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4코스
구래역 06시 32분 하차해 06시 53분 71번 버스로 출발,<원래 40분이 정상 시긴인데 많이 늦어짐>
07시 43분에 탑재삼거리 하차,버스 진행 방향으로 능안6교를 건너 우측으로 능내 마을로 든다.
4코스 스탬프 인증하고..이런 시골에 화장실이 정말 깨끗하고 따뜻합니다. 대한민국 화장실 문화는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강화 가릉(江華 嘉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위치한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陵)이다. 1992년 3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70호 가릉으로 지정 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편집]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지금의 자리에는 고종 31년(1244)경 사망한 뒤 모신 것으로 짐작한다. 고려 원종 3년(1262)
정순왕후로 추대되고 충렬왕이 즉위(1274)하여 순경태후로 높여졌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부서져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진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손질하여 고쳤다.
사적 승격사유[편집]
이 유적들은 고려시대 왕릉 또는 왕비릉으로서 묘제상으로는 지정가치가 없으나,
역사성이 인정되고, 고려 공양왕 고릉(사적 제191호)과 고려 고종홍릉(사적 제224호)이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으므로 경기도 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 지정하고자 함
예전 창고 사진
달라진 모습. 저 석문을 막아버렸네요.공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모습
4코스 시작점
따스한 아침 햇살이 내려앉은 솔숲길
숲길에서 다시 마을로 내려와 저 집과 비닐하우스 사이로 나온다.
마을 지킴이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제법 큰 농장이었는데 저렇게 방치된지가 오래되었네요.
기도원 방향으로
봄이 오는 소리, 졸졸 이른 아침 개울 물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우수,경칩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릿발이 발밑에서 서걱인다.
저 삭막한 나무가지에도 머지않아 봄이 찾아오겠지요..
금식기도원
기도원 앞에서 우측 산길로
정제두의 묘
정제두
강화읍에서 마니산으로 가는 도중 하우고개 중턱에 있으며, 면적은 3,900㎡이다.
묘 앞에는 상석과 묘비, 장명등,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1803년(순조 3)에 건립하였는데, 비문은 신대우가 짓고 글씨는 서용보가 썼다.
묘 앞에는 정제두의 아버지인 정상징(鄭常徵)과 그의 부인 한산 이씨의 합장묘가 있다.
2007년 2월 26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제두는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이다.
1668년(현종 9) 별시문과에 급제하였고, 공조좌랑, 호조참의, 한성부윤, 대사헌,
이조참판, 우찬성 등을 지냈다.
그는 일생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처음에는 주자학을, 뒤에는 지식과 행동의
통일을 주장하는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였다.
양명학은 맹자의 선천적인 도덕심과 마음의 발양을 통해 타인을, 나아가 인간 세계와 우주를
성실하고 바르게 하자는 이상을 형이상학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가적(禪家的)인 색채 때문에 청대 실학자(實學者)들에 의해 비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연구·계승되는 유가 철학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 쪽이 아들정제두의 묘,아래가 아버지 어머니 합장 묘, 원래는 부모 묘지가 윗쪽에 쓰여지는데?
양도면 방향,초피산과 마니산 자락이 보인다.
하우고개
하우약수터
꽃피는 봄날에는 참 예쁜 곳인데..자전거 타는 풍경..
건평리 마을로..마을회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대문장가였던 영재 이건창(1852∼1898)의 묘소이다.
묘는 단분(單墳)이며 특별한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다.
이건창은 어렸을 때부터 강화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이시원으로부터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충의(忠義)와 문학(文學)을 배웠다.
5살 때 문장을 구사할 만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고종 4년(1866) 15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고종 11년(1874)에는 사신을
수행하여 기록을 맡았던 서장관에 발탁되어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 후 고종 12년(1875)에 충청도·전라도·경상도·황해도의 서쪽 지역에 파견되어 지방 관원들과
민생을 살피는 암행어사가 되었다.
