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입문
사도행전도 셋째 복음서처럼 바오로 사도의 동료인 루가의 작품이다.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자기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200년쯤 되었을 때, 온 교회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이 작품을 성서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와 신앙의 규범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늦어도 4세기부터는 부활 시기의 성찬 전례 중에 이 사도행전이 봉독된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초기 수백 년 동안 교회의 신앙에 빛을 비추어 준다. 또한 세례에서부터 시작하여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인 스데파노’가 그 첫 본보기를 보인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활력을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사도행전에 그려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은 당시에 갓 태어나기 시작하는 수도 생활에도 큰 영감을 준다. 그 뒤로 모든 개혁 운동이나 선교 운동에는 반드시 복음과 바오로의 권고와 함께, 사도행전이 상기시키는 ‘사도적 삶’에 대한 향수가 섞여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18세기부터는, 이렇게 오래 된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가지 확신이 이른바 비평적 성서학에서 문제시되기에 이른다. 이 비평적 학문에는 그 동안 과도한 점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의 업적이나 장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곧 이 현대적 성서학은 사도행전의 이해에 꼭 필요한 도구이다. 다만 이 학문을 엄격히 적용시켜, 학자들이 연이어 제기하는 가설들을 절대적 가치를 지닌 교의로 변질시키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 학문이 지니는 한계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1. 사도행전의 본문
옛날 작품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그 본문을 확정지어야 한다. 사도행전의 경우에는 이 본문 확정이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도행전의 본문을 담고 있는 대부분의 고대 수사본들은 두 가지 주요 본문 형태를 제시한다. 곧 ‘시리아 본문’ 또는 ‘안티오키아 본문’이라고 불리는 것과 ‘이집트 본문’ 또는 ‘알렉산드리아 본문’이라고 불리는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신약성서 입문 21-28쪽 참조). 그런데 ‘서방 본문’이라고 불리는 제3의 본문 형태와 비교해 보면, 앞의 두 가지 형태가 서로 가깝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 둘을 ‘일반 본문’이라는 이름으로 결합시킬 수 있게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서방 본문’의 이문(異文)들, 곧 ‘일반 본문’과 다른 것들이 사도행전의 원문을 드러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서도 이 이문들이 서방은 물론 동방에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에 내포된 역사나 교리에 관한 관심은 주목할 만하다.
2. 문학적 관점에서 본 사도행전
사도행전에 쓰인 말과 거기에 담긴 생각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이 작품의 통일성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서로 형식이 매우 다른 두 부분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부분(1-12장 또는 1-15장)은 하나의 단일체를 이루기는 하지만, 그 구성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기보다는 단순하게 연이어 배치되어 있다. 연대도 드물게밖에 표기되지 않는다. 언어는 흔히 아람 말풍이고 사상도 여러 면에서 고풍스럽다. 반대로 둘째 부분(13-28장 또는 16-28장)은 줄거리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체계도 더욱 잘 잡힌 단일체라는 인상을 준다. 연대기적인 자료도 수가 부쩍 많아진다. 또 첫째 부분보다 훨씬 순수한 그리스 말로 쓰여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이 둘째 부분에서는, 3인칭 이야기로 전개되다가 신기하게도 네 차례나 복수 1인칭 이야기로 넘어간다(16,10 각주 참조).
사도행전에서는 일정한 길이를 지닌 문학적 단락들을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 단락들은 모두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곧 선교 이야기이거나(2,1-41; 8,4-40; 9,32-11,18; 13,1-21,26) 재판 이야기이다(4,1-31; 5,17-42; 6,8-8,3; 12,1-19; 21,27-26,32). 그리고 마지막 단락(27-28장)은 긴 여행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렇게 어느 정도의 길이를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락들은 다시, 본문 분석 작업을 통하여 더욱 작은 소단락으로 분할된다. 그리고 이 소단락들은 두 가지 주된 유형에 속한다. 곧 이야기와 담론(談論)이다.
대화가 들어 있기도 하고 들어 있지 않기도 한 이야기들은(10,1-8.9-16.17-33; 21,27-36; 22,30-23,11; 25,1-12 등),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1,6-11; 2,1-13; 3,1-10; 4,1-22; 5,1-11.17-42; 8,4-25 등).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기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도행전의 첫째 부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에 관한 ‘개요(槪要)’ 또는 일반적 서술도 이야기 범주에 속한다(2,42 앞 소제목의 각주). 그리고 이 책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간략한 일반적 언급들도 이 부류에 소속시킬 수 있다(6,7; 9,31 등; 16,5; 19,10.20 등).
담론 역시 그 내용이나 형식이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의 담론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설교(2,14 앞 소제목의 각주; 10,36 첫째 각주; 14,15 첫째 각주), 유다 또는 로마 재판정에서 펼치는 변론(4,8-12; 5,29-32; 7,1 앞 소제목의 각주; 22,1 각주),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강론(1,16-22; 11,4-17; 15,7 각주; 15,13 각주; 20,18 각주) 등이 있다. 여러 기도와(4,24 각주) 편지 하나도(15,23-29) 이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다인 또는 이교도가 한 짧은 담론들과(5,35-39; 19,25-27.35-40; 24,2-8; 25,14-21) 편지 하나도 전해진다(23,25 각주).
