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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앙가(地秧歌)의 표현 형식은 마치 교항악의 악기마냥 각자의 분담과 기능이 있는것처럼 매 음성부마다 구별이 있되 또한 서로 조화를 이룬다.
땅거미진 어둠속에서 시작되는 앙가(秧歌)를 보러 마을사람들이 몰려온다. 무용자들은 명쾌한 징과 북의 리듬에 맞춰 힘있게 스텝을 밟는다. 빨간색, 초록색, 검정색의 옷차림에 과장한 유채를 얼굴에 요염케 화장을 이들을 구분해내기 어렵다.
국가급 무형문화재 명록에 등재된 "소홍문지앙가/小红门地秧歌"의 4대 계승인 조봉령(赵凤岭)과 그의 벗들은 전혀 피곤함없이 때론 점프를 하고 때론 허리에 맨 북을 치면서 다양한 어려운 동작들을 선보이곤 한다. 그들중에 최고령자는 75세이, 제일 "젊은"멤버도 42세를 넘겼다는 것이 의외였다.
소홍문지앙가(小红门地秧歌)는 베이징지역에서 보존이 가장 완호한 전통앙가회(秧歌会)다. 원명은 "좌안문외홍사촌태평동락앙가성회/左安门外红寺村太平同乐秧歌圣会"로 청나라(清朝) 건륭(乾隆)시기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7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봉령(赵凤岭)은 "소홍문지앙가는 1959년 국경날 천안문에서 열병식 축가공연에 참가해 모주석의 사열을 받았으며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기간 성화를 맞이하는 공연활동도 참가했다"라며 소홍문지앙가의 휘황한 역사에 대해 자랑스럽게 소개를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지앙가에 관심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져 기존의 64개 공연 프로증 현재는 22개만 보류가 됐다는 아쉬움도 덧붙혔다. 비록 조봉령에 의해 90여편의 앙가 가사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공연에서 모든 멤버와 합창 할 수 있는 것은 20여편도 안된다.
현재 소홍문향정부에서 일련의 보호작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소홍문지앙가는 현지 특색이 있는 문화체육활동으로 소홍문중심초등학교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하여 학생들은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소홍문지앙가를 배울 수 있게 됐다.
조봉령은 "비록 대부분 학생들이 외지 노동자들의 자녀로 현지 문화에 대해 이해가 적지만 꾸준히 배운다면 향후 어디를 가든 기필코 베이징소홍문에서 배웠던 국가급 무형문화재인 소홍문지앙가를 기억할 것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출처 http://korean.cri.cn/new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