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등학교에 관한 기억들
- 나는 분명 국민학교라고 쳤는데, 초등학교로 변해버리네?
- 1학년, 2학년의 기억은 없음. 머리가 나쁜 것같음.
- 3학년때 담임이 안계셔서, 교장, 교감선생님이 직접 수업하셨는데, 2학기에 공영출선생님이 부임하셨지? 머리가 꼽슬(자연산?)에 호리
호리한 멋있는 스타일...
- 4학년 김승차선생님(앞머리가 없는 당찬선생님. 잘못한 거있으면, 철사로 손바닥맞던 기억... 과외도 했었지. 학교 뒤편 선생님 댁에서.
- 5학년 6학년은 이승찬선생님. 특별한 거는 없고, 유일하게 직접받은 졸업장이었는데, 없어져서 안타까움.
2. 추억 몇 개.
- 당시 나도 야구를 좋아했는데, 배구를 하라고 해서 전병윤과 같이 배구를 했던 기억.
- 4학년 때, 오혜연이라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참 좋아했지. 나중에 없어져서 물어 봤더니, 부산쪽으로 전학갔다고 하더만... 첫사랑이었
나? 아직 못잊고 있는 것같음.(그래서 장가 못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봄.
- 철다리 밑에서 물놀이를 많이 했었는데, 실장어도 잡고...
- 등기소 뒷집에 살았는데, 바로 뒤가 산이어서 놀러 잘 갔던 기억
- 중앙동 로타리(?)전병윤 집에서 이영식, 나, 등등이 모여 영어쓰기 연습했던 기억이 있네. 그리고 그 때 가루 우유를 물에 타서 먹으면,
냄새없는 방귀가 한없이 있었던 기억 등등
3. 학교는
벌교남교- 벌교중- 광주 숭의중(2학년 11월에 전학)-석산고(1학년 5월에 자퇴)-검정고시- 성균관대 건축공학 졸업- 日本京都(쿄토)대 건축과 석, 박사. 95년 7월에 귀국. 현재의 직장에 입사
- 검정고시 준비하는 과정에 안양에서 이승찬선생님 만남.(어떻게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음) 그 때는 내가 참 불쌍해 보였나 봐. 커피사
주시고, ***이라면서 차비하라고 천원을 주셨던 기억. (그 뒤로 찾아가지 않음. 나름 자존심이 상했던 것같음.)
- 이승찬선생님은 내 외삼촌하고 비슷한 연배로 두분이서 참 친하게 지내셨는데, 중앙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해서 졸업하고 안양에
여중학교에서 영어선생님하셨던 걸로 기억됨. 만났을 때 미국갈거라고 했던 기억이 있음.
4. 무슨일하냐고?
- 건설기술연구원에서 건설관리(Construction Management)를 전문으로 하고 있음. 공부는 초고층 건축공사의 공정관리에 대해 10년
간 공부했는데,(나름 선구자적인 공부였음. 그래서 고생했고...) 귀국해 보니 쓸모없는 공부였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런데 이
제야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음.
- 지금은 건설 품질관리를 전문분야로 하고 있으며, 통일대비 북한 SOC(사회간접자본: 주택, 도로, 철도 등 사회 기반)에 대한 연구를 준
비중임.
5. 후회
- 나름 자존심이 강해서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음.
- 장남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거.
- 광주로 전학간 거.(내 뜻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인생의 갈림길이었던 것같음.)
- 유학간 거. (연구하는 직업이라는 게 이런 정도라고 알았으면(건설분야) 유학가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을 거같음) 왜냐하면 머리에 원형
탈모증달고 공부했던 것이 후회되기 때문.(적당히 살수있었는데...)
6. 이루고 싶은 꿈?
- 공부하고 싶음. 지금은 경제학관련 잡서를 통독 중. 내년은 사회복지학에 도전할 생각임. (방통대)
- 그리고 공부한 거 책으로 정리할 예정
-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은데, 아직 결심을 못하고 있고, 전국 구석구석을 일주하는 것.
- 결혼은 운명이라 생각 안하기로 했음.
7. 좌우명?
大丈夫 見善明故 重名節於泰山 用心精故 輕死生於鴻毛
(대장부는 착함을 봄이 분명하여 명분과 절개를 태산보다 중하게 여기고, 마음씀이 깨끗하여 삶과 죽음을 기러기 털보다 가벼이 여긴다)
8. 노래?
