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계 / 엄창석
1
건너편 수면에서 검은 물안개가 강의 억센 호흡처럼 한 무더기씩 뿜어오르다 잦아들곤 하였다. 불빛이라고는 한 점 떨어지지 않은 밤이었다. 나는 가지 끝이 땅에 엎드린 굴참나무를 등지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의 표면이 어딘가 동요하는 것 같았다. 아마 물때가 되었을 것이다 바다 어귀에서 육십 리나 떨어진 이곳까지 물을 미세한 역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쏴아아아. 강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미루나무들이 서쪽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흔들렸다. 무언가가 나무 꼭대기를 서걱서걱 밟으며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1863년 5월7일(계해(癸亥)년, 철종 14년)나는 뒤숭숭한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나 채물음이 도착할 나루로 나왔다. 민간의 동향을 탐지하는 와중에 그가 발견될 줄은 전혀 예측 못한 일이었다. 움푹 팬 양 볼이며 이맛살을 덮고 있는 거친 주름이 어느 촌노와 다를 바 없는 그가 지난밤 내내 잠의 한 켠에 살아 있었다.
수풀에 묻어 있는 이슬을 걷어차며 나루로 나갔다. 배가 닿는 강둑에 석축을 쌓고 그 위로 송판을 탄탄하게 엮어 흡사 해안의 포구처럼 규모가 큰 선착장을 마련해 놓았다. 선착장 옆으로 빈 돛대를 세운 작은 선박들이 물살에 흔들렸다. 나는 몸을 숨기듯이 허리를 구부리고 선착장을 지나쳤다. 강둑이 호리병처럼 움푹 들어간 곳에 나무 한 그루가 허리가 꺾인 채 물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물에 잠긴 나뭇가지 사이로 때 이른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떠들었다.
무심코 그 곁을 지나던 나는 화들짝 놀라워했다. 바로 지척에 검은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무 밑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대충 보아도 서른 명은 넘었다. 나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새벽 일찍 들어오는 상선을 차지하려고 나루터에서 잠을 자는 소상인들이나 객주 노비들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노비들이 큰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은 돛이었다. 넝마 쪼가리를 붙여놓은 듯한 낡은 천 아래로 사내들이 가지런히 맨발을 드러낸 채 코를 골았고.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으나 더러는 넓은 천을 몸에 치렁치렁 감고 있는 품이었다. 돛에 밴 바람 같은 것을 껴안고 잔다고 여기는 걸까. 아니면 돛을 배를 날개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주 어릴 때 한강에 놓인 주교(舟橋)를 본 적이 있었다. 왕의 능행(陵幸) 길을 위해서 배를 여럿 잇대어 다리를 만든 것이다. 주교로 사용된 배는 모두 돛대를 내리고 있었다. 때마침 하류 쪽에 범선 한 척이 돛에 바람을 팽팽히 채우고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래 선지 돛대를 내린 배들은 잠을 자는 듯이 보였다.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윽고 왕의 행차가 강 건너편에 나타났을 때였다. 문득 나는 주교로 쓰인 수십 척의 배들이 일제히 돛을 올리고 날개인 양 크게 퍼덕이면 배들이 사뭇 기러기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했었다.
오래지 않아 희붐한 기운이 동편 하늘로 스며들었다. 어디서 그 많은 삶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는지 포구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코끼리의 길게 구부러진 코 같은 뱃머리 장식을 한 상선이 들어온 뒤로 연이어 서너 척의 선박들이 수면을 가르며 몰려왔다. 배를 선착장에 붙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배와 선착장 사이에 가로 놓인 널빤지 위로 인부들이 부산하게 물건들을 져 날았다. 곡물 가마니와 건어물 포대. 생선이 담신 나무 상자 등속이 이편으로 쌓였고, 대기하고 있던 소달구지에 물건들이 실렸다. 또 한쪽에서는 즉석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구매자 시늉을 하며 물건을 이리저리 들추어보면서 하선하는 자들을 면밀히 주시했다. 채물음이 언제쯤 어느 배에서 내릴 것인가. 전날 군산에 갔다는 채물음이 이날 정오 내로 강경포에 도착하려면 뱃길밖에 없었다.
감영의 관찰사로부터 민간의 동태를 파악하라고 지시를 받은 것은 한 달 전이었다. 부임하자마자 대감은 이 일부터 서둘렀다. 지난해 이맘때쯤 폭동이 일어난 탓이었다. 물론 경상도와 전라도를 휩쓴 난리가 이곳 충청도까지 북상한 것이지만 농민들 무리는 단순히 오합의 형국이 아니었다. 관아를 쳐들어오는 기세에다 가옥을 불사르며 고을 수령이 눈을 뜨고 보는 앞에서 아전을 무참히 참살한 것은, 뚜렷한 역모가 아닌 한, 450여 년 왕조에 처음 있는 사태였다. 대감이 현지 사정에 밝은 육방 아전에게 명하지 않고 보좌로 따라온 내게 일을 맡긴 것은. 동료들이 죽은 데 대한 아전들의 지나친 원망을 경계한 탓일 것이다.
ꡒ주모자가 있음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한 일이 아니던가. 비적(匪賊)들과 어울리는 잔반(殘班)들이 있는지 샅샅이 살펴야 할 것이네.ꡓ
관찰사는 특히 빈궁한 양반들이 동태를 주시하라고 했다. 관찰사는 몰락한 양반들이 개입하지 않으면 농민들이 난을 일으킬 수 없다고 믿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지난해 월도(越道)한 외지 양반들이 적발되어 거리 효수에 처해졌지만 그 같은 주동자들이 다시 암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 달여간을 상민 차림으로 변복하고 공주롸 강경포를 오르내리며 향회나 잔반층을 기웃거렸지만 조금도 이상한 조짐을 포착할 수 없었다. 불과 한 해 전에 그만한 소요가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장정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나 심지어 아낙네들까지 폭도들 속에 끼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난동의 기억조차 없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소요와 이 같은 망각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모호한 탐지를 해나가던 어느 날 나는 강경 장터의 한 객점에서 백여 명에 가까운 상민들이 몰려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얼핏 사당패나 굿판이 벌어졌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흔히 설낭(設囊)이라고 하는 자가 고담(古談)을 하는 이야기판이었다. 지난달 26일이었다.
거기에 이야기를 펼치던 이가 바로 채물음이었다. 본명이 채진경이라던가. 사람들은 그를 옛날 이름난 이야기꾼인 오물음에 비추어 채물음(주2)이라고 불렸다. 설랑이라면 사실 시정의 잡배나 다름없는 부류였다. 한양 사대문 안의 육의전 거리에서도 가끔 이야기판이 벌어지곤 했으므로 나는 어느 정도 설낭들의 한심한 파적거리리를 알고 있었다. 걸쭉하게 기생 연애담을 늘러놓거나. 양반 사랑채에 불려가서는 착착 붙는 간드러진 얘깃거리로 잔술이나 얻어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채물음은 내가 아는 설낭과 어딘지 달라 보였다. 이야기판 분위기도 야릇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하는 법이 낯설고 기묘했다.
