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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투
낙동강 전투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 답게 거대한 전사의 무덤이라 할수 있는곳이다.
특히 볼링공 전투지역은 미군의 첨단 전차와 야포가 자리 잡고 있는곳이며
숲데미산에서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수암산에서 유학산으로 이어져 837고지 그리고 792봉 진목정까지 이어지는 Y자능선 15km 꼭 지켜야 할 능선이다.
안동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5번국도변 천평에서 유학산 오르는 송학리-유학산 우측의 792봉과
석우리 297봉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볼링장 전투라 한다.
어느한곳이라도 뚫리면 진목정 주변에 자리한 미군 야포부대가 적에게 포위되는상황이라
목숨이 10개라고 모두 걸어야 할 접적의 장소이며
1사단 사단장인 백선엽장군이 직접 권총을 들고 후퇴하는 국군을 모아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하며
다시 유학산 682고지로 올랐던 곳이다.
유학산 정면은 1사단 12연대 병력이 전진
가산방면 1사단 11연대 병력이 방어
산행코스:천평-297고지-309봉-팔공지맥 분기점-746봉-모래재-가산 황학지맥 분기점
오계산-소야고개-현대공원-백운산-황학산-유학산-792봉- 송학리
산길 30KM 도로 2KM 총 32KM
국군 1사단 방어선
볼링장 전투지역 참고자료
다부동 계곡에서 한국전쟁 최초로 전차전이 전개되었다. 적은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워 조공을 제11연대로,
주공을 미제27연대 정면으로 지향하여 대규모 야간역습을 감행하였다.
미 제27연대는 가용포를 총집중하여 적전차와 보병을 분리하고 아군전차를 추진하여 적에 대응하였다.
다부동 계곡에서 쌍방간에는 전차포에 의해 발사된 철갑탄이 5시간 동안이나 교차되면서 불꽃을 튀기었다.
당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제27연대 장병들은, 불덩이의 철갑탄이 어둠을 뚫고 좁은 계곡의 도로를 따라 메아리치며
상대방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곧장 날아가는 모양이 마치 볼링 공이 맞은 편에 세워진 목표로 핀을 향하여 재빠르게
미끄러져 가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볼링장(Bowling Alley)전투라고 하였다.
*신주막: 천평동
진목정:오계산 북쪽 천평방향
천평교 인근 297고지 오르며 본 천평면
건너편 산은 792봉에서 송학리로 이어지는 접전지
297고지
297고지 이곳은 군군이 방어한곳인지 북한군이 방어한곳인지 모르겠지만
인근으로 온통 전사자 유해 발굴지역이다.
지키고자 했던 국군의 유해가 발굴 됨으로 아마도 국군이 적의 움직임 관측이 용이한 이곳을 방어했던곳 같다.
조망이 좋은곳이다.
잠시 휴식후 갑니다.
진목정 주변으로 미군 27연대 야포 부대가 천평에 주둔한 적의 T-34 전차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이쯤에서 미군 OP병들이 적의 사거리 측정을 위해서 기다렸을것 같다.
산정 마루금으로 작년에 전사자 유해 발굴을 한곳이다.
낙엽이 쌓인곳 모두 전사자 유해 발굴장소이며
작은봉 하나 넘을때마다 그곳은 적군과 아군이 백병전을 치룬곳이라 생각이 들고 ...
8월 뙤약볕에 목마름이나
배고픔을 어찌 견뎠을지 ...
결국 이곳에서 수많은 국군이 풀잎처럼 쓰러져간 구국의 장소이다.
유해발굴 현장
무명천으로 유해발굴지역임을 알리는곳이다.
고운 천은 빛을 다하고
전사의 마지막 외침은 거친 나무가지
거친 산마루에다 초연히 피를 뿌리고 사라진지 오래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방 1M에 유해발굴 하나씩...
얼마나 많은 젊은 군인들이 여기서 전사했을지
모두가 고향땅에 묻혀으면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잊혀진지 50년만에 발굴을 시작했으니
그흔적은
경사진 산등성이 마다
적들이 올라오면 수류탄을 던지고 수류탄이 떨어지면 돌맹이를 던졌을 텐데
그러다 그것마져 떨어지면 최후의 백병전으로 이어져...
작은 유해 발굴지부터
이렇게 7-8명이 누워도 될많큼 큰 유해 발굴지역도 많다.
