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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쉬 쿠마르 글 모음
저 자 : 사티쉬 쿠마르 외
수록명 : 녹색평론
삶의 재충전
사티쉬 쿠마르
20세기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크게 만들려고 야단이었다. 큰 학교, 큰 병원, 큰 사업, 큰 정부 말이다.
균형된 사회에서는 큰 것에 대한 선호는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은 그 크기가 적절한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크기와 적절한 위치가 있다. 우리의 과제는 모든 것이 제 크기와 제 위치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우리가 물건들을 부적당한 곳에 두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조그마한〉풀이 잔디밭에서 자라고 거대한 참나무가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서늘한 풀위에 눕고자 할 때, 그때에는 참나무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키 큰 참나무위에 새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자 할 때 우리는 고개를 들어 참나무를 보려 한다. 풀도 참나무도 제 자리에 있을 때에는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을 때 일어서서 강의를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때에는 차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손님이 우리집에 왔다.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아, 나는 큰 일들을 하느라 너무 바빠요. 나는 글이나 책이나 연설문을 쓰는 것 같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다. 이 모든 일은 그 순간에는 중요하지 않다. 손님이 우리의 부엌에 도착했다면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를 위해 맛있는 차 한잔을 만드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차를 만드는 일이 의식(儀式)의 수준으로 높아져서 작은 일이나 천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생활속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어떤 행동과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깨닫는다면, 그러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균형이 잡힌다. 우리가〈왜 내가 저녁준비를 해야 하는가, 왜 내가 빨래를 해야 하는가? 나는 중요한 할일이 많은데, 어째서 내 아내가 혹은 내 남편이 이 일을 하지 않는가, 또는 어째서 내 딸이 이 일을 하지 않는가? 또는 왜 집안일 도와줄 사람을 두지 않는가?〉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우리 마음이 그 일에 들어가 있지 않고 따라서 그 일은 고역이며 짐이 되어버린다. 우리 마음이 일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때는 그것이 의식이요 소중한 것이 된다.
인도에서는 모든 음식은 신들을 위해 마련되고 항상 신들에게 먼저 바쳐진다. 그리고나서 가족, 친구,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요리하는 사람은 요리 도중에 맛을 보아서도 안된다. 쌀이나 감자, 채소가 익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소금이나 양념이 충분한지, 그런 것들을 우리는 직관으로써 그곳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전체적이고 완전히 의식함으로써 알게 된다.
우리는 열가지 일을 동시에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전화를 받으면서 음식을 마련한다면 그것은 신성한 의식이 아니고 신들에게 바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만들기를 전체적으로 완전히 의식하고 있을 때에만 그것이 영적 행동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은 볼품없고 맥빠지고 단조롭게 되어버렸다. 의사이건 변호사이건 회계사이건 기술자이건 운전사이건 우리가 무엇이건간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일속에 있지 않다. 아주 흔히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이고 목적인가? 진정한 일은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일이 부엌에 있지 않다면, 사무실에, 작업장에, 채소밭에 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 우리의 진짜 일을 하는가? 우리의 진짜 일을 오늘 할 수 없다면 언제 할 것인가? 진짜의 일은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 은퇴한 후, 교회에 갔다온 뒤, 순례여행을 한 뒤에 하도록 기다릴 수 없다. 우리 삶의 매순간이 진짜 일이며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하느님을 깨닫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일에는 세 차원이 있다. 첫째는 지구, 흙, 환경, 자연에 관계된 것이다. 두번째는 사회와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 관련된 것이다. 세번째는 우리의 영혼, 우리의 자아실현에 관련된 것이다. 인도의 전통에서 첫째것은〈야그냐〉라 불리우고 둘째것은〈다나〉셋째것은〈타파스〉이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계부터 시작하자. 환경이 위협받고 있고 우리의 적절한 관심이 필요하니까.
우리는 땅에서 나오고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땅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땅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우리의 양식과 숲도 땅에서 나온다. 우리의 집, 벽돌, 돌, 슬레이트, 목재, 진흙, 쇠도 땅에서 나왔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것 ― 기름, 석탄, 가스도 땅에서 나왔다. 우리가 땅을 보살피지 않고 보충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우리는 탐욕스러운 소비자일 뿐이다.
우리는 땅에서 오직 절대적이고 기본적인 필수품,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만 취해야 한다. 땅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서 우리의 몫은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을 예시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와 함께 알라하바드 시에 머물고 있었다. 아침에 간디가 손과 얼굴을 씻고 있었다. 네루가 인도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 항아리의 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진지한 논의에 열중해서 간디는 자신이 씻고 있다는 것을 잊었다. 그때 일이 일어났다. 그가 얼굴 씻기를 마치기전에 항아리가 비었다. 그래서 네루가〈잠깐 기다리세요. 물을 한 항아리 더 가져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간디는〈뭐라고! 내가 세수를 끝내지도 않고 물 한 항아리를 다 썼단 말인가? 이런 낭비를 하다니! 나는 아침마다 물 한 항아리밖에 쓰지 않는데.〉그는 말을 그쳤다. 눈물이 눈에서 흘러내렸다. 네루는 충격을 받았다.〈왜 우십니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왜 물 걱정을 하십니까? 우리 알라하바드 시에는 갠지스강, 줌나강, 사라스와티강, 이렇게 큰 강이 셋이나 있습니다. 여기서는 물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간디는〈네루, 자네 말이 옳아. 여기에는 큰 강이 세개 있지. 그러나 그 중에서 내 몫은 하루아침에 물 한 항아리이고 그 이상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것이 생태학적 사고, 자원의 보존, 보충을 보여주는 예이다.〈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수도꼭지를 열어둔 채 내버려둔다! 낭비는 우리 문명의 저주이다. 뉴욕이나 런던 같은 도시에는 산더미같은 쓰레기가 있다. 공장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에 그 물건이 필요한지 어떤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계속 일거리를 주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일이 억압적이고 지루하고 맥빠지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일에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고 그것을 갖고 그리고 던져버린다.
