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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는지 아는 방법' 이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어제 저희 병원에 제 설교를 듣고 계시는 권사님이 죽을 지경이 돼서 오셨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지 약을 드시고 계신데 말씀하시는 도중에 ‘목사님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제발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신답니다.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제가 ‘권사님, 누가 보아도 이렇게 힘드신 게 정상입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남편이 가정을 버렸고, 몸이 너무 약하고 아픈데 가정을 책임져야 했고, 몸은 회복이 되지 않고 일은 해야 되고,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여버린 것입니다. 몸이 너무 아프고 약하니까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제가 다른 말로 위로를 드리지 않고 오히려 ‘권사님 지금까지 믿었던 방향을 바꾸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권사님께 말씀드린 방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신실한 목사님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실히 아는 방법 이라든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과 확신하는 방법을 설교해주셨고 많은 분들이 시청을 하셨습니다. 제가 들어보다가 빨리 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오해하고 계신 것이 너무 힘들고 마음아팠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당장 구원받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쉽게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성경을 끊어 읽어서 그렇습니다. 끊어서 읽으면 안 됩니다. 목사님도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시고 설교를 들은 많은 성도들이 안심을 하지만 아닙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진짜 구원받은 백성인지,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는지 제대로 확인을 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5절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이 성경 전체의 축약본 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함께 배우면 성경 전체를 보시는 겁니다. 처음에 나온 말씀이 심령이 마음이라고 우리가 이해했습니다. 마음이 낮아진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다음에 애통하는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애통은 히브리어로 〔페사흐〕 ‘유월절’이라는 뜻입니다.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못 박힌 예수를 만난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내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가 내 마음에 구주가 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바로 위로자이신 성령이 만나시고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거듭남의 비밀이 나옵니다. 거듭난 자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에 대한 복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는 히브리어로 〔아나브〕라고 합니다. 〔아나브〕의 뜻이 위에 있는 가난하다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 당시 히브리어로 가난은 〔아니〕이고 온유는 〔아나브〕입니다. 마음을 겸손히 낮춘 자가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길들여진 야생마'라고 하며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낮춘 자가 순종하여 살아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낮춘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말씀보다 내 마음을 낮춘다는 뜻입니다. 내 생각을 말씀 아래에 낮춘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성경은 알파 오메가입니다. 마음이 낮아졌다면 생활이 바뀌고 삶이 바뀝니다. 여기 팔복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으로 알파와 오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삶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춘 자가 하나님 앞에만 낮춘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자기 마음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이 말씀 아래 낮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아래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어떤 자가 천국 가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천국이라고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마음을 낮춰야 됩니까?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냐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하고 있느냐? 이 땅을 향하고 있느냐? 입니다. 그 권사님도 잘 믿으시는 분이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 바라보면서 잘 견디셨는데 너무 누적이 되다 보니까 못 견디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깨워 드린 것뿐입니다. ‘권사님 천국만 바라보십시오. 천국만 바라보시면 남편이 나를 버려도, 자식이 잘못되어도, 직장을 잃어버려도, 병이 들고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어도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렵고 대부분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25년 전에 김진홍 목사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께 어떤 권사님이 찾아오셔서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고 날마다 항상 기쁘다고 하셨답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보기에 권사님은 두 가지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첫째는 권사님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착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김진홍 목사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역시 솔직한 분이시고 그 권사님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항상 기쁠 수가 없는데 말씀은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복음입니다. 여러분 환경을 보십시오. 살고계신 모습들을 돌아보면 힘듭니다. 사람은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아무리 남편이 잘해주고, 자식이 성공하고, 모든 것이 있어 보여도 자기를 돌아보면 서럽습니다. 그래서 권사님께 권유드린 것은 눈동자를 자기를 보지 말라 한 것입니다. 자기를 보지 말고 천국을 바라보라고 한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면 힘든 환경이 기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가 기쁘니까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에 붙잡혀 있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기 전에 무엇부터 회복돼야 됩니까? 기쁨이 먼저입니다. 기뻐하는 상태에서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쁜 상태로 기도합니까? 