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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못할 소리가 없는 과학적 문자, 한글!
세종은 언제, 어떻게,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
한글날 특집 - 역사스페셜 | KBS 20101009 방송
■ 표현 못할 소리가 없는 문자 ‘한글’이 피어나다! 세계에 무수히 많은 소리문자들이 있지만 유일하게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든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그런데 그 모양만 발음기관을 따라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발음기관에서 나는 소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같은 성질의 소리는 비슷한 생김새를 갖도록 만들었다. 한글은 소리의 성질까지 담고 있는 자질문자로서 선진적이라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한글이 어떤 소리표현도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스페셜 제작진은 실제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발음기관과 훈민정음의 연관성에 대해 실험하고, 소리에 대한 훈민정음의 표현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쓰기에 갖추지 않은 소리가 없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두루 통하고,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와 닭 홰치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적을 수 있다” - 훈민정음 해례본
■ 옛글자를 따른 ‘자방고전’, 그 안에 담긴 세종의 숨은 뜻 훈민정음의 창제기록에 자방고전, 즉 글자의 모양을 옛글자를 따라서 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어떤 옛글자를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일까? 훈민정음 기원설로 몽골의 파스파문자와 신라시대에 들어온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모양새만으로는 큰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자방고전이라는 말을 했을까. 실제 중국의 오랜 글자체 중에 전서체가 있다. 글자체만 놓고 봤을 때 전서체 획의 굵기만 한글과 동일할 뿐 비슷함 점을 찾기 힘들다. 중국의 한자가 국제공통어처럼 쓰이던 중화질서 속에서 신하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문자를 창제한 세종. 자방고전이라는 말 속에 혹시 세종의 또 다른 속내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 세종, 백성의 소리를 담아내려 애쓰다 당시 조선의 법전이었던 [대명률]은 한자와 이두로 복잡하게 쓰여 있었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새김)을 빌려 한국어를 적던 표기법으로 일반 백성은 [대명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문자 모르는 백성들이 억울한 일 당하는 경우 많았다. 문자 모르는 백성에 대한 세종의 안타까운 마음이 [삼강행실도]에 잘 나타나있다. 삼강행실도를 그림으로 그렸으나 그 조차도 백성들 알지 못할까 세종은 안타까워했다. 백성들과의 소통을 원했던 세종. 그는 결국 백성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소리문자 창제를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말과 사투리까지 표기하고자 했던 세종은 실제 백성들의 소리를 철저히 담아내려 노력했다. “글의 뜻을 일반 백성은 깨우치기 어려움을 걱정으로 여기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
■ 과학적인 소리문자 - ‘훈민정음’ 어떻게 만들었나?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세종은 “너희들이 운서를 아느냐”고 호통을 친다. 세종은 음의 높낮이와 발음기관을 통해 말소리가 나는 이치에 대해 섭렵했던 당대 최고의 음운학자였다. 거기에 절대적인 음감을 가진 세종은 우리말을 수없이 들으며 철저히 분석하여 특히 차자표기법을 통해 우리말 구조를 분석했다. 훈민정음의 특징인 초성, 중성, 종성의 삼분법과 초성과 종성을 같은 자음을 쓰는 것, 이어쓰기에서 종성이 초성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분석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같은 성질의 소리는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든 훈민정음. 그 창제 과정 곳곳에는 세종의 백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배어있다. ※ 이 영상은 2010년 10월 9일에 방영된 [역사스페셜 - 한글날 특집 | 소리문자 훈민정음, 어떻게 만들어졌나]입니다. #세종 #한글 #역사 ✔KBS 다큐멘터리 | KBS 공식 유튜브 채널 [KBS 다큐] 🔔구독👍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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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의 문자는 얼마나 될까 기원전 3여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문자를 사용한 일에 수많은 문자들이 생겨나고
없어졌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영향을 받은 페니키아 계의 문자들이 있다
0:26
전경에 만어 니키아는 해 아라비아와 중앙아시아까지 영을 미쳤다 또 한편 홍해를 끼고 인도양을 건너 인도와 터키까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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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됐다 동아시아에는 골문에서 출발해 수천년 동안 중화 세계 편으로 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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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 한자 계열의 문자들이 있다 그런데은
0:58
어속 종 창으로 만들어진 문 훈민정
1:04
훈민정음은 어떻게 [음악]
1:12
만들어졌을까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문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비석이 고양시에 남아
1:19
있다 조선시대 다리를 건설하고 난 뒤 공사에 참여했던 람들
1:28
이을 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수 우리말 이름을 가진 일반
1:34
백성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했을이 다리를 만들며 참여했던 백성들의 이름이 아주 복이 드물게 어
1:41
이두식 표기로 어 천여명에 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어 중국식의 이름을 따서 이두식 표기로 되어 있다는 점이
1:47
좀 특이하고요 성은 차인데 차 이름이 두리가 되어 있고요 그다음에지 응해이
1:54
응고 하는 건 어린아이가 응혜 응에 운다는 뜻인데 그것을 음으로
2:00
쓴이 되겠 비석에는 소박하고도 정겨운 일반
2:06
백성들의 우리말 이름들이 기록되 있는데 한자에서음을 따거나 뜻을 빌어
2:11
우리말 이름을 나타내고 있다 일종의 차자 표기인 이두식
2:19
표기는 조선시대 말까지 문자 생활의 한축을
2:24
이루었다 양반 사대부들은 주로 한문을 사용했고 그 일반 백성들 상대하는
2:32
하급 관리들이이라고 부르는 차자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2:38
백성들은 한문도 찾아 표기도 사용하지 못하고 문자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할
2:43
수 있습니다이 두식 표기는 이미 통일신라
2:50
시대부터 활발하게 쓰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통일신라시대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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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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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것이다 조선시대 이두식 표기는 백성을 단속하는 법률이나 노비문서 등
3:14
실생활에서도 널리 사용도 했다 그러나 이두는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3:20
여전히 어려운 문자였다 중국 말에 없는 우리말에
3:25
다양한 어미 변화까지 표기하니 매우 복잡했다
3:33
[음악] 백성들이 문자를 몰라서 생기는 단을
3:39
세종은 일찍감치 인식하고 있었다 세종 15년 7월 19일 세종은 한 옥사
3:45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당시 사형에 해당하는 중한
3:53
사건은 임금이 직접 전결을 내렸다 그런 용 적었다 곡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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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하는 양란 여인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였다는
4:07
것이다 수종은 좌부 승지를 의금부에 내려보내 사건을 직접 재조사하라
4:15
지시한다 결국 양노 아는 여인은 매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고
4:21
실토한다 재판을 통해서 백성들의 상황들을 민생을 상황을 자세히 이제
4:27
많이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특히이 이 글자를 몰라가지고 그 억울한 일을
4:32
당하는 경우를 여러번 접하고서는 아 이건 백성들 계속 법을 단속해서 아니고 어 그들에게 법을 켜 주어서
4:40
스 피하게 하는 것만이 최선이다라는 이제 판단을 하게
4:46
됐죠 세종은 옥사 사건에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건 문자를 모르기
4:52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음악]
5:03
끊임없이 올라오는 옥사 사건을 다루면서 글 모르는 백성에 대한 세종의 고민도
5:09
깊어갔다 당시 세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이 남아 [음악]
5:19
있다 세종은 법전의 큰 목이라도 이드로 번역해 민간의 포라고 명한다
5:27
[음악] 백성들이 법을 알 수 있게이라도
5:33
번역을 하라는 [음악]
5:40
것이었다 그러나 신하들은 또다시 반대를 하고 나니다 이조판서 허주의
5:45
반대 논리는 이러했다 간악한 백성들이 법을 알면
5:54
농간을 부리는 단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6:01
이에 세종은 백성들에게 법을 알려주지 않고 벌을 주는 건 옳지 않다며
