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션1> 편집인의 글
서안동IC~ 의성 나들목(IC) 22km, 3:00 P.M.
물댄동산(우진숙)
오후가 되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늘은 영주에서 강의를 하고, 안동에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 바로 문서 작업을 해야 할 일이 있어, 근처 카페에 잠시 들렀다. 카페에 있던 어떤 분이 가족에게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들렸다. 형수님, 그쪽에 산불이 번진다니까, 걱정되더라도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꼭이요!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치듯 불어왔다. 며칠 전부터 의성에서 난 산불이 꺼지지 않고 주변으로 번지고 있었다. 의성과 안동은 그리 멀리 않은 거리라서인지, 산불로 인한 희뿌연 연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빨리 불이 잡혀야 하는데…. 사장님이 걱정스런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올 때, 아주 미세한 재가 테이블 위에 가끔씩 떨어졌다. 더 늦기 전에 나도 집으로 가야할 것 같아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했다.
네비에 주소를 치자, 이내 가까운 고속도로로 안내했다. 차들이 빨리 움직이는 것 같았고, 저 멀리 보이는 산에서는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목원 시댁이 의성 쪽인데 피해는 없으실까 이왕 생각난 김에 전화를 해 보았다. 다행히 괜찮다고 하셨다. 바빠서 통화를 못했던, 딸아이 학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고속도로로 향했다.
그런데 톨게이트에 가까워지면서 연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왠지 모르게 열기가 느껴지는 듯 했고, 속도를 내던 앞차들이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불길함이 느껴졌고, 허둥지둥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직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희뿌연 연기 때문인지 날씨가 더 어둡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차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하지만 통과하자마자, 왼쪽 산이 불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뒤로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과연 그게 맞을지 정말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앞에 달리던 차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켜며, 갑자기 섰다. 위협을 느낀 그 차는 멈추었고, 뒤따르던 차들도 잠시 멈칫하더니, 그 차를 추월해서 가기 시작했다. 산불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특별히 차량 진입에 대한 안내가 없었기에 별일 없겠지하는 마음으로 나도 뒤따랐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꺽는 순간, 아차!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입구의 불은 작은 시작이었을 뿐, 큰 도로에 합류하기 전, 진입로를 따라가는 동안, 산 전체가 불에 타고 있는 그 길을 마치 구름다리처럼 차를 몰고 지나갔다. 아까 입구에서 그냥 나도 들어서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뜨거운 열기가 차 안까지 여실히 느껴졌고, 용암처럼 산위에서 내려오던, 붉은 불길이 금방이라도 내 차를 덮을 것 같았다. 어서 이 구간만 지나자고, 이를 악물며 다리를 달달 떨면서 엑셀을 밟았다. 뜨거운 열기에 얼굴은 달아 올랐고 등에는 식은 땀이 났다.
얼마 정도 달렸을까…, 저 앞쪽부터 밀려 있는 차량 때문에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서안동 IC 입구를 통과해온 것도 위험했지만, 갑자기 강풍을 타고 산불이 고속도로를 덮치고 있어 다른 출구가 1km도 남지 않은, 그 구간을 통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타는 입구를 겨우 빠져 나왔지만, 연기와 불길이 반대로 몰아닥치는, 뒤돌아갈 수 없는 구간에서 수십 대의 차량은 그렇게 정체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안내해주는 사람이나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에서 그냥 애타게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도로의 양쪽 산 위에서도 산불이 더 가까이로 타고 내려왔다.
나는 어떻게 할지 몰라 속타는 마음으로 차 핸들만 꽉 붙들고 있었다. 차들이 갓길로 차를 돌려서 가기 시작했고, 많은 차들이 뒤따라가기도 했다. 앞서 있던 차들도 돌려서 갓길에 합류하기도 하면서, 도로는 서 있는 차와 돌아가려는 차가 뒤엉켰다. 역주행해서 뒤돌아가던 차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답답한 사람들이 몇몇 나와서 서로 물어보며,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역주행해서 가던 차들은 불어닥치는 강풍과 검은 연기와 불씨들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 가다가 오다가를 반복했다.
