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문재인이었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 가운데 한 사람인 그답게 그의 선거 사무실은 방문자와 지지자들로 뒤섞여 붐볐다. 대로변 큰 건물의 두 개 층을 선거사무실로 쓰고 있었으며, 조직 등 각 분야별 담당자는 물론 해직기자와 유명 카피라이터도 캠프에서 한몫을 하고 있었다. 이미 전국적 인물이다 보니 그의 선거사무실은 긴장 속에서도 한켠에선 여유가 있어 보였다. 누군가 ‘대선 캠프’를 방불케 한다고 했는데 그리 헛말은 아닌 듯했다.
아직 선거 초반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찾아갈 곳도 많겠지만 방문해 달라는 곳도 상당한 듯했다. 거의 30분 간격으로 일정이 짜여 있었고, 그 속에는 공개, 비공개 일정이 가득 차 있었다. 사전에 연락은 취하고 갔지만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어 이번 인터뷰는 사실상 비정상적으로 진행됐다. 단독 인터뷰는 엄두를 낼 상황이 되지 못해 결국 그의 일정을 따라붙어 동행취재를 했다. 그러던 중 한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어렵사리 잠시 짬을 얻어 '노상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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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구 모라동 상가에서 거리홍보 중인 문재인 후보 ⓒ진실의길 |
그는 이른바 ‘낙동강 벨트’의 중심에 서 있다. 북-강서을의 문성근 후보, 부산진구을의 김정길 후보와 함께 그는 ‘문성길’로 불리며 야당 돌풍을 이끌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그는 그 혼자 당선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부산-경남권에서 여러 명의 동반당선자를 내는 것이 그의 또 다른 목표이자 그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만약 문재인이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경남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낼 경우 이는 곧 대선가도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은 불문가지다.
다행스럽게도 여론은 현재로선 그의 편에 서 있다. 새누리당 후보로 나올 몇몇 인사들과의 가상대결에서 더러는 상당한 격차를 벌이며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세인들은 그의 지역구 지지율보다는 대선후보 중 한 사람으로서의 지지율에 더 관심이 쏠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면문제는 대선이 아니라 총선인 만큼 당장은 지역구를 돌보는 일이 그로선 급선무 같았다. 수행팀장 한 명과 함께 그는 이날도 관내 상가를 돌며 얼굴 알리기에 바빴다. 개중에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안 그런 사람도 있었는데 대략 반반 같았다.
그가 느끼는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싶어 물어보았더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자칫 이 말이 ‘앞서 있거나 우세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토를 달기조차 했다. 아직은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전국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은 그가 ‘정치신인’인데다 사상구에 지역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전국적인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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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힐링캠프’ 출연기념으로 받은 자전거가 선거사무실 한켠에 전시돼 있다. ⓒ진실의길 |
게다가 그의 대선 출마설을 두고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혹자는 ‘대선에 출마하면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그것이다. 이런 ‘안티’가 광범위하게 퍼진 건 아니다. 반면 그의 ‘대선출마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없지 않다. ‘사상구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이번이야말로 제대로 된 부산사람을 대통령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는 바램으로 읽힌다. 서울에 이어 ‘제2의 도시’로 불렸던 부산의 옛 명성을 되찾고 싶어하는 열망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현재 그의 ‘대항마’ 찾기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선거사무실 바로 옆에는 김대식 예비후보(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의 선거사무실이 있는데 건물 벽에는 김 예비후보의 대형사진이 내걸려 있었다. 호남 출신인 김 예비후보는 이 지역에 호남출신이 많아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한다. 근자에 급부상한 새 인물로는 사상구 출신의 27세 여성 손수조 예비후보인데 새누리당에서는 전략공천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또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문재인 무시전략’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권철현 전 주일대사를 거명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조용한 편이다. 과연 누가 그의 대항마가 될지 궁금하다.