6:07
반박을 한다 백성에 대한 인식이 신뢰 같은게
6:14
신하라고 세종이 아 다른 거 같아요 신하들은 백성을 우선 불신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성을 믿을 수 없다는
6:21
논쟁이 신식이 깔려 있었고 들한테는 세종은 그렇지 않다 부당하게 평
6:27
의심하지 마라 들이 올라올 수 있록 민도 향록 하는 것이
6:37
나라의 기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 민정은 창제당시 이도에 대한생각
6:47
서상도 미치지 못한다는 종과 막는 자라는 신하들과의는 성에
6:58
대한 자 입장에서 보고 있어요 그 이문을 아연이 사용하고 문을 법문으로
7:04
올리는 데는 아무 소통하는 시장 없습니다 그건 다 한자를 알고 있고 그다음에 이문을 활용하는 정도
7:10
있거든요 관리자 입장이고 관리의 입장이고 세종이 보기는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두 문도 어렵다는
7:17
것이에요 그걸 배우기가 한참 모르면 모르기 때문에 백성의 입장에서 어 이문은 한계가 있다라고 보는
7:28
것이죠 조 이두문 어려웠다는 건 유지라는 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7:35
있다 유생과 서리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의미의 유서필지 이드로 각종
7:42
공문 양식이 모아져 있다 이을 이시고 이시어 등 다양한 어미 변화에 따른
7:49
표기법이 소개되 있다 이두 표기법을 따로 책으로 묶어 익혀야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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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치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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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도의 한계 때문에 세종은 그림을 그려서라도 백성과 소통을 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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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했다 그림으로 그려서 책을 발간하기도
8:12
합니다 여기에서 그들과 바로 소통할 수 있는 절대의 문자가 필요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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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새 문자가 만들어진다고 하는 이제 그런 측면도 충분히 있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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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요 [음악] 백성들과의 소통을 꿈꾸었던 세종에게
8:33
백성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8:38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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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업이다 실제 세종은 백성의 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세종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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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하여금 홀로된 산에나 매친 여인의 노래 가사까지도 수집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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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한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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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둘째 딸인 정희 공주와의 일화에서 세종이 지방의 사투리까지 연구하게 했음을 짐작해 하는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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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온다 매우 총명하고 산에도 밝았던 정의 공주를 통해 사투리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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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께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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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들의 사인 금을 가지고 많이 고민하시다가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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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공주님에게 풀어보라고 지시를 하셨는데 공주님께서이 문제를 아주 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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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연구하 대왕께서 크게 상을 받은 기록이 저희 문중 기록에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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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죽산 안씨족보 재능이 많았던 정공에 대해 자세 정리해놓고 있다
9:59
그런데 그중에 세종이 정의 공주에게 변과 토착 지방의 사투리 문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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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도록 했다는 내용이 [음악] 나온다 아이들 마이나 사투리까지
10:12
표현할 수 있는 백성의 문자 훈민정음은 그렇게 탄생했다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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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 훈민정음 해례 보에는 문자를 만든 취지와 제자 원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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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특징이 상세히 기록되 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민정은 배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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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쉬운 글자을 강조하는 대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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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과연 그런지 우리 말을 배우러 온 외국인 학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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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았다 한글 알파벳은 얼마만에 배웠어요 하루 하루요 예 주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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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2주 일주일 걸렸어요 그냥 한다 한다 안 걸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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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요 뭐 한 이틀 외국인 학생들이 느끼는 한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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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장점은 자신들 나라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기에 한글이 편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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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다 한국에 온지 1년도 안 된 외국인 학생들은 불과 선달의 짧은
11:17
한국어 교육을 받고도 능숙하게 한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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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했다 한국어도 재미있고 쉬워요 쉬워요 국어 [음악]
11:29
어렵고 발음도 어려워요네 다른 나라 자와의 비교를
11:36
통해 한글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각나라의 문자를 적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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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일본의 가나와 인도 문자이란 문자는 음절 문자다 자음과 모음으로
11:48
나뉘어져 있지 않고 한 음절이 한 글자로 되어 있어 소리를 적는데 어려움이
11:57
