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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이던가. 나라 안팎에 그의 이름이 드높더니 그가 만길 물속으로 몸을 던진 뒤 세상엔 초목 우거지듯 시시비비만 요란했다. 고향에 돌아온 그의 영혼은 칼을 더듬으며 내는 쓸쓸한 노래 가락만이 나뭇잎에 살랑거렸다.
그러니까 경 자庚 子 년 어느 이른 봄 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대궐에서 근무한 것도 벌써 여러 달이 흘러간 뒤였다. 어느 날 아침 승정원承政院에서는 신하 다섯 명을 불러 밀봉한 편지를 각각 나누어 주었다. 그 편지를 받았던 그때 사람 중에는 나도 함께 있었다.
우리들 다섯은 함께 한강변 숙박 지에서 봉투를 뜯어보았다. 내가 맡았던 도는 충청도 지방으로 명시 되어 이었다. 이를테면 우리들은 암행어사의 임무를 띠고 왕명에 따라 자기가 맡은 지역을 향해서 떠나는 길이었다.
어느 새 사월로 접어든 터라 들판에는 밀 보리 같은 밭작물들이 언제 전쟁이 있었더냐 싶게 평화롭게 자라 들판은 녹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임란을 겪은 싸움터는 옛 터전이 된 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오늘따라 들쥐와 산짐승들은 햇빛이 두려웠을까. 이미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니....... 굶주린 까마귀 떼와 성난 독수리만이 내가 들으라는 듯 기분 나쁘게 울어대고.........나는 타고 가던 야윈 나귀를 천천히 몰면서 그 때 처절했던 전쟁터를 한번 회상해 보았다.
당시 군사들이란 양갓집에서 뽑혀 나온 장정들, 열병閱兵을 받을 수준인 얼마의 관병官兵. 혹은 관리로 있던 자가 지원했다. 그들은 허리에 활을 차고 등에는 화살을 메고 가죽옷에 갑옷을 입고 그렇게 좋은 무장을 하고서도 싸움다운 싸움한번 해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었다. 주장主將의 아무런 계책이 없다는 것만 탓하다가 밀어닥치는 적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적에게 목을 늘어뜨리고 칼날을 받을 뿐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 가 이끄는 일본군 제일진의 만 팔천여명은 부산포釜 山 浦를 공략해 함락시키고 부 터는 큰 저항 없이 밀양密 陽과 대구大 邱를 거쳐 조령鳥 嶺방향으로 진군하여 들어 왔다. 일본군은 뒤이어 제이진 제삼진도 경주慶 州를 거쳐 신령과 차원 개령을 지나 추풍령秋 風 嶺쪽으로 각각 북상했다.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뉜 선발 부대에 뒤를 이어 일본군 후속부대들도 남쪽후방을 지키거나 또는 선발대 뒤를 따라 북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방방곡곡이 일본군의 발길에 거의 짓밟혀가고 있었다.
그때 우리 조정에서는 일본군이 서울을 향해 물밀 듯 올라온다는 소식과 여러 지방이 차례차례 무너졌다는 급한 보고를 밭고 여러 장수들을 내려 보내 적을 막도록 지시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군대는 급하게 불러 모으다보니 훈련도제대로 안된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었다. 계속 날아드는 보고에 선조( 처음 사용한 이름은 李 鈞)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신하들에게 물어 보았다.
“ 왜놈들이 우리나라 땅 곳곳을 점령하고 있으니 일이 여간 급박한 일이 아닙니다. 장차 어찌하면 좋을지 의견들을 내 보시오.”
그러자 당대에 그의 권한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있고 책임이 과부 적이었던 한 장군이 나섰다.
“이일 장군이 어떤 보급품이나 지원도 없이 혼자 싸우러 내려갔습니다. 마땅히 그를 도와야 할 군사가 뒤에서라도 진을 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럴 군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이 내려갈까 하옵니다.”
그는 신입이었다.
이번엔 좌의정이던 유성룡柳 成 龍 이 나섰다.
“내가 이미 도체찰사都體察使의 부름으로 이제 막 군사를 모아 전선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참입니다.”