아무도 나를 수상으로 만들 만큼 현명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나에게 스물네시간 동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간단하고 지구친화적인 법률을 하나 만들겠다. 그것은 제조업자들에게 모든 포장을 회수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도록 하는 일이다. 영국은 아마도 우유를 아직도 되돌려 보낼 수 있는 병에 담아 배달하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코카콜라, 포도주, 위스키, 과일쥬스 그리고 수백가지 다른 품목들이 일회용 용기에 포장되어 있다. 병은행(bottle banks)이 진정한 해답은 아니다. 모든 병이 우유병처럼 회수되어 다시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함에 중독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황량한 미래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필요에 충당할 풍요로움이 있다. 부족은 없다. 씨앗 하나를 땅에 심으면 해를 거듭하며 셀 수도 없는 많은 열매를 주는 커다란 나무를 얻게 된다. 사과나무 하나를 심으면 얼마나 많은 사과를 얻는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을 위해서는 넉넉하지 않다. 우리는 소박한 기본적인 욕구에로 돌아가야 한다. 땅은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욕구는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다. 정서적인 것, 영적인 것, 지적인 것, 문화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육체적이 아닌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랑에 대한 욕구이다. 이 세상에 사랑의 결핍이 있는가? 아니다. 더 많이 주면 줄수록 더 많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는 데 인색하다.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겁을 먹고 의심을 한다. 누가 우리를 껴안으면 우리는 왜 이러지, 뭐가 잘못된 거지, 우리가 무슨 짓을 했지?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로 사랑을 주고 받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창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자원의 고갈은 없다. 그러니까 시를 짓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자. 우리의 진정한 욕구가 충족되도록 즐기고 축하할 시간을 더 많이 만들자. 우리는 더 많은 자동차, 집, 옷, 가구를 가짐으로써 만족하고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불만이 주위에 가득하다. 이 불만의 치유책은 무엇인가? 더 많은 물건은 아니다. 더 많은 물건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서구사회는 몹시 행복할 것이다.
우리의 첫번째 생각은 우리가 땅에서 취하는 것을 제한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두번째 생각은 우리가 취한 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좋은 정원사는 땅의 비옥함을 회복시키기 위해 복합비료를 흙속에 넣어준다. 한번은 돌아가신 이브 발포어 부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나는 흙을 보살피지요. 흙이 기름지면 식물은 혼자서도 잘 자라요〉라고 말했다. 토양 유실이 항상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큰 농작물 큰 채소를 얻으려고 화학물질을 자꾸 흙속에 넣고 있다. 이브 여사는〈더 큰 식물에 대해 걱정할 필요없어요. 흙에 대해 걱정하세요〉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예는 모든 사람이 종교적인 책임으로서 나무를 심어야 하는 불교전통이다. 불도였던 아쇼카왕은 인도사람 누구나 나무 다섯그루를 심고 그것들을 보살피도록 권고했다.
리처드 세인트 죠지는 잡지《리서전스》에 아이의 출생을 기념해서 생일목을 심어야 한다고 말하는 글을 썼다.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우리는 생일에 나무를 심을 수 있고, 더 좋은 일은 생일마다 나무를 한그루 심는 것이다.
우리가 나무 하나를 쓰고 하나를 심는다면 그것은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 하나를 쓰고 다섯을 심는다면 그것은 보충이다. 우리는 날마다 땅을 보충하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개발해야 되는 수행은 날마다 땅을 보충하는 일이다. 우리는 날마다 땅으로부터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어머니 대지에게 진 일종의 빚이고 우리는 빚을 갚아야 한다. 우리가 은행에 빚이 있으면 은행에서 편지를 보낼 것이다. 어머니 대지는 편지를 쓰지 못하므로 우리 스스로 기억해야 한다. 땅을 보충함으로써만 우리는 지구라는 은행이 계속 돌아가게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파산을 하고 만다. 지구를 보충하는 행동을〈야그냐〉라고 한다.
그리고나서〈다나〉, 즉 사회에 대한 보충의 차례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 예수 그리스도와 붓다 같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 칼라하리의 부시맨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선생님들, 어머니들, 아버지들, 누이들, 형제들, 남편들, 아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우리는 톨스토이, 도스토에프스키, 세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저자들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세대로부터 얻는 것처럼 미래의 세대에게 무언가 돌려주어야 한다. 그 돌려주는 행동이〈다나〉이다. 캘커타에서 테레사수녀가 한 일이〈다나〉이다. 크리스마스때에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물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회에 주는 선물이다. 돈을 버는 것은 그 부산물이다. 우리는 고지서대로 돈을 지불하기 위해 이 사회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을 주고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일을 한다. 우리의 일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섬김의 행동, 예술의 한 형태, 자기성취의 방법이어야 한다.
괴테와 밀튼의 시, 라마야나와 아서왕의 전설, 반 고호와 터너의 그림, 타지마할 피라미드 그리고 수천의 다른 과거의 업적들이 우리가 물려받은 진정한 자본이다. 집안 사업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본으로 먹고 살고 그것을 다시 채워주지 않으면 결국 자본은 모두 없어져버릴 것이다. 우리의 유산의 열매를 아끼고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 자신의 기여를 보태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운 집을 지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저 생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와 사회를 다시 보충하기 위하여.
우리가 땅과 사회에 진 빚을 갚는 동안 우리는 또 자신을 다시 채워야한다. 우리의 영혼은 많은 소모를 겪는다. 때로는 노여움으로 때로는 욕정과 탐욕으로 또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영혼은 날마다 상처를 입는다.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온갖 세력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치유할 수 없으면 우리는 온전할 수 없다. 그러면 사회와 지구도 온전할 수 없다. 그래서 명상으로, 금식으로, 산책을 하고 흐르는 물 곁에 앉아 있음으로, 꽃을 바라보고 순례나 피정을 가는 것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경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다시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누구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성장에 사로잡혀 있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이 필요한가? 끝이 없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때를 알지 못하면 충분한 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에너지, 주의력, 시간을 보다 깊은 것, 보다 의미있는 것, 영적인 것에 바칠 수 있도록 물질적 성장에 대해서는〈그만하면 됐다〉라고 말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없다. 일정표는 가득차 있고 우리는 너무 바쁘다. 이것은 좋은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타파스〉를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시간을 만드실 때 그것을 넉넉히 만드셨다. 우리는 그것을 날과 시간으로 재고 일정표와 달력과 약속들에 끼워 넣었다.