더 궁금한 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것인지, 또 동반당선은 과연 얼마나 이끌어 낼지 여부다. 이는 총선 정국은 물론 올 연말 대선 레이스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여론은 그의 당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선거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 있는데다 아직 선거일까지는 40일 넘게 남아 있다. 관건은 두 가지, 지역감정과 20~30대의 투표율로 보인다. 자칫 그가 호남 기반 정치세력들의 후보라는 인상을 줄 경우 지역감정이 돌발할 수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또 20~30대의 투표율이 50%를 넘을 경우 크게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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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라동 상가 인근노상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는 문재인 후보 ⓒ진실의길 |
문재인 후보와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후 사상구 모라동 길거리에서 노상인터뷰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을 간추린 것이다.
- 주민 반응이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쁘지는 않다’, 그게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우리가 앞서 있다거나 우세하다거나 그렇지는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맞는 말이다. 기자가 현지에서 만나 본 몇 사람이나 동행취재 때 문 후보 옆에서 들은 얘기로만 치면 분위기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동네 슈퍼에서 만난 한 주부는 이 지역이 오랫동안 낙후된 점을 들어 지역개발의 절실함을 거론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으로 이 점을 물어보았다.
- 사상구의 지역 현안은 뭐라고 보십니까?
“부산이 수도권에 비해 낙후되어 있듯이 사상구도 동(東)부산권에 비하면 낙후된 지역입니다. 특히 문화적, 교육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보니 사상구민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습니다. 동부상권에 비하여 낙후된 격차를 바로잡고 균형발전이 되게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상공단은 신발-고무산업이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시절에 부산경제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를 이끌던 견인차 역할을 하던 곳인데 지금은 신발-고무산업은 사양화되거나 아니면 중국이나 동남아로 떠나버렸고 영세업자만 남아 있어 굉장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 사상구에 특별히 연고가 있습니까?
“사상구에 연고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올해 환갑이고 제 생애 대부분을 살았는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사상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략적인 판단이죠. 총선에서 저뿐만 아니라 몇 사람 정도는 동반 당선돼야 부산정치를 바꾸고 그걸 통해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 이른바 ‘낙동강 벨트’의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저 말고도) 몇 사람 정도의 동반 당선에 기여하는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서(西)부산권, 김해, 북쪽의 양산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을 선택한 거죠. 바로 그것을 ‘낙동강 벨트’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더 확장하면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됩니다. 그 ‘낙동강 벨트’의 중심에 사상구가 있습니다. 바로 그 가운데서 제가, 북-강서을에서는 문성근 후보가 함께 바람을 일으켜서 적어도 여러 명의 동반 당선을 이룩해 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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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 주민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문재인 후보 ⓒ진실의길 |
- 바람직한 공천기준을 한두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하는 게 아닌데…. 개혁적인 정체성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지역도 야권후보 단일화가 필요합니까? 전망은 어떻습니까?
“여기도 통합진보당의 후보가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야권연대는 이 지역만 놓고 단일화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부산 전역,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산 전역의 야권연대 협상에 따라서 함께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끝으로, 검찰개혁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상구 예비후보자의 신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로, 문재인 후보는 여러 차례 검찰개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문 후보는 “검찰개혁은 국민의 자유를 위해 민주통합당이 이뤄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는 물론 법무부 역시 개혁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밖에도 문 후보는 검찰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색 자원봉사자] 우장균 YTN 해직기자
문재인 후보 선거캠프에는 이색 자원봉사자가 한 사람 있다. YTN 해직기자 출신으로 작년 말까지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우장균 씨가 그 주인공. 2008년 10월 YTN에서 해직된 우 기자는 현재 '사인(私人) 자격'으로 문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부산으로 내려온 지 한 달가량 되는 우 기자는 방송사 근무 경험을 살려 지역방송사 TV토론을 비롯해 언론사 답변서 작성 및 후보 취재지원 업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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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캠프에서 ‘자원봉사’ 중인 우장균 YTN 해직기자 ⓒ진실의길 |
우 기자가 문 후보 캠프에 자원봉사를 나선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이곳에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도와 자신을 포함해 6명의 YTN 해직기자 복직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함이다. 이들은 복직 소송에서 1,2심은 승소했으며 현재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우 기자는 “문재인 후보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젊은층은 물론 노인층에도 인기가 높다”며 “언론에서도 두루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