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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세미나,22.11.26(토)
할렐루야. 지난 시간에는 이제 회개에 합당한 열매와 의의 열매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사도행전 18장 1절에서부터 28절의 말씀 가운데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 빛의 아들들이 이 땅에서 짓는 초막 또 율법의 선지자 모세가 지었던 그 초막의 의미를 우리가 살펴보면 우리의 마지막 때 화목직책의 사명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이제 이
사도행전은 지금 우리가 28장까지이지만 29장의 사도행전 신 사도행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의미 그런 뜻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은 이미 이른 비 때 모든 하늘의 비밀을 다 기록해서 지혜와 계시를 넣었는데 이 마지막 때는 그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 드러내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사도들을 통해서 기름 부은 그들이 가던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새롭고 산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부활의 길입니다. 부활의 길.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는데, 참! 성경은 너무 놀라운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 모든 환경 가운데 또 그들의 그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계시가 다 담겨져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창세전에 감춰진 그 모든 비밀을 비유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가는 것입니다. 공부가 아닙니다. 이것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공부가 아니고 생명입니다. 생명. 생명을 나누는 것이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해서 생명 나눈다면 하루 종일 공부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 1절에 보면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또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골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아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이르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성경은 이 지금 브리스길라, 아골라 또 바울 이런 자는 복음의 일꾼입니다. 복음의 아들들. 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들. 이들의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이들의 직업이 장막 텐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 이제 우리 아저씨들 이야기는 텐트라고 하니까 야외에 갈 때 텐트 치는 것 5인용 텐트 치고, 10인용 텐트. 이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장사해서 돈 벌어서 너희들도 장사해서 돌 벌어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이 할 일이 없어서 그들 직업을 여기에다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짓는 장막은 복음의 아들들이 짓는 초막은 바로 마지막 때 광야에 피난처를 예비하는 화목직책의 사명자를 계시하는 것입니다. 화목직책의 사명자. 할렐루야. 그들이 가다가 텐트 쳐서 2인용 팔아먹고 밥 먹고 이러려고 지금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그들은 이 모세는 광야에서 초막을 예비해서 그 40년 광야에 40년 동안에 그 안에 그 광야에서는 그리스도의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성막을 지어서 그 지성소에서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불러서 거기서 빛을 주고 말씀을 주어서 백성들의 죄를 사하게 하고 길을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0년 간. 그 때 하나님께서 이 초막을 지었을 때 그 초막 안에는 너와 네 집 종과 시민이 들어가서 광야의 피난처에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그 피난처를 예비하기 위해서 율법의 선지자 모세에게 성막도 짓게 하지만 초막을 짓게 한 것입니다. 초막은 초막절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초막절에. 그 안에 속죄절과 초막절에 들어갈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계시하는데 이제 이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바울은 율법의 선지자가 아니고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들. 이들이 짓는 장막은 이제 광야에 마지막 때 광야에 피난처를 예비하는 그 화목직책의 사명자. 결국은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고 요셉이 고센 땅을 예비하는 그 계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들은 의의 직분자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의의 직분자.
그래서 모세와 그 선지자의 사역이 아니고 복음의 사명자들인데 이제 그 의의 직분의 열매들에게 이제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다 알고 고린도후서 9장 9~10절에 이렇게 증거 합니다.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라. 지금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이 성경을 우리가 너무 몰랐기 때문에 가난한 자 그러면 배고프고 밖에 나가면 거지들 동냥하고 다니는 이런 가난한 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에 가난한 자라는 것은 이 생명의 말씀이 없어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 있는 그들을 가난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영생의 말씀이 없는 자. 그들을 가난한 자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 우리는 가난한 자라고 하니까 이제 거지들 도와주면 축복 받는다고 해서 엄청 도와줍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돈 바꿔서 다운타운에 미국에 다운타운 시내 가면 거지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달러 바꿔서 2불씩. 