〈라마야나〉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쿰브하카르나는 지나치게 활동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저의 아이가 너무나 활동적입니다. 무엇이든 절반의 시간 동안에 다 해버리고 더 할 일이 없으면 마구 부숩니다.〉그래서 신들은 그를 여섯달 동안만 깨어 있고 잠이 들면 여섯달 동안 자도록 만들었다. 서구의 산업노동력은 그 거인과 같다.
현대적 기술 때문에 기본적인 필요는 절반의 시간이면 충족시킬 수 있는데,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영적이고 문화적인 추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물건을 계속 생산해낸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지구에 대해서도 파괴적인 일이다. 나는 서구의 사람들이 여섯달 동안 휴가를 가거나 잠을 자고 절반의 시간에 꼭 필요한 일만 한다면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는 충분히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할 밤시간에 텔레비젼을 보고 런던이나 다른 곳으로 통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몇시간씩 통근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하고 기진맥진하고 바쁘다. 우리는 상식을 잃어버렸다. 잘 자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고 너무 많이 일을 한다. 잠을 자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다. 자고 있을 때 우리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꿈은 섬세한 활동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꿈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슨 살 가치가 있는가? 꿈은 영혼을 다시 온전하게 한다.
페르시아의 황제가 그의 수피선생에게 이렇게 물은 일이 있다.〈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좀 생각을 하고 나서 선생은〈폐하, 할 수 있는 한 오래 주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뭐라고! 그게 무슨 충고인가? 나는 할 일이 많다. 정의를 베풀고, 법률을 만들고 내 백성을 보살펴야 한다.〉
〈폐하, 폐하께서 오래 주무실수록 백성을 괴롭힐 시간이 적을 것입니다.〉이런 충고를 수상들이나 대통령들에게 하는 게 어떨까?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 ― 인도출신 녹색운동가. 소년시절에 자이나교 승려로서 수행생활을 경험하였고, 청년기에는 간디의 비폭력과 연대의 가르침에 따른 사회운동에 헌신하였다. 현재 영국의 남부지방 시골에서 거주하면서, 녹색사상의 연구, 교육을 위한 세계적 센터인 슈마허 칼리지를 설립·운영하면서, 저명한 생태잡지 Resurgence의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다. 이 글의 출전은 John Snelling편집의 Sharpham Miscellany : Essays in Spirituality and Ecology(1992)이다.
《녹색평론》제32호 1997년 1-2월호
스와데시 - 간디의 자립경제 철학
사티쉬 쿠마르
마하트마 간디는 스와데시, 즉 자치경제(home economy)의 옹호자였다. 인도 바깥의 사람들은 영국 식민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한 간디의 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간디가 몸바쳤던 투쟁의 오직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간디가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인도의 생명력을 소생시키고 인도문화를 다시 살려내는 일이었다. 간디는 단순히 백인 지배자에 의한 통치를 황색 지배자에 의한 통치로 바꿔놓는 것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중앙정부가 많은 권력을 지역 마을들에 이양할 것을 원하였다.
간디에게 있어서 인도의 정신과 영혼은 마을공동체에 있었다. 그는 말하였다. "진정한 인도는 몇 안되는 도시에서가 아니라 70만개의 마을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마을이 붕괴한다면 인도도 붕괴할 것이다." 스와데시는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스와데시의 원칙들
자유 인도에 대한 간디의 비젼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마을공동체에서 살면서 자기의 땅에서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자치적이고 자립적이며 자영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합조직이었다. 최대한의 경제적 및 정치적 힘은 ― 마을에 무엇을 수입하고, 마을에서 무엇을 수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을 포함하여 ― 마을회의에 속하게 될 것이었다.
인도에서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자신들의 환경과 비교적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자기 땅에 살면서, 손수 옷을 지어 입고, 집에서 기른 음식을 먹고, 집에서 만든 물건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짐승과 숲과 땅을 보살피고, 다양한 제의(祭儀)와 잔치로써 흙의 비옥성을 찬미하고, 위대한 서사시의 이야기들을 구연(口演)하며, 사원을 세웠다. 인도의 모든 지역은 자기나름의 특징있는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이 문화의 형성에는 여행하는 이야기꾼들과 떠돌이 고행자들,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순례자의 무리들이 전통적으로 큰 기여를 해왔다.
스와데시의 원칙에 따르면, 마을에서 만들어지거나 생산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선 마을사람들 자신이 이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을과 마을 사이, 마을과 도시 사이의 교역은 케이크의 아이싱처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공동체 내부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재화나 서비스는 외부로부터 사들일 수 있다.
스와데시는 외부시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피한다. 그러한 의존은 마을공동체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스와데시는 불필요하고, 불건강하고, 낭비적인, 따라서 환경적으로 파괴적인 수송을 피한다. 마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의 대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강력한 경제적 기초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마을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지역의 재화와 서비스에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
자유 인도의 마을공동체는 모두 자신의 목수, 신기리, 도공, 건축가, 공인(工人), 농민, 기술자, 베짜는 사람, 교사, 은행가, 상인, 중개업자, 음악가, 미술가, 사제(司祭)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여, 마을 하나하나는 인도의 소우주가 되고, 인도 전체는 느슨하게 상호연결된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거미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간디는 이러한 마을들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마을은 '마을공화국'의 지위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을공동체는 집의 분위기를 가져야 한다. 즉, 서로 경쟁하는 개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대가족의 분위기를 갖추어야 한다. 간디가 꿈꾼 것은 개인적 자립이나 가족적 자립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자립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중앙집권적이고 산업화된, 그리고 기계화된 생산양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간디는 이런 원칙을 뒤집어서, 탈중심화되고 땅중심의 수공업적인 생산양식을 새로운 비젼으로 제시하였다. 간디 자신의 말로, 필요한 것은 "대량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이었다.