(주2)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야기꾼 오가(吳哥)가 오이와 삶은 나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오물음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가란 성이 오이와 비슷하고 물음 은 삶은 나물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채진경도 그 성이 채라소ㅓ 채소와 일힌 나물을 뜻하는 채물음으로 불린 것 같다.
나는 그가 젊은 시절 천 권의 책을 읽었고 엄청난 기억력을 소유했었다는 오래된 소문을 떠올렸다. 내가 겨우 일곱 살 때였다. 나는 그때 조종의 무슨 사태로 공주로 내려온 아버지를 따라 삼 년 동안 이곳에 와 있었다. 아버지가 공주를 찾은 것은 성균관 학생을 지낸 아버지의 친구가 여기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글을 배웠다. 따로 떨어져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일은 세월과 무관하게 기억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법이다. 채물음의 신상을 추적하다가 나는 그 시절에 그를 한번 만난 적이 있음을 기억 할 수 있었다.
ꡒ아직도 소학을 가지고 끙끙 앓느냐. 채 아무개라는 역관의 자식은 당시품위를 하번 베껴 쓴 뒤에 한 자도 빼먹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ꡓ
아버지의 친구가 내게 소학을 가르치다가 몇 번이나 내가 틀리게 되자. 혀를 차며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이 어린 내 가슴을 어지럽혔던가
나는 뒷날 한 차례 그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놀랐던 것은 다른 방향에서였다. 공산성 가는 길목에서 사당패들을 앉혀놓고 혼자 서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역관 자식이라면 채신머리도 있을 만한 중인인데 사당패와 어울리는 것이 무지렁이처럼 보였고 나이도 스무 살은 넘은 것 같았다. 한참 후 공산성에서 내려오다 다시 그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사당패가 그를 혼자 앉혀놓고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이상한 기억은 어린 시절의 불규칙한 흔적인 양 남아 있었다.
동쪽 산마루에서 햇살이 뻗쳤다. 하역할 물건들이 대부분 내려오고 이편에서는 마저 싣지 못한 물건들이 곳곳에 쌓였다. 아직도 채물음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인가. 그가 오일장이 열리는 강경포에 도착하리란 것은 그를 관찰한 지난 보름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하번도 이 취회를 잊은 적이 없었다.
상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아침 나루 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될 즈음이었다. 내가 시장기를 견디다 못해 얼마 남지 않은 어물 장수에 다가가 주막으로 가져갈 생태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항아리를 지게에 얹고서 선박을 내려오는 늙은 노비 뒤에 채물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갓을 쓰고 구질구질 잔 때가 밴 도포 자락을 흔들며 선착장을 건너고 있었다. 채물음은 널빤지 한가운데 서서 잠시 목을 늘어뜨려 수면을 내려보았다. 수면에서 햇살이 뛰어올라 그의 움푹한 양 볼에 은은히 푸른빛을 그려 넣었다. 그가 어물상자 곁을 지날 때는 나와 거리가 불과 서너 걸음이었다. 육척은 될 만한 키에 등이 휘어져 구부정하게 보였고. 어깨가 좁고 눈썹은 짙었다. 그는 옆눈도 주지 않고 내쳐 길을 걸었다. 나는 한 손에 생태 꼬리를 집은 채로 비뚜름히 목을 틀고 눈으로 그를 좇았다. 그이 여윈 뺨과 어깨. 조금씩 벌어졌다. 닫히는 겨드랑이 사이로 역광이 검게 빛났다. 종아리를 빠져나온 그의 그림자가 내 곁으로 다가서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선착장을 가로질렀다. 긴 그림자는 배의 이물에서 꺾어진 뒤에 강 한가운데로 뻗쳤다.
그 순간. 내 눈앞에 왜 그것이 떠올랐을까. 감영 선화당에 있는 해시계였다. 햇살이 시침에 걸려서 반구형 시계판에 날카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해시계가 어떤 환영처럼 내 눈앞을 아른거렸다.
2
객점에 모여든 사람들은 한눈에도 쉰 명은 넘어 보였다. 이날 오후 세시 무렵이었다. 장터에서 오후 세시는 장꾼들이 짐을 꾸려 떠날 채비를 하고 먼 산촌에서 온 사람들도 아쉬운 물건을 구한 뒤 한시름을 놓는 시간이다.
마당과 뒤란 사이. 감나무 아래로 명석이 깔려 있고 채물음은 짧은 부채를 든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칠순을 넘긴 노인들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바로 뒤로는 어린애들 대여섯이 무릎을 끊고 있었다. 젊은 사내들은 멍석자리 밖에서 굴뚝 단지에 등을 붙이고 서거나 목이 부러진 디딜방아에 앉아 채물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십 년 가까이 이야기를 팔며 살았다고 했던가. 목소리는 수양버들 이파리가 흔들리듯이 간들간들했고 소리꾼처럼 해소가 낀 듯한 게 힘이 배어 있었다. 채물음은 낡은 소매 밖으로 팔을 꺼낸 어떤 시늉을 짓는가 하면 한 대목 한 대목을 흡사 눈앞에 그런 글귀라도 있는 듯이 조잠조잠 목소리를 흘려보았다.
ꡒ……바람 앞에 촛불이란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것이야. 성안에는 이미 실량이 바닥난 지 오래지. 소며 닭이며 더 이상 잡아 멀을 게 없었어. 말린 소가죽을 우려내 국물을 마시고 송피도 다 훑어 먹어서 나무들은 발갛게 서 있었어. 총알을 만드느라 솥도 죄다 부수었지. 관군의 대공세기 이럴 때 시작된 거야…….ꡓ
겨우 열 폭 거리에 음식을 파는 객점 마당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감나무 둘레의 공간에는 아무런 소란도 범접하지 않았다. 부채꼴처럼 둘러앉은 사람들 머리 위로 햇살이 오물거렸고, 쥐가 한 마리 기어오다가 재빨리 도망쳤다. 나는 그와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멍석 끄트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를 추적하고 있는 사실이 노출될 염려는 크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닷새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여럿 보였기 때문이었다.
