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경전 <천부경>은
만물의 변화를 '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우리민족의 경전 <천부경>은
만물의 변화를 '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이라고 표현한다.
하나가 묘하게 피어나 이렇게 저렇게
수없이 오가며 우주만물을 이루는데,
그 쓰임이 무수히 바뀌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쉼 없이 무수히 변화하며 조화점을 찾는 우주에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근본에서 나와
그저 변화하고 또 변화할 뿐,
그 어떤 것도 고정되거나 단절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는 보이지만
근본은 같고, 종교와 철학, 예술과 정치,
그리고 스포츠도 모두 하나의 근본에서
만왕만래의 작용으로 나왔다.
'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의 가르침은
경계에 갇히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종교와 종교, 사상과 사상, 민족과 민족,
체제와 체제의 경계를 첨예하게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늘 어지럽혀졌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경우처럼,
세계는 지금 경계에 집착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생명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국민의 뜻'이나 ‘여론’이라는 말을 내세워
사람의 가치를 간단히 외면해버린다.
지금 이 시대의 정치는 욕망 중심, 물질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런 정치문화 속에서는 경계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욕망을 드러낸다.
이 같은 정치문화를 바꾸려면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설계도가 나와야 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정신문화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면 국민이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정치인을 선출하면 된다.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
국민이 먼저 정신적 가치를 살리는 선택을 해야 정치인도 국민의 선택을 따른다.
세상의 흐름을 돌리는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변화에서 나오지만,
정치가 한발 앞서 바뀌면 순풍이 돛을 밀듯 변화의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정치의 본질을 보고, 그 본래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문화를 이룬다면
이것이야말로 정신문명시대를 실감나게 하는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이다.
그러한 정치문화가 나올 수 있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면서도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오늘을 산다.
텔레비전에서 한창 광고하는 최신형 모델로 차를 바꾸고 싶어 하고,
어쩔 수 없다며 아이들을 모진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사무실에서는 하루에 대여섯 개의 종이컵을 쓴다.
새로운 가치가 등장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이런 것을 정부나 종교단체나 유엔이 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것이다.
변화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인간은 자기중심에 빠지면 파멸한다.
많은 철학자와 정치가와 경제학자도 홍익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홍익정신은 아직 인류문화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홍익정신을 체득하는 수련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뇌철학은 무엇보다 먼저 이 수련법을 되살림으로써 홍익정신을 깨우고 실현하는 길을 만들었다.
나 자신이 먼저 홍익인간이 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길을 연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은 누구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복지국가일 것이다.
홍익정신은 가장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는 정신이다.
물질적인 재분배와 형식적인 평등에 머무르는 물질문명 시대의 복지는
수여자와 수혜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한다.
새로운 시대의 복지는 모두 자존감과 양심을 살리는 복지여야 한다. 이는 홍익정신의 가치와 일치한다.
정신문명이란 진정한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것이고,
홍익정신은 가장 이상적인 복지정신으로서 정신문명시대를 이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뇌에 달렸다. 뇌를 잘 활용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뇌철학의 명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법칙을 깨우쳐 준 <천부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련의 길을 알려준 <삼일신고>가 있었기에 뇌과학의 성과에 힘입어 이 명제를 입증할 수 있었다.
홍익정신으로 뇌를 잘 활용하면 어떤 문제라도 창조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 원리대로라면 우리는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 나와 세상을 살릴 수 있다는 큰 희망을.
(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이라고 표현한다.
하나가 묘하게 피어나 이렇게 저렇게
수없이 오가며 우주만물을 이루는데,
그 쓰임이 무수히 바뀌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쉼 없이 무수히 변화하며 조화점을 찾는 우주에는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근본에서 나와
그저 변화하고 또 변화할 뿐,
그 어떤 것도 고정되거나 단절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는 보이지만
근본은 같고, 종교와 철학, 예술과 정치,
그리고 스포츠도 모두 하나의 근본에서
만왕만래의 작용으로 나왔다.
'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의 가르침은
경계에 갇히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종교와 종교, 사상과 사상, 민족과 민족,
체제와 체제의 경계를 첨예하게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늘 어지럽혀졌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경우처럼,
세계는 지금 경계에 집착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생명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국민의 뜻'이나 ‘여론’이라는 말을 내세워
사람의 가치를 간단히 외면해버린다.
지금 이 시대의 정치는 욕망 중심, 물질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런 정치문화 속에서는 경계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욕망을 드러낸다.
이 같은 정치문화를 바꾸려면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설계도가 나와야 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정신문화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면 국민이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정치인을 선출하면 된다.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
국민이 먼저 정신적 가치를 살리는 선택을 해야 정치인도 국민의 선택을 따른다.
세상의 흐름을 돌리는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변화에서 나오지만,
정치가 한발 앞서 바뀌면 순풍이 돛을 밀듯 변화의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정치의 본질을 보고, 그 본래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문화를 이룬다면
이것이야말로 정신문명시대를 실감나게 하는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이다.
그러한 정치문화가 나올 수 있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면서도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오늘을 산다.
텔레비전에서 한창 광고하는 최신형 모델로 차를 바꾸고 싶어 하고,
어쩔 수 없다며 아이들을 모진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사무실에서는 하루에 대여섯 개의 종이컵을 쓴다.
새로운 가치가 등장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이런 것을 정부나 종교단체나 유엔이 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것이다.
변화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인간은 자기중심에 빠지면 파멸한다.
많은 철학자와 정치가와 경제학자도 홍익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홍익정신은 아직 인류문화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홍익정신을 체득하는 수련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뇌철학은 무엇보다 먼저 이 수련법을 되살림으로써 홍익정신을 깨우고 실현하는 길을 만들었다.
나 자신이 먼저 홍익인간이 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길을 연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은 누구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복지국가일 것이다.
홍익정신은 가장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는 정신이다.
물질적인 재분배와 형식적인 평등에 머무르는 물질문명 시대의 복지는
수여자와 수혜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한다.
새로운 시대의 복지는 모두 자존감과 양심을 살리는 복지여야 한다. 이는 홍익정신의 가치와 일치한다.
정신문명이란 진정한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것이고,
홍익정신은 가장 이상적인 복지정신으로서 정신문명시대를 이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뇌에 달렸다. 뇌를 잘 활용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뇌철학의 명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법칙을 깨우쳐 준 <천부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련의 길을 알려준 <삼일신고>가 있었기에 뇌과학의 성과에 힘입어 이 명제를 입증할 수 있었다.
홍익정신으로 뇌를 잘 활용하면 어떤 문제라도 창조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 원리대로라면 우리는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 나와 세상을 살릴 수 있다는 큰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