대중에 의한 생산이라는 원칙을 채택함으로써, 마을공동체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에 존엄성을 회복시켜줄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에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내재적인 가치가 들어있다. 우리의 일을 기계에 넘겨줄 때 우리는 물질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혜택까지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손으로 하는 일에는 명상과 자기실현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간디는 이렇게 썼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손을 손으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가장 큰 비극이다. 손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위대한 선물이다. 기계적 방식에 대한 열광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우리가 너무나 무능력하고 약해져서 우리 자신이 신이 우리에게 준 생명의 기계를 사용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 것에 대하여 스스로 저주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수백만명이 게임이나 스포츠로 자신의 신체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는 없다. 대중들은 어째서 쓸모없고 비생산적이며 값비싼 스포츠와 게임을 위해서 쓸모있고 생산적인 힘든 일들을 포기해야 하는가?" 대량생산은 오로지 생산품에 관심을 갖지만, 대중에 의한 생산은 생산물과 생산자와 생산과정 모두에 관심을 갖는다.
대량생산의 배후에 있는 추진력은 개인숭배이다. 전지구적인 규모의 경제팽창의 모티브는 개인적 및 기업적 이윤에 대한 욕망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와 대조적으로, 지역에 기초를 둔 경제는 공동체정신과 공동체관계와 공동체복지를 들어올린다. 그러한 경제는 상호부조를 장려한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자기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그들의 짐승들과 땅과 숲을, 그리고 현재와 미래세대들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연자원을 조심스럽게 보살핀다.
대량생산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마을과 땅과 전통적인 기술을 버리고 공장으로 가서 일하도록 유도한다. 자존(自尊)적인 마을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또 위엄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대신에 사람들은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서서 지내고, 판자촌에서 살면서,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기업가들은 좀더 큰 생산성을 원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화폐경제의 주인들은 더욱더 빠르게 일하는 효율적인 기계를 원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수의 남자와 여자들이 실업이라는 쓰레기 더미 위로 던져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뿌리없고 일자리없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양산하고, 이들은 국가에 의존해 살거나 거리에서 동냥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스와데시 경제에서, 기계는 일하는 사람에게 종속될 것이다. 기계는 결코 인간활동의 속도를 명령하는 주인이 되도록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장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도록 될 것이다.
간디는 경제의 세계화와 함께 모든 국가가 더 많이 수출하고 더 적게 수입함으로써 수지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항구적으로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실업과 불만에 찬 사람들의 고통이 계속될 것이었다.
스와데시를 실천하는 공동체에 있어서는, 경제학은 하나의 역할은 하겠지만 사회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경제성장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인간복지에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현대적인 세계관에서는 우리가 많은 물질적 재화를 소유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간디는 말하였다. "어느 정도의 신체적 안락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정한 수준을 넘어가면 그것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무한한 욕망을 창조하고, 그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이상은 망상이며 덫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신체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은 그것이 퇴폐로 떨어지기 전에 어떤 지점에서 반드시 멈추지 않으면 안된다. 유럽인들은 지금 그들의 안락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그 안락함의 무게에 짓눌려 망하지 않으려면 그들 자신의 세계관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는 전쟁 ― 경제전쟁뿐만 아니라 군사적 전쟁으로 나아간다. 간디는 말하였다. "사람은 궁전에서 살고 싶어하기보다 마을과 소박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좀더 높은 생활수준을 위해 싸운다면 결코 서로 평화롭게 지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 국가를 원료공급지나 상품시장으로 본다면 세계의 진정한 평화는 올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의 씨앗은 경제적 탐욕과 더불어 뿌려진 것이다. 역사 전체를 통해 전쟁의 원인을 분석해본다면 우리는 일관되게 경제적 팽창의 추구가 군사적 모험을 이끌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지구는 넉넉한 곳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탐욕을 위해서는 지구는 넉넉하지 않다"라고 간디는 말하였다. 스와데시는 그러니까 평화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우리시대의 경제학자들과 기업가들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때를 보지 못한다. 어떤 나라들은 대단히 높은 물질적 생활수준에 도달하고서도 여전히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에 붙들려 있다. 이만하면 넉넉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넉넉한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넉넉함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넉넉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와데시는 전면적인 평화 ― 자기자신과의 평화, 사람들 사이의 평화및 자연과의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세계경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 높은 것을 성취하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높은 야망을 향하여 가도록 부추긴다. 그 결과는 스트레스, 의미 상실, 내적 평화의 상실, 개인 및 가족관계를 위한 공간의 상실, 그리고 정신적 삶의 상실이다. 간디는 과거 인도인의 삶은 번영했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 . 정신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간디에게 있어서 스와데시는 무엇보다 정신적 요구였다.
영국 식민주의의 발흥
역사적으로, 인도의 지역경제는 대단히 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원예에 의존하였고, 도기 및 가구제조, 금속가공, 보석, 가죽세공, 그리고 그밖의 많은 경제적 활동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지역경제의 기초는 역사적으로 직물에 있었다. 마을마다 실잣는 사람, 빗는 사람, 물감들이는 사람, 베짜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마을경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랭커스터로부터 온 기계로 만들어진, 값싸고, 대량생산된 직물들이 인도에 홍수처럼 들이닥치자 지역의 직물장인들은 급속히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마을경제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간디는 마을의 직물업이 다시 소생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영국산 직물의 유입을 막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수십만명의 인도인들이 신분을 초월하여 영국이나 도시로부터 수입된 공장제품 옷을 배격하는 데 동참하였고, 그들 자신이 스스로 실을 잣고 옷을 짜입는 법을 배웠다. 물레는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독립과 단란한 계급없는 공동체의 상징이 되었다. 옷을 손수 짜서 입는다는 것은 모든 사회집단에서 자랑스러운 일이 되었다.