사도행전의 저자는 물론 여러 가지 사료를 이용하였다. 많은 표지가 이러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사료들은 이미 기록된 것들도 있었고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사료들은 신빙성만이 아니라 매우 큰 권위까지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작품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한 저자 한 사람이 이 책을 편집하였는데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두 부분이 서로 확연히 다른 이유가 바로 사료들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이 사료들을 확실하게 구분해 내는 작업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복수 1인칭을 주어로 하는 단락들은 ‘여행 일지’나 ‘항해 일지’가 하나의 사료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하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그 일지이고, 또 그 일지를 이용한 저자가 어디까지 손질을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반대로, 이 사료들이 초창기의 교회 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는 잘 알 수 있다. 각 지역 교회마다 그 교회의 설립 이야기와 그 역사가 잘 보존되어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1데살 1,6; 2,1; 1고린 2,1-5; 3,5-6 등), 설립자의 생애 가운데 어떤 일화들이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1데살 2,2; 3,1-2; 2고린 11,22-12,10; 갈라 1,15-3,14 등; 히브 13,7). 교훈적인, 때로는 놀랍거나 색다른 이러한 자료들은 또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1데살 1,8; 2,14; 1고린 16,1; 2고린 8,5; 갈라 1,13-23. 그리고 사도 14,27; 15,3-4). 예루살렘이나 안티오키아 같은 주요 거점들은(11,19 앞 소제목의 각주) 이러한 관점에서 틀림없이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또 이런 류의 자료들은 구두(口頭)나 기록 전승을 통해서 계속 보존되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항해 일지’를 기록한 이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한 인물일 경우, 바오로의 동료인 이 저자는 자기의 개인적인 기억도 상당 부분 이용하였을 것이다.
3. 사도행전과 역사
사도행전이 저술될 때에 쓰인 사료들을 분명하게 밝혀 내지는 못하지만, 이 책의 역사적 가치, 무엇보다도 이야기와 담론이 배치된 배경의 역사적 가치는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성서 외의 일반 역사와 고고학의 자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약성서의 다른 부분, 특히 바오로의 서간들이 제공하는 자료를 가지고 서로 비교해 보면, 사도행전의 역사적 배경과 일부 세부 사항들이 정확한지 여부를 밝혀 낼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많은 경우에 사도행전의 역사적 진실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기원의 연대기,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생애 및 서간들과 관련된 연대기의 요소들을 확정지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역사가는 외적으로 달리 대조해 볼 방도가 없어서 사도행전 자체 안에서만 고찰해야 하는 많은 자료도 먼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 출발해도 된다.
물론 이렇게 사도행전 자체를 분석해 나아갈 때, 여기저기 이야기 안에서 서로 어긋나거나 일치하지 않는 점들도 드러난다. 이것들은 저자가 가지고 있던 자료들의 불확실성이나 결함에서 나올 수도 있고, 저자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애초의 사료들에 담긴 내용들을 변경하거나 달리 해석한 데에서 나올 수도 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야기들 자체의 개연성을 밝히는 데에는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 기준은 세심하게 이용해야 한다. 저자가 이야기를 전하면서 고려한 사항들이 항상 역사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어려운 경우는 특히 기적 이야기이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저자 자신이, 또는 그가 이용한 사료에서 이미 기적을 크게 부각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적에 관한 부분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초창기 그리스도교에서 기적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로마 15,18-19; 2고린 12,12; 히브 2,4. 그리고 마르 16,17-18 참조).
사도행전에 나오는 담론들의 역사성은 이야기 부분보다 훨씬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자기들이 자유롭게 꾸민 담론을 역사의 주인공들이 실제로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담론이 대부분 짧은 것으로 보아, 주인공들이 담론을 할 때에 곁에서 누가 속기를 하였다든지, 상세히 기억하였다가 나중에 그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담론과 이야기 사이의 말이나 생각이 비슷하다는 점 등은, 담론들이 작성될 때에 저자 자신이 다소간에 깊숙이 개입하였음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담론들이 지니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여러 설교나 바오로가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한 강론(20,18-28) 같은 데에서는, 그 전체 구조와 몇몇 요소가 그리스도교 설교의 여러 형태를 충실히 반영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 다른 담론들도 일반적으로는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역사적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일은, 저자가 제시하는 자료들, 특히 ‘항해 일지’를 얼마나 역사적인 것으로 판단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
사도행전이 역사 문헌으로서 지니는 마지막 면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문헌의 침묵, 곧 이 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들이다. 사도행전은 예컨대 여러 교회를 언급하면서도, 교회들의 설립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28,13 둘째 각주). 그리고 바오로가 고린토 교회를 질타한 말도 전하지 않는다(19,1 각주). 이러한 침묵은 그 동기가 어디에 있든 간에, 사도행전이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전반적 역사서도 아니고 바오로의 완벽한 전기도 아님을 보여 준다.