전우가 옆에서 전사하자 국군이 후퇴하면서 묻어둔곳으로 보인다.
유해발굴 지역은 항상 조심스럽게 지나갑니다.
혹시라도 발견못한 그분들이 누워 계실지 모르니..
최첨단의 장비로 많은 전사자 유해발굴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고개숙여 묵념해봅니다.
부디 좋은데 가시어 편안한 안식을 찾으시길...
오늘 우리가 지나가는 길은 그냥 쉽게 지나가는 그런길이 아니다.
이곳 천평동 삼거리부터 좌,우측의 유학과 가산 오계산 사이 산에서 적인지 아군이지 피아간의 구분할수 없을정도로
병력이 뒤썩인곳이다.
가지고 간 실탄이 모두 소모되면 찌르고 때리는 백병전이 몇날몇일 계곳되었고
8.15일 기준으로 상황은 최고조에 달해
아군과 적군 사이가 너무 가까워 소총보다는 수류탄으로 공격하는 상황이었고
서로가 전우의 시체를 방패삼아 싸우고 싸우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고
8월 중순의 날씨속에 전우의 시체 썩는 냄새로 숨 쉴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그분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곳이다.
피와 전우의 사랑이 담긴길이다.
B2 이건 무슨 숫자일까
주변을 찾아보니 숫자가 많다.
이런 무명천 아래는 모두가 유해 발굴지역이다.
이곳부터 팔공지맥길입니다.
낙엽속에도 유해발굴지역
팔공지맥길
이곳 역시 유해발굴지역임
많은 전사자가 생긴것으로 판단되는곳이다.
희생자는 늘어나고 신병들은 계곳 사라졌다.
분대장이 자신에게 배속된 분대원들의 얼굴도 모른체 전투에 나섰으며
간략한 이름만 화랑담배 껍질에 쓰여졌지만
분대장이 사망하고 나면 신병들의 죽음은 무명용사로 기록되어
어느곳에도 쓰여지지 않은채 사라진다.
군적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
746봉
이곳역시 전망이 좋은곳이라 생각되는 곳이기에
적이나 아군이나 서로가 점령해야 하는곳이다.
경사진곳으로 올라야 하는 군인들과
그곳을 지키고자 한여름 목마름을 이겨내야 할군인들
수년간 파고 또 발굴한 유해 발굴지역
아마 내년에도 유해발굴은 계속될것 같다.
작은 암릉을 지나고
전망바위
이곳에 서니 모든게 한눈이다.
국군이 여기에
아니면 적군이 여기에 섰을지
미소대장님.꺼미님.훈아님.일주님.
좌측 멀리 팔공산 우측은 가산
멀리 가야산부터
백운산- 황학산- 유학산이 전해줍니다.
전쟁은 절대하지 말라 고
적과 아군 피아간 2만 7천이 사라져간 다부동전투
골짜기 마다 시체에서 나온 붉은피
골짜기 마다 살육의 현장이다.
정면 유학산
피의 능선이라부르는 곳이다.
가산 유선대가 보이고
팔공지맥과 황학지맥 분기봉이 바로 앞에 보이는군요
모래재 도착합니다.
잠시 휴식하고
드디어 지맥 분기봉에 도착
한국전쟁 당시 대구를 방어하기 위해서
군군 1사단 11연대가 이곳을 방어 했으며
b29 비행기로 포탄 40톤 투하한 가산산성전투
북한군 14연대와 국군의 치열한 전투속에
어린 학도병의 슬픈 울음과 두려움
학업을 접어두고 일선으로 달려온 학도병
그분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름입니다.학도병
가산 서문에 도착
이제부터 오계산과 유학으로 갑니다.
모래재 임도에서
지난 가을 그렇게 사랑받던 단풍잎은 이제
우리 발걸음 잡기에 바쁩니다.
누구나 사랑받던때가 있으면
미움받게 될때도 있나 봅니다.
간사한 마음 그건 바로 자연속에 녹아 있나 보며
간사한 마음을 버릴려고 해도 안되는게 사람마음인가 봅니다.
가산산성 전투
이곳을 뚫기가 힘들었던 적군은 영천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오늘 우리가 지난곳으로 유해발굴 한곳은 대략 수천기 정도 될듯합니다.
소야고개 마루금상의 절조망도 지나보고
이곳에서 해장국집 식당에서 점심 해결하고 다시 갑니다.
