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사교입선(捨敎入禪) 교를 버리고 선으로 들어가다 교리를 연구하다가 어느 경지에 이르면 그 교리에만 깊이 천착하지 않고, 방법과 의론인 교를 떠나 실천 수행을 하기 위해 선리(禪理) 참구의 길로 들어간다는 말. 중국 문헌에서는 거의 발견할 수 없는 용어이 며 조선 후기 백과긍선(白坡亘璇 1767-1852)을 전후로 쓰이기 시작하여 근현대에 일반화된 말이다.
교학의 근본 도리를 배운 다음에 참선을 통하여 그것을 실증하는 것. 선과 교를 평등하게 놓고 공부의 순 서상 교학의 기초를 다진 뒤에 참선을 실행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는 자교오종(藉敎悟宗. 가르침에 의거하여 종지를 깨닫는다) 또는 자교입종(藉敎人宗)의 뜻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교를 담당하는 강원과 참선을 이끄는 선원이 공존하면서 이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적지 않다. 곧 강원을 졸업하거나 중도에 그만두고 참선을 하기 위해 선원에 들어갈 때 사교입선이라 한다.
교를 완전히 버린다는 생각도 부정하고 교에 집착하여 실천적으로 그 세계를 구현하지 못하는 무리들을 일깨우는 수단도 된다. 이 밖에 교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오로지 참선에 매진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의 『수선결사문과석(修禪結社文科釋)』에
"교를 버리고 선으로 들어갔지만 [捨敎入禪] 또한 번뇌로 헐떡이는 마음을 그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어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만일 자기 마음을 깨우치지 못하고 개념적 교설(名敎)에만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을 가리켜 규산(圭山 : 圭峰宗密)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글자를 알고 경전을 보아도 본래 증득하여 깨닫지는 못하고, 글에 갇혀 이치를 푸는 방식으로는 탐 · 진 · 사견의 불길만 거세게 할 뿐이다. 하물며 아난(阿難)은 많이 알고 남김없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세 월이 아무리 쌓여도 성과(聖果)를 증득하지 못하다가 대상적 지식을 그치고 스스로 돌이켜 비추는 그 잠깐 사이에 궁극의 도리(無生)를 증득했음에랴!」
그렇거늘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 한갓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문자)만 바라보고 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볼 줄 모르는가?' ····· 마침내(白坡 自稱) 을해년(1815년 : 백파의 49세 때) 가을에 대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간 뒤 정(定)을 익히고 혜(慧)를 고루 갖추는 수행을 한 지 벌써 8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번뇌 망상이 그친 경 지는 알지 못했다."
해담치익(海曇致益 1862~1942)의 『증곡집(曾谷集)』 권상에
도순(道淳)에게 붙이는 편지
"교를 버리고 선으로 들어갔다는 [捨敎入禪] 소식을 들었습니다. 좌선은 순조롭게 잘 되어 가는지요? 만일 본성이 공(空)이라는 이치에 통달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마음으로 돌이켜 비추어 본다면 경전을 보아도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교를 공부하거나 선을 수행 하거나 마음으로 본성이 공이라는 이치를 비추어 보는 작용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경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비록 교를 8만 4천 리 밖으로 던져버리고 미륵불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좌선하더라도 조금도 이익이 없고 더욱 어리석고 답답한 상태만 덧붙이게 될 뿐일 것입니다.
돌(咄)! 향기로운 풀 피어난 언덕에 오르지 않고서는 꽃잎 떨어지는 마을에 이르지 못하리라. (咄 不至芳草岸 難到落花村)"
☞ 사교입선(捨敎入禪)
捨 버릴 사. 敎 가르칠 교. 교학(敎學). 入 들 입. 禪 참선 선.
