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사회(無緣社會) ?
지난 해, 2010년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유행어다.
가난한 노인들이 돈이 없어
인간관계가 끊기고, 일본 특유의 강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붕괴됐다는 의미다.
빈곤노인의 삶을 주제로 일본, NHK 다큐멘터리가 2010년 1월에 방영되면서 일본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부자 일본의 자존심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은퇴한 빈곤 노인들의 삶은 너무도 비참했다.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 최고령국가의 재앙 ?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분야에서 그렇지만, 고령화 사회의 양상도 예외는 아니다.
2050년 한국이 세계 최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나왔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의 충격을 겪고 있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일본학과) 겸임교수인 경제평론가, 전영수 박사는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에서 고령화와 함께 일본 사회에 닥쳐온 노인 빈곤 실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고독사(孤獨死) ?
무연(無緣)이 부각된 것은 고독사(孤獨死).
즉, 아무도 모르게 숨지고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사람들이 급증한 데서 비롯됐다.
일본에선 연간 3만2,000여 명의 고독사가 보고되고 있다.
물론, 고령의 독신자들이다.
고독사한 사람들을 추적해 보니, 가족이나 친척은 있지만 그 관계가 벌어졌을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연(緣)은 사람들의 관계이자 네트워크다.
무연(無緣)은 그 연이 없어졌거나 끊겨진 상태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혈연(血緣)이나 지연(地緣), 학연(學緣)과 회사를 다니면서 만들어진 사연(社緣)이 모두 끊어진
사회적 고독, 고립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이러한 연(緣)이 기능하지 않게 된 것은 결국, 노인들이 가난해졌기 때문이고,
그 가난은 사회안전망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기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1960~1980년대의 고도성장기에, 기업들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통해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대졸 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결혼, 육아, 퇴직 후의 생활까지 기업이 뒷받침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지방경제 종사자는 중앙정부의 공공투자로 일자리가 보장됐다.
정부의 복지시스템은 여성 및 고령근로자 등 기업이 커버하지 못한 극히 일부계층에 한정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서, 일본경제가 20여 년간의 장기침체에 빠진 가운데 신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기업의 복지안전망이 붕괴되자 중산층 이하의 삶이 곧바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0년, 현재, 일본 인구 1억2,700만 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900만 명으로 22%에 달한다.
가계 금융자산 1,453조엔 중, 약 900조엔을 65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자노인도 많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일부의 부자 노인보다
대다수의 가난한 노인들이 외롭게, 나홀로 고독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홀로 고립 ?
게다가, 그러한 나홀로 고립은 노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젊은 세대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홀로 사는 30~40대의 독신세대가 그들이다.
2010년, 현재, 일본의 독신가구 수는 1,500만 가구에 육박한다.
저소득,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연(緣)의 시작이랄 수 있는 결혼은 아예 엄두조차 못 낸다.
[주간 다이아몬드] 잡지는
" 학교 졸업 후, 연애, 취직, 결혼이라는 컨베이어 식의 행복보장 시대는 이미 끝났다." 면서,
" 괴로워하다 결국엔 독신생활을 결심하게 된다."고 발표 하였다.
돈 걱정의 집단우울증 ?
이 같은 [나홀로 고립] 현상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2005년 기준, 남성의 생애 미혼율(* 50세 시점에서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약 16%, 6명중 1명 꼴이다.
결혼이 해결책이나 [트릴레마]로 불리는 3대 인생고충이 부담이다.
본인 노후, 부모 간병, 자녀 교육의 세가지 고충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 사회가 [돈 걱정의 집단우울증]을 겪는 사회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노인의 비참한 삶 ?
저자는 은퇴 이후, 일본 노인들의 비참한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본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가 식재료 등 필수품을 사기 어려운, 이른바 [구매 난민]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가난한 동네에는 소매점과 편의점마저 사라져버린지 이미 오래 되었고,
가난한 대다수의 노인들은 두부 한 모를 사려해도 1km 이상을 걸어나가야 하거나,
운행 횟수가 현격하게 줄어든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도 매우 많아졌다.
가난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생필품 구매난이야말로 생명줄마저 위협받게 되는 끔찍한 일이다.
일본 전국에 이러한 [구매 난민]이 최소 6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인들에게 있어서, 돈의 압박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질병비용 및 간병비와 장례비다.
노인이 사망하기 전의 마지막 5년 간에 드는 질병비와 간병비가 약 1억 엔(약 10억 원) 이상이 든다는 통계까지 있다.
수도권은 장례비용이 평균 500만 엔(약 5천만 원) 이상이다.
젊은이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 자기 부모의 장례와 제사를 못 챙기는 자식들도 너무 많다.
아예, 자기 부모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젊은 나홀족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홀로 살다가 고독사한 노인의 유족이 연락 안되어, 사체 처리에 지방자치단체들은 골머리를 앓고있다.
노인 문제는 복합적이다.
일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그 순간, 곧바로 즉시, 사회적,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변화가 동시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노인들은 정서가 극도로 불안해져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 상징 키워드가 망주(妄走) 노인 또는 폭주(暴走) 노인이다.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미쳐 날 뛴다고 괴물로까지 비유되고 비아냥 거리가 된다.
근로소득 확보와 연금만이 장수(長壽)사회를 지켜낸다 ?
일본 노인 가운데 비교적 유유자적한 노후 생활을 즐기는 노인들의 가장 큰 버팀목은
국민연금, 후생연금, 기업연금 등의 3층 구조의 연금이다.
그러나, 이같은 1~3층 연금을 다 받는 1,400만 명의 일부 선택 받은 공직 및 샐러리맨 은퇴자를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의 은퇴생활의 시작은 곧, 빈곤의 시작일 뿐이다.
이같이 장수(長壽)사회는, 은퇴하는 각 개인뿐 만 아니라, 가족과 국가에도 매우 큰 재앙이 되고있다.
저자는 길어진 인생 후반기와 정부 재정을 고려해 보면,
장수(長壽)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현역 근로을 통한 [근로소득] 확보와 미리미리 젊을 때부터 준비한 [연금]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