채물음이 얘기판에 올려놓은 사건은 수십 년 전인 1812년에 관서 지방을 휩쓸었던 봉기였다. 이르는 바 홍경래 난이었다. 그 반란 사건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가까스로 진압되었다. 그 사건을 여럿 앞에서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죄를 주어 괜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이날도 전혀 선동적이지 않아 나는 애매한 태도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ꡒ때는 이월 초사흘이었어. 닭이 운 뒤 관군은 거대한 교거(僑車. 공성용 사다리차) 다섯 좌를 앞세우고 성을 쳐들어 왔지. 교거의 높이는 오히려 성을 아래로 내려다볼 지경이야. 교거에는 쇠가죽을 씌운 널빤지를 겉어 대고 총수가 엎드려 있었고. 안에는 군졸들이 숨어서. 성에 육박하면 이내 성을 넘을 요량이었지. 그리고 땅에 있는 군사들은 바퀴 달린 방패차를 뒤따라 떼를 지어 달려왔네…….ꡓ
매우 격한 상황인데도 채물음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게 깔렸다. 그러면서 가끔은 정으로 때리듯이 말에 힘을 실었고 손을 들어 어떤 모양을 꾸미는가 하면. 경련이 일 듯 발가락을 빳빳이 세우기도 했다. 자칫 놓칠 것 같은 낮은 목소리와 내용을 좇아 면밀하게 바뀌는 동작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채물음은 관군의 거대한 교거가 성문 앞에 이르러 봉기군의 반격을 받아 무참하게 부서지는 장면을 이야기한 뒤. 숨을 몰아쉬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거를 부순 것이 봉기군의 마지막 저항이라 것도. 사람들에게서도 불안한 안도의 숨소리가 새나왔다.
그가 콧등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ꡒ……교거가 부서진 뒤. 그들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네. 땅굴을 파는 거야. 성 아래까지 땅굴이 다다르면 거기서 화약을 터뜨려 단번에 성곽을 날려버릴 계획을 세운 거지……ꡓ
ꡒ성 밑에서 화약을 터뜨린다고!ꡓ
디딜방아네 앉아 있는 젊은이가 뇌까렸다. 채물음의 눈길이 잠시 젊은이에게 머물렀다가 계속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ꡒ땅굴을 파는 데는 보름이 걸렸네. 땅굴은 이윽고 성의 북장대 밑에 다다랐어. 땅굴 속에 밀어 넣은 화약은 무려 이천 근이 되는 분량이었지. 화기가 돌아 나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진흙과 큰 돌로 틀어막고는……화승의 힌끝을 화약덩이 속에 집어넣고 다른 한끝을 굴 밖으로 끌어낸 뒤 화승 끝에 불을 댕겼어!ꡓ
숨을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쉰 채물음은 이천 근의 화약이 성문 밑에서 터지는 광경으로 곧잘 치달았다.
ꡒ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성이 일어났어. 땅이 치솟고 북장대의 성벽 수십 길이 무너지기 시작했어. 검은 연기가 충천하는 가운데, 공중에 치솟은 흙이며 돌은 마치 비가 뿌리듯 하늘에서 떨어졌네. 성안 사람이든 성밖 사람이든 놀라서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았다…….ꡓ
연암. 박지원이 중국의 요동성에 갔을 때 수호전을 낭송하는 얘기꾼이 그렇더라고 하던가. 낭송이 긴박하여 듣는 이를 숨막히게 하고. 노래하듯이 원망하듯이 슬픈 듯이 영걸의 형상을 연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채물음의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호방하게 토설하지도 않았으나 화약이 불을 뿜고 흙이 치솟는 광경을 지나면서는 도리어 목소리가 도란도란해졌다.
흙과 돌이 비처럼 쏟아질 때였어. 하고 말한 뒤였다. 성곽을 지키다가 공중으로 몸이 날아가는 봉기군의 모습과 돌을 나르다 진흙에 고꾸라진 아낙네의 얼굴 표정. 콧물 흘리는 아이들. 반틈 잘려 나간 갓을 목에 건 선비들의 형용이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무렵에 채물음은 성안의 풍경을 농밀히 묘사하여 마치 눈앞에다. 그리는 듯했다. 한 부분을 묘사하는 동안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관자놀이가 벌떡벌떡 뛰기도 했다. 채물음은 성이 무너진 직후에 있을 직한 인물들의 무수한 표정들을 일구어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채물음의 이야기가 거기서 다음 대묵으로 건너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장대 아래에서는 또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검은 연기가 자옥한 그쪽 성안의 다른 광경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성이 무너지는 장면으로 되돌아왔고, 세 번째 나아갔을 때는 익살까지 곁들여서 성안의 풍경을 자세하게 그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성이 무너지곤 하였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문장 속에 수렴시키는 것과 같았다. 성이 무너지는 장면에 이르면 좌중은 또다시 끔직한 적요에 휩싸였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상 하나의 정황만을 적시하는 데 불과했다. 뻗어나가다가 다시 돌아오고 뻗어나가다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누가 성을 침범했는지 누가 어떻게 성을 지키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든가 여섯 번째든가. 성이 무너지는 장면으로 재우쳐 돌아왔을 때였다. 객점 마당과 뒤란 사이에 있는 사물들이 성이 무너지는 그 시간의 이야기 속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뚝뚝 떨어지는 조그마한 감꽃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굴뚝. 목이 부러진 디딜방아. 깨어진 기왓장. 하늘에 비끼는 구름. 부황 기가 든 아이들의 얼굴. 옷고름을 쥐고 있는 아낙네들이 그의 섬세한 묘사에 실려 1812년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것은 내가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다가도, 순간순간 그를 포박할 근거를 찾아야겠다고 그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모를 뻔하였다. 놀랍고 기이했다. 전혀 다른 사물이 시간을 건너가서 한데 어울렸는데도 별다른 어색함이 없었다.
담장 아래 핀 닭개비풀. 목이 부러진 디딜방아가 오래 전 이야기 속으로 흡수되는 것이 내게 어떤 환각 작용 같은 것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나는 채물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전 사당패 앞에서 이야기하던 그의 젊은 시절을 떠 올렸다. 그때 아버지와 함께 상춘(賞春)을 가던 길이었다. 공산성으로 들어가는 산모퉁이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철쭉과 새의 날개 같았던 그름 문양. 바싹 마른 길바닥. 먼지를 자옥이 일으키며 달려가던 도포사가 탄 말. 어디선가 바람에 날려와 내 앞에서 고꾸라지던 가오리연…… 이런 것들이 현기증을 일키며 내게 떠올랐다. 그리고 사당패를 앉혀놓고 무슨 이야기에 열중하는 젊은 채물음의 붉은 얼굴과,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덩실덩실 몸을 흔들던 사당패들의 춤사위까지. 이전에 한번도 추억한 적이 없는 자잘한 옛일들이었다.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보는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그들의 눈길은 허공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이윽고 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앞자리에 앉은 노인네가(그도 역시 환영에 빠진 듯) 졸음이 와서 턱을 찧을 때였다. 채물음이 부채로 무릎을 탁 치며 목청을 조금 돋웠다.