이제 백운산 전투지역입니다.
이곳은 1사단 12연대가 지킨곳이죠
발길 가는곳 마다 전사자 유해발굴지역
백운산정상에서
일주님과 연리목
백운산 능선에서 황학산가는길에 작년에 유해 발굴한곳이다.
백운산 넘어 대구가 지척인데
북한군이 소규모로 올라와 아군과 백병전을 치룬것 같다.
황학산 오름길에 미소대장님.
바로 앞은 소학산이다.
삼학중에서 가장 작은 소학
여기는 황학 그리고 유학산
보이는곳은 낙동강 전투지역중
328고지전투. 숲데미산전투. 수암산전투
사방에서 국군 1만명 적군 1만 7천명 사망
국군 1개사단 병력 미군 1개사단 병력
적군 3개사단 병력 주둔
그리고 강건너 2차대전 이후 가장 많은 포탄이 투하된 약목면
융단폭격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B29폭격기 5개편대 98대
폭격시간 26분
모두 3224발 총중량 900톤
포탄으로 환산시 3만발 분량
황학에서 보는 조망 동,서 남.북 모두 치열한 낙동강 전투 지역임
미소대장님.
백운산 정상 산불 감시초소
이곳을 지키는 산불 아저씨 답사때 몇번 봤다고 친절 합니다.
퇴근시간 임에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주시더군요
피의 능선 유학산
산 북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남쪽은 경사가 심하다.
군군과 노무자분들의 고생이 여간 아니였을것 같다.
우린 오늘 야간에 저산을 넘는다.
좌측은 지나온 746봉 가운데 가산
앞은 백운산
가운데 멀리 대구시
낙동강 전투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산과 계곡
쌓인 적군과 아군의 시체로
주민들의 불편은 여간 아니었다.
전선 곳곳에서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고
고지를 점령한 아군은 참호속에 가득한 아군의 시체를
신원 확인 없이 눈물로써 묻어야 했다.
아침에 모자라던 주먹밥이 저녁이면 남았다는 이야기
전우의 시체를 방패막이로 싸우던 동료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8월 그옆에서 한주먹도 안되는 주먹밥을 먹던 이야기
몇일간 식량 보급없이 주먹밥을 기다리며 산정에서 목마름과 싸우던 이야기
저 경사진 유학산 된비알로
1사단 12연대가 방어한 전체길이 4KM의 유학산
1개소대 병력이 한줄로 서서 기어 올라 백병전을 했을 다부동전투
노무자분들이 주먹밥과 실탄을 힘겹게 지게에 지고 올라 지원을 했을것이다.
소대장은 화랑댐배 껍질에 소대원 명단을 적고 다시 확인한다
이후 야간전투가 끝나고 돌아오면 소대원 90%는 전사해 사라진다.
그들의 이름을 적은 소대장의 화랑답배 껍질은 대부분 없어지거나
소대장의 피로 얼룩져 누가 누군지 몰라 확인할수가 없어
무명용사로 전사에 기록된다.
837고지 우리가 오늘 오르는 길이며
유학산 전투중 최고의 전투지역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네발로 기어 올라야 한다.
이곳 산에는 1사단 병사들의 시신으로 쌓여 갔고
지금 유학산은 시산혈하의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
그건 죽음이다.
죽음이 바로 앞이지만 전사들은 싸움터로 향했을 것이다.
아무말 없이
마중나온 악마운영자님과 잘생긴 아들
고마워요 악마님.
듬티고개 에서
이제 유학산 오릅니다.
40분간 오르면 되는 유학이지만
그당시 유학은 하루 종일걸려도 못오르는 그런 철옹성 이였을것 입니다.
삶과 죽음의문턱 저 유학산은 그렇게 우릴 기다립니다.
837고지 정상
힘들게 오른 유학은
이집트의 유명한 피라미드 보다 높고
진시황재의 무덤보다 거륵한 거대한 무덤
이곳에서 모두 묵념을 하고 이제 마지막 하산길로 갑니다.
하산길은 지나온것 보다 더많은 유해 발굴지며
어느 능선 한곳은 그당시 참호속을 그대로 재현한듯 한줄로 몇십미터 길게 유해 발굴이 되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참호속에서 싸우던 군인들이 그곳을 지키다 모두 전사한곳으로 보여지며
어떤곳은 작은 돌로 정성스레 만든 유해 발굴지도 보였고...