일단 기쁜 일에 몰두하는데 바울이 기뻐하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일과 같다면 손자를 보고 좋고, 내가 좋은 일을 보고 좋고, 맛있는 거 먹을 때 기쁘고, 외국 여행 갈 때 기쁘고, 요즘 봄이고 꽃 보니까 얼마나 기쁩니까? 기뻐하는 일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바울이 말한 기뻐하라는 말과 전혀 다른 말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보고 기뻐하였을까요? 김진홍 목사님은 항상 기뻐하고 있다는 권사님께 왜 그렇게 말씀드렸을까요? 바울이 했던 말씀의 윗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셔서 오늘 그 부분을 깊이 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4절, 5절은 알고 보면 성경 전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보겠습니다. 3절은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겸손히 이 땅에 오셨고 4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절 온유한 자 곧 순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현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치 않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그 길을 따라갑니다. 순종하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3절 4절 5절 말씀은 바로 팔복의 일복, 이복, 삼복은 예수님의 생애에 관해서 적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너희도 나를 따라올 수 있겠니’라고 묻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 24절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함으로 그때 책망하시되
21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다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고을들을 향하여 분노하십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가 병을 고치고 오병이어로 떡을 만들어주시고 기적들을 많이 봅니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 할 때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잡힙니까? 수많은 권능과 이적 기사를 봅니다. 권능과 이적 기사를 볼 때 많은 목사님들이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어려웠던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나와 함께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권능을 행하셨던 이유는 회개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불쌍해서만 고쳐주신 게 아니라 회개케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나병 환자의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눅17:11~19)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이 가서 보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병이 나았다고 믿고 제사장에게 보이고 확인받으려고 가다 보니까 진짜 나은 것입니다. 이분들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예수님이 가서 실로암 물가에서 씻으라 했습니까? 진흙을 몸에 바르라고 했습니까? 침을 뱉어가지고 붙이기를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고 너희 몸을 보여라 하셨습니다. 자기 몸이 나았다고 믿고 가는 열 명이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그런데 자기 병이 나은 것에 집중한 자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 병 낫고 이적 기사가 일어나고 수많은 권능이 행해지는 것은 대부분 나에게 집중합니다. 여기 있는 고을들도 자기에게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은 대단하신 분이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문제 해결된다고 이 고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진짜 원한 게 아닙니다. 딱 한 명만 예수께 돌아와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 사람은 자기 병을 고쳐주신 예수께 주목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눈동자를 돌이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눈동자가 여전히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9명의 사람은 여전히 병 나은 자기에게 눈동자가 있었습니다. 딱 한 명만이 병을 고쳐주신 예수께 눈동자를 돌립니다. 회개는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슈브〕이고 가던 길을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딱 한 명만이 돌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었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9명은 어디에 있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병을 고쳐주옵소서’ 할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구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받는 뜻이 아닙니다. 번역이 잘못되었고 네 믿음이 네 병을 고쳤다는 뜻입니다. 원본에 구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병에서 구원받았다는 뜻이고 천국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열 명의 나환자는 병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한 명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회개치 않았고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오고, 예수를 믿고 십일조 하고, 열심히 믿음 생활하면 천국 가는 줄로 다들 착각합니다. 지금 이분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십일조 드리고 십계명 지킵니다. 철저하게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말씀을 지켰는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회개하라고 합니다. 처음에 세례 요한이 오자마자 뭐라고 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길을 돌이켜서 천국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천국을 이야기합니다. 이제부터 너희의 눈동자는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라, 너희의 삶의 문제가 아니라 천국을 향하여 너의 눈동자를 돌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해 살았건만,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고,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하나님은 날 돌아보지 않으셨어요. 내 몸이 너무 아파요. 나는 가난해요. 여전히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있어요. 하나님 죽고 싶어요’ 그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눈동자를 천국을 향하여 보라. 그리고 좁은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눈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것을 갈아서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갈아가지고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모든 삶을 갈아 너희를 위해 주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내 사랑을 받아주겠니. 내가 이토록 너희를 사랑하는 건 아버지가 너희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이란다. 천국을 향하여 와다오. 길을 돌이켜다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고 병을 고치시던 이유와 수많은 이적 기사의 목적은 천국을 가게 하고 길을 돌이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돌이키지 않자 예수님은 분노하십니다. 