있다 이에 해 우리 한글을 비롯한 유럽의 로마자는 음소 문자다 음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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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으로 나뉘어져 있어 다양한 소리의 표기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한 한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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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로마자 오스트리아의 로마자는 대표적인 음소 문자입니다 그리고 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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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일본의 가나 문자 그리고 인도 문자는 대표적인 음절
12:21
문자지정 한자는 대표적인 단어 문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문자들이 있는데 우리 한글은 자영이 단순 하
12:29
제자리가 체계적이고 명확해서 외국인들이 배우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글은 문자가 다양하게 있기
12:37
때문에 외국어의 그 다양한 소리들을 그 음가에 맞춰서 적을 수 있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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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장점을 가지고 [음악] 있습니다 훈민정음이 다양한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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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할 수 있다는 건 민은에도 언급 있다 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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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임을 밝혀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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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무엇일까 보내는 그 해답도 적혀 있다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드니
13:09
그 어떤 소리도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훈민정음은 소리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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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 본의 제자는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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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원리가 상세히 설명 있다 기본자 다섯 글자는 발음기관을 형상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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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었 [음악] 는을 본 입술 미음은 입술을 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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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는 소리인 옷은이 모양을 그리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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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리인 이은 목구멍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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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음 음관을 보 했다 기존 레이와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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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시네 레디오 그래프라는 장비를 통해 보다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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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와 목구멍 등 발음 기관의 움직임을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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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레의 설명대로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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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니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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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세밀하게 살펴보면 혀끝이 위 잇몸에 닿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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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글자 모습에서 입천장다는 모습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우리가 발성하는 기자는 혀의 모양이 기억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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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사 소리나 된소리 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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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하게 되면은 혀가 점점 뒤로 밀려나면서 숨구멍을 막아 가지고 전경이 좁아지게 됩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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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에 세종 대학서 이런 과학적인 배경을 충분히 잘 이해하시고 한글를 창장 보이고 지금 의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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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규명이 되고 있습니다 소리의 원리는 기본 자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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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된 건 아니다 발성 위치에 따라 아설 순치 후에 본 다음을 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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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기관을 형상화해 모양을 정한 다음 기본자 발성 위치가 비슷한 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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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가의 원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모양을 부여해 1자의 자음 체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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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냈다 그래서 글자만 보고도 소류의 성질을 짐작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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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기본자에 소리가 특정한 음성 자질이 들어가면 그 점을 하나 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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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의 원칙 을지 민정을 만들었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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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제 그 서양의 학자들은이 한글은 음소 문자보다 한 단계 더 진화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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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질 문자라고 이렇게 분류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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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역사상 가장 진화된 문자다 이렇게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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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세종은 음악에도 조회가 깊던 왕이 역대 왕과 왕비의 