야말로 해양정신병자야. 여보쇼, 순경! 순경!
[건달] (피하기 시작하며) 알았어요. 알았다니까, 젠장, 물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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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장사도 전같지 않구만! (둑 넘어로 사라진다. 경관이 급히 온다)
[경관] 무슨 일입니까?
[작가] 네, 저 둑 넘어에 웬 남자가 있는데--- 자꾸 나한테 치근치근 따라 붙으면서 수상한 소릴 합디다!
[경관] 아이구, 조심하셔야지, 이 근처는 원래 못된놈들이 우굴거리는 데니까 선생님 같이 점잖은 분이 오실데가 못됩니다. 그래 무슨 소릴 했죠?
[작가] 글쎄, 기가 막혀 말이 안나와요. 내가 3루블만 내면 물에 빠져 죽겠다는 거예요.
[경관] 뭐요? 아니 --- 3루블이라니, 60코팩이면 돼요! 지가 아무리 멋있게 빠져죽어도 60코팩이면 충분한데--- 3루블 이라니 나쁜놈
[작가] 아니, 저, 내말은 그게 아니고
[경관] 저쪽 뚝에는 형제가 한꺼번에 같이 빠져 죽는데도 2루블이면 되는데--- 아무튼 이런 놈들이란 흥정할땐 조심해야 합니다. 돈을 가치있게 쓰셔야죠.
[작가] 난 지금 가격 얘길 하는게 아니예요
[경관] 3루블 이라니, 요전에 열네명이 완전한 난파선의 침몰을 재현했을때 바로 3루블 냈다는데--- 그리구 한사람 빠져죽는데는 60코팩이면 뒤집어 써요. 자, 뭐든 재 값을 알아야 공정 4거래라는게 될텐데--- 그럼 수고하십쇼!
(경관을 모자를 슬쩍 건드리고는, 빤대쪽으로 나간다. 작가는 멍청하게 서서 어쩔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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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 드디어 말세가 왔구나, 온 세상이 완전히 돌아버렸어! (건달이 다시 기어나온다)
[건달] 하하--- 순경이 갔죠?--- 그래 순경더러 뭐라고 했수?
[작가] 뭐라고 하긴, 사실대로 말했지, 당신 머리가 좀 돈거 같다구! 그랬더니 그 순경은 당신보다 더 돌은 모양입니다!
[건달] 아무튼 뭐 귀찮은 일 없었으니 다행이예요. 뭐 손님께 감사하는 의미에서 내 가격을 대폭 할인해 드리지! 80코팩 어때요?
[작가] 80코팩? (소리친다) 80코팩이 어디서 거저 생기는줄 알아? 이 날강도 같으니, 당신같은 사기꾼 한테는 60코팩이상 못내!
[건달] 60코팩이라니, 빠져죽는데 고거밖에 못낸다면 난 손해예요. 수건 한장에 40코펙이고, 날 건져주는 친구한테 40코펙 주기로 했으니 20코펙 손해보느니 차라리 물속깊이 들어가서 안나오는게 편하겠수!
[작가] 날 속일 생각말고, 60코펙에 빠질래면 빠지고 말래면 마쇼!
[건달] (투덜댄다) 거, 손님 너무 빡빡하기도 하시지--- 에라, 좋쉬다! 까짓거 60코펙에 밑지는 장사한번 해봅시다! (손바닥 내민다) 내, 죽어도 아들한테는 이 직업 안물리겠수!
[작가] (돈 준다) 30,40,50,60, 맞죠?--- 자, 어디서 할거요?
[건달] (돈을 손수건으로 묶어 주머니에 넣는다) 아무데나 둑 가까이 서 쇼! 가까이 서야 잘 뵈니까! (둑 끝으로 걸어간다)
[작가] 이거 좀 어두운거 같은데 틀림없이 잘 뵈는 거죠?
[건달] 염려 마시라니까, 그리구 사실 좀 음침해야 더 무드가 있는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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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 아무튼 길어봤자 한 10초 정도니까 잘 보기나 하쇼 자, 갑니다--- 아차 깜빡 잊을뻔 했네. 제가 물속에 잠겼다 세번째로 떠오르면 말예요. 포프니 케프스키, 포프니케프스키, 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세요!
[작가] 푸프니케프스키라니, 그건 또 누구요?
[건달] 아, 날 구해줄 친구죠, 전 수영을 못하거든요.
[작가] 수영을 못한다니, 아니 수영도 못하면서 지금 물에 뛰어들겠다는거요?
[건달] 그래야 실감나죠, 포프니케프스키란놈 지금 아마 저기 저 술집에 한잔 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그래서 부르는 소리 들리면 뛰어올꺼니까, 자, 포프니케프스키니까 이름 잊지 마시구--- 그럼 구경 잘하슈. 그리구 맘에 드시면 친구분들 한테두 선전좀 해주시고--- 자, 그럼. (뛰어들어 소리친다) 사람살려! 아악--- 난 수영 못해요!--- 사람살려!
[작가] 여보쇼, 잘 안보이니까 이쪽으로 와요!
[건달] 아푸, 아푸, 사람, 사람 살려! 아악---
[작가] 아, 진짜 같구만 그래! 잘하는데 자 이제 허부적거리느건 됐으니까 빠져죽어봐요! 나 시간 없으니까 빨리해요
[건달] 아푸푸 꼬로록
[작가] 여보쇼! 내말 안들려요? 이젠 빠져보라니까--- 아니 어디 갔지? 아, 거기 떠올랐군--- 이제 세번째요? (포프니케프스키를 부르려다가) 가만 있자, 그 친구 이름이 뭐랬드라? (조명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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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2장
"오디션"
[목소리] (작가의) 다음분!--- 다음 여배우 지원자 나오세요! (젊은 여자 등장, 무대중앙까지 걸어 나온다. 초조한듯 작은 손지갑을 꽉 쥐고 있으며 어디를 봐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면서도 이것이 첫 오디션인 만큼 억지로 웃으려하며 좋은 인상을 보이려 한다. 하지만 손수건으로 계속 이마를 닦는다)
[목소리] 이름!