ꡒ그들이 홍 장군을 발견했네! 오 척 단신에 눈 위에 사마귀가 있고 얼굴빛이 철색(鐵色)인 홍 장군을 발견했네. 그들이 귀신 들린 듯 소리 지르며 총을 쐈어. 수십 발이 꽂혀도 홍 장군이 죽지 않자 모두가 달려들어 장군을 결박했네. 쇠줄을 홍 장군의 몸에 칭칭 감아 수레에다 태웠네. 무너진 북장대를 지나던 홍 장군이 한번 몸을 움직이자 쇠사슬이 끊어지고 수레가 깨어져. 마치 매미가 허물 벗듯 했지. 홍 장군이 공중으로 솟아올라 운무에 묻혀 가버렸네. 장교와 모든 군사가 어이없이 다만 공중만 바라보며 넋을 잃을 따름이라!ꡓ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그 자리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노인이 쌈지에서 돈을 꺼내 채물음 옆에 던지고 짚신 한 켤레를 집어 들었다. 그제야 모두들 엉덩이를 뚝뚝 털며 일어났다. 앞으로 나가 동전을 내놓고 짚신을 집었다. 이야기 값 대신에 채물음이 가져온 짚신을 사 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장꾼들이 봇짐을 둘러매고 마당으로 나갔다. 채물음도 몇 사람과 목례를 나누고는 사립문을 나셨다.
나는 환각에 깨어난 듯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객점 마당으로 가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나는 채물음을 뒤쫓을까 하다가 그냥 평상에 걸터앉았다. 주인에게 국수를 시키면서 스스로 어이없어 했다. 그에게 어떤 혐의를 걸고 추적하던 둥이 아니던가. 그의 목소리가 선동적이지 않았지만. 이야기 내용은 지난해 폭동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에 빨려들고 말았다. 이야기하는 법이 낯설었고. 시간을 넘나드는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야릇한 환영이 솔솔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어릴 때 일이던가. 바람에 날려와 내 앞에서 픽 고꾸라지던 가오리연이라니.
객점 마당은 장꾼들이 죄다 서로 아는 사이여서 앞뒤 없이 시끌벅적했다. 좀 전 이야기판에서 앞자리에 앉았던 노인이 바로 곁에 있었다.
ꡒ채물음이 원래 저렇게 이야기를 하오? 어째 보통 얘기꾼과는 다른 듯하오.ꡓ
내가 갑자기 그렇게 묻자. 노인이 나를 아래위로 힐끔거렸다. 많이도 늙은 사람이었다. 머리가 빠져서 상투 속에 들어 있는 머리카락이 올을 헤아릴 정도였다. 노인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ꡒ뭐가 다르오?ꡓ
ꡒ글쎄요. 홍경래의 정주성 이야기지 않소. 어쩐지 허담(虛談)인 것 같소.ꡓ
이야기를 듣는 중에 환각 같았던 내 느낌까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ꡒ허담인 건 당연하지.ꡓ
ꡒ예?ꡓ
노인의 간단한 수긍에 내가 어리둥절했다.
ꡒ채물음이 정주성 싸움에 대한 책을 읽은 거만 해도 수십 권은 될 걸세. 그래 놓고도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린다네.ꡓ
ꡒ잊어버린다고요?ꡓ
ꡒ그렇지. 잊어버리지. 그래서 정주성이 정주성이 아닌 것이 돼버린 게야.ꡓ
노인은 껄껄 웃고는 등을 돌려 장터에서 바로 온 사람들과 어울려버렸다. 정주성이 정주성이 아닌 것이라니. 나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의 말은 경계가 없어서 명료하지가 않다. 노인에게 더는 말 붙일 필요가 없었다. 주인 아낙이 평상에 앉은 사람들을 피하느라 국수 그릇을 가스쯤 치켜들고 걸어왔다. 아낙이 두고 간 국수를 보자 시장기가 싹 달아났다. 호박 대신 호박잎을 넣고 파 대신 솔잎을 따 넣은 것은 그렇다 쳐도 그릇 운두가 찌그러져 개밥그릇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전 한 시간 동안이나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던 채물음의 이야기도 얼마나 경계가 없었던가를. 나는 국수 그릇을 다 비웠을 즈음에야 놀란 듯이 깨달았다.
3
강경포에서 충청 감영이 있는 공주까지는 120리 길이었다. 은진현 관아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말을 빌려 타고 감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높은 청사가 어둠에 에워싸인 것이 괴기했다. 나는 뜰을 배회하다가 장서각으로 들어갔다.
장서각 내부는 꽤나 넓은 편이었다. 호구장적과 양안(量案)문서 등이 왼편에 보관돼 있고 오른편 서가에는 경서와 잡서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등잔불은 약방 아전이 피워놓았었다. 판관의 손자가 무슨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전은 나를 보자 의서를 꽂고 나갈 채비를 했다. 중앙에서 부임해 온 자와 현지의 아전은 늘 껄끄러운 사이다. 문을 나서는 아전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ꡒ자네 혹시 채물음이란 자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나?ꡓ
ꡒ채물음요?ꡓ
ꡒ그래ꡓ
ꡒ아. 설낭 채가를 말씀하시는군요. 그자는 실상 짚신 장수랍니다. 짚
신을 팔려고 얘기판을 벌리는 장사치지요. 요즘 장사꾼들은 다 그런 수작을 부려야 먹고살지요.ꡓ
ꡒ그만 가보게.ꡓ
나는 등잔에 콩기름을 좀 더 채워 넣었다. 그래도 서가 안쪽까지 불빛이 미치지 않았다. 나는 책상에 앉아 서가 안쪽의 깊은 어둠을 바라보았다. 약방 아전의 말이 왠지 쓸쓸했다. 강경포에서 공주까지 말을 타고 오는 동안 채물음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귓전을 울렸었다. 공중에 충천하는 검은 연기와 콧물을 흘리는 아이. 뚝뚝 떨어지는 감꽃. 담장을 따라 핀 닭개비풀……서로 다른 위치에 있던 사물들이 어떻게 그토록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경을 표현하는 하나하나의 묘사들은 너무 섬세해서 아름답기까지 했었다. 작은 풍경들이 서로 부대끼며 어울리다가 어느 틈에 수십 길 성벽이 무너지는 장면 바로 곁에 놓이는 게 아니었던가. 이야기는 성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 있었고 성이 무너지는 것은 바로 그런 다채로운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옛이야기 속에 지금 객점의 풍광들까지 스며들어 하나의 광경으로 수렴될 때는 그냥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묘사에 빨려들다가 저절로 내 속에서 기묘한 환각이 일어났던 객점에서의 일을 떠올리자 와락 소름이 끼쳤다.
의아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채물음이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관찰사는 수일 안에 민간의 동향이 어떠했는지 내게 하문할 터였다. 채물음은 지난해 폭동 때 단순히 농민들 뒤를 따라다녔다고만 한다.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었다. 이것은 내가 채물음을 주시하면서 맨먼저 혐의를 걸었던 부분이었다. 추측이 빗나가자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혐의를 둘 만한 단서를 뽑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거듭해서 들울수록 독특한 이야기의 방식에 대해서 궁금증이 들끓었다. 왠지 그런 이야기 방식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낯익었다.