4. 사도행전의 신학
사도행전을 역사 문헌으로만 여김은 잘못된 이해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 책에는 신앙으로 해석된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모든 담론에서도 필요에 따라 상기되는 지난 역사, 또는 과거의 이러저러한 일화가 먼저 나름대로 재해석된다(2,16-21.33; 4,10-12; 11,17-18 등). 이러한 해석은 하느님께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개입하시는 서술 부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천사와(23,8 각주) 당신의 성령(1,8 각주), 그리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행동하시고(15,4-12; 19,11 등), 교회의 성장은 바로 그분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것(2,47; 11,21.23) 등이다. 이리하여 사도행전의 역사적 목표는 복음서들보다 더욱 분명하게 신앙의 목표 속에 통합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옛 역사가들처럼 사도행전의 저자도 역사가이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역사가이다. 그래서 이 저자에게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의 신앙, 그 신앙의 내용, 달리 말하면 그의 신학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의 신학은 사도행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그 본질은 담론, 특히 설교에서 잘 드러난다.
(1) 구원 역사
그리스도교의 설교는 구원의 역사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 역사의 주인공은 우주를 창조하시고(17,24 등)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느님이시다(3,25; 13,17 등). 그리하여 이 세상 역사의 한복판에서, 율법과 예언서들도 복음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곧 복음을 향한 첫 단계로서(13,17-22; 7,2-50), 예표(豫標)의 때로서(7,25 각주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계획을 미리 알려 주는 약속과 예언으로서 복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2,23 각주).
이러한 약속과 예언이 이루어지는 성취의 시대는(3,18 각주)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신’ 때부터 시작된다(3,22.26; 13,23). 그리하여 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삶을 살아가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신다(1,22; 2,22; 10,36-38). 그리고 유다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하느님의 계획이 계속 실현되어 나아간다.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예수님을 부활시키시어, 그분을 “주님과 메시아(그리스도)”로 세우시고(2,36 각주) 그분께 약속된 성령을 베푸신다(2,33). 그리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실현된다(13,22-23). 그러나 이 약속의 대상이 이스라엘과 함께 “땅 끝에 이르기까지”(1,8 각주)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이기 때문에(2,39 각주), 이 약속의 성취를 향하여 구원의 역사가 지속되는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미래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1,7.10-11) ‘현재’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루가 4,21 각주 참조). 그럼에도 미래는 여전히 마지막 지평선이다. 미래는 바로 하느님께서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10,42 각주)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3,20) 당신의 계획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날이다.
(2) 하느님의 오늘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사람들이 보고 듣는 사항들은(2,33) 구약성서의 예언들을 계속 성취시키는 것들이다(2,16-21; 13,40-41; 15,15-18; 28,25-27). 이러한 역사에서도 하느님께서 계속 주인공이시다. 예수님 역시 이제는 비록 더 이상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으시지만, 하느님과 함께 여전히 모든 사건의 핵심으로 남아 계신다. 곧 예수님의 사명 수행이 계속되는 가운데(3,26),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널리 베풀어 주시고(2,33), 성령께서는 교회의 생활에 생명력을 부여하시며(1,8 각주) 또 직접 바오로를 통하여 “이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게 빛을 선포”하신다(26,23).
구원 역사의 ‘현재’를 보는 이러한 시각을 사도행전의 저자가 처음으로 생각해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시각은 이미 사도행전 이전에 쓰인 바오로의 서간들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2고린 1,20)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지대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바오로는 구약성서의 내용이 예컨대 신앙에 의한 구원으로 계속 성취되는(갈라 3,6-9; 로마 1,17; 4 등) “오늘” 또는 “지금”이라는(2고린 6,2) 전망 속에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사도행전과 마찬가지로 바오로에게도,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는 스스로 효력을 내고 또 퍼져 나아가는 하느님 자신의 말씀이다(1데살 2,13-14; 2데살 3,1; 골로 1,5-6). 그리고 이 말씀은 표징을 일으킴으로써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드러낸다(로마 15,19; 2고린 12,12). 바오로의 회심 자체가 하느님의 계획 안에 들어가 있었다(갈라 1,11-12.15 등). 이러한 바오로에게 교회의 삶은 예수님 시대의 연장으로 여겨진다(1데살 2,14-15. 그리고 히브 2,3-4 참조).
이로써 사도행전의 저자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현재가 지니는 중요성을 처음으로 깨닫지 않았음이 명백해진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복음서의 연속으로서(1,1) 사도행전을 저술하리라고 결심한 바로 그 날, 이 “오늘”을 더욱 크게 부각시킨 것이다.
(3) 하느님의 말씀과 그 ‘공간’: 사도행전의 구상
사도행전에서 이 “오늘”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말씀과 기쁜 소식의 때,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증언의 때이다. 이러한 신앙의 첫 증인은 유일무이한 자격을 갖춘 열두 사도이다(1,2 각주; 1,22 각주). 스데파노, 필립보, 바르나바, 그리고 바오로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13,31 각주), 이 책 끝까지 울려 퍼지는(28,30-31) 말씀의 선포에 동참한다.
