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슬포가 슬프다> 발간을 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한데, 많은 선배 문인들께서 부족한 글에 과한 평가를 보내주어 몸 둘 바를 모르던 중 일면식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수화 시인"께서 격려와 용기의 전화를 주시고 원고지에 친필로 <나는 모슬포가 슬프다>에 대한 서평을 보내 주셔서, 부족한 후배를 다독거려 주심에 깊은 정을 가슴에 새기고 머리 숙여 감사 드리며, 서평을 소개합니다.
<서평>
김영태 서술어叙述語의 미학美學 구현
이수화<문학박사/한국문협,한국펜클럽 명에 부이사장>
옛말철'인생 칠십 고래희'되고 보니 진리는 역시 진리다. 여시아문㉠같다, 같게 하다
㉡어떠하다
')" ;>如㉡여기
㉢무릇
')" ;>是㉡우리
㉢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 ;>我㉡(소리가)들리다
㉢알다, 깨우치다
')" ;>聞 이다.
달구벌 대구大邱의 귀한 선비 김영태(金永泰 시집<<나는 모슬포가 슬프다>>를 읽고 아, 이러이러한 시편詩篇들이 좋구나! 혼자 무릎을 쳤는데, 해설을 쓴 박해수 사백㉡시문
㉢문체(文體) 이름
')" ;>詞ⓑ길(논밭 사이의 길) (맥)
㉠맏, 첫
')" ;>伯 역시 그랬다.
특히 김영태 시(金永泰 詩人의 詩)가 유심주의唯心主義 포에지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점이 그랬다. 박해수 사백은 유심惟心으로 이야기하고 있거니와 시적 주체의 사상思想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심唯心이나 유심惟心은 일란성 쌍동의'마음'일 터이다.
김영태 시에서 가령
가난한 것이
명예가 없는 것이
힘들게 일하는 것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내 슬픔은 아니다.
내 슬픔은
새벽 문을 나서는 아내의
휴학을 하고 일을 나서는 아들의
부모와 한 방에서 엎드려 자는 딸의
등에 있다.
<내 슬픔은>전문
에서 처럼 시적 주체의 '슬픔'이란 정서가 성리학㉡바탕
㉢성질(性質), 사물(事物)의 본질(本質)
')" ;>性㉡다스려지다
㉢깁다
')" ;>理ⓑ고지새 (할)
㉠배우다
')" ;>學 에서도 말하고 있듯 사단칠정四湍七情論의 근원정서 중에 하나인 애哀의 감정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이 슬픔哀의 정서가 김영태 시의 시적 주체에겐 돈과 명예와 권력(꿈=1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인륜에의 연민(2연)으로 부터 발생한다는 것이겠다.
김영태 시인의 시 정신은 따라서 치유 가능한, 구원 가능한 유심의 세계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마음 밭을 지향하는 정신이 바로 김영태 시인의 거룩한 가치 지향성의 시 정신이 아닌가 한다. 그 적나라한 감동적인 세계를 본다.
TV를 보는데
딸이 핸드백을 13,000원에 샀다고
이쁘다고 자랑을 한다.
이쁘다 했더니 그렇제 하면서
쪼르르 나가더니
구두를 가져와서는
방에서 신고는 이쁘냐고 묻는다.
20,000원 줬단다.
예쁘다고 했더니
다시 쪼르르 가더니
병아리 색 셔츠를 입고 와서는
어떤데 하고 묻기에
이쁘서, 이쁘다고 했더니
6,000원 줬다면서
잘 샀제 하기에,
우리 딸 얼굴도 이쁘고
물건도 싸게 사는 재주도 있는데
대학생 되면 좀 좋은 거 하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니가 했더니만,
아빠 닮아 이쁘서 아무거나 해도
이쁘다면서 웃길래 같이 웃는데
눈꼬리에 맺히는 눈물방울은 뭔지.