제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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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던 종묘 제약도 세종이 직접 작곡한 것이다 세종이 음악에 관심을 가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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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사회에서 음악은 백성들의 심성을 올바르게 교호하는 수단으로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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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유교 이념을 집대성한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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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송나라때 편찬된 음악 이서인 율려 신서 한 부분을 지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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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그 때문이다 세종은 율려 신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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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했다 그리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정간보 아는 악보의 고을 적는 방법을
17:07
창안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조선의 음악 체계를 새로이
17:13
정립했다 세종대왕께서는 어 왕이 되시 이제마 음악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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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시고 어 율려신서 등 그 음악 이론을 공부를 하십니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악기를 제작하시고 악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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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시고 음악을 는 많은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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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습니다 세종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는 일화가 실록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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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동안 중국에서 수입해오던 편경을 처음으로 조선에서 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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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자리에서 세종은 아홉번째 매 소리가 높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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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한다 실제 살펴보니 경석을 자를 때 표시해 부분이 깎
17:57
있었다 경은 두께에 따라서 음의 높낮이가 결정이 되는데 아직 먹 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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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다는 것은 음이 높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어 그 정도의 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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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귀를 가졌다는 것인데 그 음률을 현재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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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으로 해석을 하자면 반음의 1분 정도 1음 정도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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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세종은 음악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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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아 특히 그 의문에 있어 가지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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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운서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서도 우리나라 운서를 편하 응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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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는데 비록 중국의 그 그 용어인 그 음과 험의 개념을 사용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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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그런 중국 어문학 이론에 관한 지식은 상당히 높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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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입니다은 반상 올린 신들에 가를 아느냐며 호통을 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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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에서도 세종의 문학 실력을 가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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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있다 이때 세종이 신하들에게 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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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사성과 름이 중국 의문의 핵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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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다 사이란 무엇인가 전 한 청도에 보면 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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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높낮이에 따라 평성 상성 거성 입성에 성으로 나눈
19:37
것이고 치름 발성 위치에 따라 아설 순치 후로 소리를 구분
19:43
것이다 세종은 중국의 의문화 공부를 통해 소류의 원리를
19:50
깨우쳤다 중국 의무론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제 음절의 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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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인데요 분석 방법은 바로 이제 어 그 하나의 음절을 성모와 운모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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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하기 해당되는 거고 운모는 종성 중성과 종성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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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게 중국은 원래이 표의 문자이기 때문에음을 표기하는 방법이 없죠 그래서음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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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2분법 즉이 성모와 운모를 응용해서 만든이 반절법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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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특징으로 되겠습니다 절이라는 글자인 한자에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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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여 읽는 방법을 말한다 일라는 한자음의 경우 다에서음을 따고 동에서음을 따서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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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성모와 