사도행전은 이 말씀이 퍼져 나아가는 지리적 공간, 그리고 동시에 인간적 공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루가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등장하시어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마치신다.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2-5장) 사마리아와 유다 지방으로 펴져 간다(8,1 첫째 각주). 이어서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시리아에 다다른 복음은(11,19-22) 다시 소아시아와 그리스로 출발하여(13-18장) 마침내 로마에 다다른다(28,30 각주). 이렇게 하여 부활하신 분께서 원하셨고(1,8) 또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에 예시되었듯이(2,11 각주), “땅 끝에 이르기까지” 퍼져 가는 말씀의 움직임은 이제 결정적인 단계에 이른다. 복음이 이렇듯 곳곳에 선포됨은, 복음이 “모든 사람”을(17,31) 위한 것임을 뜻한다. 먼저 이스라엘(2,39 각주; 3,25-26), 이어서 다른 민족들이 이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하느님과(2,39; 15,7-11.14)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22,21 각주), 복음과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다른 민족들에게로 넘어감이(13,46 각주) 이 사도행전의 주제이다. 고르넬리오의 회개(10,1 앞 소제목의 각주), 안티오키아에 사는 그리스계 사람들의 복음화(11,20 각주),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선교가(13,1 앞 소제목의 각주) 이러한 개방의 첫 단계이다. 이 개방은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에서 잠시 문제시되기도 하지만, 결국 확정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진다(15,1 앞 소제목의 각주). 이리하여 바오로는 큰 선교 여행을 나설 수가 있게 된다(15,36 앞 소제목의 각주). 그리고 그는 구속되어 로마로 압송됨으로써(21,33-28,16) 본디의 소명대로, 로마 곧 이교도 세계의 수도에까지 복음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28,31 각주). 세부 사항에서는 더러 확실하지 않은 면들도 없지 않지만, 사도행전의 구상은 하느님 말씀의 전파를 표시하는 이러한 지리적이며 인간적인 단계에 따라 분명하게 드러난다.
(4) 회개와 신앙, 세례와 성령
그리스도교의 설교는 청중에게 회개할 것을(3,19 각주), 무지에서 벗어날 것을(3,17 각주) 촉구한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여 믿으라고 촉구한다(2,36 각주). 사도행전이 말하는 이 믿음은 인간의 자유 행동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이다(5,31; 11,18; 15,9; 16,14 등). 이 하느님께서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시고”(14,27) 주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4,12 각주; 15,11). 죄를 용서받고(3,26 각주; 5,31; 10,43 등)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성령을 받는(2,38; 10,45; 11,17) 하느님의 이중 은총에, 교회 쪽에서도 신비스럽게 이중 예식으로 부응한다. 곧 죄를 용서받는 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가(2,38 둘째 각주. 그리고 1,5 각주; 19,5 각주 참조), 성령을 받는 데에는 안수가 거행된다(6,6 각주. 그러나 10,44 각주도 참조). 그리하여 새로운 신자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이 되고(1,5; 11,16),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에(1,4)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5) 교회 - 지역 교회 - 하느님의 백성
회개 또는 개종한 이들은 자연히 집단을 이루게 되는데, 사도행전은 이 집단을 바로 “교회”라고 부른다(5,11 각주; 11,26 둘째 각주). 이 책 곳곳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교회는 그 수가 많아지면서도 모두 같은 ‘하느님의 길’을 걷는다는 인식을 갖는다. 이렇게 많은 교회의 구성원들은 어디에서 살든 자신들을 여러 명칭으로 부르다가, 마침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11,26 마지막 각주; 26,28). 그리고 이렇게 많은 (지역) 교회들로 이루어진 전체를 “교회”라는 동일한 낱말로 일컫게 된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이다(20,28 둘째 각주. 그리고 9,31 각주 참조). 아무튼 사도행전의 저자에게, 모든 신자가 하느님의 유일한 백성을 이룬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잘려 나가기도 하겠지만(3,23 각주. 그리고 13,46 각주 참조), 할례를 받은 유다인들이건 할례를 받지 않은 다른 민족들이건, 결국은 아무 구분 없이 같은 신앙에 따라 이 유일한 백성 안으로 모여들게 된다.
하느님께 속한 이 백성과 교회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하느님과 주 예수님께 가까운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이 된다(9,5 둘째 각주). 그리고 교회 공동체 가운데에서 어느 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주님과 결합됨을 뜻한다(2,47과 5,14; 11,24 참조). 이 주님의 성령께서 교회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며 인도해 주신다(1,8 각주; 5,3-4.9; 9,31; 15,28; 20,28 등).