[소녀] (질문을 이해 못하고) --- 네?
[목소리] 아가씨 이름말야!
[소녀] 아, 니나요
[목소리] 나나, 그거뿐야?--- 니나 뭐야?
[소녀] 네, 아--- 저--- 니나 미하일로브나 자레크나야에요
[목소리] 나이!
[소녀] 제 나이요?
[목소리] 그래, 지금 나이가 몇살이냐구
[소녀] (생각한다) 몇살된 사람을 찾으세요?
[목소리] 그냥 간단히 질문에 대답할수 없나?
[소녀] 네. 하지만 전 어떤 나이의 역할도 할수 있거든요. 열여섯 살, 설흔살--- 그리구 전에 학교서 연주할땐 류마치스에 걸린 일흔살 노파역을 했는데, 모두 그럴듯하게 했다고 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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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여덟된 노파는 진짠 줄 알았대요
[목소리] 아가씨, 난 지금 류마치스 걸린 일흔살짜리 노파를 찾은게 아니고 스물두살난 소녀를 찾는거야, 자, 몇살이지
[소녀] 스물--- 두살요?
[목소리] 거짓말! 내가 보기엔 스물 일곱 여덟은 되보이는데
[소녀] 아, 그건 아마 지금 감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좀 늙어 보일 꺼예요. 작년에 독감걸렸을땐 의사선생님이 절 설흔 아홉살로 봤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스물두살처럼 보이게 할 수 있어요! (이마를 닦는다)
[목소리] 아가씨, 혹시 지금 열이 있는거 아냐?
[소녀] 네, 조금--- 39도 5부에요!
[목소리] 뭐라구? 아니 열이 39도5부난 되어 갖구두 이 겨울에 밖엘 다닌단 말야? 당장 집에가서 누워있구, 다음에 다시한번 오지!
[소녀] 아녜요. 제발--- 사실 전 이 오디션을 여섯달이나 기다렸어요 그리구 여섯달 기다리기 위한 명단에 등록하느라 석달을 기다렸구요. 그런데 이제 또 다시 그 명단의 맨 끝에 다시 등록하게 되면 또 여섯달을 기다려야 되고--- 그땐 스물셋이니까 스물두살짜리 역에는 맞지가 않죠--- 그리구 좀 나은거 같아요.
(이마를 짚어본다) 아마, 열이 39도 장도밖에 안되나 보죠?
[목소리] 그러니까, 여배우가 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소녀] 네, 마음뿐만 아니라, 온 정신과, 숨결, 그리고 제 몸에 이는 뼈와 살과, 혈관을 흐르는 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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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자,자, 자꾸 의학적인 얘긴 고만하고--- 실제 경험은?
[소녀] 무슨--- 경험요?
[목소리] 뭐냐하면,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연기에 관한 경험이지, 연기 경력이 있나?
[소녀] 무대에서 말인가요?
[목소리] 거기 말고도 연기가 필요한가?
[소녀] 아, 전 조블렌스카 부인 밑에서 3년간 연기공부 했어요
[목소리] 여기 모스코우에서 연기지도 하고 계신분인가?
[소녀] 아뇨, 오데싸에서 제가 다닌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그래도 전에는 아주 유명한 배우였데요!
[목소리] 여기 모스코우에서 말야?
[소녀] 아뇨, 오데싸에서요
[목소리] 결국 아가씬 솔직히 말해 아마튜어로군!
[소녀] 네, 모스코우에선 그렇지만, 오데싸에서는 프로에요!
[목소리] 물론이겠지, 하지만 우리가 찾는건 스물두살난 모스코우의 프로 여배우거든, 자, 충고를 할까? 점 더 경험을 쌓고 또 아스피린도 좀 먹도록 하지!
[소녀] (가다가 멈춘다)저--- 전 나흘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한번 읽기나 할 수 없을까요?
[목소리] 하지만 아가씨, 그래봤자 피차 서로 곤란하고---
[소녀] 아녜요, 절 배우로 써주지 않으셔도 괜찮으니까, 그저--- 선생님 앞에서 제가 대사를 해봤는 것만해도 제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거예요--- 거짓말로 들리실지는 몰라도 선생님이야 말로 현존하는 위대한 작가중 한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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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그래? 고맙군,--- 에 뭐 그게 소원이라면 한번 대사를 해봐!
[소녀] 전 선생님 작품은 거의 다 읽었어요. 단편이란 신문기사까지두요. (웃는다) 특히 그--- (더 크게 웃는다) 그--- (이젠 신경질 적으로 웃는다) --- 죄송해요, 그 작품 생각만 하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서---
[목소리] (역시 웃으며) 그래 ?--- 어떤 작품인데?
[소녀] (아직 웃으며) 그 말단 공무원의 죽음요, 그걸 읽고 전 몇일 동안 웃었는걸요
[목소리] 말단 공무원의 뭐--- ? 기억이 안나는데, 내용이 뭐지?
[소녀] 그 왜--- 체르디아코프의 얘기 있잖아요. 재채기 해 갖구---
[목소리] 아, 그거! 그게 우스웠다구? 이상하군. 난 슬픈 의도로 쓴건데
[소녀] 아, 물론 슬프기도 했어요. 몇일간 울었으니까요--- 아무튼 비극적 휘극인거 같애요
[목소리] 정말?--- 그럼 아가씨가 읽은 작품중 제일 맘에드는 작품이 뭐지?
[소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요?
[목소리] 응, 뭐야?
[소녀] "전쟁과 평화"요
[목소리] 그건 내가 쓴게 아니지!
[소녀] 네. 톨스토이죠.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고 물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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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아, 그래--- 참 아가씬 솔직하군, 좋아 아주 재미있었어.
자, 그럼 대사를 해봐!
[소녀] 네, 세자매중의 대사를 할까 하는데요
[목소리] 오, 세자매라구? 좋아, 그중 누구?
[소녀] 세명다요--- 시간이 있으시다면---
[목소리] 세명을 다? 맙소사 아예작품을 죄 읽지 그래?
[소녀]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실 전 다외두고 있어요.