그들이 와서 no. 더블 더 달라고.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매일 와서 주니까. 그 사람이 더블 그러니까 왜 그러면 자기 맥주 사먹어야 된다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그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 천불 바꿔서. 이것이 왜 했냐? 복 받으려고. 하나님이 가난한 자 도와주라고 했으니까 이렇게 내가 했으면 내가 복을 받습니다. 무슨 복? 돈 복. 그래서 그 분이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지쳤습니다. 신경질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거지들이 이 차만 오면 다 달려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다렸다가 2불씩 주니까 거기에다 봉투에다가 ‘예수사랑’ 이렇게 해서 주는 것입니다. 2불씩 줬습니다. 나중에 이 분이 간증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 팔이 빠졌다고 합니다. 하도 이렇게 주어서. 왜 이렇게 주었는가 하면 거지들이 오니까 여기 오면 무서우니까 거기는 총도 들고 있으니까 창문 닫고 저쪽으로 주는 것입니다. 저쪽 창문 열고. 이렇게 해서 손이 하도 줘서 빠졌다고 합니다. 잘 됐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것이 복 받으려고 하는데 팔이 빠졌다고 합니다. 돈 주고 팔 빠지고. 그것은 자기 의로 한 것이지 하나님의 의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영원해야 되는데 그것은 자기 의 자기 복 받으려고. 내가 간증도 많은데 그런 이야기하면 시간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바울이 하나님께서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에게 심을 것을 주고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한다. 이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 심는 자에게 이 씨는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말씀. 이 말씀 이 생명의 말씀 새 언약의 말씀 이 말씀을 먹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 전파자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자.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 그 때는 이른 비 때는 천국복음이지만 마지막 늦은 비 때는 영원한 복음을 다시 예언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먹을 양식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줘가지고 왜? 주어야 풍성해지니까. 그래야 의의 열매를 더 거둬들이고 추수를 하게 되는데 이 말씀 안에는 이 의의 직분자 이 의의 열매들에게는 반드시 이 영원한 복음 새 언약의 천국의 말씀을 이것을 이 땅에 먹이고 또 영육 간에 강건하기 위해서 영생의 말씀도 먹이지만 육신의 양식을 먹일 수 있는 이 하늘과 땅의 양식을 줄 수 있는 축복권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직책의 사명자. 의의 열매로 드러나는 자들에게 주는 축복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의 양식을 먹어야 우리가 부활생명이 될 수 있고 또 우리의 육신이 강건해야 되는데 영과 육이 강건해야 되니까 우리 육신도 살아야지 매일 먹지 않고 그저 금식하면 여러분 한 40일 금식하시면 거의 가십니다. 가시고 나서 무슨 부활체가 되시겠습니까? 그 안에 영의 양식도 안 채워지고 매일 여기에 짜장면만 생각날 텐데. 며칠 굶어보십시오.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금식은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금식은 흉악의 결박된 자들을 풀어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영의 양식을 먹여서 그들을 살찌우라는 것입니다. 살찌우라. 부활의 생명으로 그들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이 지금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는 하늘의 대사의 권세를 준 하늘과 땅의 주는 그 권세 이것이 노아에게도 주었고 요셉에게도 주었고 자기 이 복음의 사도들에게도 주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래서 이 빌립보서 1장 3~11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감사하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교제했다는 것은 영과 영이 교통했다는 것입니다. 교통. 이것이 영적 예배자입니다. 교통한다는 것은 하늘의 비밀들을 서로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가 사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의 사랑의 결정체는 이 말씀을 먹고 영생함으로 너희가 부활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는 우리에게 축복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진리를 모르면 육의 양식을 먹고 살찌우는 것 밖에 모르니까 결국은 육의 소욕을 좇다가 사망으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영생으로 갈 수 없고.
그런데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시는 그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 그 성령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는 그 성령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예수의 날 재림 때까지 그 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로 그들을 그 영적 교제 이 성령과 영과 영의 교제를 통해서 그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온전히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너희에 내 마음에 있다. 사도 바울은 누구 마음에 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나무에 본인이 열두 가지의 실과에 맺혀지는 열두 가지로써 이방 사도로 보낸 열두 가지 중에 한 가지로써 그 가지를 통해 열매가 생명나무의 실과가 맺혀지는데 이 생명나무의 실과는 이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의 마음과 열두 가지의 사도 바울의 마음과 그 마음이 합해진 열매가 의의 열매가 실과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 할렐루야. 