18세기 인도의 자치경제를 파괴하는 데 있어서 또한 책임이 있는 것은 식민지배하에서 영국의 교육제도가 인도로 수입된 사실이었다. 영국 의회에서〈인도 교육령〉이란 법안을 제출하면서 매콜리경은 이렇게 말했다. "유럽의 좋은 도서관의 서가 하나는 인도의 토착문학 전체에 맞먹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산스크리트어는 법률언어로서도 종교언어로서도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혈통과 피부빛깔은 인도인이지만 취미와 의견과 지성에 있어서는 영국인인 한 계급을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목표는 영국의 총독지배 전체기구의 힘으로 추구되었다. 전통적인 학교는 식민지 학교와 대학으로 대체되었다. 부유한 인도인들은 이튼이나 해로우 같은 사립학교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대학으로 보내졌다. 교육받은 인도인들은 날이 갈수록 영국의 시와 법률과 관습에 경도되면서 자기자신의 문화를 무시하게 되었다.〈라마야나〉와〈마하바라타〉〈베다〉그리고〈우파니샤드〉와 같은 인도의 고전을 읽는 것보다는 세익스피어와〈런던타임즈〉를 읽는 것이 더욱 유행적이었다. 교육받은 인도인들은 자신의 문화를 뒤떨어지고, 비문명화된, 낡은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인도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인들처럼 지배하고자 했다.
이런 유형의 서구적 교육에 세뇌된 사람으로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독립 후 최초의 수상이 된 자와할랄 네루였다. 네루는 자본주의적 길이 아니라 중앙집중화된 계획을 통하여 인도의 산업화를 추구하였다.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런던대학 경제학부와 파비안협회 ― 영국 노동당의 싱크탱크인 ― 에 소속된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간디는 인도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본질적인 힘은 인도다움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인도인들이 자신의 천재성을 인식해야 하며, 단순한 식민화의 도구일 뿐인 서구문화를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다. 경제학과 정치는 물질적인 것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정신적, 종교적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은 삶의 깊은 정신적 토대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간디에 의하면, 이것은 모든 개인이 공동체의 불가결한 일부로 존재할 때 가장 잘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재화의 생산이 작은 규모로 이루어지고, 경제가 지역중심이며, 가내수공업에 우선권이 주어질 때인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전일적, 영성적, 생태적 및 공동체적 사회질서를 북돋울 수 있는 것이다.
간디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적 가치는 정치, 경제, 농업, 교육, 그리고 그밖의 일상생활의 활동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된 관계속에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있을 수 없다. 수행에 전념하면서 수도원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리거나, 정신생활은 성자나 독신자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종교와 사회를 그렇게 분리하면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은 탐욕, 부패, 경쟁, 권력추구, 그리고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일 것이다. 이상이 없는 정치나 경제는 일종의 매춘, 즉 사랑없는 섹스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누군가 간디에게 "서구문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간디의 대답은 간단히 "그건 문명이 아닙니다"였다. 간디에게 있어서는, 기계문명은 문명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매여있어야 하고, 짐승들이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잔인하게 다루어지며, 경제활동이 필연적으로 생태적 파괴를 이끄는 사회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시민들은 오로지 신경증환자로 끝날 뿐이며, 자연세계는 불가피하게 사막으로 변하고, 도시는 콘크리트 밀림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달리 말하여, 스와데시의 원칙에 기초한 자율적인 공동체로 구성된 사회와는 반대로, 산업사회의 세계화는 지속불가능한 것이다. 간디에게 스와데시는 신성한 원칙 ― 진리와 비폭력의 원칙만큼 그에게는 신성한 것이었다. 간디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기도속에서 스와데시에 대한 그의 헌신을 되풀이하여 다짐하였다.
불행하게도 독립 후 6개월이 채 못되어 간디는 암살당했고, 네루는 인도의 경제를 자기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네루는 간디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이상주의적이고, 너무나 철학적이며, 너무 느리고, 또 너무나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서구교육을 받은 관료들을 모았고, 그들이 함께 힘을 기울인 일은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자기들도 모르게 경제적 식민화의 대리인이 되게 하였다. 그들은 거대한 댐과 큰 공장들을 건설하는 데 매진하였다. 그러한 건축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인도의 사원이자 성당이었다. 간디의 지도 밑에서 널리 살아있었던 헌신과 이상주의와 자기희생의 정신은 권력과 특권과 안락과 돈에 대한 탐욕으로 급속도로 대체되었다. 네루와 그의 동료들은 스와데시의 길과 반대되는 길을 따라갔다. 그 이후 인도의 역사는 부패와 최고위 수준에서의 정치적 술책의 역사였다. 인도의 정치적 식민화는 1947년의 독립으로 공식적으로 끝난지 모르지만, 그 경제적 식민화는 그대로 더욱 빠르게 계속되었다. 인도는 세계경제의 권력자들을 위한 운동장으로 변해버렸다.
식민지배자 없는 식민주의
지금, 인도는 영국인 지배자의 통치를 받지는 않지만 영국식으로 지배를 계속 당하고 있다. 이것은 인도의 비극이며, 이것이 종식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가, 지식인은 정부와 함께 여전히 세계은행과 가트의 정책에 대한 종속속에서 인도의 구원을 보고 있다. 그들은 다국적기업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세계경제의 일부로서 인도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인도 민중 사이에서 불만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네루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 그리고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의 지도하의〈국민회의〉가 겪어온 실패는 누구에게나 충분히 눈에 뜨인다. 마하트마 간디가 예언하였듯이 인도의 정체(政體)는 부패로 끓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가난해졌고, 성장하는 중산층은〈국민회의〉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지역정당들이나〈힌두민족주의당〉을 지지하고 있다. 농부들은 다국적회사들이 씨앗을 특허화하려는 데 대하여 저항하고 있다. 가트에 의한 세계경제는 모래 위에 세워져 있다. 그 통제력이 굳건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계경제는 여하한 풀뿌리로부터의 지지도 받고 있지 않다. 세계경제의 진의(眞意)가 분명하게 드러남에 따라 인도 민중 ― 간디의 가르침이 그 속에 아직도 많이 살아있는 ― 은 세계경제에 저항하고, 스와데시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지역문화와 공동체와 삶을 다시 소생시키게 될 것이다. 실제로, 스와데시의 교훈은 경제성장과 산업주의의 기만적인 약속이 폭로될 때 서구인들 사이에서도 생명의 경제학을 위한 희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 ―《녹색평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인도출신 생태사상가이자 교육자.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자이나교의 승려로 교육받았고, 청년시절에 간디의 사회운동에 참여한 바 있으며 60년대 말에는 문자 그대로 세계평화를 위한 세계일주 도보여행을 했다. E. F. 슈마허 등과 사귀면서 영국에 정착한 뒤, 지금까지 오랫동안 Resurgence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세계적인 생태교육기관인 슈마허 칼리지를 운영해왔다. 여기 소개하는 글은 The Case against the Global Economy(1996)의 한 장 "Gandhi’s Swadeshi : The Economics of Permanence"를 옮긴 것임.