제 1막! (위를 본다) "프로조로프 저택의 거실, 한낮의 태양이 넓은 프랑스식 창문을 통해 비친다--- "
[목소리] 아, 제발 --- 시간이 없으니까, 대사만 조금해, 응?
[소녀] 네, 그럼 맨 끝부분을 하겠어요
[목소리] 끝부분? 음, 그건 별로 길지 않겠군. 그럼 준비되는대로 해봐!
[소녀] 전 벌써 여섯달 전부터 준비되어 있어요. 물론 그 여섯달 대기자 명단에 오르느라 기다린 석달은 빼고---
[목소리] 알았으니까 빨리 시작해!
[소녀] 네, 죄송합니다. (목을 가다듬고, 막 시작하려다가) 저, 선생님 죄송하지만 "타라라붐데이, 세상이란 다그러거라오! 하고 말씀해 주실래요?
[목소리] 뭐? 아니 왜 난데없이 그런 소릴 하라는 거야? 난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할 생각없어!
[소녀] 하지만 이건 선생님께서 쓰신건데요. 끝부분에 체부티킨이 하는 대사거든요
그 대사를 읽어주시면 고다음엔 마샤 대사가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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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여섯달 기다렸고, 오데싸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나흘이 걸린 거예요--- 또---
[목소리] 아, 알았어. 알았다구, 자 준비됐나요?
[소녀] 네
[목소리] "타라라 붐 데이, 세상이란 다 그런거라오!"
[소녀] 그러자 마샤가 얘기합니다
"저 음악소릴 들어봐, 모두들 떠나나봐--- 그리구 한사람은 아주 영영 가버린 거지?--- 우리만 새 인생 다시 시작할려구 여기 남았어. 그래, 우린 살아야돼, 우린 살아야돼--- "
그리고 이리나가 얘기합니다 "앞으로 언젠가--- 이게 모두 무슨 일이었는지 알게되는 날이 오겠죠?
(소녀의 감정이 예상보다 훨씬 풍부해 진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런 괴로운 시련을 겪고 살아야 했는지도 아게 될테고, 신비로운 것도 모두 사라질 꺼에요,--- 하지만 우린 그때까 지 그저 살아가야만 하는거겠죠. 일이나 하면서---
네, 일을 해야죠--- 전 내일 혼자 나가겠어요. 혼자 학교에나가 가르칠꺼에요. 내 모든 인생을, 힐요한 후세들에게 주어 버리겠어요. --- 지금은 가을이지만 곧, 겨울이 올테고, 모든게 흰눈으로 덮여 버리겠죠--- 그래도 저는 계속 살꺼구. 계속 일을 해야 될꺼예요!"
마져 끝낼까요?
[목소리] (부드럽게) 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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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끝으로 올가가 얘기 합니다. "저 음악소리가 너무 감미롭고, 또 너무 힘차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고 싶어 지는거야, 하지만 --- 시간이 지나면, 우린 모두 영원히 사리지고, 잊혀지는거 아니니? 우리 목소리, 우리의 얼굴--- 우리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게 되는거지. 그대신 우리가 겪은 고통은, 우리다음 세대에게 기쁨으로 변할 꺼니까, 그때 이 세상에 행복과 평화가 가득차면, 그때 사람들은 지금 우리를 기억하면서--- 축복의 말을 할꺼야--- 마샤, 이리나, 사실 난 조금만 더 알고 싶단다! 우리는 왜 사는거고, 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걸까? 난--- 그걸 알고 싶어. --- 정말 알고 싶어--- " (조용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젠 더 바랄께 없어요. 덕분에 전 이제 아주 후련하고 --- 행복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무대 밖으로 걸아나가고, 빈 무대만 남는다)
[소리] (부드럽게) 자, 저 아가씨가 오데싸로 걸어가기 전에 누가 빨리가서 좀 데려오게 (조명 꺼진다)
[장] 3장
"의지할 곳 없는 신세"
(조명이 은행 지배인의 사무실을 밝힌다. 그리고 지배인인 키스투노프가 목발을 짚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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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에는 붕대를 감아서 세배정도는 두껍고, 아주 아픈듯 신음하며 조심스레 움직이는데 약간 잘못 되어도 심한 아픔에 비명을 내며 간신히 책상에 와서 앉는다. 곧 직원인 포챠킨이 약간 서둘러 등장한다)
[직원] (큰 소리로) 아, 지배인님 이제 나오셨습니까?
[지배인] 아, 조용조용,--- 좀 살살 작은 소리로 얘기하게!
[직원] (속삭인다) 아, 죄송합니다!
[지배인] 다리에 풍이 재발해 갖구, 왼 신경이 다 가물거리는 통에.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못견디겠다구!
[직원] 아유, 거 굉장히 불편하시겠군요
[지배인] 아침에 머리 빗는데도 죽을 거 같드군
[직원] 그렇다며 지배인님, 저 밖에서 지금---
[지배인] 무슨일이 있나, 포챠킨?
[직원] 네, 밖에 원 부인이 한분 오셔서 지배인을 만나겠다는데요 도대체 알수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막무가내로 이 은행의 지배인을 봐야겠다는데, 지금 그렇게 몸이 편치 않으시니까
[지배인] 아냐, 아냐? 내 한뭄 아픈게 문젠가, 그보다야 은행일이 중요하지! 들여 보내게
하지만 가능한한 조용하게 말야! (직원은 발끝으로 걸어나가고, 곧 부인이 등장한다. 40대 후반의 남루한 옷을 입은 서민계급이 뚜렷하다. 책상으로 와서 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고, 신경질 적으로 핸드백을 비튼다) 아, 어서 오십시오 부인, 제가 일어서지 못하는 점을 용서하십쇼, 마침 몸이 좀 불편해서, 자, 앉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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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네, 고마와요! (앉는다)
[지배인] 자, 무슨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보십시요!