(6) 교회의 삶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사도행전 첫째 부분의 ‘개요(槪要)’는 초창기 교회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떻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것들은 곧 사도행전의 저자가 판단하기에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동체가 이상으로 삼아 정진해야 할 바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첫 개요는 무엇보다도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열성을 강조한다(2,42). 이 가르침에 교회의 다른 책임자들의 가르침이 이어지게 된다(14,22; 20,7.18-35 등). 이러한 가르침은 개종자들이 믿게 된 메시지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틀림없이 형제적 사랑을 강조함으로써(20,35 참조) ‘도덕’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형제적 일치’가 가르침에 이어 곧바로 부각되는 그리스도적 삶의 한 면이다. 이 일치는 본질적으로 모두 “한 마음 한 뜻”을 가짐으로써 이루어진다(4,32; 2,44 각주). 사도행전의 핵심적인 일화가 바로 할례를 받은 유다인들과 할례를 받지 않은 다른 민족들로 구성된 많은 교회 사이의 일치가 어떻게 보존되었는지 잘 보여 준다(15,1-35). 또한 이 영적 일치는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2,44 각주), 또는 적어도 형제들 사이나(9,36 둘째 각주; 10,48 둘째 각주; 20,34; 21,24) 여러 교회 사이에 재물을 나눔으로써(11,29 각주) 꽃을 피우게 된다.
사도행전이 강조하는 교회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두 가지 요소는 ‘빵을 떼는 것과 기도’이다(2,42). 빵을 떼는 일은 성찬례를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2,42 각주; 13,2 각주; 20,7 각주). 기도는 성찬례라든가 세례라든가(22,16 각주) 안수와 같은(8,15.17) 전례의 구성 요소로 그치지 않는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일상 생활이 기도와 더불어 이루어진다(1,14; 4,24 각주; 9,40; 10,9; 12,5-12 등).
(7) 열두 사도 - 일곱 협조자 - 바오로 - 예언자, 원로
교회 안에는 특수한 기능을 맡아 수행하는 집단들이 돋보인다. 그 가운데 첫째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1,13; 2,14; 5,3.29; 9,32; 15,7) 열두 사도이다(1,2 각주). 사도들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다른 데에서도 자기들만의 유일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의 역할은 증인과(1,8 각주) 말씀 봉사자로서의(6,2) 근본적 소명 수행에 그치지 않는다(4,33-37; 5,12.18.40; 9,27 등). 그들이 적어도 처음에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로 이루어진 첫 공동체가 전반적으로 중심과 조정의 구실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8,14; 9,32; 11,1.27-30; 15,2; 15,36 앞 소제목의 각주).
이 사도들은 책임을 맡은 일이 너무 많아지자 자기들은 본질적인 직무에 전념하려고, 일곱 사람을 뽑게 하여 그들을 봉사자로 임명한다(6,1 둘째 각주). 반면에 바오로는 예수님에게서 직접 소명을 받는다. 이 소명은 제자들의 소명과 수준은 다르지만(13,31 각주) 여전히 중차대한 것이다(22,21 각주). 이러한 특수 소명을 수행함으로써 바오로는 여러 교회의 설립자와 책임자가 된다.
예언자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임명을 받은 자’가 아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 교회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이다(11,27 각주).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가 설립한 교회와 관련하여 원로들도 언급되는데, 이들은 바오로가 없을 때에 교회를 책임지도록(20,18 각주; 20,28과 두 각주) 바오로에게 ‘임명을 받은 이들’을 가리킨다(14,23 각주). 예루살렘에도 야고보 사도를 중심으로 한 원로들이 있었다(21,18. 그리고 12,17; 15,13 참조). 이들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이들도 바오로 교회의 원로들과 같은 식으로 임명을 받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소개하는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들은 적어도 일정한 구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형제들”의 역할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예언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이들 역시 여러 번에 걸쳐 교회의 중요한 결정에 동참한다(1,15-16; 6,3; 13,1-3; 14,23 각주). 그리고 성령께서 “온 교회와 더불어” 내리신 결정으로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종결된다(15,22.28). 저자에게는 ‘일치’의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형태가 교회의 이상적 통치 형태일 것이다.
(8)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사도행전 신학의 마지막 항목은 그 중요성 때문에 따로 다루어야 한다. 곧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넘어감, 율법을 통한 구원에서(15,1.5) 신앙과 은총을 통한 구원으로(15,9.11) 넘어감을 저자가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이다.