이마를 짚고 있던 나에게 불현듯 스치는 게 있었다. 나는 벌떡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엉덩이가 뻐근하고 허리가 결렸다. 모처럼 말을 타고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서가를 왔다 갔다 하며 서책을 뽑아냈다. 모르긴 하되 패물음이 보았음 직한 책들이었다.
홍경래 난이 기록된 <관서평란록>.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한 패관(稗官)의 잡서들, <동해야서> <기문총화>그리고 언문으로 된 소설책…….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서나 호구 문서들이 대부분인 줄 알았던 나는 서가에 꽂힌 패관 잡서들의 양을 보고 적이 놀라워했다. 아마 지방 관청리라서 그럴 것이다. 파적거리에나 몰두했던 관속들의 느슨했던 업무를 짐작하게 했다.
잡서들을 책상에 펼쳐놓고 들여다보았다. 필사된 글씨와 방각(傍刻)활자들 위로 등잔불이 날름거렸다. 함부로 등서한 글씨는 비뚤비뚤했고, 오자와 탈자. 이어지지 않은 문맥들이 연거푸 나타났다. 명주실로 묶은 세련된 장정본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너울거리는 불꽃과 책으로 둘러싸인 방. 채물음에 대한 까닭 모를 집착, 아마 이런 것들이 나를 부추겼는지 모른다. 나는 점점 골똘하게 서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문맥과 잘못 쓰인 글자들이. 여느 때 같으면 결코 이해하지 못할 글귀들이. 돌연 뜻을 주고받으며 내게 뜻밖의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탈자로 빈 공간에 낯모를 어휘가 들어서고 잘못 씌어진 게 분명한 자획은 오히려 절묘한 뜻글자로 변하는 것이었다. 잡서들의 문장이 난잡하여 정조 때 문체반정(文體反正)이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오탈자들이 빈번한 이런 책들까지 지목한 것은 아닐 터였다. 흠이 지나쳐 흠을 잡을 필요가 없는 사본들이었다.
채물음은 젊은 시절에 숱하게 많은 잡서들을 읽었다고 했다. 한 번 읽기만 하면 되돌아서 외운다는 엄청난 기억력이 이런 오탈자가 많은 잡서를 읽을 때도 통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ꡒ그는 논어를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다 외웠지.ꡓ
낮에 객점에서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내가 칼국수 그릇을 다 비운 뒤에 다시 노인을 끌어 앉혀서 들은 얘기였다. 나는 당시품위를 다 외운 건 아니냐고 되묻지 않았다. 촌로가 그런 유수의 시집(詩集)을 입에 올리긴 어려운 터였다. 노인은 자배기 술을 들이킨 뒤 트림 섞인 말소리를 장황히 늘어놓았다.
ꡒ채물음은 그날. 자신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다네. 집이 불타는 것을 봤을 때였어…… 부친이 역관을 지낸 분이었는데 공주에 대궐같은 집을 지었어. 토호와 결탁해서 어찌어찌하여 돈을 굉장히 벌었다네.ꡓ
그가 열두 살 때였지. 하고 노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인은 채물음을 감싸 안으려는 시늉인 게 분명했다. 노인이 ꡐ어찌어찌하여ꡑ 라며 말을 감춘 곳에 고리대금이나 환곡미 같은 것이 들어가겠구나 싶었다. 그것은 지난해 농민 폭동이 일어난 원인이기도 했다. 노인은 채물음의 집에 화적 떼가 몰려와 재산을 탈취한 뒤 대궐 같은 집을 불태웠다며 혀를 찼다. 부친은 앓다가 곧 죽고 그는 얼마간 토호집에 얹혀 살았다고 한다.
ꡒ그때 채물음이 죽다가 살아났지. 집이 qfxksmsep 피하지도 않았다네. 글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데 벌건 기왓장이 파리채처럼 어깨에 척 달라붙더라나? 반년이 넘도록 어깨에서 샘물이 솟는 듯 했대. 거참, 채물음의 말본새가 어렇다니까. 하여간 살갗이 쭈글쭈글하게 아문 뒤로 다시 서당에 나갔다는구먼. 그데 매미처럼 뻬뻬외던 논어를 앞에 펴놓고도. 통 갈지(之) 자도 모르겠더라는 거야.ꡓ
ꡒ거참 이상하군요.ꡓ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ꡒ암. 이상하지. 더 이상한 건. 글자는 생각이 안 나고. 채물음 말이. 매품 팔러가는 흥부 얼굴만 자꾸 떠오르더래.ꡓ
ꡒ?ꡓ
ꡒ무슨 말이지 알아듣겠어? 제 아버지가 사람들을 오죽 못살게 굴었으
면 도둑질하는 화적놈들이 불까지 싸질렀겠나. 제 집에 들락거리던 사람들이 흥부인 양 보인 것이지…… 그 뒤로 서당에 나가지 않았대. 나갈 수도 없었지 뭐. 그래도 책보는 습관은 몸에 이처럼 붙어 있어 잡서 나부랭이나 뒤지고 다녔다는 게야.ꡓ
채물음의 말을 옮기는 노인의 입놀림도 걸품이었다. 매품 팔러가는 흥부의 얼굴이 어땠을까 생각하는데 노인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ꡒ내가 언제 한번 물어 봤지. 책 읽은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다던데 패관잡서는 머리에 남아있냐구 말이야. 채물음이 뭐라 대답했는지 알아? 요즘 눈이 희미해 읽은 게 없어 모르겠다고 웃데. 그러자 옆에 있던 총각이 한술 거드네. 채물음은 몸 자체가 이야기지 않냐고. 맞아 맞아. 채물음은 몸에 이야기들이 따박따박 배어 있어 대문 빗장나무에 손때가 까맣게 밴 거 모양. 몸 자체가 이야기라네.ꡓ
까북 졸았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자에 앉아 있지 않고 안쪽 서가 아래에서 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 웅크려 있었다. 손가락에 작은 서책 한 권을 끼우고서였다. 고개를 들고 서가를 올려다보았다. 벽을 따라 서책이 촘촘히 박혔고 그 위로 불빛이 너울거렸다.
몇 시나 되었을까. 사위가 지독하게 조용했다. 잠들기 전에 읽었던 글귀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관서평란록>인가 <임진록>인가. 잠든 사이에 책 속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뇌리로 건너온 것 같았다. 꽹과리를 치고 깃발을 올리며 화살이 날아들고…… 기생들의 꽃잎 같은 치마가 사각사각 스치고 말발굽 소리가 뚜벅뚜벅 귓속을 울렸다. 나는 다시 서가를 올려다보았다. 불빛이 너울거리는 서가는 얼핏 내 눈에 담벽처럼 보였다. 어슴푸레한 불빛 때문에 촘촘히 박힌 책 모양이 지워져서일 것이다. 벽은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후닥닥 몸을 일으켜 등잔 아래로 갔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펼쳤다. 조금 전 잠을 깼을 때 손가락에 끼우고 있던 책이었다. 언문으로 된 <홍길동>이었다.