또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함경도의 경성 이북을 다스리는 안무사에 올랐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로는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인 강화에 내려와 살다가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건창은 철저한 척양척왜 주의자였으며, 한 말의 대문장가인 김택영이 뽑은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에 포함될 정도로 문장에 특출하였다.
저서로는 『명미당집(明美堂集)』·『당의통략』 등이 있다.
이건창의 묘, 그 흔한 석물 하나가 없다.
묘소 옆 탱자나무
건평항 풍경
천상병 귀천공원으로...
건평항과 마니산
오늘도 해맑은 미소로 반겨주시는군요.현대인들에게 마음에 새겨진 귀천..나이 들수록 더 와 닿는 싯귀
건너 11코스 바람길
마니산과 선수포구도 보이고
우 장지포구와 건너 해명산,외포리 앞 대섬
내가면과 양도면의 경계
강화 함상공원 주차장..작년 11월에 개장한 외포리 함상공원
1985년에 취역하여 2019년에 퇴역한 호위함인 955 마산함,
35년 동안 우리 해역을 지키며 태평양도 횡단한 기록이 있는 2300톤의 마산함
배 밑에는 엄청난 크기의 두개의 프로펠러가 달려 이배의 위용을 짐작케 해준다.
다음 다음주 3월 26일부터 유료공원으로 3,000원의 입장료를 징수한다고,
길이 102m 폭 11.5m 높이 27.8m나 되는 마산함, 선미쪽에 설치된 76mm 함포 앞에서
청상어 어뢰,배 양쪽에 6발이 달려있고 한 발 가격이 10억원 내와라고,ㅎ
TV 뉴스에서나 보던 하픈 미사일이 8발이 장착 되어있고, 국산은 한 발당 가격이 24억원 내외라니 ㅠ
석모대교와 석모도 해명산
76mm 함포 실탄, 자동으로 분당 수십발이 발사 된다고
상황 정보실
역대 마산함 함장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그 누구도 비하지 못할 애국심,정말 장한신 분들..
함장숙소
영화에서 보면 비상벨이 울리면 후닥닥 뛰어 내려가는 모습이 연상되는군요.
1일 함장이 되어 ㅋ
선미쪽에 이어 선수쪽에도 76mm 함포와 두문의 30mm 함포가 설치되어 있다.
대함 대공 레이더는 계속 잘도 돌아가고 있고,
생각지 못했는데 보기 힘든 마산함 내부를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사병들은 저 좁다면 좁은 배 안에서 정신적 힘듦도 함께 했으리라...
그러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더 큰 포부도 함께 키웠겠죠?
높고 낮음 없이 나라지키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함 전합니다.
외포리 어시장이 냉 난방시설까지 갖춰지고 깨끗하게 변모했네요.
화재로 마음 고생들은 컸겠지만 상인분들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4코스 해가지는 마을길 걷기를 마치고 12시 30분 62번 버스로 터미널로 이동한다.
걷기를 마치고...
경칩도 지난 주말 아침 꽃샘 추위로 쌀쌀한 날씨에 4코스를 찾아간다.
조금은 달라진 가릉을 한바퀴 둘러보고 숲길을 걸으며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숲길의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생쾌한 마음으로 강화의 봄 소식을 느껴보며 화창한 주말을 선물 받는다.
예로부터 강화하면 문인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여 곳곳에 산재해 있는
옛문인들의 숨결을 느껴보기도 하며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고향같은 한적한 정겨움도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바다와 산이 있어 더욱
좋은 곳이라 기억되는 곳이다.
4코스 종점 외포리에 또 하나의 명물인 함상공원이 새롭게 생겨나 볼거리를
더해주는 곳이기도 하고, 현재는 무료입장으로 누구나 관람 가능하고
3/26일부터 유료입장이라 한다.
군함 내부를 샅샅이 돌아 볼 수 있고, 신기하고 우리가 몰랐던 마산함의 위용을
느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아니였나 생각한다.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될 것이라 보며
화창했던 3월의 두번째 주말을 즐겁게 보내고 이른시간 귀갓길에 든다.
강화의 다음 길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봄은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기에..
여기까지....
嘉谷
2024,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