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태양(새해)을 맞는 해오름
2008년 12월 최영수 소장
앙상한 나무를 보면서 추위를 더 실감하는 우리네 삶.
겨울 같지 않은 날씨 탓에 조금만 추워도 웅크리는 모습들 앞에 잠시 혼란이 온다.
5․60년대의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그리고 그 겨울을 얼마나 얇게 입고 지났는지, 연탄을 아껴가며 손을 호호불며 방안에서도 코끝이 시린 그런 겨울들이었는데…. 그렇게 살았지만, 우리들 모두 자수성가로 이만큼이나 나를, 사회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잘 키워왔다는 자부심이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우리 후세대의 몫은?’에서 답이 얼른 나오지 않기에 더 추위에 민감한지도….
우리가 추위에 호호거릴 때, 앙상한 나무를 보는 순간, 마음은 삭막해지고 몸은 추위에 더욱 오싹해한다. 그러나 앙상한 나무는 다음 세상의 싹을 품에서 지키려고 온갖 치장을 다 버린 채 최소한의 삭정이만으로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음을 우리는 아득하게 모르고 있다.
그렇다. 겨우내 품안의 새싹을 다음 세상에 싹틔우려고
추운 날씨를 이기려고 온 몸으로 보일러를 가동하며 뜨거운 온기를
나무는 마구 뿜어내고 있다.
이렇듯 앙상함에서 에너지가 풀가동됨을,
그리고 앙상한 맨 몸으로 겨울나기의 가능함을
우리는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맞다. 내가 나이 들어서야 ‘곱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문득 깨우침이 든다.
아마도 나이를 먹으며 내가 자연다워졌나보다.
어쩌면 내 겉모습은 온갖 젊음의 영화로움을 다 떨쳐낸
자연스러움이 앙상한 나무처럼 닮아있다는 깨달음.
그래서였는지 자연스레 아름다워지려 노력하려는 나를 의식한다.
그렇게 질풍노도는 아니지만, 노년만의 싱그러움으로 내 남은 생을 달구고 싶다.
그리고 앙상한 나무가 품은 싹처럼 그렇게 내 삶을 틔우고 싶다.
그 싹 속에는
‘삶이란 너무나 하고 싶은 것들에의 유혹을 매일 매일 참아내어야 하고, 너무도 하기 싫은 일들의 귀찮음을 매순간 순간 넘어서야 한다.’는
아주 작은 나만의 진실이 꽁꽁 싸여져 있다.
나는 후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다.
‘삶은 참으로 많은 인내와 게으름과의 전쟁’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름답게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왜?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안경을 쓴 눈에는 온통 아름다움투성이 일테니까.
오오라! ‘지금 여기의 나’는 내가 포장해 세상에 내 놓은 ‘선물’이구나.
비록 나무처럼 앙상할지라도 나라는 존재 자체로서 선물인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 자기 자신을 거울로 볼 때도
‘오늘도 프레젠트’ 라는 작은 설레임을 애써 찾아 느끼며
나를 세상을 향해 선물로 꾸미고
나의 하루 역시 내 선물로 포장한다면
그 시작은 광명의 해오름에 비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새해가 밝았다. 1월은 우리말로 해오름이라네.
해오름 해돋이에 비치는 내 그림자를 어떻게 포장해 볼 것인지 궁리를 많이 하자.
그리고 그림자포장 보퉁이에서 향내가 스스로 품어져 나오게 만들자.
그래, 해보자.
우선, 그림자보퉁이 속에 든 내 삶의 덕목들을 해오름빛으로 바늘에 꿰어보자.
그 때, 보퉁이에서 나오는 냄새에 ‘자기 향’이 라는 이름표를 붙이자.
바로 그 향수로 세상을 덥히자.
그렇게 뿜고 피워낸 ‘네 향, 내 향’ 이불로 온갖 바람을 막자.
그렇게 나, 너, 우리 모두 해오름의 빛그늘에 서로를 묻을 각오를 하자.
그렇게 ‘너랑 나랑 향’으로 채워진 세상의 냄새로
지금의 난세를 모른 척 지나는 에너지를 얻어 내자.
그렇게 2009년을 날마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새롭게 품으며
내 싹, 네 싹, 우리 싹을 틔우자.
앙상한 삭정이가 어느 새 곁에서 ‘잘했군 잘했어~ ’라며 내게 불씨를 지피네. <행가래로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