그 실과가 바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이 그 열매를 거둬가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루어서 부활생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휴거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나의 매임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매임이라는 의미는 본인은 이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내가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인치고 나니까 자기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임해지니까 자기는 무엇입니까? 죄 가운데 갈 수 없는 몸이고 죄를 지을 수 없는 몸인데 내 육이 있기 때문에 그 죄 가운데 갈 수 없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갈 수는 없는데 내가 육을 가졌기 때문에 복음이 나를 묶어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매어버리는 것입니다. 매었다는 것은 생명나무에 접목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도 그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너희 역시도 생명나무에 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이 무엇입니까? 심장은 무엇이 있습니까? 피가 솟습니다. 예수님의 피. 정결한 피가 흐르는 것입니다. 피가. 이 피가 바로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의 피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육을 가진 너를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생명이 임하니까 너는 새 생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 이 땅의 육을 가진 생명이 아니고. 그러면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에서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내 가지를 통해서도 그 심장이 마음이 합해 있으니까 그 피가 흘러 너에게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피가. 이것이 성찬예식 할 때 자신의 지체에게 붓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 떡은 말씀이요 자신의 언약의 피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영생하는 생명의 피는 생명을 이야기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이 기름을 부으시면 하나님의 지혜와 모든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됩니다. 풍성하게 된다는 것은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영적 예배자일 뿐만 아니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른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공중 재림할 때 혼인잔치에 연합을 이루는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그 열매로 거둬지는데 그 열매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최고의 축복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늘에서 난 자의 축복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난 자의 축복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택정함을 받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이제 나를 통해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o.k.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5~17절 이 의의 열매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화목직책 사명 그 축복이 내릴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 그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서는. 또 아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아들들에게 권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이제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지기 말며 그에게 꾸지람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만약에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니라.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분명히 징계가 오고 예수님도 오셔서 무엇을 했습니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채찍을 맞고. 왜요? 그 예수님의 채찍과 징계는 무엇입니까? 그의 안에 있는 씨 예수님 안에 있는 씨 복음의 씨 이 씨를 새 생명으로 이 땅에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가 반드시 육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려야 땀과 물과 피를 쏟아야 이 땅에 지구 땅에 그 분 안에 있는 생명이 새로운 새 생명이 다시 born again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과 제가 이 때까지 오시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반드시 그 연단과 고난이 있는 그 징계가 있습니다. 자기 삶 안에 이미 내 육은 죽고 사망은 내게 죽고 내 안에 있는 영이 사는 이 경험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경험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있는 영이 성령이 인도해 가야되는데 그 내 안에 있는 영이 깨어나려면 나 역시도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이 박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있는 예수가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나야 됩니다. 그 영이 살아나야지만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좇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았는데 내 육이 살아있는데 무슨 재주로 그 예수님의 길을 좇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땅의 삶이 다라면 갈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기서 잘 먹고 잘 살고 살다가 여기서 영생하면 되는 것인데 반드시 우리는 하늘보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의 열매가 되지 않고서는 부활의 열매가 되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시도 부활이 되지 않고 갈 수가 없었기에 그가 반드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초실절 3일 만에 부활을 하셔야 됩니다. 이것은 절기를 통해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예정해 놓아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기를 따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육신의 아버지 나의 육신 나를 나아준 육신의 아버지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육신의 아버지도 징계를 하면 공경하는데 하늘의 아버지 내 영의 아버지가 징계하면 그것을 복종하지 않겠느냐. 왜? 영이 성령께서 내 영을 강제집행하면서 끌고 가버리니까. 할렐루야. 이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축복.