바오로는 아그리빠 임금 앞에서, (역설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사실 하느님의 “길”을 걸으면서도 곧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이스라엘의 신앙과 희망을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고 확언한다(26,22 각주). 유다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도 유다교의 관습(2,46 각주), 율법과 할례를 버리지 않는다(15,5; 21,20-21). 베드로도 예외가 아니다(10,9.14). 적대자들의 말과는 달리 스데파노 역시 율법에 관하여 그렇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6,13 둘째 각주). 바오로는 말로만이 아니라(21,24; 25,8) 실제로도 율법을 충실히 지킨다(16,3 각주; 21,26; 22,17). 그리하여 유다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그리스도교이기는 하면서도 여전히 유다교에 깊이 뿌리가 박혀 있다. 이러한 상황 그 자체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음으로써, 저자는 그것을 정상적인 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이며 메시아(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약속의 현재 수혜자인 이 새 이스라엘은, 예수님도 하느님도 유다계 신자들에게 사전에 계시하신 적이 없으신 구체적 방식에 따라 다른 민족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할례를 받지 않은 첫 이교인들, 곧 가이사리아에 사는 고르넬리오를 비롯한 그의 친척과 친지들이 개종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몸소 개입하신다(10,1 앞 소제목의 각주). 곧 신앙으로 정화된 이 이민족 출신 신자들을 유다인이 방문하거나 식사를 함께 한다 하여도 “부정”하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느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일깨워 주신다(10,28 각주; 10,35 각주).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환영한다(11,18). 그러나 이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그것을 하나의 예외로만 해석한다. 그래서 이들은 나중에 안티오키아에 사는 그리스계 개종자들에게(11,20-21)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려고 한다(15,1.5). 이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다인들과 비유다인들의 공생과 공동 식사로 야기된 문제를 과격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문제의 해결이 가이사리아에서 결정적으로 제시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는 새로운 방식에 따른 해결이 예루살렘에서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아주 만족스럽게 서술한다(15,4-29). 그러나 사실은 이 승리가 타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15,19 각주; 15,20 각주). 이러한 타협을 봄으로써 교회의 일치도 보존된다. 아무튼 타협을 했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사항은 그대로 유지된다. 할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그리스도인들은 오로지 믿음과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15,9.11).
그렇다면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할례와 율법을 계속 충실히 지켜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러한 의문이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저자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유다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기 전부터(13,46 각주), 저자는 이제 다른 민족들이, 그들만은 아니라 할지라도(28,30 각주) 그들이 우선적으로 구원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명백히 생각하기 때문이다(28,28 각주).
5. 사도행전의 대상과 저술 목적
저자가 이 사도행전을 누구를 위하여 또 무슨 의도로 저술하였는가라는 문제는, 이 작품을 역사적으로 또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특별히 중요하다.
저자는 자기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 집단에서 유다인들을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 유다인 독자들 가운데 일부는, 할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유다교적 충실성이라든가 구약성서의 성취라는 주제에 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일차적으로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유다인들을 주독자로 여기기에는,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거부 반응,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유다인들의 책임(2,23; 3,13-15; 13,27-29),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면서 유다인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저자가 너무 강조한다. 우선은 이교 출신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가설이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들에게 결국은 구원이 제시된다(28,28). 그리스도교의 주선교사인 바오로도 유다인이기는 하지만 태생적으로 로마 시민이다(16,37; 22,28 각주). 이 바오로가 무죄하다는 점은 여러 로마 법정에서 인정된다(18,15 각주).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선포하는 “길”이 무슨 선동적인 정치 운동도 아니고(17,7 각주) 무슨 새로운 불법 종교도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이다(18,13 각주). 그래서 사도행전이 황제의 법정에서 바오로를 변호하기 위한 변론일 개연성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저자가, 아직 이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우연히 자기 책을 읽을 경우에 유익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저술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이라든가 계속 분명하게 표현되는 신앙, 또 논의되는 문제 등, 이 모든 것은 저자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 독자를 위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의 첫 의도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반대되는 바오로의 선교 입장을 변호하는 것인가? 이러한 추측이 맞다면, 바오로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논거를 뒷바침해 줄 수 있는 사실, 곧 그리스도교 첫 세대 사람들이 유다인으로서도 충실한 삶을 계속 살았다는 사실을 감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이렇게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사실 그의 주된 관심은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자기가 쓴 제3복음서처럼 그리스도인들을 교육하고 교화하려고 사도행전을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로마에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울려 퍼지는 날까지 그 말씀의 전파를 이야기한다(28,31). 저자는 신앙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혹시라도 그리스도교를 유다교화하려는 경향에 반대한다. 반대로, 할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유다교적 충실성을 존중함으로써, 할례를 받지 않은 형제들 쪽에서 그들을 비판할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린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일치와 친교의 사람이다. 그는 온 교회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한 마음 한 뜻”이었던 예루살렘의 교회처럼 살아가라고 촉구한다.