가는 붓으로 필사된 글은 완숙한 한문의 행서를 흉내내고 있었다. 자획과 자획 사이가 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래도 서너 장을 넘기자 어느 정도 문맥의 흐름을 찰 수 있었다. 글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놀라운 대목을 발견했다.
전날 채물음의 입에서 나온 바로 그 부분이었다.
즉시 길동의 사지를 결박하고 수레에 넣어 건장한 장교 수십을 뽑아 철통같이 에워싸고 풍우같이 몰아갔다…… 길동이 한번 몸을 움직이자 쇠사슬이 끊어지고 수레가 깨어져, 마치 매미가 허물 벗듯 공중으로 올라가자 운무에 묻혀 가버렸다. 장교와 모든 군사가 어이없어 다만 공중만 바라보며 넋을 잃을 따름이라.
놀랍다 못해 기이했다. 채물음은 분명히 1812년 지방의 봉기를 고담처럼 늘어놓았는데. 그 내용은 홍길동전에서 나온 것이었다. 길동을 홍경래로 바꾸면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채물음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돌을 나르는 아낙네들, 하늘에 비끼는 구름. 콧물 흐르는 아이들이 하나의 사건 속에 있었고 그 사건은 그가 이야기판을 벌이고 있는 객점과 상통했다. 역사의 인물들과 잡서에서 가공된 인물들이 역시 같은 방식으로 교섭되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쌓인 다른 책들을 펼쳤다.
훗날 나는 이때 일을 돌이킬 때마다 괴이하고 과장된 내 느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정신 없이 책들을 펼쳐 읽었고, 몇 시간 전까지 그냥 스쳐갔던 구절들이 느닷없이 되살아나서 채물음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채집했다는 패사(稗史)들이 그의 이야기와 희롱을 하는 것 같았다. 기문(記聞). 총화(叢話). 잡록(雜錄)…… 창작자가 따로 없으되 누구나 창작자가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책상 위에 앉아 있었을까. 격자창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나는 보던 책을 한쪽에 밀어놓고 조금 비틀거리며 뜰로 나왔다. 청사의 높은 추녀를 비끼며 햇살이 쏟아졌다.
늙은 관노가 마당을 빗질하고 있었다. 나는 관어정(觀漁停)을 돌아서 관찰사가 집무하는 선화당까지 나아갔다. 대감이 청에 오르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나는 빈 대청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축대 위에 놓인 해시계에 눈이 갔다. 앙부일영(仰俯日影). 세종 임금이 장영실에게 명하며 만들었다는 앙부일영을 본떠 남든 해시계였다. 몸체가 오목한 솥처럼 반구형이고 그것을 거북 등이 떠받쳤다. 크기는 겨우 한 아름 정도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햇살이 뾰죽한 시침에 걸려서 반구형 시계판에 짧고 날카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림자에 맞물려 있는 은색 시각선이 진시(辰時, 일곱시)였다.
태양과 감영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둘 사이의 그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산란하고 있을까. 나는 문득 그 공간에 편만한 무수한 햇살을 단 하나의 그릇에다 모아. 태양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해시계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지난밤 읽었던 책들과 채물음의 이야기가 내게 환각과 유비를 가르쳐주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하늘로 열린 반구형 해시계를 보면서 세상에 편만한 온갖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내는 채물음의 입을 떠올렸다.
나는 은색 시각선에 맞물린 그림자가 움직일 때까지 오랫동안 시계판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팔을 들어서 해시계를 받치고 있는 거북 등에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썼다. ꡐ擧ꡑ
결국에는 관찰사 앞에서 그를 거론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선동도 아니 했고 역모도 아닌데 내가 왜 그를 참소해야 하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끝내 그의 이름을 올리게 되리라는 것은 가슴을 찔러오는 슬픈 예감이었다.
등을 돌려 석축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4
나는 공주에서 강경포로 내려가는 도중에 촌락이 나타나면 들러서 채물음에 대한 소문을 채집하고 한편으로는 향회나 장터의 동정을 살폈다. 하지만 시골에서 비밀을 캐보려는 것은 부질없는 의욕이다.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그냥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즈낌이 넉넉히 다가오는 법이었다. 굴뚝에 연기가 나는 집이 드물었고 희멀겋게 부황 낀 사람들의 얼굴은 무엇을 도모하기보다 당장 오늘밤을 견디기가 힘겨워 보였다.
이야기판이 아닌 곳에서 채물음을 만나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부여현까지 줄곧 걸어온 나는 피로에 젖어 한 약방에 들렸다. 보원탕 한 첩을 먹고서는 지나가는 투로 채물음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이곳에서 그가 이야기판을 벌이기로 예정돼 있어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약초를 썰던 젊은 아이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ꡒ예기꾼 채물음 말이죠? 지금쯤 대장간에 있을 걸요. 저녁나절에 여길 왔다가 그리로 갔어요.ꡓ
ꡒ대장간이라고 했느냐?ꡓ
ꡒ예. 말이 대장간이지 주막이나 다름없죠. 제방공사 울력꾼들이 거기서 밥을 먹고 잠을 자요. 나가서 큰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면 포목상이 나오는 데 포목상을 돌면 끝무렵에 대장간이 보일 거예요.ꡓ
대장간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먼지를 뒤덮어 쓴 포목점을 돌아가자 메밀밭이 나왔고 그 초입에 대장간이 곧 엎어질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나무판자를 붙여서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집채였다. 나는 잠시 앞뒤를 살핀 뒤 안으로 들어섰다.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온 듯 사내들이 상의를 벗은 차림으로 짐승처럼 돌아다녔다. 간혹 욕설과 괄괄한 웃음소리가 대장간과 붙은 초가 안에서 튀어나왔다.
오래지 않아 나는 대장간 안에서 채물음을 볼 수 있었다. 대장간 일을 하지 않는지 구석에 먼지 덮인 농기구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그 옆에서 채물음이 짚신을 삼고 있었다. 나는 주인을 불러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우연을 시늉하느라 채물음에게 다가가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저녁을 먹은 뒤 사람들은 술을 마셨고 더러는 바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소똥 냄새가 지독하게 코를 찔렸다. 대장간과 붙은 초가는 원래 소 우리였던 모양으로 나무 기둥과 바람벽에 악취가 깊게 배어 있었다.