그래서 저희는 잠시 자기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이 징계가 없다면 우리는 그 거룩함에 참예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이 박혀야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고 그 분이 재림할 때 우리는 그 분과 함께 한 몸을 이루는 그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게 되는 이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거룩함에 참예하는데 그 거룩함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땅에 육을 입고 있는 우리도 반드시 그의 몸과 같이 성령의 전이 되어서 예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듯이 내 몸이 성육신이 되는 이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이 몸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반드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된다. 의의 평강한 열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주는 의와 희락과 평강이 임하는 열매. 천국의 삶 영생의 맛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자. 그 자는 반드시 이 인생 가운데 이 연단과 고뇌의 고통이 없다면 내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그 고통이 그 어떤 성령의 인침을 받는 맛을 모른다면 내 안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가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맺는다, 맺는다 해도 내가 어느 상태가 되면 맺는 것이 아니고 죽음의 두려움에 다 빠져버립니다. 전부 다. 광풍이 그렇게 불어대도 주님은 주무시는데 이 성령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는 그 광풍이 임하면 그 배를 타고 있을 때도 있는데 임하면 다 떨어져 나가버립니다. 전부 다. 하나님은 반드시 추수하실 때 흔들어서 다 털어버리시고 다 털어버리십니다. 거기에 누구도 내가 그래도 제가 교회 몇 년을 다녔는데, 그래도 내가 최고의 시무 장로인데, 내가 그래도 최고의 영성 목사인데, 부흥 강사인데 다 이야기해도 그것이 의미 있는 말이 아닙니다. 네 안에 의의 평강한 열매가 맺혔느냐. 그것이 바로 예수님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오실 때 너의 믿음을 보는 것이 아니고 너의 열매를 보고 내가 알게 된다. 네가 주여, 주여 내가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의 권능을 보았다고 해도 주님은 너는 불법을 행했다고 징계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 안에 의의 평강의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한테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받아라. 성령 받아라. 너희에게 평강 할지어다. 계속 예수님의 말씀은 평강하라는 것입니다. 평강. 그 평강은 오직 하늘에서 주시는 생명수의 그 샘솟는 영생하는 생명수가 아니고는 평강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어떤 지식 이 땅에 어떤 물질 어떤 것을 다 주어도 주님은 인자는 이곳에 머리 둘 곳이 없고 이곳에 관심 있는 분이 아닙니다. 왜? 그는 이미 영생의 맛을 아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를 가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이 땅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부자 청년 같은 자가 되면 얼마나 슬픈 것입니까? 주님 앞에 왔는데 돌아간다는 것. 물질 때문에. 주님 앞에 그 축복의 문 앞에 왔는데 물질 때문에 돌아갑니다. 마음에 근심하고. 이런 자가 안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지 않는다는 것은 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성령과 교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 분과 교통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지옥 가는 것입니다. 다 불 구덩이로 가는 것입니다. 전부 다. 여기 큰 대문으로 가는 것이 수두룩합니다. 전부 다. 왜? 그 안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지 않기 때문에. 그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성령이 나를 인도해 가는 것이지 내가 지식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 이 화평과 거룩함을 좇아야 되는데 그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내 안에 쓴 뿌리 두렵고 내 안에 정죄하고 이 화가 올라오고 내가 어떤 상처와 이런 모든 것이 올라와서 친다는 것은 내 안에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됩니까?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하는 자가 되고 더러움을 입혀버리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기업을 이루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제 조건입니다. 전제 조건.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는 내가 무엇 때문에 기쁘고 화평한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 내가 우리 금고 안에 금덩이가 가득 있습니다. 이제 주를 잘 믿어야지. 내가. 이제부터. 왜냐하면 하나님이 금을 채워주었으니까. 그런 믿음은 좋다고 가는데 금이 점점 떨어지면 마음에 근심이 옵니다. 금이 자꾸 떨어집니다. 저기 언제, 언제. 그러다가 어느 날 금도 못 쓰는 때가 되면 낙망해서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금덩어리에 가 있는 것입니다. 금덩어리에. 