6. 저자와 집필 연대
지금까지 말해 온 것처럼, 저자가 누구이며 그가 언제 이 책을 집필하였는지 규명하지 않고서도 사도행전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가 누구이며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처럼,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저자와 저술 연대에 관한 고전적 문제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제3복음서의 저자와 같다. 이러한 전통적 견해는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저자가 같다는 것은 두 작품의 머리말을 비교해 보면 확실해진다. 둘 다 데오필로에게 헌정되는데(루가 1,3; 사도 1,1), 사도행전의 머리말은 루가 복음서의 머리말을 가리킨다(1,1 각주). 또 이 두 작품의 말과 생각에 관한 연구가 저자의 동일성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저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사도행전에는 “우리”를 주어로 하는 단락들이 있는데(13쪽), 이 사실은 저자가 바오로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임을 시사한다. 이렇게 저자를 은밀하게 가리킨다는 사실, 이 책에서 바오로의 선교에 부여하는 위치, 바오로의 사상과 중요한 점에서 일치한다는 사실 등은, 저자가 바오로 곁에 있던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의사 루가”가(골로 4,14; 필레 24) 유일한 가능성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다른 자료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사도직의 개념이라든가(13,31 각주) 율법의 역할 같은 중요한 사항과 관련해서까지, 사도행전의 생각과 바오로의 여러 서간에 나타나는 생각의 일치 여부가 적어도 계속 문제로 남는다. 그리고 사도행전이 말하는 어떤 것들이나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어떤 사항들은 참으로 놀랍다. 예컨대, 바오로의 동료라는 저자가 다른 데에서는 이교인들의 개종 문제에 관하여 그토록 명백하게 관심을 보이면서, 어째서 갈라디아 교회의 위기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가? 이는 간과할 수 없는 실제적인 문제이다. 그렇다면 제3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오로의 동료일 수 없고 그에 따라서 루가가 유일한 후보자일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다고 결론을 지어야 하는가? 이는 적어도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이 책의 집필 연대와 관련해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 머리말에 따르면(1,1) 사도행전이 루가 복음서 다음에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정확한 연대를 규명하는 일은 쉬운 문제로 여겨졌다. 저자는 바오로가 팔레스티나에서 받은 재판에 관해서는 길게 이야기해 놓고서, 정작 로마에서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는 저자가 바오로의 로마 도착 “이 년”(28,30) 뒤에 자기의 작품을 저술하였기 때문에, 그 결말을 알 수가 없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집필 연대가 바오로의 재판이 완결되기 전인 62-63년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루가 복음서, 그리고 그보다 앞서 집필된 마르코 복음서의 연대가 훨씬 이전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는 전체적으로 보아 현대 성서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다. 이 밖에도 저자가 왜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책을 집필하지 않았는지(28,30 각주), 왜 적어도 종결 부분만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바오로가 유죄 판결을 받든(20,22-24; 21,11-14 참조) 무죄로 석방되든(26,32. 그리고 필레 22 참조), 사도행전의 독자들에게는 두 경우 다 놀랄 일이 아니다. 사실 바오로가 로마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저자의 관심이 재판에서 이 책의 더욱 중요한 주제로 옮겨 간다. 곧 “땅 끝에” 있는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다(28,30 각주). 바로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라는, 곧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23,11).
사도행전의 끝 부분을 이렇게 해석하면, 이 책 편집의 정확한 연대를 더 이상 규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현대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제3복음서는 70년 이후, 그리고 사도행전은 그보다 십 년 가량 뒤인 80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생각한다.
7. 사도행전의 의의
사도행전은 어떤 의미로 신약성서에서 현시성이 가장 큰 책이다. 이 책에서 펼쳐지는 “말씀”의 시간과 공간이,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11)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형제들”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인내심을 가지고 다 함께 이 책을 읽는 법을 알게 된다면, 다양성 속에서도 하느님의 유일한 백성을 이루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땅 끝까지” 공동으로 증언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베풀어 주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일치된 결정’을(15,25) 불어넣으시어, 다 함께 “주님의 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실 것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정영식 신부의 신약 성경 읽기] 13. 사도행전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신약성경 복음서의 핵심 주제는 ‘하느님 나라’(마르 1, 15 참조)라고 이미 말했다. 또 이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고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앞선 글에서 밝혔다.
이제부터는 사도행전과 서간에 대해 개략적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사도행전은 굉장히 쉽다. 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담고 있는 성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수 사후 사도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사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또 성령을 받게 되면서 상황은 급 반전된다.(사도 2, 1~13 참조) 벌벌 떨기만 하고 매일 눈치만 보던 사람들이 확 바뀐 것이다. 그래서 확 바뀐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들은 사도행전을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사도행전을 펴서 함께 읽어보자. 이제 사도들은 다락방에 숨어서 벌벌 떨기만 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길거리로 나가서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한다.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를 하고 첫 신앙공동체가 생긴다. 첫 신앙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첫 신앙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은 2장과 4장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함께 읽어보자.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 42~47)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사도 4, 32~37)
오늘날 소공동체 운동은 바로 이러한 초대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예수 부활 기적을 믿을 수 있다면, 이 땅에서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가능한 신앙 공동체의 구현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
이어 3장에는 장애인을 치유하는 베드로 사도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들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신에 차서 설교를 계속한다.
그러자 박해가 이어진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도울 믿음과 성령인 충만한 일곱 봉사자(부제)를 뽑는데, 그 중 한 명인 스테파노가 체포된다.(6장) 체포된 스테파노는 성령에 충만해 그리스도를 증거한 다음, 순교하게 된다.(7장)
8장부터 사울 이야기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다. 사울은 훗날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바오로 사도의 속명이다. 사울은 8장에서 교회를 박해하지만 9장에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큰 빛을 받아 개종을 하고 신앙을 갖게 된다. 이후 야고보의 순교(12, 1~5) 등 박해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바오로 및 바르나바의 파견(13, 1~3) 등 교회의 활발한 선교활동이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방인에 대한 선교가 계속되면서 교회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할례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했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경우, 유다인의 관습인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 받지 않아도 되느냐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이 모두 예루살렘에 모여 회의를 하는데(15장) 이것을 우리는 제 1차 세계 공의회라고 부른다.