ꡒ날씨가 꿉꿉한 게 내일 비가 뿌릴 성싶은데. 짚신이 어디 팔리겠수?ꡓ
그의 곁으로 엉덩이를 끌며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였다. 채물음은 나를 힐끗 건너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청올치를 땋아서 신을 만들고 있었다. 칡덩굴 속살을 재료로 쓰는 청올치 신은 짚신으로 만든 것보다 부드러워 여자들이 신기에는 좋았다. 채물음은 대체로 짚신을 가지고 왔지만 청올치신도 얼마간 마련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정말이지 아주 하층민이나 이용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짚신을 사 가긴 했으나 그가 직접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집안이 쓰러졌다. 해도 부친이 역관을 했다지 않은가. 이쪽 칸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이미 사공농상은 옛말이었다. 양반이 가세가 찌들면 상민보다 나을 바가 없었고 재물 있는 노비가 노비를 거느린다는 소문조차 있었다.
가까이서 본 채물음은 얼굴에 순한 인상이 숨어 있었다. 주름이 많고 뺨이 좁아 모진 사람처럼 비쳤지만 통통히 살을 돋우면 오히려 광대뼈가 들어가고 미간이 넓어질 만한 상이었다. 그는 좀 전에 겉옷을 벗었는데 그 바람에 속옷 사이로 화상 흉터가 엿보였다. 늑골에서부터 등 뒤로 거의 엉덩이까지 흉터가 선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벌건 기왓장이 파리채처럼 등짝을 때릴 때까지 왜 불구덩이를 보고 서 있었을까. 어린 그가 무슨 뚜렷한 생각을 품었을 리는 없을 터였다. 가세가 번듯하다는 자랑이 한순간 수치스러움으로 바뀔 때. 그만한 기습적인 충격이 올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별안간 경련하듯 다리에 마비가 일어나 불을 피할 수 없었지 않았을까.
채물음이 신 삼는 솜씨는 여간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한참 꼼지락거리면 어지럽게 얽혀 있던 청올치는 금방 신발 모양을 갖추었다. 외줄 하나로 제꺽 신발을 만드는 것이 마치 그가 평이한 소재로 이야기를 꾸미는 것처럼도 보였다.
ꡒ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텐데 코를 제대로 찾앗 꿰는구려. 짚신 삼는 솜씨를 보니 댁의 이야기가 그렇다는 생각이 드오.ꡓ
내 말투에 어떤 기미를 느꼈을까. 그는 잠시 나를 건너보고는 다시 칡덩굴로 눈이 갔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가 신을 다 만들고 그냥 누워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퍼뜩 떠오르는 생각 하나를 잡고 힐난조를 대질렀다. 그의 응수를 듣기 위해서였다
ꡒ사람들 말이, 댁은 비겁한 자라고 하던데. 이야기야 그럴싸하게 꾸며대지만 정작 작년에 난리가 일어났을 때는 그냥 꽁무니만 따라 다녔지 않았소?ꡓ
나는 그가 지난해 난리에 소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사람들은 그가 아낙네들처럼 난리통을 뒤따라 여기저기 다니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 비추어보면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은 이야기하는 방식에 끌려 누그러졌지만 처음 한때 강하게 가졌던 의문이었다. 신발 한 짝을 다 삼은 뒤에야 채물음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ꡒ난 얘기꾼이지 아전을 때려잡는 저승사자는 아니지요.ꡓ
새 칡덩굴을 몸 앞으로 끌어당기는 그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지난해 농민들 손에 학살된 아전은 충청도에서만 십여 명이 넘었다. 그들이 맨 앞에 서서 학정을 한 탓이었다.
ꡒ허참, 얘기꾼이라서 좋았겠소? 그래서 한쪽에선 피가 터지는데 시원한 평상에 앉아 얘기판을 왁자하게 돌렸군요. 혹 댁의 그런 얘기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믿었소?ꡓ
그가 작년 난리 때 얘기판을 벌렸다는 것은 순전히 추측이었다. 이십 년을 이야기판에서 살아온 채물음이라면 응당 그랬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공주에 부임하기 전이라서 한양에 있었다. 그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보았다.
ꡒ내가 꽁무니만 쫓아다닌 것은 사실이나. 따로 이야기판을 벌인 적은 없소.ꡓ
ꡒ......ꡓ
나는 성급한 추측에 실소했다. 하지만 얘기판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은 더 이상했다. 나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ꡒ그래서 더 비겁하다는 거요. 예기로 살아온 사람이 이번엔 눈치 보느라 얘시판을 접었다는 거 아니요. 얘기판이 무슨 윷가락 판인가 보오.ꡓ
짚신을 바삐 삼아서일까. 등잔불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땀이 비질거렸다. 밤 날T는 오히려 추웠다. 그는 팔을 길게 뻗어서. 울력꾼들이 먹다 남긴 술 주전자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목소리가 왠지 흔들렸다.
ꡒ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이야기지요. 사람들이 곧 이야기고, 이야기가 곧 사람들이오. 지나해 나는 관아를 부수러 가는 사람들을 허둥지둥 뒤쫓아만 다녔소 그때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소 그들은 이미 이야기 한가운에 있었단 말이오. 그런 와중에 내가 따로 이야기판을 차려서 무엇을 하겠소.ꡓ
ꡒ그럼 반란과 역모가 이야기란 말인가?ꡓ
감동할 만한 언사이나 뒤집어보면 심각한 말이었다. 내 목소리가 큰 듯싶었다. 잠자던 사라들의 숨소리가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겉잠을 자면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ꡒ그런 뜻이 아니오.ꡓ
그는 부인했다. 탁주를 한 사발 그대로 들이켠 뒤 또렷이 말했다.
ꡒ관아를 쳐들어갈 때였소. 나는 그때 사라들의 마음이 하나로 똘뽈 뭉쳐 있는 걸 보았소. 그러나 어지 반란이나 역모에만 마음이 뭉치겠소? 오히려 그런 것들은 가당치가 않소....... 우리에게는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아주 깊은 곳에 뭉쳐 있는 부분이 있지요. 나는 그것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소. 내가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뭉쳐 있는 그 부분을 이야기로 바꾸어서 그들에게 들려준다는 것뿐이오.ꡓ
그는 다시 짚신으로 손이 갔다. 불빛이 주름진 좁은 뺨과 이마에 어른거렸다. 그는 이야기판에 있을 때와 다르게 말을 아꼈고 왠지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어떤 회한이 있는가. 알 수 없는 일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이십 년을 메고 다닌 이야기판의 무게가 느껴졌다. 책의 두께처럼 그의 얼굴이 깊어 보였다.
그의 말은 비현실적이고도 미묘했다.