이것이 금 신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금 신상. 그런데 내 마음이 말씀 안에 진리를 좇는다면 금과 은보다 귀한 이 진리를 안다면 금이 아무리 있는 들 내게 가진 모든 것이 있는 들 그 있는 것이 왜 내게 주어졌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기업을 세우는 것으로 축복 주셨다면 그것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나바와 같은 자는 이른 비 성령 때 열방을 이방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그 기업을 세우는 그의 재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그 재산은 하나님이 그에게 준 물질은 그 일을 이루라고 주었는데 그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열방에 이 복음이 전파되는 축복의 통로 얼마나 많은 그는 최고의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최고의 인생. 최고의 값진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 후사님들도 마찬가지이죠? 요즘에는 목소리가 많이 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러면 이제 이 율법 아래에 있는 베드로는 보십시오. 지금 복음의 아들 사도 바울은 이 그가 증거를 했는데 이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 변화산은 예수님이 보여주고 했는데 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초막 셋 짓겠다고 합니다. 초막 셋.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나를 위해서. 하여튼 내가 올라가서 좀 보자고 해. 베드로. 내가 올라가면. 그런데 이 때는 베드로 형님이 율법 아래에 있을 때입니다. 율법 아래에. 예수님이 같이 다닐 때는 성령이 안 왔습니다. 오순절이 안 됐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을 때니까 베드로가 잘난 체를 엄청 하는데 이것 자체가 무식하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모르면서 잘난 체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 의에서.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모세하고 같이 두어버립니다. 그리고 또 자기도 거기에다 같은 동격으로 합니다. 이 예수님이 그래서 그가 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율법 아래에 있으면 그 예수가 모세와 동격으로 보입니다. 그 예수가 이 땅에 제사장나라에 자손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태어났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에서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나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지 이 땅에 제사장 율법 아래에서 난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자신이 자신의 신분을 모릅니다. 자신이 지금 예수님과 같은 한 몸인데 그것을 모르고 모세를 쳐다볼 때는 이 베드로 입장에서는 그래도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하도 들은 것이 율법 아래에 들은 것이 모세가 우리 최고의 선지자요 우리를 출애굽 시켜서 우리 이스라엘 땅을 해서 이러니까 이 베드로도 모세는 굉장히 괜찮다. 이러고 다닌 것입니다. 자기가 모세 밑에 가서 안녕하세요. 모세님. 여러분 이런 삶을 사실래요? 모교로 돌아가셔서 안녕하세요. 이러고 사실 것입니까? 여러분은 만왕의 왕의 몸입니다. 지체. 하나님의 나라의 왕권을 가진 하나님나라 후사입니다. 이 후사인데 여기에 땅에 있는 종들한테 가서 인사를 한다? 이것이 정말 모세 같은 사람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 아니 베드로 같은 사람. 율법 아래. 아들로 택정함을 받았는데 아직 이 베드로에게는 무엇이 안 왔습니까? 성령이 안 온 것입니다. 성령이. 그러니까 마태복음 17장 1~13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제자 셋 데리고 가서 보여주니까 이 빛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부활체로 보여주셨습니다. 진짜 그렇게 보여주어도 성령의 기름을 안 받으면 봐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 앞에 변형되어서. 그러면 예수님을 봤을 때 이들이 봤을 때 예수님이 올라갔을 때는 꾀죄죄한 옷 입고 올라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3년 안 빨아 입고 다닌 옷 입고 다니니까 얼마나 꾀죄죄하시겠습니까? 제자들도 무얼 씻겠습니까? 모래 흙 바닥 다니는데. 그런데 갔는데 거기서 변형을 하는데 빛나는 옷을 갈아입고 오시는데 예수님이 봤던 그 분이 아니잖아요. 이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실체를.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 보여주고 닫았는데 그것을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다 보여주었는데. 우리 역시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를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짓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무엇을 보았습니까? 베드로가 지금? 성령이 잠깐 보여준 것이 무엇인가? 예루살렘에 24보좌를 보여주었습니다. 24보좌를 보여주었는데 베드로는 자기 정체성을 모릅니다. 성령의 세례를 안 받았기 때문에. 보니까 보입니다. 보이니까 그가 어떤 보좌에 있는지도 자기 정체성을 모르고 자기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예수님 거기 보니까 엘리야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한 번 했잖아요. 베드로가 이 엘리야 같이 바다에 가서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 됩니다. 베드로는 아무리 해도 안 죽습니다. 거기 다. 사명이 다른 것입니다. 그랬는데 보니까 엘리야도 있으니까 여기에다 초막 셋을 지어야 되겠다. 지금 거기에 초막을 지어야 되는 데입니까? 안 지어야 됩니까? 초막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종과 시민이 들어가야 됩니다. 피난처에. 그런데 지금 예수님을 베드로가 이렇게 무식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 저와 같이 피난처 가시죠. 주님, 어디로 올라가시려고 합니까? 주님 같이 가셔야지, 저랑. 이런 것과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입니다. 주님한테 무슨 주님이 나팔절입니까? 초막절에 같이 가지. 초막절에 같이 들어가시죠. 천년왕국 같이 들어가셔서 우리 같이 살고 이렇게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주님이 공중 재림 지상 재림 누가 하냐? 알아서 하시겠죠. 들어와서 같이 삽시다. 