<딸의 사치> 전문
텍스트의 내용을 부녀간의 따뜻한, 그것도 경상도 방언을 적절히 구사한 대화체 전언 형식의 서술시 (내려티포임)로 완성하고 있는 뛰어난 시로 보인다. 특히 아버지와 딸의 물질을 놓고 전개하는 심리적 추이는 시적 주체의 유심주의 시 정신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이학적 균형미를 견지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 대학생이 입기엔 좀 싼듯한 딸의 소박한 '사치'를 인정해 주면서도 그 허허실실을 지적해주는 아버지의 진정성에 눈물방울이 맺히는(후발행) 딸의 아름다운 여성성에 독자가 묵연의 온정을 아니 느낄 수 있겠는가. 역시 물物 보다는 심心에 바탕한 시인의 포에지가 우리에게 주는 감성과 감성의 연쇄반응이고, 감정이입을 유연하게 이끌어 오는 '김영태 서술시'의 형식미 구사 덕분일 터이다.
이는 엘리엇트가 말하는 이른바 사상思想을 장미꽃 향기처럼 냄새맡게 할 수 있는 소재와 기법의 위일융합 현상이겠는데, 김영태 유심주의 시가 보이고 있는 저러한 몇 가지 기법 소산의 세목을 들여다 본다. 행두行頭 넘버는 감상자의 자의적인 것이다.
① 군대는 어쩔 수 없어 보내는 것이지만
나라에서 관리해 주니 아슬하여도 견딜 만했는데
제대하고 20일 만에 세상으로 나가는 아들
어째 군대 있을 때보다 위태롭다.
스스로 벌어서 복학한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학비를 벌겠다고
주렁주렁 잠을 달고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이
군대 보낼 때보다 애처롭다.
밤새워 컴퓨터 게임을 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을 보면
까마득히 남은 날이 걱정스러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다가도
내 죄만 같아 측은해 그만둔다.
② 늙은 노모
철없는 자식들
천방지축 신랑이
아내의 꿈속에 찾아가
분탕을 치는 모양이다.
신혼 때는
숲 속 공주처럼
차분하고 예쁘게 자던 아내가
코를 골고 몸부림을 친다.
③ 한눈에 다 들어오는 방에서
고양이 새끼 같이 엉커서
모두 잠들어 있다.
새우잠 속에
웅크린 삶이 고여 있어도
평화로운 얼굴들
편안한 숨소리가
매서운 채찍이 되어
가슴을 후려쳐도
고요한 평화로움 앞에
그마저 빼앗을까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
야윈 등이 위태로워도
흔들릴 수 없는 이유가
눈 속에서 서걱거린다.
예시 ①은 <아버지 일기>이고,②는 <아내의 몸부림>, ③은 <그리고 삶>이다.
①은 리리시즘의 전형성을 매우 예각적으로 보여주는 서정시이다. 부성애를 텍스트 ①처럼 절절이 읊은 현대시(컨탬 포라리 포엠)가 어디 있으랴 싶은 새로움이 돋보인다. 7~80년대 리얼리즘시의 쇠퇴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은 김영태 시의 경우 서술시 기법의 태도에서 비롯된 효과가 아닐까 싶다. 서정적 자아의 군대와 사회, 즉 현실을 보는 균형감각 소산인 것이다. 텍스트②의 경우는 더욱 경천동지 놀라움이 크다. 이것이 바로 시예술의 위대성이다. 불과 총 10행 2개 스탠자를 '여자의 일생'을 담아낸 것이다. 그것도 남편이라는 죄 많은 캐릭터의 눈물겨운 애정(차라리 참회)의 눈시울 모양새를 저토록 비장스럽게 형상화 해낼 수 있으랴 싶기만 하다. 메타 텍스트 '아내의 몸부림'이라는 레토릭㉡꾸미다, 엮어 만들다
㉢고치다, 손질하다
')" ;>修㉡문체(文體) 이름
㉢핑계
')" ;>辭 學(수사학)은 또 얼마나 위트스러운가. 이 김영태 시인의 탁월성의 수사학은 예시 ③에서 그 다채로움으로 독자를 말없이 끄덕이게하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 나라 현대 서민의 자화상을 책 한 권으로 어찌 다 쓸 수 있겠는가만 김영태 시 ③은 시 한 편에 그것을 완성 시키고 있질 않은가. 김영태 시인의 독특한 수월성의 서술 시법에 의해서인 것이다.
2009. 10. 25. 서울 마포 삼개나루 樹堂軒 石蘭史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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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 시인,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