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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우족구단[족구를즐기는사람들]
 
 
 
카페 게시글
** 자유게시판 ** 스크랩 아름다운 희망 바이러스, 안철수
삼백강정수 추천 0 조회 8 09.11.23 09: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안철수...한결같이 집중적이고 최선을 다한..

그의 삶에 대한 철학 대화 중 인상적인 대목 다섯 가지를 들어보면

.

 
1. 존댓말 안철수는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썼다. 군대에서도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도 사병에게 반말이 나오지 않아서 “이것 좀 해줄래요” 정도. 부부싸움도 존댓말. 이런 배경에는 안철수 어머님이 계셨다. 안철수 어머님은 언제나 안철수에게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하루는 학교를 지각,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가는데, 그의 어머님께서는 “학교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택시 기사아저씨가 나중에 혹시 형수님 되시는가 물을 정도였다고 하니……. 안철수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위아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역할분담만 있다는 것. 그의 존댓말과 겸손은 오늘날 안철수를 있게 했다. 존댓말이 아니라 어머님의 가르침이.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막말이 판을 치는 세상. 존댓말의 의미가 각별한 이유다. 2. 독서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썩 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를 오늘에 있기까지 한 것은 바로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시절에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책 중에서도 과학책과 소설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하루는 도서관 사서가 안철수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책을 빌려가서 과시용(책을 빌려가고 회수할 때 책에 이름 기록) 으로 책을 빌려가는 것이라고 여겨, 책을 빌려 주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획일적인 암기식 시험과 공부에 찌든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의 교육과 도서문화의 현실이 떠오른다.
 
3. 집중 안철수는 촉망 받는 예비 의사였으면서 프로그래머였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집중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입영전야 새벽까지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였으니, 그의 집중력을 누가 따라 갈까? 새벽에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구(군의학교)로 입소를 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도 그렇게 군대를 입소하는 걸 잘 몰랐다고 하니 그날 만든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이 오늘날 안철수 연구소를 있게 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최초의 버전이었다. 집중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가족의 힘이 아니었을까. 믿고, 따라 주었던 아내와 부모님..........!
4. 변화 안철수는 무릎팍도사에게 고민을 이야기 했다. "살아오면서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꾸어 왔는데 평생 직업을 갖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강호동은 예능백신프로그램을 치료해주겠다고 호언잠담했다. 안철수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국내에서 소프트웨어프로그램 자체도 생소할 때, 컴퓨터 바이러스프로그램를 개발했으니. 의사였고, 프로그래머였으면 기업가였다. 국내 벤처 기업 소프트회사로는 2번째로 연 매출 100억(제조업과 비교하면 5,000억원 규모), 국내 최초로 세후 순이익 100억의 기업으로 회사를 키워냈다. 그리고 회사를 후배와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미국 유학길(경영학공부)에 올랐으며,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에게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더불어 함께 안철수는 회사가 아니라, 공익법인(컴퓨터 바이러스연구소)을 만들고 싶었다. 공공 기관이나 단체에 설득을 해보았지만 쉽지가 않아 결국 회사를 설립했다. 원칙은 한 가지였다. 개인에게는 무료 배포, 기업이나 단체에게는 유료 판매. 안철수연구소가 자리를 잡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1999년에 일어났다,이른바 체(CHI/체르노빌 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발생, 30만대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 파괴되었다.
언론에서도 최초로 이 사건을 9시 뉴스에 보도할 정도였으니, 바이러스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흑자 기업으로 돌아선다. 미국 기업에서1,000만 불에 안철수연구소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안철수는 거부했다. V3으로 대표되는 토종바이러스가 살아지고 직원들이 해고되는 것이 눈에 뻔한데, 돈 때문에 영혼을 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주식을 무상 분배하기도 했던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안철수.
 