똑같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가 열리면 이렇게 무식합니다. 이렇게. 그런데 이 땅에 왜 그것을 왜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는가하면 부활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활. 부활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신만 보는 것입니다. 육신. 거기에다가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으니까 우리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또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니까. 생각이 거기 박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자신과 예수님이 하나님나라 유업을 이을 신분에 대한 것조차도 모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왜 모릅니까? 이는 분명히 창세전에 영의 생명으로 지음을 택함을 받았는데 이는 그 안에 무엇이 안 채워졌습니까? 생수가 안 채워졌습니다. 생수가. 생명수가 안 채워졌다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나라가 임하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임하지 못했다는 것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지 못하니까 그 안에 무엇이 못 나옵니까? 생수의 강이 흐를 수가 없습니다. 생수의 강이 내 배에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막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이 막혔다는 것입니다. 눈과 귀가 가려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금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변화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이런 상태가 되면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홀연히 나타납니다. 그 때는 가는 것입니다. 절차를 잘 보셔야 됩니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자기 죽는지도 모르고 그랬다가 하나님이 이 때는 그래도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그랬을 때는 죄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묵은 곡식 아래에 있을 때 엄청나게 우리도 이런 일 했습니다. 베드로 형님 같은 것. 이것 보다 더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 왜? 우리에게 성령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신 후에는 성령 훼방 죄가 해당되기 때문에 그것은 이생과 오는 세상에 죄 사함을 못 받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주는 것입니다. 이 예수는 내 아들이다. 너는 저 예수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께서 알려줍니다. 우리에게도 지금 무엇입니까? 늦은 비 성령을 통해서 이 영원한 복음을 듣고 전하라. 이 하늘의 비밀을 지금 우리에게 성령의 음성으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나면 모든 율법 아래에 있었던 자들은 사라지고 예수님과 그 제자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똑같습니다. 우리 역시도 그 주님을 예루살렘 성에서 영접할 때 그 때는 예수와 우리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일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룩함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세가 광야에서 짓는 그 초막은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전에 이 제사장나라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과 하나님이 약속한 에돔과 애굽 사람 3대 후 자손들 이 천국시민들이 광야에 40년 동안 양육과 보호를 받아야 되는 피난처가 필요했기 때문에 초막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초막. 그래서 이 모세가 광야에 짓는 초막과 이 복음의 사도 바울이 장막을 짓는 이 업을 가진 그 사명은 다른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주어야 됩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주어야 됩니까? 마지막 때 주의 재림 전에 우리는 복음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으면 우리 역시도 바울과 같은 초막을 짓는 자가 됩니다. 장막. 피난처. 그 업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업이라고 해서 또 여러분 가서 텐트 공장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을 또 잘못하면 다 내일부터 다 텐트 공장 찾아가면.
이제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은 그 진노하는 때 사람을 지은 것을 한탄한 그 때에 하나님은 싹 쓸어버리면 끝인데 그 안에 약속한 생명책에 기록한 자를 이미 언약을 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나중에 했으면 우리 굉장히 아슬아슬한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미리 다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약속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다시 약속을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땡 잡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약에 지금 너 하는 꼴 보고 짓는다고 했으면 우리 거의 내가 볼 때는 거의 99.9% 100% 다 찜질방 간다고 했습니다. 찜질방 전부 다. 간단하게. 그런데 이 언약의 말씀이 창세전에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에 우리를 봐서는 예수님 얼굴 같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에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화 되기를.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의의 열매가 나타나서 내 안에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이 영의 생명들이 나타나기를 인내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셨나요? 많이 그래도 가깝게 가셨죠? 지금도 좀 볶이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점점 지금 가까이 가고 있잖아요. 