- 좋아하는거 : 조수미. 나 가거든(If I leave), 그대 그리고 나, 등등 많음.
9. 요즘 생각하는 거?
- 사람이 아무리 바둥거려도 운명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 느끼고 있음. (크리스챤이 이런 말하면 안되는데...)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정해졌던 것같음.
- 그저 나로 인해 마음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것
- 건강하게 살고싶어 운동 열심히 하고 있음.
- 목표를 채우면 빨리 현직장 그만두고 꿈을 이루고 싶음.
10. 친구들에게 한마디.
-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
- 적당히 살자(아둥바둥대지말고.)
- 적당히 굽히고 살자. (그게 편한 세상인 것같아서...)
11. 친구들과 하고싶은 일
- 같이 벌교가서 여러 가지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 모르고 지내는 친구들과 만나고 싶어서...
첫댓글 형근이가 들어오셧군.
자아! 인생은 지금부터다
이제부터는 즐겁고, 행복하고,머물고 싶은 순간들로 가득찰거야
같이 노력할께.
형근아,참 오랫만이네.그동안 소식이 없더니만 준비를 잘하고 계셨군.서운한 거 있었으면 이해해주시고 앞으로는 더 자주 카페에서 만날 수 있기를
십일문 십일답 !!
형근이 글을보다가 문뜩! 나는 모르고 살았던부분,대충살고있는부분들이 많은것같네 .
한마디로 계획없이 살아온거지~~~~
그런면에서는 기혼자보다 총각이 훨~났구만.......!!
공부하고 연구만하다가 세월이 다갔네.
결혼 연구도 해보라고 하고싶은데 혼자가 편하겠네. 잔소리한 사람도없고~~ㅎ
맞다 ! 김승차 선생님 ... 야구 잘하고 ... 머리좀 벗겨지고 ... 2학년땐가? 3학년땐가? 담임을 하셨던것 같은데 ... 이제 계속헷갈리기 시작한다 . 형근이가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줘서 고맙다 . 형근아 그래도 인연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계속 추진해보자 ! 향숙이 말마따나 학문땜시 시기가 조금 늦춰졌을뿐이잖아 !
그래 오혜연 생각난다 우리 집 근처에 살았어 1학년 때 담임산생님이쎴던 오경자 선생님 조카였지.정말 어디서 살까?
앵..
국민학교로 넣는데 초등학교로 자동 바뀐다..
선두 타자가 <초딩때>로 쓴게 문제였나 보네...
<국민학교때>하면 맛이 덜 한거 같아서 그렇게 올렸는데..
장문의 글에..
참 추억이 절절이 묻어나네..
그래 이런 글은 한번에 쫙 써서 그냥 못 올려지지..
하여튼 댓글달 거리가 넘쳐나네..
일단 읽었다는 표시하고 갑니다.
기숙아 섭섭한 거 어디 있는데? 그런 거없다. 다만 요즘 내가 정신을 못차리게 바쁜 것뿐이여. 오혜연이를 아네? 어떻게 좀 찾아 봐 부탁하이... ^^
오혜연이를 찾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무슨 좋은 방법 좀 찾아보자
오혜연? 나도 기억이 날듯말듯하네 !
노상길이 살던 집 앞으로 큰 집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오혜연이 살았었다 생글생글 잘 웃고 나도 많이 놀았거든
아 맞아 상길이도 우리 동네 살았었지 ! 상길이하고 함께 과외도 했던 기억이 난다 . 한종섭 선생님댁으로 . 삼보소주 골목길이 무서워서 문호집 앞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어 . 너도 후생병원 많이 다녔지??? 광산병원 다녔냐? 소영이 집 ! 후생병원 막내아들하고도 많이 놀았었는데 . 지금 그 형은 광주 기아자동차 다니는데 광주살때 몇번 만났었어 .
난 광산병원 다녔고 삼보소주 골목길은 막걸리 받아올때 홀짝홀짝 몇 모금 훔쳐마시느라 많이 다녔지 ㅎㅎ
형근이의 삶을 보니, 무어라 그럴까.... 등기소 뒤에서 살았다는 말이 웬지
슬프다는 느낌이 든다 ^^
까마득한 내 기억의 숲속에는
초딩 때, 아마도 봉림을 가면서, 형근이가 자기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형근이 집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 6년이 지난 이후에, 형근이 집 옆, 밭을 사서, 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고향 집을 가면서, 30년이 넘게 형근이가 살았던 집을 옆에서
쭉 보아 왔었다...