[여자] 선생님은 저를 도와 주시겠죠? 제발 저를 도와달라고 하느님께 빌겠어요. 세상사람이 모두 외면 해도 선생님만은--- (그러다가는 훌쩍이더니 곧 통곡으로 변해서, 사람의 등골이 으시시하게 소리를 내며 운다.--- 따라서 이를 갈며 이걸 차는 지배인은 의자를 꽉 쥔다)
[지배인] 저, 제발 좀 진정하세요. 부탁입니다. 진정하세요
[여자] 미안해요! (진정하기 시작한다)
[지배인] 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울지 마시고, 우리 잘, 그리구 조용하게 그일에 대해 얘기를 하면 해결할수 있을 것입니다. 자" 아무튼 문제가 뭐죠?
[여자] 네, 바로 제 남편 때문이예요. 제 남편은 원래 대학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몹씁명이 들어서, 벌써 다섯달 째나 앓고 있답니다. 다섯달이란 세월을 고통속에서 지내고 있는거예요
[지배인] 아. 그러시군요. 사실 병에 시달리는게 어떻다는거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인의 심정, 정말 이해할 수 있구요. 그런데 어디가 편찮으시죠?
[여자] 신경과민이예요. 온몸의 신경이 죄다 곤두서서는 ---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는데--- (경고도 없이, 여자는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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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내는 비명을 지른다. 그 통에 지배인은 의자에서 거의 떨어질 뻔 한다) 어쩌다 그렇게 몹쓸 병이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지 뭐예요!
[지배인] (정신을 가다듬고) 그래요? 전 왜 그런지 짐작이 가는데요! --- 아무튼 계속하시죠, 하지만 좀--- 너무 세밀하게 설명을 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네
[여자] 네, 다섯달 동안이나 그렇게 누워서 불쌍한 꼴로 있는동안에
[지배인] (미리 준비를하며) 또, 갑자기 소리 지르시진 않겠죠?
[여자] 전 아무이유 없이 소리지르진 않아요--- 아무튼 그동안 요양을 하면서 몸은 좀 나았는데, 그만 직업을 잃었지 뭐예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쫓겨나고 말았답니다
[지배인] 아 그거 정말 딱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저희 은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여자] 제가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아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간호를 하고, 밤부터 아침까지 치료를 했죠. 게다가 집안 청소를 하랴, 아이들을 돌보랴 개도 먹여야 했죠 또 고양이, 염소에 몸이 아픈 우리 언니네 새까지 키워야 했죠?
[지배인] 언니네 새가 아팠어요?
[여자] 아뇨, 언니가 아팠죠. 현기증이 생긴지가 벌써 한달이나 됐는데 점점 더 심해지지 뭐예요?
[지배인] 아, 정말 보통 불행이 아니시군요. --- 그렇지만 그게 모두 ---
[여자] 그래서 전 언니네 애들이랑, 언니네 집이랑, 언니네 고양이랑 언니네 염소를 돌봐야 했거든요. 그런데 그집 새가 우리 아이를 쪼아서 우리 고양이가 그 집 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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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었죠. 그리고 한쪽 팔이 부러진 우리 딸애가 그집 고양이를 물에 빠트려 죽였거든요.
그랬더니 언니는 그대신 우리 염소를 내놓으래요. 안그러면 우리 고양이를 물에 빠트리든가, 제 딸애의 나머지 팔을 부러트리겠다나요
[지배인] 네, 정말이지 골치가 아프시겠습니다. 부인 한데 전 이런 일이 도대체---
[여자] 그런판에 제가 남편 퇴직금을 받으러 가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글쎄 24루블 36코펙이나 부족하지 뭐예요? 왜 그러냐구 따졌더니 뭐 제 남편이 그 만큼을 직원 기금에서 빌렸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럴리가 없거든요? 제 허락없이 그따위 짓 했다가는 당장에 꺾어놨을 테니까. 더구나 아픈 동안에 그럴수가 있나요? 그러지 않아두 요샌 저까지 몸이 좋지를 않아서 자꾸 이상한 기침을 하거든요 (아주 이상하고 듣기싫은 기침을 해대서, 지배인은 한계점에서 아물거린다)
[지배인] 아, 네, 네 , 정말이지 주인께서 회복하는데 다섯달이나?
이유도 이젠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한테 찾아오신 용무는 도대체 뭐죠?
[여자] 그야 당연하고도 합법적으로 제 남편의 돈인 24루블 36코펙 때문이죠. 사람들은 내가 여자이구 늙어서 힘없고 의지할데 없다구 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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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안주는 거예요. 나를 비웃기 까지 했다구요. 네, 비웃었어요. (크고 고통스런 웃음을 웃는통에 지배인은 뭔가 움켜쥔다) 도대체 뭐가 우습죠? 저같이 힘없고 의지할데 없는 늙은이가 그렇게 우습단 말인가요? ( 훌쩍인다)
[지배인] 아뇨, 아닙니다. 우습긴요. 절대로 안우습죠! 하지만 부인, 제말을 들으세요. 전 뭐 부인께 불친절 하게 하려는건 아닙니다. 다만 아무래도 부인께서는 잘못 찾아오신거 같아요. 그런 봉급에 관한 문제는 저희랑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 남편께서 일하시던 학교의 담당자 한테로 가보셔야죠!
[여자] 그런소리 마세요. 전 벌써 다 섯군데나 갔었지만 , 제 얘긴 듣는척도 안했어요. 난 벌써 반은 내정신이 아니구--- 머리칼이 다 빠지는거 같아요! (머리칼을 한줌 뜯어낸다) 이보세요. 내머리를--- 한줌이나 빠졌어요! (책상에 던진다) 그런데 당신마저 날더러 딴데로나 가봐라 이건가요?
[지배인] (놀라고, 기분이 나빠서 머리칼을 집어 돌려준다) 저, 부인 제발 이 머리칼 도로 가져가세요. (여자는 그걸 다시 머리에 붙인다)
그리구 제 말을 들어보세요. 아시다시피 여긴 은행아닙니꺄? 은행이요, 은행! 여기서 저희가 하고있는건 은행 업무입니다. 돈을 맡아두는 거예요. 돈을 이리 가져오면 그걸 보관해 준다 이말입니다.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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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무슨 소리죠?
[지배인] 그러니까, 부인을 도와드릴수가 없다 이거예요
[여자] 당신이 날 도울 수 없다구요?
[지배인] (깊은 한숨)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수 없는걸 어떡합니까?