야간구간은 조용한 시간에 다시 찾아 봐야겠다.
오늘 소중한 시간을 내주신 미소대장님 일주님.훈아님. 꺼미님 악마님 감사했습니다.
다음산행은 융단폭격 장소로 초대 하겠으니 꼭 오시구요
자료 찾는대로 올릴게요
시산제 유학산에 오시는분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첫댓글 정말 주변의 산이라 함께했지만 방장님 투철한 사명감이 없으며 할수 없으리라 봅니다. 유학산을 10번이나
얼랐다니 감히 이해가 됩니다.
산행하면서 내내 아쉬움과 그때그상황을 이해하고해도 이해가 안되네요.
저도 최전방에서 군생활했지만 그때 그상황 이해 못하겠지만 나라위한 그 충정은 이해가 됩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하는 현실에서 .....한번쯤은 뒤돌아보고 나라위해 숨저간 호국영령들을
생각하시길.....
지역의산들 중에서 아픔을 간직한산들이 참 많죠.
생각해보니 왜관인근으로 산들은 거의다 돌아다닌것 같습니다.
유학산 된비알로 10차례 올랐으니 ...
다음 기회에 융단폭격 장소로 그려 볼테니 오시기 바랍니다. 대장님 고마웠습니다.
국군홍보단장에 임명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수박 겉핧기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좀 더 지나면 조금더 많이 알겠죠
황학산 산불감시초소 아저씨는 정말 친절하신것 같습니다 저도 저번에 커피한잔 얻어마셨는데...이렇게 자료 찾기가 쉽지않을것인데요.... 무엇이 우리교주님을 6.25 전쟁지역에서 헤어나질 못하게 하는지... 그것은 후세가 평가할것입니다
자주 돌아다니며 이야기 듣다보니 커피한잔 정도는 얻어 마시네요
인근의산들은 모두 찾아봐야죠
결국은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하나 걸리겠죠
후기글을 읽으니 새삼 837고지에서 잠시나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는게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호국산행 길이 아니면 언제 이 길을 와보겠냐는 말 처럼..수북이 쌓인 낙엽과 된비알에 고생은 되더라도
돌아서 생각해보면 아 잘 다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장님, 미소 대장님, 일주님, 꺼미님, 수고 많았습니다.
야간길 푹푹빠지는 낙엽속으로 모두가 유해발굴지역임을 알았을때
얼마나 많은 아군이 전사했는지 시간나는대로 야간구간 한번더 가볼생각입니다.
같이 걸어 주셧어 고마웠습니다.
우리 j3클럽 방장님 너무 휼륭하시고 아깝습니다.
그동안 산에다니면서 무심코 지나친 파헤처진 흙 무덤이 이런 사연들이 있는 곳일줄이야
반성해봅니다
주금산으로도 전사자 유해발굴지역임을 알았을대 한번 가볼걸 그랬습니다.
산행 보다 더 의미있는 산을 그리고 싶은데 아는 지식이 없다보니
글이 좀 짧습니다.
대장님도 환종주 축하드립니다.
방장님 덕분에 많은걸 듣고 배우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뺏고빼앗기던 837고지에서의 묵념은 아마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것 같네요....
그 많은 사연들을 공부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감사드립니다..
방장님과 함께라면 늘 배우는것이 많네요..
오후4시라는 낚시에 미끼를 덥석 물고 베낭도 안메고 갔거늘..
결국은 야간산행을 했네요...ㅎㅎㅎ
늘~~배움의 날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난 첨에 시산제 답사로 유학산만 살방 댕겨 오는줄 알았다니깐..ㅎㅎ
야간 유학산 오르기 쉽지않죠
저는 10회나 그길로 올랐습니다.
전사자 유해발굴지역은 우리가 곡 알아야 할길이라 생각이 들며
다음번에도 꼭 오셨어 큰 의미에 관심 부탁드립니다.
토요일날 봐요
죽음으로 지켜낸 이나라에서 지금의 우리는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것입니다.
동족의 피로 얼룩진 암울한 역사를 재조명 하는데 큰 일을 하고 계시는 방장님 호국산행 기획이 머지 않아 결실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뒷날 아들과 집사람을 동행하여 황학을 다시 찾아 따끈한 커피 대접 한번 더 받았습니다.