출처 :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
사교입선(捨敎入禪)에 대한 출처는 조선 후기 백파 긍선(白坡亘璇)을 전후로 쓰이기 시작하여 근현대에 일반화된 말이라 하였으니 백파 긍선은 어떤 분인지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은 교학에 힘쓰다가 40대 중반 이후에 교를 버리고 선의 우월성을 천명 하였습니다. 선사는 선운사에서 출가한 후 지리산에서 당대 최고의 화엄종주였던 설파 상언(雪坡尙彦)에 게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이어 구암사에서 설파의 문손 설봉 거일(雪峰巨日)의 법을 전해 받았으며 백양 사 운문암에서 개당 한 후 강학에 전념하였습니다. 45세 때에 문득 법의 진제(眞諦)가 문자 밖에 있음을 깨닫고는 강안을 거두고 선 수행에 몰두하였습니다. 이후 백양사에서 선지를 현양하고 구암사에서 선강 법회를 여는 등 호남 선문의 중흥자로서 명성을 떨쳤던 분입니다.
사교입선(捨敎入禪)에 실린 두 사례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사례의 요지만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경전과 교리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깨달음은 자신의 마음을 직접 돌이켜 비추는 수행, 곧 참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원에 들어가 좌선만 한다고 저절로 깨달음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으며 끊임없이 자기 마음 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핵심 교훈은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고, 수행자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직접 보아야 한다. 즉, 교는 길을 가르쳐 주고, 선은 그 길을 직접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해담 치익(海曇致益 )의 사례 요지입니다.
해담 치익 스님은 근세 양산 통도사스님으로 휘(諱)는 치익(致益)이고 호는 해담(海曇)입니다. 자호(自號)는 증곡(曾谷)이니 스스로를 겸하하여 승도 속도 아니라는 뜻으로 증곡이라 했다 합니다.
19세 때 통도사 춘담(春潭)을 은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계율을 엄히 지키며 율장을 연구하였고, 그 후 소백산 용문사 용호해주(龍湖海珠)에게 법을 받았고, 해주강백으로부터 경전을 수학하여 여래밀인(如 來密印)인 심인(心印)을 증득했다고 합니다. 그 후 1926년 선교양종 7교정(敎正)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합 니다.
스님은 교를 떠나 선원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수행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 하면서, 공(空)의 이 치를 깨닫지 못하면 좌선도 큰 이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추는 사람이라 면 경전을 읽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교와 선은 둘이 아니라 모두 마음을 밝히기 위한 방편이다."라는 것이 요지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핵심 교훈은 교를 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라 하겠습니다.
두 사례의 공통된 결론은 무엇일까요?
교(敎)는 깨달음의 방향을 알려 주는 지도이며, 선(禪)은 그 지도를 따라 직접 걸어가는 실천이라는 것입니 다. 그래서 교만 붙잡아도 안 되고, 선만 고집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교입선은 마음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며, 교와 선은 그 목적을 위한 두 방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는 눈을 열어 주고, 선은 그 눈으로 진리를 직접 보게 한다."
이것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학은 수행의 목적과 방향을 알려 주는 나침반이고, 참선은 그 길을 실제로 걷는 실천입니다. 나침반 없 이 길을 떠나면 열심히 걸어도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선종에서도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하지만, 이것은 문자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에 집착하지 말 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선종의 큰스님들도 경전을 깊이 공부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달마 이후의 조사들, 육조 혜능, 규봉 종밀, 보조 지눌 등도 모두 교와 선을 함께 중시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에서도 강원에서 교학을 익힌 뒤 선원에서 참선하는 수행 체계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교입선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 교(敎)는 눈을 열어 주고 선(禪)은 직접 보게 하네.
교와 선 함께 닦아 깨달음에 나아갈 때
지월(指月)에 머물지 말고 밝은 달을 쳐다보세.
교학은 깨달음을 대신해 주지 못하지만, 바른 수행의 길을 밝혀 줍니다. 참선은 교학을 대신하지 못하지 만, 교학에서 배운 진리를 자신의 마음에서 확인하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교와 선을 함께 배우 고, 점차 수행이 깊어질수록 교의 뜻을 선에서 증명해 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길이 될 것입니다.
결국 사교입선은 '교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교에 머물지 말고 실천으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사교입선 깊은 뜻 헤아리며 맑고 향기로운 하루 보내시 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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