[여자] 그러니까 당신은 내 남편이 아프다는걸 못 믿겠다는 거예요? 자 ! 그렇담 여기 의사 진단서를 갖구 왔으니 보세요! (진단서를 테이블에 놓고는 쾅, 친다) 그게 증거예요! 그래도 남편이 고생하는걸 못 믿겠어요?
[지배인] 못믿다뇨, 믿습니다. 남편께서 아프다는거 맹세 라도 하겠습니다.
[여자] 보기나 해요. 보지두 않구서 어떻게 알아요?
[지배인] 그럴필요 없습니다. 주인께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겠단 말입니다.
[여자] 아니, 쳐다보지두 않을꺼면 의사 진단서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자, 보기나 해요!
[지배인] (놀래서, 급히 훑어본다) 아, 네, 주인이 편찮으시군요. 네, 의사가 그렇게 진단을 했어요. 정말 안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부인이 잘못 찾아왔다 이거예요 (당혹해서) 정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여자] (그를 쳐다본다) 당신, 내게 거짓말을 했군그래, 그래두 난 당신이 성실한 사람인줄 알았는대, 내게 거짓말을 해?
[지배인] 거짓말을? 내가? 언제말요?
[여자] (진단서를 잡아챈다) 이 진단서를 읽는체 하구선, 읽지를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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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죠? 읽었다면 내 남편이 억울하게 이유도 없이 해고 됐다는 걸 모를리가 없어요! (진단서를 다시 책상에 놓는다) 내가 힘이 없구, 의지 할데없는 여자라고 얕보지 말구, 이 진단서를 한번 읽어봐요. 그게 어려워요? 자, 읽어요. 그럼 난 갈테니까!
[지배인] 아니, 읽었다는데 왜 그러세요? 한번 읽은걸 두번씩 읽을 필요가 있나요?
[여자] 제대로 읽질 않았으니까, 이번엔 천천히 읽어요
[지배인] 천천히 읽을 필요가 없어요 난 워낙 빨리 읽는 습관이니까!
[여자] 그러니까 뜻을 완전히 모르는 거예요. 이번엔 천천히 읽으면서 뜻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해보세요
[지배인] 이봐요, 난 완전히 뜻을 알고 완전히 이해했어요. 여기 쓴 내용이 갖고 시험을 봐도 자신있다 이겁니다. 그래두 이 일이 우리 은행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데는 변함이 없어요!
[여자] (뒤에서 달겨들듯) 남편이 신경과민 이라는 부분 읽으셨어요?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거나 아닌지 다시한번 읽어주세요!
[지배인] 네, 좋습니다. 좋아요! 네! 당신 남편은 신경과민 이예요 제길할, 자,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니까 어서 나가요! (지쳐서 의자에 쓰러지듯 앉는다)
[여자] (그의 아픈다리 쪽으로가서) 미안해요, 제가 너무 괴로움을 끼쳤나 보죠?
[지배인] (제지 하려고) 아, 제발 내 발을 건드리지 말아요!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여자는 그의 발을 강렬하게 껴안는다. 그리고 그는 아픔으로 비명을 지른다)으아-! 도대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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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요?--- 이런일로 은행에 온다는건 이발하러 고깃간에 가는거나 다름없단 말예요!
[여자] 아니, 누가 이발하러 고깃간에 갔어요? 세상에 고깃간에 가서 이발을 하다니--- 오, 그러니까 저를 비웃는 거군요!
[지배인] 비웃다니, 난 지금 숨쉬기도 힘이 들어요!--- 포챠킨!
[여자] 제 사정을 모르시는군요. 전 벌써 사흘이나 아무것도 못먹었어요. 먹고 싶어두 목구멍을 넘길 수가 있어야죠? 오늘만 해도 물한컵을 세번에 나눠서 마셨단 말예요
[지배인] (최후의 힘을 다해 소리친다) 포챠킨!
[여자] 이제 난 아무힘도 없어요. 아마 작은일에도 기절할 거예요. 보세요! (바닥에 눕는다) 봤죠? 제가 기절 하는걸 봤죠? 하루에도 여덟번 씩이나 이꼴이예요 (드디어 직원이 달려들어 온다)
[직원] 무슨 일입니까? 지배인님?
[지배인] (소리친다) 당장, 이 여잘 끌어내! 도대체 어떤 바보가 이 여잘 들어오라고 했어?
[직원] 그야 지배인님이죠. 제가 여쭸을때 "들여보내" 그러셨잖아요?
[지배인] 그야 난 사람이 들어오는줄 알았지. 의사 진단서를 가진 미친게 들어오는줄 알았어?
[여자] (포챠킨에게) 저 사람은 진단서를 읽지도 않았어요. 내가 진단서를 뵈주니까 내 얼굴에 던져 버렸다구요. 나으리는 친절 하신분 같은데, 제발 이불쌍한거 한테 자비심을 베풀어서 이 진단서를 읽고 제 남편이 아픈지 안아픈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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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를 포챠킨에게 내민다)
[직원] 아니, 아까 두번이나 읽었잖아요!
[지배인] 나두! 나두 두번이나 읽었어!
[직원] 아까 밖에서 제게 뵈주셨구, 저뿐 아니라 우리 은행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었잖아요. 수위까지두요!
[여자] 하지만 당신은 힐끗 보기만 했지, 읽지는 않았어요!
[지배인] 포챠킨! 제발 싸우지 말고, 제발 어서 한번더 읽어! 그래서 제발 저 여자를 여기서 내보내란 말야!
[직원] (급히 퍮어보고) 아, 네, 여기 써 있군요. 남편이 편찮으시다구 말입니다. (고개들고 진단서 둘려준다)
자, 부인 그럼 이젠 나가시죠. 아니면 사람을 불러서 강제로 내 쫓을 거예요
[지배인] 그래, 바로 그거야, 내 쫓으라구! 수위랑 경비원 두명을 불러 내 쫓아!
하지만 조심하라구. 저여잔 황소보다도 기운이 세니까 말야!