마음 깊숙이 뭉쳐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이르는 것일까. 며칠 전에 들었던 노인의 말이 그걸 가리키는가. 어린 채물음이 논어를 펴놓고 갈지자도 기억나지 않는데 매품 팔러가는 흥부 얼굴만 거푸 떠오르더라는 얘기가. 이야기판에 있던 중에 환각처럼 눈에 떠올랐던 내 어린 시절의 풍경도 혹 이를 말함인지. 채물음은 그것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서너 차례 들었던 그의 이야를 되새겨보았다. 돌을 나르는 아낙네와 닭개비풀들이 뒤섞이고 홍경래과 홍길동이 뒤섞이는 것이 흡사 꿈속에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자신의 실제적인 특성을 지우고 하나의 추상으로 남아서 서로 교섭한다. 두껍이가 말을 하고 토끼가 바다로 들어간다. 가위와 바늘이 실랑이를 한다. 의인화된 가전체와 몽유록의 소설처럼.
바로 그때였다.
ꡒ너는 자객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가?ꡓ
한사람 건너편에 누워 있던 자가 상체를 일으키며 내뱉는 소리였다. 크진 않았으나 돌연한 목소리에 채물음이 고개를 돌렸다. 자객이란 말이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거렸다. 마흔 줄에 들어섰을까. 깡마른 체격에 상투머리를 하고 있는 그자가 일어나 앉았다.
ꡒ나는 너의 애가기를 수차례나 들었다. 임진란도 들었고 정주성도 들었다. 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교묘하게 한 가지로 틀어서 옮기고 있다. 그 까닭이 뭔가?ꡓ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내가 놀랐던 범은 반듯한 말투나 나이 많은 채물음에게 하대하는는 걸 보아 양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딱히 주막에 들 형편이 안 돼 이리로 왔다면 대장간보다 방처럼 꾸며놓은 소 우리에서 잠을 자는 게 그나마 위신이 설 터이다. 달리 생각이 있어 이곳에 왔는가. 다행이라면 자객 운운한 것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은 이닌 듯했다. 채물음한테로 틀어 앉는 게 아예 내 쪽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채물음의 대꾸가 의외였다. 순순히 대답하는 것도 그렇지만 오히려 반색하는 눈치였다.
ꡒ내 이야기가 정히 그렇게 들렸단 말씀이오? 그렇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터지요. 나는 그것을 들추어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하지요.ꡓ
ꡒ이야기 속의 이야기라? 그 형용이 어찌 그토록 한결같은가. 너는 천 가지 이야기를 한 가지로만 꾸미고 있다. 그것은 한 가지가 사람들에게 들어가 천 가지 이야기로 풀리기를 바라고서 하는 것이 아닌가.ꡓ
ꡒ무슨 말씀이오?ꡓ
채물음이 짚신을 놓고 사내를 보았다. 음울한 표정이 지워지면서 갑자기 눈에 생기가 돌았다. 채물음의 이야기가 천 가지로 풀어진다니.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한곳으로 모이던 사물들이 어느 순간 환영처럼 확산되는 것을 나도 여러 번 경험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지나치게 이야기에 몰입한 탓일 수도 있었다.
나무판자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 사내는 채물음을 파랗게 쏘아보며 말했다.
“이미 너의 간살스런 골계(滑稽; 웃기는 이야기) 속에 그게 다 있었다. 너는 임진란을 이야기하면서 단지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만을 겨냥했다. 또한, 홍경래가 일으킨 정주성 싸움에 임해서도 성이 무너지는 찰나에서 한발작도 벗어나지 않다가 이윽고 홍경래가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참으로 교묘했다. 그것은 임진란에 죽은 김덕령이 용의 비늘을 몸에 두른 *아기장수가 되어 태어나게 하고, 경래를 곳곳에다 길동으로 퍼뜨리고자 함이 아닌가. 그게 한 가지를 천 가지로 푸는 게 아니고 무어란 말이냐.”
나는 사내의 말을 분명히 곡해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민심의 분란을 야기시킨다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채물음이 하는 이야기 방식을 되새기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채물음이 하는 이야기 방식을 되새기고 있었다. 김덕령이 아기장수가 되고 경래가 길동으로 변하는 것은 꿈속에서처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디 경래와 길동뿐인가. 닭개비꽃은 어는 담장 아래나 피어있고, 디딜방아는 늘 목이 부러지기 쉬우면 하늘은 자주 새털 모양의 구름을 가진다. 정주성에서도 객점에서도, 이곳 대장간과 내 어린 시절과 언제나 꿀 수 있는 꿈속에서도.
채물음은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천 가지로 풀어진다고요? 내 어찌 그만한 일을 기대하겠소.”
사내는 울화를 참는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누워 있는 울력꾼들이 시끄럽다고 잠결에 욕설을 내뱉었다.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눈을 부릅뜨고 채물음에서 뭐라 위협조로 몇 마디 던지곤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으로 바람이 몰아쳤다.
채물음은 사내가 나간 문 쪽을 흘낏 건너보고는 짚신을 보자기에 던져 넣었다. 짚신을 그만 삼을 모양이었다. 긴 칡덩굴은 팔뚝으로 빙빙 둘러서 감았다. 얽힌 칡덩굴을 푸느라 팔을 크게 휘젓자 벌건 흉터가 속옷 깊숙이 드러났다.
채물음은 보자기 끈을 매고는 그 자리에 벌령 드러누웠다. 술에 불콰해진 얼굴에 잔뜩 웃음이 묻어있었다. 눈을 감기가 무섭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조금 전 그자는 다시 올 것 같았지만 오지 않았다. 나는 소 우리에서 잘까 대장간에서 잘까 망설이다가, 앉은 채로 눈을 붙였다. 날이 샌 뒤, 채물음은 약방으로 가서 이야기판을 벌였다. 그이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힘이 박혀 있었다. 이야기를 따라 움직이는 그의 몸짓은 가늘고 세밀해서, 흡사 아름다운 꿈을 펼치는 것과 같았다.
닷새 후였다.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아침 열시경, 주막방에서 나오는 채물음을 갓을 쓴 양반 차림의 한 남자가, 종자가 들고 있던 칼을 뽑아 내리쳤다. 채물음은 나물밥을 먹고 마루로 내려와 신을 신다가 칼을 맞았다.
채물음이 약방으로 이야기를 하러 가던 참이었다. 나는 그때 조금 늦게 약방으로 가서 채물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다. 얼마 뒤 총각 하나가 허둥대며 빗속을 뛰어왔다.
주막집 낮은 서까래 아래에서 피가 지천이었다. 관아에서 나온 포졸이 갓 쓴 남자와 종자를 데려갔다. 주막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비가 쏟아졌다. 그의 주검 위에 가마니를 덮어놓았다. 사람들은, 비에 젖은 것을 말리느라 쪽마루에 펼쳐놓았던 짚신을 돈을 올려놓고 가져갔다. 나는 빗속에 우두커니 서서, 가마니를 걷어내면 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채물음이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갔을 것만 같았다.
그가 숨을 거둔 날은 1863년 5월 15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