신입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하하하하! 죄송하오나 도체찰사께서 내려 가신다하지만 적을 하나라도 무찌를 수 있는 장수가 아니십니다. 지금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맹한 장수이옵니다. 그래야만 이일에게 달려가 그를 응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입은 은근히 자신의 가슴을 내밀면서 용맹한 장수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일찍이 그는 변방의 여진족들을 막아내는 일에 있어 그 명성을 떨친바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잔인하고 포악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일단 부임지에 도착해서 순찰 할 일이 있으면 사람부터 본보기로 하나 죽이고 일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를 영접할 일이 있는 부하들은 그가 부임하기 전부터 길을 닦고 숙소를 정비하고 음식을 장만하며 정성을 다 쏟으면서도 혹 꼬투리나 잡히지 않을까 몹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의 행차는 언제나 화려하고 위험 있게 행동 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위엄과 용맹함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때 북쪽에서 세운 공로로 조정에서 인정받아 그의 직위와 권한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현실인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상태였다. 전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가 유성룡의 집에 찾아와 나눈 대화에서도 그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전란이 있을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장군이 난리를 맡아서 우리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려. 그래 공은 이번에 난리가난다면 적을 맞아 방어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것 같습니까?”
유성룡은 이미 최근에 국제정세에서 전쟁의 예감을 오래전부터 느끼던 사람이었다.
이 순신李 舜 臣을 일찌감치 천거한 것만 보아도 짐작이가는 일이었다.
그런 유성룡을 대하는 그의 대답은 가히 볼만한 것이었다.
“하하하! 좌상 대감은 이 몸을 어찌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왜놈들이야 온통 벗고 불두덩만 훈도 시로 가리는 야만인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놈들과 비한다면 차라리 북방 야인들이 질로서야 한수 위 아닙니까? 그런 야인 놈들도 이 팔목이 쥔 칼날아래 무수히 죽어 자빠졌소이다. 하물며 쥐새끼 같은 왜놈 들쯤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꼭 그렇지도 않소이다. 지난날의 왜구들이야 그랬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왜구들은 통신사들이나 사신들이 왔을 때 바친 조총 같은 신무기를 잘 다룬답디다. 싸움을 법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로 하는 것 아니오?”
“비록 놈들이 조총을 가졌다고는 하나 어찌 쏘는 대로 과녁에 이르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으 허 허 허!”
“그래도 걱정입니다. 우리조선은 건국 이래 태평세월을 누린지가 오래되어서 위급한 일이 있으면 대처하기가 아주 어려울까 해서요. 지금부터라도 군사를 모으고 훈련을 시켜 신무기를 개발한다면 몇 년 뒤에 적이 쳐들어 와도 큰 염려가 없겠지만 지금 같아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성룡은 그에게 제발 구태의연한 모습에서 벗어나 방비를 철저히 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말을 했지만 그는 도무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 전하. 지금 장군의 말도 일리가 있사옵니다. 싸우러 내려간 이일에게는 지금 한사람의 응원군도 아쉬울 것이오니 힘이 될 만한 장수를 가려 뽑아내려 보내소서.”
“누가 좋겠소? 천거들 해 보시오.”
“신 장군이 적당한가 하옵니다.”
김응남이 먼저 신 장군을 추천했다.
“소신도 신 장군이 괜찮은가 하옵니다. 그는 일찍이 북방에서 공을 세운 용장이옵니다.”
유성룡도 그를 거들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과연 그가 잘 해낼까 하는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큰소리를 치니 과연 어찌 나가나 보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신 장군이 이 중차대한 임무를 맡아 주겠소?”
왕이 그에게 물어 보았다.
“전하! 전하의 명에 따라 이 몸 분골쇄신 하겠나이다.”
그는 감읍하여 기쁘게 도순변사都巡邊使임무를 맡았다. 그는 대궐에서 나가자마자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유성룡 역시 군사를 모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선발대는 그가 맡았다. 그러나 정작 일본군을 막아 싸우려는 자들은 그의 밑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했다. 조금만 잘못을 해도 가차 없이 목을 날리는 그의 밑에서 어찌 싸움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전전 긍긍 하던 터였다. 지원병들은 자연스럽게 유성룡에게 몰려들었다. 유성룡은 김응남金 應 南을 부사副 使로 삼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후 어느 날이었다.
“대감 계시요?”
유성룡이 이일 저일 챙기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이었다. 누군가 큰소리로 유성룡을 찾았다.
“누구인가?”
유성룡이 김응남에게 물어 보았다.
“신 장군 같소이다.”
과연 씩씩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거드럭거리는 몸짓이 분명 신 장군이었다.
“좌상대감. 어찌 이럴 수가 있소이까?”
그가 들어오더니 김응남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유성룡에게 큰소리부터 질러댔다.