이것과 확연히 다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의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이튿날 만납니다. 착각하면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가지고 예수님을 처음 만난다고 아는데 아닙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것은 동생이 먼저 만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동생이 그 말을 듣고 베드로에 가서 ‘형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어’ 했고 베드로가 바로 예수를 만나고 하룻밤을 같이 유숙합니다. 그 이후에 요한과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만납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를 만나고 대화하고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이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고 있는 현장을 갑니다.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못잡을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여러분 설교를 많이 들어서 낮인 것을 아십니다. 낮에는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하여 던지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면 무엇이 이루어진다로 설교를 하는데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적 기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면 안 풀리던 문제가 해결되고, 내 삶이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고, 내 인생을 주께서 주관하고 책임지고 이끌어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요한도 부릅니다. 두 배가 가득 차서 돌아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들에게 이적 기사를 왜 일으켰었는지 답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내 곁을 떠나소서’ 베드로는 이적 기사를 보고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죄는 〔하타〕 라고 길을 벗어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길을 벗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너희는 고기를 잡는 어부였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모든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갑니다. 그때 물고기는 아마 가족들이 팔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분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미리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갑니다.
회개는 길을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언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길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밤새 눈물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길을 돌이킬 수 있을까요? 목표가 바뀌어야 됩니다. 목표가 천국인가, 목표가 나의 소원인가 돌아보셔야 됩니다. 항상 목표가 천국이어야 합니다. 그 권사님이 실수하시는 건 너무 힘드니까 잊어버리신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목표가 어디 있는가를 보셔야 됩니다. 그러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시인은 답답하니까 한 말이만 성경은 진짜로 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부터 30절
25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왜 회개를 안했다고 말씀하십니까? 높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듯이 마음이 낮아져야 길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예수를 향하여 따라오는 자들이 어린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우리’ 찬양은 유년주일학교 노래가 아니고 우리 노래입니다. 예수님 앞에 어린아이같이 되어 따라갑시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예수님께 주셨고 구원하여 천국에 데려가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이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천국입니다.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의 뜻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소원은 여러분을 구원하여 천국에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다른 거 하나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건 무엇입니까? 제가 아무리 위로해 준다고 해서 그 권사님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잠깐 사탕발림은 해드릴 수 있고 속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말을 듣고 위로가 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에게 진짜 위로될 수 있는 건 예수밖에 없습니다. 천국밖에 없습니다. 저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천국만 전하고 예수만 전할 겁니다. 얼마나 많이 목사님들이 성도님에게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십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천국에 가게 해야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드려야 됩니다.
이제 주제가 나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모든 인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죄짐과 인생의 짐입니다. 아침에 눈 뜨면 즐겁습니까? 저녁이 되면 즐겁습니까? 삶이 얼마나 힘들고 무거운지 모릅니다. 우리 삶의 무게에 지쳐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제가 유행가를 좋아했던 것 중에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회복하게 한다는 것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먼저 마음의 평안부터 회복될 것인가, 여러분의 삶 속의 평안을 회복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놀랍게도 지금 이 말씀이 아까 산상수훈의 일복 이복 삼복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아니〕와 겸손은 똑같은 〔아니〕입니다. 겸손과 낮아짐은 똑같은 뜻입니다. 겸손하게 낮추었고 이 땅에 내려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온유하다. 곧 나는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분이 가라고 하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고 너희를 위하여 내 모든 생명을 주었다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멍에를 이야기했는데 예수님의 멍에입니다. 바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가 지셨던 멍에를 우리에게도 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멍에를 다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멍에를 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받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다 주셨기 때문에 병 나음을 받고 행복하게 살고 문제가 해결되고 예수로 인하여 복을 받는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복을 받는다고 말하고 계십니까? 나의 멍에를 메달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이 원하는 설교하면 성도들 다 죽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따라가셔야 됩니다.