《녹색평론》제67호 2002년 11-12월호
세계화와 기술에 대한 저항 (생명묵상)
사티쉬 쿠마르
사티쉬 쿠마르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하루는 우리 어머니가 당신이 손수 수놓은 아름다운 숄을 나의 누나에게 주셨습니다. 멋진 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전에 이런 숄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거울조각들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되어있는 숄입니다. 그래서, 이 숄을 받으면서 누나는 "엄마, 정말로 아름다운 숄이네요.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말하기를, "엄마, 이 숄은 너무 예뻐서 차마 제가 몸에 두를 엄두를 못 내겠어요. 걸치고 다니다가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해요. 저는 이게 얼마나 훌륭한 숄인지 누구든 볼 수 있도록 이 숄을 벽에 장식품으로 걸어둘래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야. 나는 벽을 위해 그 숄을 만든 게 아니야. 그것은 너를 위한 거야. 네가 입어야 해. 사람은 벽을 아름다운 것들로 치장하면 자신의 몸에는 추한 것들을 걸치게 되는 법이란다." 내 누나는 말문이 막혔지요.
누나는 말했습니다. "엄마, 이건 굉장히 아름다운 숄이에요. 이런 숄을 엄마가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손으로 만드는 데에는, 넉달, 여섯달, 여덟달,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그러니까 제가 엄마한테 선물을 해도 될까요, 자수용 기계를 사드려도 될까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뭐냐? 왜 기계로 만들어야 되니? 내가 너를 위해 만든 숄이 썩 훌륭하지 못하다는 거냐? 왜 기계를 쓰라는 거냐?" 누나가 말했습니다. "엄마, 시간이 절약될 거예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이 닳아 없어지기라도 한단 말이냐? 신이 만드신 시간은 너무도 넉넉한 걸 모른단 말이냐."
자, 이것이 오늘의 미국에 보내는 우리 어머니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미국에 보내는 전언은, 간단히 말해서, 속도를 줄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잠깐 낮잠이라도 자라는 말입니다. 이게 테크놀로지에 관련하여 내가 경험한 가장 초기의 에피소드입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굉장히 똑똑하고, 굉장히 영리하고, 굉장히 약고, 굉장히 지적인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온갖 놀라운 기계장치를 고안해 냅니다. 때때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왜 이 세상의 모든 자원들을 고갈시켜가면서 이런 굉장한 발명품과 첨단기술들을 만들어 냅니까? 왜 그런 일을 합니까?" 그러면 그들은, "사티쉬 선생, 당신의 나라, 인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기술은 빈곤을 감소시키거나 없애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정말 가난이 문제일까요? 가난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세계자원을 파괴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비행기로 날아다니고 있습니까? 캐딜락이나 뷰익 같은 큰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가난한 사람들은 몇명이나 됩니까? 결국, 문제는 부자가 아닌가요?"
너무 오랫동안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문제라고, 빈곤이 문제라고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초점을 부자들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집시다. 부자들이여, 당신들은 이 지구와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도대체 당신들의 생활방식은 어떠합니까? 거기에 새로운 세계관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이 존재합니까? 부자들은 가난에 동참하여 좀 덜 풍요롭게 살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아주 조금만 더 부유해져서 우리 모두가 함께 형제자매가 될 수 있는 그런 영적인 세계관, 그런 비전이 과연 있습니까? 고결하고 위엄있는 소박한 삶을 기리는 영적인 비전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비전이 오늘날 부자의 세계, 자본주의의 세계에 있을 리 없습니다.
이른바 '세계화와 테크놀로지'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영적인 차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자본의 세계화와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지구에, 우리의 공기에, 우리의 물에, 우리의 천연자원에, 우리의 숲에, 우리의 바다에, 세계의 대다수 민중에 대해서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가 하는 얘기만이 아닙니다. 이 지구 전체에 걸친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우리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숙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또는 자본주의에서 또다른 어떤 계획된 굉장한 이데올로기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중요한 것입니다. 약간이나마 조금 덜 소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이것을 고결한 소박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지금은 윌리엄 모리스가 펼쳤던 공예운동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제시한 비전으로 다시 돌아갈 때입니다. 간디는 물레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굉장한 기계들, 굉장한 공장들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물레질을 하고, 우리 자신의 아름다운 옷을 스스로 지어 입는 창조적인 과정을 소유하고 싶다."
나는 오늘 저녁 이 방안에 계신 청중들에게 매우 간단한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우선 한가지 일만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빵을 손수 굽기 시작하십시오. 인도 사람들에게, 독립을 원한다면 영국은 잊어버리고 물레질을 시작하라고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세계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안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손이 갖고 있는 창조성, 우리의 상상력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나태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물건들을 손수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직접 빵을 구워 드십시오. 부엌의 오븐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냄새를 여러분이 맡게 될 때 여러분의 아이들, 여러분의 남편,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부모님, 여러분의 친구들, 여러분의 손님들은 환희에 넘칠 것입니다. 그러면, 공장에서 생산된 빵은 이제 끝입니다.
