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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밥을 나눈다 | |
성지공원의 노인무료급식소 | |
ⓒ 김종한 |
노인들에게 밥을 시처럼 나눈다
시인은 왜 시인일까?
詩는 글자 그대로 언어의 사원, 언어로 시를 짓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한다. 황
금찬 시인은 누구나 언어로 시를 지을 수 있지만, 시성(詩聖)이 되는 일은 시인
이라고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성(詩聖)은 어떤 시인일까?
시의 경지의 깊음을 이르기도 하겠지만, 따뜻한 성자처럼 남을 위해 사랑을 시
처럼 나누어 주는 시인은 아닐까. 시는 영혼의 밥, 권경업 시인은 시인이기 이
전에 산악인이었다. 그리고 무려 18년 동안, 가난한 노인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는 따뜻한 성자였다.
성자이기도 한 그는 산을 좋아하는 산사람. 그는 종종 바람처럼 산 속으로 사라
지지도 한다. 산의 품에서 세속을 등지고 살다 산의 넉넉한 마음을 안고 내려와
따뜻한 시의 밥을, 밥의 시를 베풀고 돌아간다.
풀꽃 하나도 못 견디어
떠나버린 마른 가슴
깡술 쏟아 붓는다 해서
꽃이 피겠습니까마는
한 열흘 밤낮 술만 퍼부었습니다.
서해로 설악으로 떠돌며
남도(南道) 어디, 혹
다른 꽃 소식이라도 접하면 나을까 싶어
잔설(殘雪) 사이로 넘은 노고단
천은사 노오란 산수유도
내게는 부황 든 듯했고
풀린 강물 반짝이는 섬진강변
다압 마을 골짜기 가득한 매화도
한겨울 찬 눈(雪) 같았습니다.
부질없는 줄 알지만
내 안에 꽃 필 때 까지가 아니고
저 매화 다 질 때 까지만 이라도
절망 같은 술로 견뎌보려 합니다.
벌써, 꽃 진 자리 향기 남기는
청매화 흰 꽃잎 하나둘, 저녁 어스름의
내 등 뒤로 스러지고 있습니다.
<풀꽃이라 불리는 흰제비꽃을 위해-권경업>
산악詩의 지평을 열다
그는 1990년 80일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쓴 시를 월간 <사람과 산>에 연재하면서, 산악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
었다. 산의 넉넉한 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산 시인. 산을 품은 마음에서 절로 시냇물처럼 맑은 시가 흘러나온다. 퍼
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는 벌써 10여권의 시집을 소장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밥 냄새와 산의 풀냄새가 배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산을 노래한 시를 음미 하면, 얼어붙은 가슴에서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
다.
밥의 시, 시의 밥
부산의 성지 어린이대공원에 가면 매일 점심을 무료로 나누는, 성소같은 무료급식공간이 있다. 입구의 낡은 조립식
건물에서 노인들은 시인이 베푸는 따뜻한 점심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이곳에서 18년 동안 노인무료급식소를 운영
하고 있는 권경업 山의 시인.
그는 89년도 우연히 공원을 찾았다가 많은 노인들이 점심을 굶는다는 사실을 알고 몇몇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
아서 이 일을 시작한다. 지속적인 봉사를 뒷받침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부산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국수집
을 운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시화전 앞에서 | |
ⓒ 권경업 |
IMF한파에도 꾸준히 밥 봉사
IMF의 한파로 국수 집 운영이 어려워, 한때 무의탁 노인과
노숙자들의 무료급식소 운영이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명맥
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주위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시인의
아내의 따뜻한 이해가 더 크지 않을까.
주위에서는 처음에 그의 선행을 정치에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시인의 이런 자선에 아
무런 사심이 없다는 것을 높이 사게 되었지만, 가슴이 따뜻
한 시인이라도, 누굴 지속적으로 돕는 다는 선행은 아무리
훌륭한 시인이라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부산 덕천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시인은, 8
2년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혈기 왕성한 젊은 대학생
들을 이끌고 히말라야에 태극기를 꽂기도 했다. 산을 좋아
했기에 국내산은 거의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산을 좋아한다. 하지만 시인이 산을 사랑한 동기는 집안이 어려웠고, 일상의 탈출구로 산
을 오르다가 산을 떠나 살 수 없는 山 시인 된 것.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산을 오르내리면서 아름다운 자연 등을 소재로 발간한 <녹아버린 얼음 보숭이> 제목처럼 그
의 시는 따뜻한 밥의 시, 시의 밥임을 확인케 한다.
오르는 것이 아니네
내려오는 것이네 굽이굽이,
두고 온 사연만큼 해거름 길어지는
산 그리메 막소주 몇 잔, 목젖 쩌르르 삼키듯
그렇게 마시는 것이네
거기 묵김치 같은 인생 몇 쪽 우적우적 씹는 것이네
지나 보면 세상사 다 그립듯 돌아 보이는
능선길 그게 즐거움이거든
<등산-권경업>전문
▲ 밥시인 권경업 시인과 함께 |
ⓒ 송유미 |
산이 시인을 부른다
05년에 권 시인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느
낀 영감과 북한의 일용품과 산과 사람에 대한 여러가지 단상을, 시와 그림에 담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미래로
가는 지도>의 제목하에 서울과 부산에서 30여점의 시와 그림을 선보였다.
권경업 시인, 그에게 붙는 이름은 풀꽃들의 이름처럼 많다. 시 쓰는 시인, 산을 타는 산악인, 식당 주인, 또 가정을
가진 가장...등 그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지만, 그는 시인의 이름으로 불러지기 가장 원하지 않을까.
권 시인이 시를 계속 밥처럼 뜨거운 시를 짓는 한, 가난한 영혼의 밥을 구하는 허기진 영혼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
의 시는 구구한 밥냄새가, 풀냄새가, 흙냄새가 난다.
오마이뉴스 송유미 기자글
권경업 시인 "산은 인생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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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에서 '마음으로 읽는 산행'을 권유했던 권경업 시인은 국내외 많은
암-빙벽을 등반하고 개척했던 전위 산악인 중 한 명. 백두대간이라는 말 자체가 생
소했을 때인 지난 1990년, 80여일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연작시를 산악잡지에
연재, 산악시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을 '구도의 공간'으로 비유한 권 시인은 "전문적인 시작(詩作) 교육을 받지는 않
았지만 산을 다니면서 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어느새 산악 시인
이 됐다"며 "산을 사랑하는 백산찾사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 그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그 한 예로 새로운 등산화를 신혼부부에 비유, "처음
엔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고 물집이 생겨 곧 벗어버리고 싶지만 산길을 오래 다니다
보면 발에 꼭 맞는 등산화가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
는 특히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언급, 큰 공감을 얻었다.
출처 : Tong - 達馬⌒29_pop님의 … 피플⌒사람들。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