형근이 집이 어떻게 변하고, 급기야, 어떻게 흔적 조차 없이 사라져
지금은... 벌교에서 잘 나가는 "원조 꼬막 정식" 식당의 주차장으로 되었는지 ㅠㅠ
종종, 나는 형근이 집을 보면서, 광
광주에서 만났던 형근이를 생각하고
또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하였는데...
아마도, 광주에서 만났을 때가, 이제 보니, 형근이가 가장 힘들었던 때를 지나고 있는
시기였었던 같다...
그런데, 마침 고딩 동창 동생이 아직도 경기도에서 영어 선생으로 시집도 안가고 있어서
형근이랑 차라도 한잔 하게 하고픈데...
향숙이 말이 생각나서, 망설이고 있다 ^^
형근이의 좌우명을 보면, 어쩌면, 코드가 통할 것도 같은디
어떻하냐?
너의 삶이
우리들에게 여전히 신선한 젊음을 주고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
속알고 좋은사람있으면 소개하소~ㅋ 살다보면 좋은날만 있는것은 아니니까...
나도 이글을 읽고선 NO총각도 아니고 참총각을 누구와 맺어줘볼까?
주위에 노처녀 없나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현재는 피아노원장하면서
청람어학원원장했던 키도크고 멋쟁이인데 얼굴은중간정도되고 오빠도 목사님이시고
신앙심이 좋은사람을 찾는것같고 나이는 양띠라니까 47.8 아직도 못간건지 안간건지 알수가 없어서....
내가봤을때는 정말 멋쟁이인데 성질이 조금 있는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었네.
너무 드세면 안될것같기도 해서...으쩌나~~갈마음이 있으면 친구들이 총동원해서
좋은일한번 해볼까???ㅎㅎㅎ
이것은 다른 댓글인디,
막걸리를 홀짝 했다고?
햐, 어떻게 니는 남자들만 하는 것을, 그렇게 일찍 시작 했더냐?
나는 막걸리 하면, 지리산 갔다가 내려올 때, 먹었던 막걸리 맛이 최고였다 ^^
흐, 지금도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 그 피아골 막걸리가 생각난다 ^^
아침에
해 맑은 새 소리가 나의 심금을 울리더구먼
때 마침 서쪽에 날으는 비행기가
동녁의 햇빛을 받아
강렬하게 은빛을 나에게 반사해서
아, 웬 미확인 비행물체인가 놀라케 하고
그래서,
오늘도, 봄 바람이 부는구나
일을 못하게
...
^^
봉식아,그건 대부분 그렇지 않았냐? 나 대여섯살때 우리 조카랑 술지게미에 설탕타서 그거 먹고 뻗었다는 이야기 못 들었구나 흐흐 그때 중앙주조장 참 많이 심부름 다녔는데,매번 그랬던 거는 아니지,그것도 타이밍이 잘 맞아야지 ㅋㅋ
음. 장가보내야겠다는 좋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구만...ㅋㅋ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래는 마음이 있네.
여러분...
기숙아 중앙주조장이 어디냐. 내 기억으로는 등기소앞에 주조장이 있었던 것같은데, 나도 거기 사러 많이 갔었는데.
심부름가는 사람은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한모금씩했던가보네.
재밌는 기억들이지..
등기소앞에도 있었지.
거기는우리친구 정인숙이라고 통통한애 집이었네.
학교끝나고 많이가서 놀았지. 얘기하다보니 정인숙이도 생각나네.
중앙주조장은 읍사무소 앞에 있었어
존경스럽다~
여기 진정한 또 한명의 학자가 계시구만~~
옇튼 형근이를 올해 안에 보내는겨???
진짜로 장가보내 줘. 여기저기서 시비걸어서 이제 그만 갈란다.
친구여러분! 총동원해서 총각 딱지를 떼게 해줍시다.
가도 후회 안가도 후회 2세는 틀렸으니 강아지 한마리와함께
남은생을 외롭지 않게 보낼수있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애교많고 능력있고 얼굴도 마음씨도 이쁘면 합격입니다. ㅋㅋ
본격적으로 나서 봅시다. 면접후 결정은 알아서... 책임안짐. ㅎㅎ
-결혼 홍보 위원회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