[여자] (지배인에게) 흥, 어디 나한테 손만 대봐라! 그랬단 온 시내가 다 놀란 정도로 비명을 지를테니까--- 그러면 당신 은행은 손님이 죄다 떨어질껄, 나처럼 힘없고 의지 할데 없는 늙은이를 때리는 은행에 누가 올거같아?--- 아, 난 기절 하꺼같애!
[지배인] (일어나며) 힘없고, 의지할데가 둴다구? 그래! 당신은 코뿔소 만큼이나 의지할데가 없구 약할거야. 당신은 세균이야! 바로 당신 같은 여자 때문에 나같은 사람이 당신 남편같은 꼴이 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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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결국, 당신두 날 도와주지 않겠다 이거지?
[지배인] 포챠킨, 제발 저여잘 잡아! 주먹으로 한방 먹여! 자네한테 저여잘 두들겨 팰 권리를 주겠네. 정신이 번쩍들 만큼 세게 한대 먹이라구!
[여자] 자, 이제 당신두 봤지? (포차킨에게 하는 소리다) 내가 이런 꼴로 거절 당하는거 말야. 저런놈은 제 에미라두 팰꺼야. 나같이 힘없구 의지할데 없는데다 기침가지 하는 사람을 때리겠다 이거지? 내 기침이 얼마나 심한지 알아? (지겨운 기침을 계속한다)
[직원] 자, 부인 이러지 마시고 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를--- (팔을 잡는다)
[여자] 이거놔! 이 악당들 ! 사람살려요-! 사람죽여요-!
하느님, 이놈들이 날 때려요-!
[직원] 아니 누가 때립니까? 전 그저 팔을 잡은거 뿐예요
[지배인] 팔을 잡지말구 때려. 이 바보야, 기회있을때 발길로 차! 여기서 쫓을려면 그 수 밖에 없으니까 어서 두들겨패!
[여자] (악마 같은 손가락으로 지배인을 가리키며 책상위로 뛰어 올라가더니, 말에 맞춰 벨을 발로 누른다) 저주를 받아라--- - 네놈들 은행에 저주가 내릴거다--- ! 네놈들이랑 여기오는 사람들 까지도 저주를 받아라. 그래서 금고에든 돈은 모두 감자가 되고, 창고에 있는 금은 죄다 양파가 되어라--- ! 지폐는 무우가 되고, 동전은 마늘이 되어라--- !
[지배인] 그만! 그만! 그만! 제발--- 포챠킨 돈을 주게, 돈을 줘! 원하는대로 다 주라구! 그리구 제발 빨리 여기서 내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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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지배인에게) 24루블 36코펙에서 한푼도 더 필요없어! 내게 빚진건 그거뿐이구.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뿐이니까!
[직원] 자, 이리오세요. 돈을 드릴께요
[여자] 그리구 집에가게 차비 1루블은 더 줘야겠어! 난 도저히 걸을 힘이 없으니까!
[지배인] 그래, 그래, 택시값을 두배로 주라구! 제발 빨리 내보내기나 해!
[여자] 고마와요. 선생한테 신의 은총이 내리기를 --- 정말이지, 친절한 분이서--- 그럼 내 저주를 취소해 드릴께 (제스쳐 쓴다) 저주야 물러가라! 양파는 돈이되고, 감자는 금이되고---
[지배인] (자기 머리를 뽑으며) 내 쫓아! 아, 내머리가 빠지는 구나! (머리를 한줌 뽑아낸다)
[여자] 아참, 한가지 더 있어요. 제 남편이 새 직장 얻는데 쓰게 추천장 하나 써주셔야겠어요. 하지만 뭐 지금 서두르실건 없수. 내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올테니까 그때 주면 되니까 안녕히 계시우! (나간다)
[지배인] 내일 또 온대, 내일 또 온대. 내일 또 온대---
(같은 말을 헛소리 처럼 반복하며 서서히 미쳐서 드디어 지팽이로 자기의 아픈 다리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내일 또 온대--- 내일 또 온대--- !
(서서히 조명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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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4장
생일 선물
(조명 켜지며 사창가 같은 거리가 밝아진다. 작가가 나와 관객에게 얘기한다)
[작가] 이번 얘기는 제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정확히 열아홉살이었구, 사랑의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사랑에 대해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구, 사실 입문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때만해도 저는 너무난 순진하고 또 수줍어서--- 에, 그러니까 여자란 태어날때 부터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지, 완전히 벌거벗을 수는 없는건줄 알았거든요. 결혼에 대하여두 감히 상상을 할 수도 없었구, 임신이라는 것은 저녁때 남편이 아내한테 아주 정열적으로 악수를 하기때문에 그렇게 된는거라고 믿었죠. 그리구 뭐 그렇게 알고 있었어도 사는데는 전혀 불편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 아버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인데다가 또 아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아홉번째의 생일을 맞던날, 아버지께서는 생일선물로 제게 사랑의 신비를 가르쳐 주실 생각을 하셨죠. 그렇지만 또 성격이 아주 검소하신 만큼 저를 데리고 직접 현장에 오셔서 에, 혹시 제가 손해보는 거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인자하신 제 아버님의 모습이 저를 통해서 잘 보일지 모르겠군요. 아버님은 늘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 옆에대고 부른다) 안토샤! 안토샤! 어디있냐? 야, 거기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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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강아지 처럼 떨고 있니? 이리와! 지금부터 우린 니사춘기를 끝내는거야! (열아홉의 안톤이, 겁먹은 강아지 처럼 떨면서 등장한다. 손에든 모자를 만지작 거린다)
[아들] 그런데 참, 아버지, 나 아무래도 어디 아픈가봐요!
[아버지] 아프다구? 아니? 갑자기 어디가 아프냐?
[아들] 그건 아직 생각 못했는데 곧 생각날거예요
[아버지] 아, 별거 아니다, 공포심이란거야! 사춘기의 공포심이라구, 뭐 나두 네 나이때는 그랬으니까!
[아들] 아버지두 나만했던 적이 있었어요? 난 아버진 원래부터 나이가 많으신줄 알았는데!
[아버지] 내가 여자랑 처음 지내본게 몇살때인줄 아냐?
[아들] 아버진 여자랑 지내본 일이 있어요?