이야기를 풀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철수는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말로 방송의 끝을 장식했다. 도전 정신을 가지라는 것.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똑똑한 사람도 아니요,
효율성이 아니다. 효율성은 오히려 도전과 창의성을 죽일 수도 있다. 안철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사고관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일침을 놓았다.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비효울적인 사람이 바로 나다. 인생은 효율성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큰 선물은 자기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고,
자기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정당하게 노력하다 실패한 사람에게 사회는 실패자로 보지말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면 도전 정신은 생기지 않는다. 미국 실리콘벨리. 100개의 기업 중에 하나의 기업만 성공한다. 그렇지만 노력을 기울이고 정당하게 회사를 이끌다가 실패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곳이 실리콘벨리다. 강호동은 “직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고 평생 직업을 갖고 싶다”는 안철수의 고민에 답했다. “평생직업 궁금해 하지 말아라 직업이 바뀌면 더 한국에 도움이 된다” 경쟁과 효율을 최대 가치로 여기는 세상. 안철수가 던지는 말들은 많은 이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철수같은 착한 바이러스가 이 땅에 많이 퍼졌으면 한다.
'효율성이 다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안철수씨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초등학교때는 60명 중에 30등 정도였다는 그는 의대 박사과정에 처음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는 7년간이나 무료배포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는 혜택만큼 나도 뭔가 역할을 한다. 살아있는 것 같다" 는 마음으로 돈도 안되는 그일을 의사라는 바쁜 와중에도 7년간이나 했습니다. 새벽 3시부터 6시까지는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낮에는 박사 과정 학생으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돈벌이가 안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을 아무 대가없이 해온 것입니다. 바이러스 만드는 사람들도 프로그램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래서 "사명감이 중요하다" 고 말하는 그는 "선량한 많은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사명감 없이 돈벌이 수단으로 시작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하며 "작년에 금융 위기기 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금융 위기의 중심에는 좋은 대학 나온 MBA들이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어려워 진 것" "정말로 똑똑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깊은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 입니다... 의대교수로서 지도학생을 받으면 학생 몰래 백신만드는 딴 짓을 할 수 없어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때 돈이 아니라 "더 의미있고,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의 일을 선택합니다. 돈벌이가 안되기에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고 싶어 정부 부처를 여러군데 다니며 그간의 연구성과를 아무 조건없이 모두 내놓겠다고 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직접 회사를 세우게 되는데 그때도 일반인에게는 무료, 혜택을 보게되는 기업, 관공서는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적자에 허덕이던 시절, 외국 백신회사에서 1000만불에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도 단호히 거절했다는 그는 "그 외국회사의 백신을 팔려니 걸림돌이던 V3를 없애고 미국제품을 팔려는 계획" 이었다면서 "제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돈밖에 없고, 제품 없애고 직원을 정리해고 할 것이 뻔해보였습니다. 그러니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NO했죠" 라며 또한번 돈보다는 모두의 이익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회사의 ceo가 할 일은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합니다. "공통의 가치관을 만들 수 있으면 그건 내가 죽고 없어도 계속 남아있다"며 돈 버는 일보다는 가치관을 강조합니다. 100억 흑자기업이 되자 "내 회사 하나는 잘되는데 다른 벤처회사들은 어렵다"면서 "혹시 내 능력을 산업 전반적으로 쓸 수 있다면 어떨까?" 고민을 시작한 그는 "더 잘할 수 있다고는 생각을 안했는데, 해볼만 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며 회사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는 미국으로 경영공부를 하러 유학을 갑니다. 유학을 마치고 카이스트 교수로 돌아온 그는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학생 개개인이 도전정신이 사라진 건 아니다." "사회가 더 큰 힘으로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 이라며 사회 구조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다. 100개의 벤처기업 중 1개만 살고 다 죽는다 그런데 차이는 실패한 기업에게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가 없다면 계속 기회를 줍니다. 그러면 99번 실패하다라도 1번 성공해서 1000배의 성공을 하게 되면 그동안의 실패를 전부 갚고도 남음이 있는 거죠" 라며 그런 구조를 만드는 것이 벤처와 청소년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효율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 이라는 그는 의사생활의 오랜 공부가 개발자, 사업가인 나에게는 별 쓸모가 없었다며 "효율적인 인생이 성공이라고 하면 나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인생이 효율성이 다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라고 합니다 안철수의 가장 멋진 가치관은............ "자기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선물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

 

 

- 옮겨온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

 

 

Amanda Lear / I`ll miss you (Torn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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