평소에 어지럼증이 있던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괜찮을거야, 라고 지도를 보며 설명을 하던 남편도, 차츰 시간이 길어지자 걱정하는 마음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는 전화가 와도 손이 떨려서 받지 못하고, 연신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119에 전화를 몇 통이나 했지만, 계속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고는, 상황실도 지금 경황이 없으니, 국토부 쪽으로 통화를 해보라고 전화를 계속 돌렸다.
이제 연기는 더 짙어졌고, 시야 확보는 더 어려워졌다. 이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모든 차들이 방향을 돌려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신기했던 것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운전자들은 서로 가려고 하지 않았고, 다들 양보하면서 서로 부딪히지 않게 차를 돌렸다. 대형버스나 트럭들은 회차하기 쉽지 않았으므로 계속 후진하면서 조금씩 가고 있었다.
그때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차는 몇 키로 앞의 선두 차량까지 가서 우회해야 하고. 여기서 더 지체하면 위험하다고 침착하게 스피커로 안내했다. 연기가 시야를 많이 가렸기 때문에, 앞차의 비상 깜빡이가 유일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 비상등을 놓친 몇 무리들은 중간에서 헤매기도 하고, 검은 연기와 불씨가 날아다니는 가운데서도 중간에 서기도 하면서 서로 안내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연기 들어간다고 어서 창문을 올리라고 소리치며 챙겨주기도 했다.
갓길로 가던 나에게 한차가 창문을 열고, 차에 불이 붙을 수 있으니, 어서 1차선으로 붙으라고 했다. 실제로 먼저 가던 차였는지, 차 한 대가 갓길에서 불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씨를 동반한 검은 바람이 한차례 내 앞을 두텁게 지나간 후, 나는 비상등이 켜진 앞차를 놓쳤다. 어쩔 줄 몰라 출발을 못하고 긴장하고 있을 때, 맨 앞쪽에서 안내를 마치고 뒤따라오던 경찰차가 내 옆에서 안내를 해 주었다. 속도를 도저히 못 내자, 옆에서 따라오며 숨 크게 쉬면서 천천히 가도 되니 따라오라고 말을 해주었다. 고립된 차량들이 안전하게 나올 수 있도록, 서안동에서 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역주행해서 차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조치 중인 것이었다. 한참을 달려서야 겨우 연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고 안전봉을 들고 안내를 하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날 내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먼일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집으로 향하는 어떤 도로가 안전할지 고민하다가, 문경 쪽으로 한참을 돌고 돌아서 11시 가까이가 되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족들은 안심하며 온몸에서 심한 연기 냄새가 난다며 놀랐다. 엄마 너무 걱정되고, 놀랐다고 하던 딸은, 그날 좁은 침대에서 엄마 곁에 자고 싶다고 했다. 녹초가 된 그날 밤, 밤새도록 불난 곳에서 계속해서 도망치는 악몽을 꾸게 되었다. 다음 날, 역주행하며 연기와 불길을 통과하던 장면들이 뉴스를 통해 나오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제의 그 악몽과 공포가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그 다음 날은 퇴근하면서 멀리서 아파트에 켜진 불들을 보고, 산꼭대기에서 타고 있던 불이 갑자기 생각나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입구와 출구가 통제되고, 양 옆에서 산불이 타고 내려오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 이후 나는 뭣에 놀란 듯, 일상에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잠시 동안 겪은 일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힘든데…, 순식간에 퍼진 산불로 생명과 터전을 잃어버린 분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누군가가 당연히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안타까운 상황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양옆이 활활 불로 타고 있는 곳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단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뜨겁고, 불길이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는데…,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지옥 유황불에 떨어진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 정말 그런 곳에 던져져, 영원히 죽지 않는 형벌에 빠진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이 든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겠지.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다가 정말 극단의 상황까지도 갈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이대로 출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가족들에게 못볼 수도 있다는 문자를 넣어야 할까?
그날따라 강의 결과도 맘에 들었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 했던 그날 오후’, 순식간에 극한 공포에 빠졌던 그날의 경험을 통해 ‘아무 일 없었던, 평범했던 오늘 하루’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스스로에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던 말은…, ‘지금 이대로 내가 죽게 된다면 내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 있을까’란 두려움이었다. ‘가족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았는데..’라며 가족 톡에 문자를 넣었다 지웠다를 반복했었다.
서안동과 의성 나들목 사이의, 길지 않은 22km의 구간은, 지금 내 삶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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