[아버지] 그야 당연하지, 아버지가 된사람은 누구나 어떤 여자랑 같이 지내본 일이 있는거야!
[아들] 어떤 여자랑요?
[아버지] (소리친다) 그야 각각 다른 여자지! 아니 넌 친구들이랑 이런 주제로 토론해 본적도 없냐?
[아들] 이, 있죠. 항상해요. 하지만 --- 듣기만 해도 너무 떨려서
[아버지] 사람에 관한한 경험을 갖고 결혼에 임하는게 남자의 의무다!
안 그랬단 귀중한 세월을 몇년동안이나, 찾는데 낭비하거든
[아들] 전 몇년쯤 낭비해도 상관없을거 같은대요
[아버지] 안토샤, 이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야, 처음엔 걸음마를 배우고 다음엔 말을 배웠지? 이젠 이걸 배울차례야
[아들] 하지만 제가 아직 걷는거랑 말하는걸 다 배운거 같지 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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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화난듯) 안토샤, 더 꾸물거릴거 없다 어른되기 기다리다가 늙은이 되는 꼴 보구싶냐? 자, 네 발로 저기 걸어들어가서 에--- -여자 경험을 하고 나올테냐, 아니면 나한테 벌을 받을테냐?
[아들] 하지만 이 동네 여자들은 도덕적으로 고상해 뵈지가 않는걸요
[아버지] 우리가 찾는건 도덕적으로 고상한 여자들이 아냐! 그리구 이 세상엔 도덕적으로 고상한 남자들이 너무 많아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고상한 남자들이 할 수 없이 이런데 오게 되는거구 자, 용건을 시작하자!
[아들] 저, 용건이 끝날때 까지 아버지 손을 잡고 있어두 돼요?
[아버지]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 남자가 되러 들어가는 놈이 아버지 손을 잡구 들어가? 자, 시간이 없다. 안토샤, 네 엄마한테 아홉시까진 돌아온다고 했단말야. 그러니까 이제 니가 어른될수 있는 여유는 한시간 하고 10분 밖엔 없어!
[아들] 엄마한테도 이얘길 하신거예요?
[아버지] 넌 내가 돌대가린 줄 아니? 네 엄마한테는 바람쏘이러 간다구 했으니까 걱정마!
[아들] 하지만 제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아버지] 안톤, 이건 겉으로 표가 나는게 아냐! 얼굴에 무슨 반점이 라고 생기는줄 알았냐?--- 글쎄 생긴다면 아마 니 얼굴에 미소가 생길거다. 자. 가자!
[아들] 아버지, 어른되는데 꼭 이방법 밖엔 없어요? 콧수염을 기르는게 어떨까요?
[아버지] 안토샤, 나한테 솔직히 얘기해라! 니가 정 싫다면 그냥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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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아들] 네,집으로 가요
[아버지] 내말을 끝까지 들어, 정 니가 싫다면 그냥 집으로 가서
[아들] 네, 집에 가요!
[아버지] 그러냐? 좋다 그럼 집에가자, 가서 때가 올때까지 목욕탕 속에 들어가서 장난감 배나 띄우고 놀으렴!
[아들] 그럼 아버진 저한테 화내실 거예요?
[아버지] 아니!
[아들] 실망하시겠죠?
[아버지] 아니!
[아들] 그럼 자랑스러울 거예요?
[아버지] 아니!
[아들] 그렇담--- 좋아요--- 하겠어요!
[아버지] 장하다, 안톤!
[아들] 만일 제가 이걸 좋아하면 또 데려올거예요?
[아버지] 뭐라구? 야, 난 너를 여기다 아주 재미들리게 하려는게 아냐! 원 제길,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어디 진보적인 애비노릇 해먹겠냐?
(여자등장, 붉은머리의 예쁜 아가씨가 담배를 물고 있다)
[여자] 안녕, 아저씨!
[아들] 오, 하느님!
[아버지] 하-! 정신차려라! 왜이러니?
[아들] 그, 그러니까, 저 여자가--- 선생님이 되는건가요?
[아버지] 내가 보기엔 교장이 되고도 남겠다. 역시 우린 재수가 좋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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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주 예쁘지? 자 그럼 내가 가서 네 교육 문제를 좀 상의해야 겠다!
[아들] 저, 혹시 통신교육 같은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지] 너, 여기서서 꼼짝말고 있어, 내 금방 돌아올테니까! 그리구 그 모자좀 가만둬라, 우린 모자 꾸기러 여기 온게 아냐! (여자에게 간다) 아,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4월 저녁치고는 날씨가 아주 좋죠?
[여자] 어머나, 벌써4월이예요? --- 전 별로 밖에 나오는 일이 없어서---
[아버지] 아, 물론 그러시겠군요--- 아무튼 제가 아가씨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그--- 할 얘기의 내용이 약간 거북한거라---
[여자] 30루블요!
[아버지] 아, 역시 약간 거북한 문제가 있군요--- 30루블이라고 하셨조 뭐 솔직히 말해서, 저라면야 30루블이 아주 당연한 가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아니라, 아직 경험이 없는 어린 제 아들 때문이거든요. 네, 바로 저기서 무릎을 떨고 있는 앱니다.
[여자] 그래도 30루블이예요. 여긴 연소자 할인 없으니까요!
[아버지] 아, 그야 당연하죠--- 하지만 말예요. 열하홉살짜리 아이한테 30루블은 약간 높은 가격인거 같은데--- 에, 15루블 정도면 어때요?
[여자] 15루블 이라면 뭐 얘기책 하나 읽어드릴순 있죠. 자, 오늘 저녁에 노르웨이 배가 들어오기 때문에 전 들어가서 가발을 금발로 바꿔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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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 잠깐만--- 사정을 좀 이해해 주시오. 사실 오늘이 저애의 생일이기 때문에 난 뭐 근사한 선물하나 주려는건데, 어때요?
[여자] 우산이나 하나 사주지 그러세요?