그렇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인내하면서. 우리에게. 왜? 그자들과 마지막에 하나님의 기업을 세워서 후 삼년 반 광야에 그 초막 안에 그 종들과 시민들을 추수해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 피난처가 예비 되지 않고서는 그들이 이 빛의 아들들이 들림 받고 나서 이 땅에 남는 자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이 피난처를 예비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이 영의 양식인 영원한 복음을 받아서 줄 자도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후 삼년 반 통과할 때 보면 그들은 누가 그것을 전달 해주는가하면 천사가 이 영원한 복음을 갖다 전달해줍니다. 왜냐하면 종들은 성령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사한테 받습니다. 천사. 천사는 누구입니까? 종이 높습니까? 천사가 높습니까? 종과 천사 중에 종이 높습니까? 천사가 높습니까? 대답이 신통치 않은데. 종이 높습니까? 천사가 높습니까? 천사가 높습니다. 하나님 아들하고 천사하고 누가 높습니까? 아들들,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이 만약에 천사보다 높다고 하면 하나님 아들들과 같으면 안 됩니다. 종들은 천사가 인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모르고 계셨나? 아직 좀 덜 벗겨졌는데. 아직 좀 더 벗겨져야 되는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제가 볼 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다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진리 가운데 다 펴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 본전 다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외식하고 아닌 척하고 있어보아야 못 갑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성령이 괴롭혀서 너는 산 영인데 왜 여기 있느냐고 하며 쫓아냅니다. 다. 어차피 우리는 그냥 다 펴놓고 몰랐다고 그러면 하나님이 알려 주면 됩니다. 알고 나면 하나님 지식이 쌓이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데 모르는데 아는 척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모르는데 아는 척하고 있으면 주님 오는 소리 못 듣게 되면 우리는 들림 받는데 밑에서 들림 받는 것을 못 봅니다. 왜냐하면 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저것들 외계인이야. 저것들 외계인 올라가는 거야. 외계인.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들은 것은 있어서. 아시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기업을 세우는 의미도 이 후 삼년 반이 되면 반드시 그 짐승의 표를 받는 환난이 오게 되고 그 안에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그 우리가 남자의 부활생명이 들림 받고 나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다 광야에 피난처로 도망가는데 그 때 그 안에서 양육과 보호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이 기업이 세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이제 축복 받는 기업이 세워지는구나. 우리도 그러면 축복 받기 위해서 해야 된다.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업이 예비 된 것들을 하나님이 움직일 때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준비해놓은 것들을 다 움직여버립니다. 세상이 지금 어둠이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자기들이 갖고 있던 이 모든 지금 이 체계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때가 가까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때가 가까운 것을 압니다. 요동치는 것입니다. 요동.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피조물이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엇입니까?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인데 이 분들이 삐죽삐죽 기름 붓고 나옵니다. 거기에다가 무엇을 한다고 무엇을 아는 것도 없는데 삐죽삐죽 합니다. 저들이 볼 때는 속이 탑니다. 왜냐하면 저것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데 그런데 하는데 이것도 만들어내고 저것도 만들어내고 자기들 죽는 것만 다 만들어냅니다. 저것들 IT도 모르는데 IT도 만들어내고 다 합니다. 다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다 예비한 것들이 이제 다 드러나는 때입니다. 그것을 준비시킨 자들은 반드시 그의 삶 가운데 내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이 징계의 그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고통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부. 그래서 제가 참 귀한 지금 이 시대에 귀한 분들이 와서 증거 할 때 저도 이제 귀가 열렸기 때문에 그 전에 귀가 안 열렸을 때는 사람들이 그것이 하나님의 기업인줄 알고 쫓아갔다가 25년 훈련 받았습니다. 25년 훈련은 여기로 갔다가 아닌가봐 저기로 갔다가 아닌가봐 이것을 25년 뛰니까 남은 것은 다리 알통밖에 안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데 하나님 외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뛰다보니까 그 다음에는 다리 힘이 다 빠졌습니다.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이제는. 절을 해도 안 갑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붙잡고 끌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 끌려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렇게 하나님이 급하시고 제가 우리 아버지가 저도 성질이 굉장히 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지금 볼 때는 평온해보이고 굉장히 여유 있어 보이지만 제가 저기 그러면 제가 제일 먼저 달려갔을 것입니다. 저기 그러면 여기 뛰라고 하면 제가 제일 먼저 갔을 것입니다. 그것을 그 힘 빼는데 25년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제 힘 빼는데. 안 가니까 하나님이 강제집행해서 갈 때 어떤 때 보면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조금 짓궂으신 면도 있고 주시라고 할 때 안 주시고 꼭 반대일 때 주시고, 안 가려고 할 때 꼭 끌고 가고 가려고 하면 못 가게 하고 꼭 반대입니다. 제 삶이. 