예수님이 가셨던 길, 겸손한 길, 자기를 낮추는 길, 순종하는 길을 살아가셔야 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의 멍에는 같이 메는 겁니다. 히브리어 〔체메드〕라고 하는데 소가 두 마리 내지 네 마리가 함께 메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같이 따라가는 것이고 이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만일 교회가 너무 힘들어서 혼자 예배를 드리는 분이 계시면 반드시 진짜 교회를 찾으십시오. 함께 가셔야 됩니다. 그리고 내게 배우라 하십니다. 교회는 예수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예수의 낮아지심과 순종하심을 가르쳐 드려서 용기를 내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고 좁은 길을 걸어갈 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라. 비로소 평안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택함 받은 자만 따라오라고 합니까? 모든 인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간절하게 인류 전체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인생을 다 주신 예수를 따라갑시다.
제가 이번 주에 아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차를 타고 오다가 한마디 했습니다. ‘아들아, 인생은 천국 가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거야. 천국 못 간다면 내가 부유했던지, 성공을 했던지 아무 소용없는 거야, 쓸모없는 인생에 내 인생을 갈아가지고 아내를 위해 준 것이 멋있는 것 아니겠니’ 그러니까 아들이 ‘아빠 알았어요’ 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가만히 생각하니까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 인생을 갈아주셨습니다. 얼마나 멋있고 감사합니까? 아들 회개시키려고 말했다가 제가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잘못 살기가 쉽습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천국이 되시길 바랍니다. 천국을 가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십자가에 순종하고 살아갑시다. 반드시 천국 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입니다. 항상 점검합시다. 다시 마태복음 7장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부터 21절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구별하는 방법은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열매는 전도하고, 일이 이루어지고, 병이 낫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들을 열매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포도와 엉겅퀴, 무화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근본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심령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이 어떻냐에 따라서 열매가 맺혀진다는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마음의 상태가 나쁜 자는 찍혀 불에 던지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지 못한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이미 5장 6장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론이 똑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씀과 똑같습니다. ‘너희의 마음을 낮추어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열매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로 그들을 안다는 것입니다. 전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하는데 입이 더럽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 열매가 나쁩니다. 예전에 부흥 강사님들 입이 더러운 분이 많았습니다. 열매를 보면 알아야 됩니다. 목사님이 겉으로는 선하고 착한 척하면서 딴짓 하면 열매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뭘 보라고 하십니까? 열매를 보면 그들을 알리라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의 삶이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위대한 목사님들이 많이 나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수많은 이적 기사가 일어나고, 이빨이 나고, 손이 생기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적 기사에 마음 뺏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마음 뺏길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무슨 불법을 행했을까요?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한 자는 회개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길을 돌이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부터 27절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됩시다. 내 마음과 생각보다 말씀이 위에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왜 말씀이 위에 있게 하려고 할까요? 천국 때문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예수님 나 이것만 잠깐 하고 올게요’ 그런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그런데 목표가 천국이 되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각을 이겨낼 수 있고 두 번째는 환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 자를 이긴자 라고 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이 세상에 환란이 오고, 삶에 고난이 오고 많은 사람이 핍박할지라도 안 넘어집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따라갑시다. 예수님은 자기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는 자는 쉼을 얻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여러분의 마음에 쉼이 있고 늘 기뻐할 줄 믿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볼까요? 바울은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해서 김진홍 목사님을 힘들게 했을까요? 김진홍 목사님 설교 듣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는 똑같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부터 3절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바람 불고, 비 오고, 홍수가 날 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는 결단코 집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환란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여러분 모두에게 천국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환란이 임합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교회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고 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거 반드시 고쳐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실한 목사님이 항상 기뻐하라는 말을 도저히 못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왜 기뻐하라고 말했는 줄 아십니까?