미국에 어떤 빵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영국에는 '어머니의 자존심'이라는 상표를 가진 빵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빵에는 '어머니'도, '자존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치욕'이라고 다시 이름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빵을 만들기 시작할 수 있다면, 이것은 신성한 빵입니다. 여기에 계신 기독교 신자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나눠주면서 그것이 자신의 육신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빵은 신성한 것입니다. 공장에서 제조된 빵은 신성하지도, 신선하지도 못합니다. 그것은 죽은 빵입니다. 그 안에는 독소가 있습니다. 공장에서는 실로 수많은 첨가물을 빵에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의 슬로건, 즉 '세계화와 테크놀로지의 독재에 대한 저항'은 우리가 날마다 우리 자신의 손으로 훌륭하고 건강에 좋은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녹취 - 김정현)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는 오늘날 영성운동과 환경운동 분야에서 그가 하고 있는 지도적인 역할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인도에서 태어나 9살에 자이나교 승려가 되었다가, 후에 간디의 실천적 가르침에 고취되어 종단을 떠나 인도의 토지개혁운동에 참가하였다. 청년시절에 그는 핵무장에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서 8천마일에 걸친 도보행진을 했고, 나중에 영국에 정착한 다음, 환경잡지《소생(Resurgence)》을 편집하면서 세계적인 생태학 교육기관 슈마허 칼리지의 기획자로서 일해왔다. 아래 글은 '세계화에 관한 국제포럼' 등 여러 단체의 주최로 2001년 2월 24일 뉴욕시 헌터 칼리지에서 열린 '세계화와 테크놀로지'에 관한 계몽적 집회에서 그가 행한 짧은 연설을 녹음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 편집자
걸어다니기 - 공경의 문화를 위하여
지금 영국 남부의 하틀랜드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녹색운동의 한 메카가 되어있다. 이미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격월간 잡지《소생(Resurgence)》이 그 마을에서 편집, 발간되고 있고, 이른바 대안학교의 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하틀랜드 작은학교'가 그 마을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업들의 철학적 및 실천적 논리를 선양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녹색문고'라는 출판사도 거기에 있으며, 하틀랜드에서 조금 떨어진 다팅턴이라는 곳에는 이 방면의 세계적 성인 교육기관인 '슈마허 칼리지'가 유서깊은 중세건물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슈마허 칼리지'는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로크나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새로운 과학'의 철학자 프리초프 카프라를 비롯하여 대안적 문화를 위한 새로운 지적, 도덕적, 정신적 토대를 모색하고 있는 각 분야의 명민한 지식인과 활동가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2주 내지 3주간의 합숙형태 교육프로그램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들이 사티쉬 쿠마르라는 장년의 한 인도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쿠마르는 일찍이 대학을 다닌 일도 없고, 이렇다 할 만한 큰 업적이 있는 사람도 아니며, 특출한 신통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한 사람이 벌써 20년이 넘게 세계의 녹색운동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잡지를 이끌어왔고, 산업주의 문명의 절망을 넘어 새로운 인류문화를 꿈꾸는 세계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들의 중심에서 살아왔다.
게다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면서도 그는 늘 느긋한 마음으로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일을 해내고 있다. 그는 오늘날 지적,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게 허용되지 않는 삶 ― 텃밭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며,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긴 산보를 즐기며, 때로는 먼 나라로의 순례길에도 나선다. 그의 자서전《목적지 없는 길》에는 그가 아침마다 암소의 젖을 짜면서 '시간을 초월한 황홀상태'를 경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른 아침마다 암소 라다와 만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명상체험이다. 명상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고요한 곳을 찾아서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거룩한 만트라를 암송하거나 스스로의 호흡을 응시하면서 우리 자신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상태에 대한 깨달음을 고양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나날의 생활활동 그 자체에 전적으로 깨어있는 의식으로 완전히 몰두함으로써 생활활동 그것을 명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내게는 젖짜는 일이 바로 그러한 명상이 된다.
비단 젖짜는 일뿐만 아니라 잡지를 편집하고, 작은학교와 출판사의 일에 관계하고, '슈마허 칼리지'의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좀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갖는 그의 '생활활동'도 쿠마르에게 있어서는 전부 명상체험인지 모른다. 아마 그가 수많은 일을 조금도 피로의 기색 없이 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날의 삶을 구성하는 한순간 한순간마다 마치 암소의 젖을 짤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완전히 긴장이 풀어진, 시간을 초월한 황홀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면, 일이란 고단한 것이긴커녕 끊임없는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점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또하나 중요한 것은 쿠마르의 문체이다. 그의 자서전은 물론이고, 그가 가끔 발표하는 에세이나 강연기록 등을 읽어볼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그의 말과 글에는 거칠고 딱딱한 표현이 거의 없고,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원한이나 적개심, 또는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는 흔적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언어는 세상만물을 공경하고 섬기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지, 비판하고 공격하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우리는 받는다. 쿠마르의 글에서는 설혹 무엇인가를 비판하거나 부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그 비판은 흔히 악의없는 유머속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지금 전세계를 파국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이른바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에 언급할 때, 그는 옛 이슬람의 정신적 스승이 정치의 자문을 구하는 국왕에게 주었다는 충고를 모방하여, 그들이 제발 잠을 많이 자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이 잠을 많이 자면 잘수록 세계는 그만큼 덜 손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언사는 비아냥이나 독설을 내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내면이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사람만이 남들과 자기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은 반드시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기초적인 바탕인 공동체와 생태계가 걷잡을 수 없이 황폐화하고 손상되어가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내면이 커다란 불안과 부자유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달려왔고, 또 달려가려고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이대로 계속 달리기만 하다간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저 달리는 관성에 익숙한 나머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티쉬 쿠마르의 일상생활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드물게 건강하고 존경스러운 삶의 패턴이다. 그는 실제로 지금 시점에서 우리 자신과 지구생태계의 손상을 치유하는 데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가르쳐주고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는 대중교통수단이 거의 없는 영국의 남부 후미진 시골에 살면서도 일상의 생활을 위해서 자동차 없이 걸어다닌다. 그가 즐겨 하는 말은 "시간은 무한한데, 바삐 서둘러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무일푼으로 살고 있는 쿠마르가 '걸어다니기'의 정신적 의미를 깨달은 것은 20대 청년시절부터였다. 원래 그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아홉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이나교의 수행승이 되어 속세와 절연된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열여덟살 때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간디를 따라다니다가, 간디 사후에는 간디의 수제자 중의 한사람인 비노바 바브의 사회운동에 합류하였다. 비노바 바브는 당시에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승의 한사람으로서 토지공여운동에 헌신하고 있었다. 이 토지공여운동이란 대지주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소유한 토지의 일부를 토지없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사회운동이었다. 얼핏 보아 극히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비쳐짐직한 이러한 아이디어를 비노바 바브와 그의 일행은 실제로 광대한 인도대륙을 걸어다니면서 실천으로 옮겼고, 그 결과 400만에이커에 이르는 토지가 땅없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질 수 있었다.