그런데 제가 느낀 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이 기름이 채워지지 않고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내 의로 가니까 하나님이 붙잡는 것입니다. 제가 잘 됐으면 여러분 제 얼굴 보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교에 장로로 있다고 돈 많이 버는 장로. 제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왜? 그 때는 철이 없고 몰랐기 때문에 그것이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보여주시니까 달려왔던 것입니다. 내 안에는 기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내 25년 삶을 보니까 하나님이 하나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그 앞에 가면 고춧가루 뿌리고 이제는 제 기도 저도 경험이 상당히 고수입니다. 왜냐하면 산전수전 다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오시는 분들 보면 하나님의 시간대에 옵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에 오고. 그 분들이 와서 하시는 이야기는 먼저는 내가 죽고 영이 살았다는 것부터 이야기합니다. 그 간증. 그 분들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으면 저는 압니다. 이 분들이 돈 벌러 왔구나. 이 분들이 정말 하나님이 준비한 자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 안 되면 또 25년 또 뛰어다녀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 오시고 나서도 계속 뛰어다닙니다. 그러면 천년왕국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뜻을 아니까 알고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이 분이 어떤 것을 이야기해도 이것이 하나님이 준비한 것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그것인가? 거기에 그 때에 필요한 것들을 예비하신 것인가?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것이 그것이 이제 우리 이 고센 땅 이 기업이 세워져 가기 바로 출발 직전까지 하나님이 완전한 것을 다 보여주시고 다 접목시키고 준비된 자들을 다 불러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때 제가 생각해보십시오. 이 일 년이라는 세월 안에 하나님께서 천년왕국 때까지 들어가는 모든 것이 다 되어야 이 GS기업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지금 놀라운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내가 다 못하는데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왜? 저는 이 때인 줄 알고 했더니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는 이 모든 그 천년왕국까지 모든 것들이 다 준비되어서 움직여야 이 기업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놀라운 것입니다. 너무 놀라운 것. 그것이 이제 그런 것은 좀 수년 전에 좀 알려주어서 준비도 좀 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 되었는데 한 달도 아니고 지금 이 주, 삼 주, 이 주도 안 남았는데 그 때가 되었는데 이제 천년왕국까지 하라고 왔습니다. 전부. 제가 저도 사람입니다. 아버지. 저도 한계가 있잖아요. 머리가 이것이. 그런데 하나님은 개의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연합시키는 것입니다. 연합. 놀랍습니다. 그 분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증거 할 때 이것은 성령이 준비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제가 몸이 두 동강이 나도 그것은 연합을 해야 되는 것이고 이런 일들을 하나님이 시킬 때 제가 너무너무 놀랍고 물론 우리 후사들에게 제가 전달하는 것이지만 저는 직접 지금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이 기업이 천년왕국 때까지 가야되는 이 기업을 하나님이 예비하셔서 세우시고 그 곳에 준비된 자들을 불러서 그 분들이 다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인. 한국인 안에 이 놀라운 축복권이 임해 있습니다. 세상을 다 뒤집는 다 정화시키는 그 축복권을 한국인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놀랍고 감격스럽습니다. 제가 지금은 정말 너무너무 세상에 이런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하고 영역은 다릅니다. 완전. 이것은 진짜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는 기업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사람이 자기가 자기 스스로 경영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이 이제 저희들 앞에 임했는데 이것이 누구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제 연합이 되어야 되고, 하나가 되어야 되고, 이 힘이 하나가 되어서 열방으로 다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 생각에는 열방회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그 시간 안에 이루고도 남는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성질이 급하신 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여, 눈물로 기도하고 해도 끄떡도. 여러분 나무뿌리 많이 뽑았죠? 여기 계신 분들 그렇게 뽑아도 안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당신이 급하시니까 빨리 가자고 하는데 어디에요? 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즘 우리 임원들 좀 위로 많이 하십시오. 우리 임원들이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다 지금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닙니다. 우리 청년들도 지금 다 너무 바빠서 제 정신들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기쁜데 준비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후사님들까지 연합을 시켜서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신발의 끈을 묶고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지막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내 일이 아닙니다. 거기서 준비하고 하나가 되고 서로 화평함으로 사랑으로 이루어갈 때 그 놀라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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