“아니 무슨 일이요?”
“ 이 김 대감을 데려가서 뭘 어쩌시겠다는 것이 오이가? 이 양반은 글이나 쓰는 문관이 지 않습니까? 지금 대감께서 가시는 곳은 전쟁터인데 소인 같은 무장이 부사가 되어 대감을 모시고 가야 마땅하오이다.”
유성룡은 마음속으로 웃고 있었다. 이미 그의 휘하에 군사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그의 말에 마음이 상한 김응남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거렸다.
김응남은 원주 사람이었다. 이율곡과 함께 한 때는 동서당쟁東西黨爭의 양당 합작 추진에 노력한 상신相臣이었다. 그가 좌의정일 때도 유성룡과는 잘 협력을 해서 선정을 배 푸는데 일조를 했다.
“허허 말씀이 심하시오. 다 나라를 위한 마음이 똑같거늘…….”
그래도 그는 씩씩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장군은 떠날 길이 급할 텐데 어찌 아직 이러고 계시오?”
유성룡이 그에게 다그치자 그는 그때 화를 더 돋웠다.
“아, 빌어먹을 군사 놈들이 당최 모여들지를 않소이다.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원.”
그는 뜰에 모여 제각각 편히 쉬고 있는 군사들을 보며 말했다.
“허허, 그렇다면 한시가 급하니 우선 내가 모집한 군사들을 데리고 가시오 나는 또 모집해서 뒤 따라 가리다.”
“그러시렵니까? 좌상.”
결국 유성룡은 이름이 적힌 단자單 子를 그에게 건네주고 군사들을 모아놓고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내말을 들어라. 지금 신 장군께서 갈 길이 급하다 하시니 너희들은 모두 신 장군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서 왜적들을 무찌르도록 해라.”
유성룡의 말을 들은 군사들이 술렁거렸다.
“아이고 나는 죽었다. 신 장군이 싫어서 도체찰사에게 왔더니만.”
군사들은 완연히 실망한 모습들이었다. 그는 무서운 얼굴로 군사들에게 호령했다.
“이제 나를 따라 오너라.”
군사들은 도살장에 끄려가는 소처럼 어께는 축 처지고 등은 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신 장군이 이끄는 대열에 뒤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양 성 漢陽 城 내의 무사들과 하급무관, 외부 관청의 잡류 한량들이 합류한 군사들이었다.
벼슬아치들은 각기 자신의 말 한마디씩 해서 떠나는 그들을 격려 해 주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왕의 기대는 여간 크지 않았다. 그를 직접 불러 보검을 하사하고 말했다.
“이일 이하의 장수들 가운데 명령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이 칼을 쓰도록 하라.”
선조는 그를 보내기는 보내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패전소식이 대부분 지휘하는 장수의 말을 듣지 않고 군사들이 도망가는 데에 있음을 알고 본보기로 활용하도록 그에게 칼을 준 것이었다.
조정의 작전이 그랬던가. 이일이 아무리 꾀가 많은 훌륭한 장수라고 하나 혼자 힘으로 적병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당대의 명장이라는 그를 보내면 군사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잘 복종할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인가. 두 장수가 힘을 합하면 능히 적을 막아낼 것이라는 기대가 자못 큰 것일 터였다.
남쪽으로 행군하는 신장군의 병력은 의기양양했다. 한동안 행군도중에 남쪽에서 비호처럼 달려오는 두 사람의 기병이 있었다. 그 들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도성으로 향하는 파발擺撥꾼이었다. 이일이 진을 치고 상주에서 왜적과 대치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고 도성을 향해 또다시 말고삐를 잡아채었다.
역시 이일이로다. 곧 승전보가 오겠구나.”
그런데 그 다음날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 좋다는 꾀를 써서 간신히 살아난 이일은 문경에 도착했다. 신 장군이 왔다가 다시 충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이일은 크게 실망했다. 이일은 거기에서 종이와 붓을 구하여 패전한 상황을 임금에게 급히 적어 보내고 곧이어 달아나 버렸다.
“이미 이일은 피해서 도망쳐오고 있다는데…….”
“상주 성을 아예 지켜보지도 못하고 쫓겨 온다는 군.”
그 소문은 즉시 사실로 확인 되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신 장군이었다.
“그게 정령 사실이더냐?”
“예. 이일 순변사가 패퇴하여 문경으로 오고 있다 하옵니다.”
그렇게 이일 군대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