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가 자세히 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3주 설교하고 떠난 교회입니다. 3주 동안 설교할 때 바울이 설교의 핵심은 주의 날에 관한 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우리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르는 것을 얼마나 잘 가르쳤으면 너희가 자세히 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복음을 회복해야 됩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 않고 반대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예비하지 않으면 홀연히 멸망이 이릅니다. 나는 천국 간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면 어떡합니까? 우리 정신 차리고 근신하고 깨어 있습시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이어서 봐야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5절부터 8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바울이 확신 있게 말한 것은 너희는 빛의 아들 곧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빛은 생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어둠에 있지 않고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고 낮에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데 건강하면 딴 생각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데 아프면 딴 생각이 안 납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병실에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갑자기 돌아가셔도 여러분이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밤중에 오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고 있는 말이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 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과 관계없이 예수가 곧 오실 것을 믿고 예수를 소망하여 사는 것입니다. 오늘 밤중에 올 수 있고 5분 후에 오실 수 있으므로 항상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다시 오심을 기다릴 때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만이 낮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낮에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근신하여 자기를 돌아보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주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믿고 다시 오심을 믿으며 주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내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주셨음을 믿고,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연서, 사랑의 편지를 마음에 꼭 품고 사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진짜 사랑하니까 예수님을 기다리게 됩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면 어떤 환경도 괜찮습니다. 내가 비록 다쳐가지고 다리가 부러져도 다리가 절뚝절뚝 해도 괜찮습니다. 천국 가니까 직장 안구해져도 괜찮습니다. 힘들어도 몸이 아파도 천국을 갈 거니까 예수가 오실 거니까 괜찮습니다. 모든 환경에서 슬퍼하지 않게 됩니다. 힘들어 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초대교회 교인들은 항상 기뻐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과 우리는 삶이 너무 다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소망부터 바꿔야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의 삶을 예수께 드린 것입니다. 두 아들이 죽었는데 주님 앞에 감사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예수를 사모하여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천국이 소망되며 십자가의 은혜가 늘 마음속에 있으며 주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부터 18절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이제 깨닫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예수가 우리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자기의 살과 피를 다 찢으셨고 자기 삶을 송두리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의 십자가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십자가 앞에 나아갑시다. 마음을 낮추고 말씀을 따라갑시다. 주님이 곧 오시는 것을 사모하며 기다립시다. 소망이 바뀐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인생의 문제들, 삶의 문제들은 다 내게 맡겨버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모든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그런자에게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기뻐하는 가운데 기도합시다. 기도할 때 슬퍼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전제는 여러분의 눈동자가 천국을 향할 때 진짜 기도가 나옵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까? 악은 호시탐탐 수도 없이 노립니다. 그래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사랑의 흉배를 붙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늘 마귀와 싸울 준비하셔야 됩니다. 마귀는 여러분 마음속에 말씀보다 다른 생각을 주고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환경을 통하여 여러분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뻐함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기뻐함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이 기뻐하는 삶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말씀 따라 항상 기뻐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가 내 삶의 실제가 되고, 그리고 늘 십자가 앞에 낮아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늘 나를 돌이키고 늘 회개하겠습니다. 주님 아침과 저녁에 내 발을 씻겠습니다.
또 내 생각대로 살아갔던 내 습관들을 고치겠습니다.
성령님 나를 고쳐주옵소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좁은 길을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겠나이다.
주님 반드시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의 삶 속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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