공의회에 참석한 바오로는 이방인들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강변했으며, 결국 공의회는 이방인의 할례를 유보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이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만약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의무적으로 할례 예식을 치러야 했을 지도 모른다. 할례 예외 규정은 당시 복음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제했다면, 그리스도교 신앙 전파에 차질을 생겼을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하느님은 늘 가톨릭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7년 4월 8일]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베드로의 담화
베드로의 오순절 담화에 이어 사도행전에는, 몇몇은 베드로에게 속하고 몇몇은 바오로에게 속하는 다른 담화들이 나온다. 이 담화들은 사도행전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묻게 되는 상당한 유사점들을 어느 정도 강조해서 보여준다.
성전 입구에서 앉은뱅이에 대한 치유가 있은 뒤 방문객 무리가 베드로 주위에 몰려온다. 바로 오순절 축제 때 그랬던 것처럼 사도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사도 3,12-26) 기회를 포착하여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놀라움을 이용한다. 최소한의 염려도 없이 설교자는 구악의 본문 한 쌍을 인용하여 예수의 죽음으로 넘어간다. 오순절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직접적인 비난을 수반하면서 그 죽음의 책임 문제에 머무른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증언하고 그 확증으로 구약성서, 열둘의 권위 그리고 모두가 개인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실제적 사건인 앉은뱅이의 기적적인 치유를 환기시킨다. 그러한 상황에서 회개로의 초대는 헛되지 않다. “말씀을 들은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으니 장정 수효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사도 4,4).
바닷가 제국도시(가이사리아)에 있는 이탈리아 부대의 백인대장 고르넬리오의 초대를 받은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생각을 유다화한 이방인들에게 짤막한 훈화”로 설명한다(사도 10,34-43). 그는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한테도 선한 뜻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에 즉각 다다르기 위해 성서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예루살렘의 오순절 사건이 되풀이된다. 가이사리아는 예루살렘이 아니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도 진짜 유다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담화는 베드로의 앞선 담화와 다르지만, 거기에는 마찬가지로 유사점이 있다.
베드로의 담화와 소아시아에 있는 안티오키아에서 행한 바오로의 담화의 유사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방인들의 사도는 소아시아 남부 해안도시 베르게에 정박하고, 며칠 뒤 비시디아의 고원에 도착한다. 수도 안티오키아에서, 안식일에 그는 회당에 들어가 말했다(사도 13,15-41).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를 짤막하게 묘사하면서 그는 잠시 다윗에 머물다가, 이어 다윗의 아들, 나자렛의 예수에 관하여 그의 관심을 고정시킨다. 예루살렘에서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 입증으로 그는 열둘의 목격 증언과 구약성서의 몇몇 본문, 정확하게는 베드로가 인용한 시편의 같은 본문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이가 썩지 않게 하시리라”(사도 13,35). 나아가 베드로처럼, 바오로는 이 본문을 그리스어 번역문으로 읽는다. “썩는다”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야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상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생애 동안 봉사한 다윗은 잠들었고 그의 조상들처럼 “묻혀서 썩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그분은 썩지 않았다”(사도 13,36-37).
방법과 구조, 논거와 구약성서의 인용에서 그러한 유사점에 대해, 뿐만 아니라 “썩는다”는 말에 대한 똑같은 강조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많은 이들에게 결론은 명백하다. 즉 서로 비슷한 담화들은 그 담화를 행한 두 사도에게서 기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의 저자 루가가 착상한 것이다. 루가는 그리스인으로서 성서 본문을, 인용된 시편의 “썩는다”는 말로 처리하였다. 오직 루가만이 예수에 대해 말하면서 그분이 “유다인들의 지방과 예루살렘에”(사도 10,34) 출현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베드로는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 마을에”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 시대의 행동양식에 따라서 루가는 자신의 고유한 말을 베드로와 바오로의 입에 담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시대의 한정된 구조 안에서 루가에 대해 생각하도록 암시받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해결은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두 사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자료들도 있으니까. 담화의 유다적인 영역 그리고 구약성서의 본문들에 대한 환기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예정된 후대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유다인들에게 행해진 진정한 담화라는 게 더 적합하다.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을 간과하는 유다인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사는 루가에 의해 제외된다. 게다가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구약성서의 그리스 역본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드러났다. 사해 근처 쿰란의 발견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베드로가 이방인의 땅 가이사리아에서 “유다인의 땅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한 총체적인 묘사는 루가의 복음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알다시피 베드로에게서 유래한 마르코의 복음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사도행전의 담화에는 사도들로부터 유래하여 어느 정도 자유롭게 루가에 의해 다시 취해진 자료들이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유사점은 부분적으로 사도들의 설교수법으로 설명된다. 거기서부터 후에 마르코 복음과 다른 복음들이 나왔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