[아버지] 이봐요. 사실 내가 저나이 였을땐 말이오. 그러니까 30년전 얘기지만, 난 여기서 가장 예쁜 아가씨랑 지내는 기쁨을 얻었거든, 그 여자 이름은 이르카라고 별명이 우유배달 이었다구요. 그런데도 겨우 10루블 밖엔 안했단 말이요
[여자] 아, 그여잔 아직도 여기 있어요. 그리구 우유도 이젠6루블 밖에 안하니까, 그여자 한테 가보시죠
[아버지] 그 무슨 끔찍한 소릴!
[아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왜 그러냐?
[아들] 아직 멀었어요?
[아버지] 그래, 잠깐 기다려, 아직도 쇼핑 중이다! (여자에게) 자, 봐요, 얼마나 사랑스런 앤가, 섬세하고 브드러운데다, 얘긴 또 얼마나 재미있게 한다구, 정말이지 아주 재미있을거요
[여자] 아니 도대체 누가 영업하는 중이죠?
[아들] 아버지, 자꾸 추워져요!
[아버지] (아들에게) 그러냐? 구럼 제자리 뛰기라도 하고있어. 뭐 그리 조급하냐? 이제까지 19년이나 기다렸는데 그깟 몇분을 못참니? (여자에게) 20루블 내겠소! 나도 교육적인 의 미에서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제발 쟤를 위해서 부탁하오!
[여자] (아비질 쳐다 보다가 웃으며) 좋아요. 정말 아저씬 아주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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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하고 사랑스런 아버지군요. 존경할만 해요. 나한테도 아저씨 같은 아버지가 있었더러면 이런데까지 와서, 이렇게 아저씨 같은 아버지랑 흥정하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텐데!
[아버지] (헛갈려서) 아,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의미가 있는 얘기 같군요. 자, 그럼 계약된거죠? 자, 20루블! (돈을 준다) 아, 그리구 참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오늘 저녁--- 행사가 끝날때에 ,"생일을 축하하는 아버지로 부터"라구 얘기를 해주면 아주 고맙겠소
[여자] (끄덕이며) "생일을 축하하는 아버지로 부터" 아예 초를 몇개 켤까요?
[아버지] 아, 그런건 상관없소. 그리구 쟤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해주시오. 그거뿐이요, 부드럽게 알았죠? (눈물을 닦는다) 이런 제길, 눈물이 다 나는군--- 내가 왜이리 약해졌지!
[여자] 그럼 윗층에서 기다릴께요. 윗층 왼쪽 두번째 문예요!
부탁하신대로 아주 부드럽게 해드릴테니 아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 고맙소 정말이지 요새 여자들은 아주 이해심이 많구려!
[여자] 아녜요. 오히려 아저씨 같은 분을 보게되니, 이 직업에 종사하는 긍지를 느끼게 되는걸요(아버지 손에 키스하고는 나간다)
[아버지] 아, 저런 여자를 보모로 쓰면 아주 최고일거야--- 안토샤! 학교문 열렸다! (아들에게 간다) 다 됐다 20루블로 해결됐으니까. --- 너두 이런데서 흥정하는걸 알아야 한다. 자, 출발, 2층 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두번째 문이다. 난 여기서 기다릴께. --- 하지만 너무 조급할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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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가다가 선다) 아버지, 그 여자한테 얘길 해야 되나요?
[아버지] 얘기라니?
[아들] 뭐--- 안녕하세요 같은거요
[아버지] 아, 그야 안녕하세요 하면 좋겠지. 그리구는 아마 안녕히계세요 하면 될거야. 자, 빨리가라 기다리겠다.
[아들] 무슨 주의사항이나 지시사항 같은거 없어요?
[아버지] 바로 그걸 배우라구 내가 그여자 한테 큰돈을 준거야. 네가 한 질문을 바로--- 자, 빨리가라, 이러다 시간의 근무수당까지 주겠다.
[아들] 네, 가요, 아버지 갈께요. (멈춘다)
[아버지] 왜 또 그러냐?
[아들] 이상하잖아요? 제가 다시 저 계단을 내려와서 길거리로 나올때에는 전 이미 아버지의 귀염둥이 안토샤가 아닐테니까, 전--- 안톤이라는 어른이 되는 거겠죠?--- 고마웠어요.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간다)
[아버지] 야, 잠깐만! (아들 멈춘다) 안토샤, 잠깐 기다려봐!
[아들] 왜요?
[아버지] 에, 금방 생각이 난건데 말이다. 너 차라리 선물로 우산을 하나 받는게 어떻겠니? 뭐 어른이 될 시간은 내년에도 또 얼마든지 있잖니?--- 내년에 말야
[아들] 네, 아버지 생각이 그러시다면 좋아요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끌어안고 밤거리를 걸어 나간다. 무대 어두워 지며 음악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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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5장
작가
(조명 켜지며, 작가가 원고뭉치를 들고 걸어나온다)
[작가] 제 아버님의 얘기는 사실 깊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전 아버질 아주 사랑했죠.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이나 오늘저녁 여러분이 보신 여러 다른 인물들의 모습에서 전 뭔가 배신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었을 썼건 펜을 놓고 난 다음엔 항상 --- 제가 그 사람들의 주요한 인생의 알맹이를 도둑질 한거 같은 기분이 되는걸 어쩔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못견디게 만드는 것은, 제가 오늘같이 글을 쓰는 동안은 아주 신이 났었다는 겁니다--- 결국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 가만 있자, 아까 처음에 제가 무슨 얘길 하다가 말았죠? 재채기 얘기하기전에 말입니다. --- 아!네 바로 그얘길 하다 말았군요,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었인가? --- 네 전 어릴때 부터 --- (잠시 생각하다가) 참, 이상하군요. 제가 살아온 인생은 도저히 기억을 할수가 없다니--- 하지만 제가 지금 이대로 커다란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한, 아마 전 바로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거겠죠. 아무튼 이렇게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혹 이근처에 오시는 일이 있으면 다시한번 들려주십쇼. 아, 아닙니다. 이보다야 더 멋진 끝이있죠. 에, 혹시 이 근처에 오시는일이 있으면 5백만루블 유산을 상속받게 되길 바랍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쇼. 감사합니다!
(돌아서서 무대 뒷쪽으로 갈때, 조명 어두워 진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