아마 스승들의 모범을 통하여 얻은 영감이겠지만, 1960년대 말 핵위협으로 전세계적인 불안이 고조되어 있던 시절 사티쉬 쿠마르는 동료 한사람과 함께 세계를 걸어서 일주하는 '평화를 위한 순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는 당시에 백발이 성성한 노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반핵 평화시위를 이끌고 있는 뉴스사진을 보면서 커다란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저렇게 늙은 노인도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자기 같은 젊은이가 마냥 방관자적인 삶을 사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러시아와 유럽을 거쳐 아메리카에 이르는 8,000마일의 거리를 눈보라와 사막과 강과 산을 뚫고 걸어서 가기로 작정하고, 그 결심을 자기의 스승에게 말하였다.
비노바 바브는 이 혈기왕성하고 다정다감한 두 청년의 결심을 찬미하면서 작별의 순간에 그 순례여행의 성공을 위해 두가지의 '비폭력의 무기'를 선물로 주었다. 그 무기라는 것은 첫째,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푼의 돈도 지니지 말고 여행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디에서나 채식주의를 실천하라는 충고였다.
비폭력주의 철학에 토대를 둔 이 두가지의 '무기'가 갖는 효력은 여행의 시초부터 드러났다. 두 인도청년이 무일푼으로 평화를 위해 걸어서 세계를 순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자연스럽게 전달되었고, 그 결과 그들이 다다르는 곳이면 현지 주민들이 먼저 나와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인도와 날카롭게 대립해 있던 파키스탄으로 국경을 넘어 들어갔을 때도 그 지역 파키스탄 마을사람들은 이 젊은이들의 먹을 것과 잠잘 곳이 걱정되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여행이 무일푼의 도보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인간사에 있어서 근원적인 진리의 하나를 드러낸다. 사람은 보통 강자에게, 또는 빈틈없고 똑똑한 사람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그들의 안위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약자 또는 가난한 사람의 현실에 직면했을 때이다.
그리고 또, 인간성의 수수께끼 같은 신비의 하나는 도움을 베풀면 베푸는 사람 자신의 마음이 매우 너그러워지고 평화로워진다는 점이다. 쿠마르의 스승은 아마 이러한 진리를 간파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두 인도청년의 '평화를 위한 도보여행'으로 인해, 그 젊은이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선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너그러운 평화의 공간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에게 식사가 제공될 때마다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에 관해 말하게 되고, 또 그것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채식주의라는 것이 괴상한 사람들의 엉뚱한 취미가 아니라 이 세상의 생명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한가지 방식 ― 즉, 비폭력주의에 뿌리를 둔 삶의 방식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대중들에게 채식주의를 소리높여 말해보았자 그런 설교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지루하게 하기 쉽다. 그러나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베푼 음식을 공경스런 태도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들로 인해 이미 마음이 매우 너그러워진 사람들에게는 채식주의에 관한 이 젊은이들의 견해는 깊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다시한번 생면부지의 타인들 사이에 같은 지구, 같은 세상을 공유한 존재들로서의 공감과 연대가 확인되는 순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미리 꿰뚫어 보고 있었을 스승도 스승이지만, 그러나 돌이켜 볼 때 이 모든 일의 성취는 무엇보다 애초에 '걸어서' 세계를 순례하기로 마음먹었던 청년 쿠마르 자신의 결정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하다. 걷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 사이에 진정하게 평화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평화에 대해 말하고, 사회정의와 생태적 건강에 대해 말하지 못할 것은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권력욕망과 경쟁의 논리에 뿌리를 두고 속도와 힘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그러한 '현대적' 교통수단에 언제까지나 몸을 맡긴 채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희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참다운 의미에서 평화와 사회정의와 생태적 건강이란 우리의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명에 대한 존경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러한 존경심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극히 검소하게, 가난하게 꾸려가려는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다니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생명의 공동체에 종속시킴으로써, 진정한 내면적 행복과 자유에 근접하고자 하는 시도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첫댓글 어떤이들, ~은 이렇듯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정리하며 살 수 있는 지...배울점이 적지 않습니다. 현산중 교무실에서..
'우리의 창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자원의 고갈은 없다. 그러니까 시를 짓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자.' 땅을 괴롭히고 사회를 괴롭히고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그만 두고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창조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말에 함께 방점을 찍세... 거 현산중이었고만...
현산 탑동에서 눈길을 헤치고 화산으로 출근, 교정에서 바라본 툭트인 들과산은 절로 노래가 나오게 했습니다. 마침 대빗자루가 있어서 미끄러질만한 곳에 쌓인 눈을 쓰는데 학생도 거들어주어 생각나는 게 있었습니다. 교정을 쓸면서..조화!! (자연과든 자연의 일부인 사람과이든.. ) 조화와 균형에 근거하지 않는 교육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현재를 잃어버리게하기 쉬운 위험한 목표지향/위주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배우게하는 억지스러운 교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매주 화요일엔 현산/목요일엔 두륜중으로 출근합니당^^현산중 3층 나란히 미술실과 음악실..창밖으로 고현들녁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