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본주택 앞에는 방문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수백대 1의 청약 경쟁률이 새삼스럽지 않은 분위기다. 호황기 때나 보던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부 지역에만 나타난다. 지역별, 상품별 온도 차가 어느 때보다 크다.
요즘 분양시장은 유독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전국 217개 단지, 11만1878가구가 분양됐다. 이 중 1순위에서 청약이 끝난 단지는 95개 단지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었던 2000년대 중반도 양극화 현상은 있었다. 당시는 '수도권 vs 지방'처럼 지역별로 분위기가 달랐다.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방이라도 부산ㆍ대구는 평균 경쟁률 수백대 1인 단지가 나오지만 충청권은 청약률 '제로(0)' 단지도 나온다. 같은 지역이라도 입지ㆍ브랜드 등에 따라 선호도가 크게 갈린다.
3월 청약 접수를 받은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 e편한세상 수지는 평균 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에서 마감했다. 반면 4월 분양된 용인시 역북동 용인역북 우미린 센트럴파크는 미달됐다. 같은 지역이라도 개별 입지에 대한 호응도가 다르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부산·울산·창원은 열기가 뜨겁다. 5월 청약 접수를 받은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 코아루 파크베르(178가구)는 1순위에서 평균 5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동래 부영 효성해링턴플레이스(620가구)도 1순위 당해지역에서 3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남 창원시 자은3지구 에일린의 뜰(439가구)도 1순위에서 평균 2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면 전북·충남엔 냉기가 돈다. 충남종합건설이 5월 충남 태안군에 분양한 태안 렉시움은 80가구 모집에 순위내 청약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전북 군산 지곡동 현대엠코타운은 200가구 모집에 순위 내에서 한 명만 청약했다.
전북 고창군 읍내리 뜰안에(98가구), 강원도 삼척시 마달 세영리첼(418가구)의 순위 내 청약자가 각각 2명, 1명에 불과했다.
부산·울산·창원 지역 청약시장 열기가 뜨겁다. 지난 3월 울산 북구 호계·매곡지구 ‘드림in시티
에일린의 뜰’견본주택을 찾은 주택 수요자들.
실수요ㆍ투기수요 한꺼번에 몰려
양극화 현상이 심화한 데는 우선 실수요 중심으로 개편된 영향이 크다. 내가 직접 살 집이기 때문에 깐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 아파트에 관심을 갖는 젊은 수요층이 늘어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80%에 이르면서 비싼 전셋집 대신 내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자금력이 딸리는 젊은층을 집을 사고 싶어도 금융이자의 부담이 더 클 수 밖에 없는데 저금리 대출상품이 늘어나면서 집을 사기가 수월해진 상황인 것이다.
신규분양물량이 쏟아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올 상반기 분양물량은 23만4000여 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정도 늘었다. 분양물량이 많으니 수요자들이 골라서 청약할 수 있어 이른바 인기 단지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집값 폭락기를 겪은 수요자들이 이른바 '돈 될 상품'에만 몰리고 있는 것도 이유다.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비싸거나 입지 여건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선호도가 확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이전에는 해당 지역에 한 단지가 잘되면 인근도 잘됐다. 오히려 경쟁이 너무 셀 것 같으면 주변 단지로 관심을 갖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현상 없이 될 상품에만 몰린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투자 수요가 가세하고 있는 것도 돈되는 곳만 청약광풍이 불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청약 자격을 잇달아 완화하면서 새 아파트 청약을 받기 쉬워진 영향이다. 1순위 청약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웃돈을 노리고 인기 단지에 청약하는 투기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장지동 위례박사공인 김찬경 사장은 "특히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후불제 등 금융혜택이 있는 단지는 계약금만 내면 준공까지 추가 자금 부담이 없어 요즘처럼 분양권 시장에 활기가 돌 때는 비교적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어 돈 될 만한 단지를 중심으로 청약자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