다음에 지나칠 일 있으면 한박스 사다가 감사의 표시를 해야겠습니다.
간만의 산행으로 인해 다리근육이 조금 불편하시다고 하시더니, 다음날 바로
몸풀러 또 다시 다녀오셨군요..수고 하셨습니다^^
황학산 일몰 참좋죠
저도 나중에 날좋은날 일몰사냥 한번 갈까 생각중입니다.
이번 산행에 기분좋게 와주셨어 감사드리구요 6월 호국산행180 꼭 참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능선마다 전사자의 유해 발굴지역을 지나는 동안 많은생각을 하는데
힘들다는 생각은 안나더군요
이번주에 승달님뵈러 갑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달려 있는 글귀 읽으면서
당시의 치열했던 전장의 아픔이 가슴으로 밀려 옵니다.
답사하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시산제때 뵙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마산인근으로 진동-법수면까지 워커라인 그곳도 격전지중의 격전지로 유명한곳입니다.
정맥하다가 힘들때 한번 올라가 보시면 힘이 될듯합니다.
시산제때 뵈요
구운천환종주에 서리산이던가 정상석 옆에 탄피가 하나 보이더군요.
아마 그 당시에 사용한 탄피인 듯 해서 정상석 위에 올려놓았었지요.
고난의 시대에 많은 분들의 목숨으로 우리가 현재 잘살고 있을겁니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대장님 잘 계시죠
요즘은 격전지마다 유해발굴을 하다 보니 꼭 여기다 하는곳이없나 봅니다.
잊혀진전쟁이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전쟁이죠
시산때 뵈요^^
유학산 표현이 가슴에 와 닿네요.
수없는 학도병들이 아직도 유학산
아니 치열했던 격전지 곳곳에 묻혀
있을지언데 한구의유해를 발굴하기가
그토록 어렵다기에 안타까움 맘 이지만
그 마음을 우리는 그곳을 찾고 걸어보는
것으로 잠시나마 그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모처럼 보이시는 일주님 모습 반갑고
또 다른곳을 찾아 다니시는 방장님
수고 하시고 광주 잘 다녀오세요.
결국은 광주에 안오시는군요
저는 꺼미님.훈아님과 같이 자가용으로 갑니다.
앞으로도 유학산 몇번 더가야 할것같은데 갈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힘들게 오른 그곳 그당시에는 한번 오르면 소대병력 70-90%가 돌아오지 못했다니...
늘 고마운 사람 건강하시고 다음에 좋은곳에서 봐요
손꼽아 기다렸던 산행기였는데..
엊저녁에 피곤해서 일찍 잤더만... 쩝, 이제서야 봅니다.ㅜㅜ"
가산 '서문' 부터 '유학 837고지' 까지는 '호국180'과 같은 산길인 듯 합니다.
작년 호국때 황학산 내려오며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해야 하는 데..
임도 건너 직진해서리 한참동안 알바하고 엉뚱한곳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생생 합니다.
광주 잘 다녀오시고 시산제때 뵙겠습니다.
잘 계시죠.
가산부터 유학 827고지까지 호국길입니다.
작년에 제작한 호국시그널도 몇개 그대로 달려있구요.
다부동 인근 산줄기 거의다 끝나가구요 이제 강건너 약목으로 갈준비하고 있는데
자료가 여의치 않아 걱정입니다.
시산대 봐요
방장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숙연한 마음으로 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낙동강 전선 이제 수박 겉핧기는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기 저기 많이 찾아다녔는데 회원님들의 참가비로 좋은 코스 만들어야 하는데
호국산행은 나중에 많이 알려지것 같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방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될 전쟁의 상흔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시산제때 오시면 유학산에서 많은 생각이 나실것 같습니다.
지부장님 호국산행에 관심 감사합니다.
방장님~어제 대경 모임때 반가웠습니다...호국산행에 대한 그 열정에 찬사를 보내고...언제가 함께 할 날이 오겠지요..^^
어제 만나서 반가웠구요
호국산행 이제 시작이니 많은 자료를 찾아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봐요
팔공산 가산 유학산 같은 지역이라
늘 지나다니고
오르고
그렇게했는데
방장님 처럼 생각을 못했습니다
능선도 전방에서 군생활 햇습니다만
아~~~이렇게 이래 저래 아픈곳에.....으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