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봉이 현달하게 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어머니이다.
약봉의 어머니는 서울 약현에다 안동 구천면 소호리 친정집을 본떠 큰 제택을 먼저 꾸몄다. 단출한 가족임을 아는 이웃에서는 그 규모 때문에 비난할 정도였다. 하지만 모친은 “우리 집안이 지금은 이렇지만 훗날 창대해져 이 집도 협소할 날이 올 것입니다”고 자신했다. 그 소망은 생전에 실현되었다. 77세의 수를 누린 모친은 칠순 때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53세의 약봉 이외, 중견 문신으로 활동한 37세의 경우(景雨)와 국왕인 선조의 사위인 31세의 경주 등 4명의 손자, 손부 그리고 증손자 8명, 증손녀 1명 등 슬하에 19명의 자손이 가득했다. 이후 모친의 소망은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약봉은 어린 시절 중부인 서엄에게 학문을 배워 성장한 뒤 율곡 이이와 귀봉 송익필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29세(1586) 때 알성문과에 급제해 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학자로서보다 관료로 더 이름을 떨쳤다. 약봉은 경상, 강원, 황해, 평안, 함경, 경기 등 6도의 관찰사와 도승지, 대사헌, 형조판서, 개성 유수, 병조판서를 역임했고 지중추부사 겸 도총관 지의금부사 등의 직도 수행했다. 그리고 선조의 유교(遺敎)를 받은 중신인 고명칠신(顧命七臣)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는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호위하여 함경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함경도 마천령을 넘어 회령으로 들어간 두 왕자 일행은 그곳의 반민(叛民) 국경인 등에 의해 붙잡혀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넘겨지는 참담한 지경을 당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 위기를 벗어난 약봉은 왕자 구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북평사 정문부를 장군으로 추대하여 경성, 길주 등지에서 전공을 세운다. 비록 왕자 구출에는 실패했지만 반민 일당을 주살하고 그 지역의 여러 군(郡)을 평정하는 데도 큰 공을 세운다. 이런 사실은 일본에서 반환되어 북한으로 인도된 함경도 의병전승기념비[北關大捷碑] 비문에 잘 나타나 있다.
경기도 포천 설운동 약봉 서성 선생 묘
서성은 문과에 급제하여 6도 관찰사와 4조 판서를 역임하였으며 광해군 때는 계축옥사(1613)로 단양, 영해, 원주로 유배를 갔었으나 인조반정으로 해배가 되어 형조, 병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아들과 자손들은 6정승과 3제학을 하는 등 명문 일가를 이루었으며 서성의 모친 고성 이씨 부인은 7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서성의 현손 여식은 영조의 정비인 정순왕후가 되기도 하였다. 그 이후 명문가는 이어져 한 말의 내부대신을 지낸 서재필도 그의 자손이다.
서성은 성품이 강직하여 떳떳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고 미천한 사람들 앞에서도 거만하지 않았으며 소실도 두지 않은 청빈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모두가 모친인 고성 이씨의 바른 교육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저술로는 증손자인 서문유가 주선해 간행한 약봉유고(藥峯遺稿)를 바탕으로 중간된 4권 2책이 남아 있다.
소호헌을 답사하며 느낀 것은 건축(建築, Architecture)은 건물(建物, Building)과 다르다는 것이다. 건물은 필요에 따라 단순한 건조 기술로 만드는 구조물이지만 건축은 ‘조형(造形) 의지와 이데올로기(Ideologie)가 담긴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축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개성과 인격의 실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건축은 삶을 위한 도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건축을 통해서 역사를 읽고, 인간의 내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거꾸로 역사를 통해서 건축의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앎이란 깨달음이며, 삶이란 변화다. 위대한 건축은 그 깨달음과 변화를 담고 있다. 영원한 건축이란 그 깨달음을 전달해 주어 또 다른 앎을 가능하게 하며, 항상 변화하면서 또 다른 삶을 얻게 하는 것이다.
소호헌, 앎이란 깨달음이며, 삶이란 변화다. 위대한 건축은 그 깨달음과 변화를 담고 있다.
건물은 집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집을 매개로 벌어지는 개별적인 깨달음의 과정이고 집단적인 문화 활동이다. 따라서 역사 속의 건축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과거의 건축인들이 고민했던 생각들이며 그들이 도달했던 깨달음이며 그들이 성취했던 실천의 결과와 행위들이다. 과거의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나 장식이 아니고 심지어는 공간과 그 구성 방식도 아닌 지식이며 지혜이며 정신이다.” 필자가 소호헌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점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