운모의 2분법으로 음절을 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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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것이다 이와 달리 훈민정음은 한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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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성과 중성종 3분법으로 다 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체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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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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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훈민정음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초성과 종성을 함께 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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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것이다 초성과 종성이 같은 소리라고 하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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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을까이 찾아 표기라는 우리말의 구조를 보면은 쉽게 그 답이 나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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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우리말에서 그 물이라고 하는 명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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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끝소리 종성에 리을이 있습니다 그런데이 물 다음에이라고 하는 축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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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연결이 되면이 리을이 자연스럽게 뒤 음절로 넘어가서 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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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발음이 됩니다이 초상에 있는 리을이이 끝소리 이렇게 넘어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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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 간단한 현상이야 말로이 끝소리가이 성하고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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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음절의 분법에 해당하는 리말 성 예 우리말 특성이라고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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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말의 특성은 이두식 표기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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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시름을 뜻하는 야와 우에 불필요해 보이는음을 덧붙였는데이는 종성에 해당하는 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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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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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거운 춘이라는 표현도 보이는데이는 우리말 간 즉 지나간 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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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에서을 은에서 니은을 따서 간을 표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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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것이다 이미 차아 표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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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침 글자를 따로따로 챙겼다고 하는 것은요 뭘 말하는 을알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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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입니다 그거 바탕이 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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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에서 소위 삼성 체제를 가졌다 하는 것은 바로 차자 표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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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온 결과가 아니냐 이렇게 봐지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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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지요 세종 역시 이도식 표에 대한 정한이를 하고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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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거기에 문식이 붙 세종은 우리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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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옮겨적을 수 있는 소리문자 훈민정음을 만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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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발성 위치에 따라 기본자음 다섯 개를 정하고 소리의 세기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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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을 덧붙 자음 17개를 만들었다 비슷한 소리는 비슷한 모양을
23:50
갖는 합리적인 체계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게 한 [음악]
23:57
것이다 모음도 자음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 천지인을 형상화해 아이 세
24:04
글자를 정한 뒤 새소리는 획을 더해 체계적이고 간단하게 개의 모음을
24:11
[음악]
24:16
만들어냈다 그리고 초성 중성 총성 세 소리를 합해 우리말의 한 소리 즉
24:22
음조를 표현해냈다의 말을리는 소 훈민정음은
24:30
그렇게 만들어졌다 훈민정음이 기록의 처음
24:36
등장하는 건 세종 25년 12월 실록에는 훈민정음이 성음을
24:44
알리는 아주 간한 기사만이 남아 있다 왕실의 작은 사건까지도 세밀하게
24:52
적은 실록에 국가의 중대사인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사전 기록이 전혀 보이
24:57
않는
25:04
그로부터 2개월 뒤 세종은 지편전 학자들에게 번역을 명한다 훈민정음의
25:11
사용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계획은
25:18
벽에 부딪다 신하들이 집단으로 반대하고 나선
25:24
것이다 상린 신들은 했 집전 부제학 최만리를
25:30
비롯한 집현전의 원로 학자들이었다 [음악]
25:37
상소에 담긴 반대 논리 중 하나는 풍속을 바꾸는 국가의 대사를 여러
25:43
신화와 상의도 하지 않고 독단으로 추진했다는 [음악]
25:51
것이다 세종은 왜 신하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훈민정음 창제를 감행한
25:57
것일까 일종의 보편 문자로서 한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그런 문자 체계를
26:04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그런 그 중화문명의 정통성을에 이제 도전하는 중화
26:11
중심적인 질서에 위배되는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거고 그 조선 안에서도 사실은 어 그 문화적인 정통성을
26:19
통해서 해계 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보수층의 반발을 살 염려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비밀리의 진행이 된
26:25
거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의 건보다 24년 앞서 명나라가
26:34
건국된다 조선 초기 중원 대륙도 기였다
26:40
중국을 통일한 주원장이 황제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26:45
중국의 한자음을 일하는 것이었다 홍정은 중국의 표준 한자음을 표기한
26:51
전이자 일종의 의다 주원장은 건후 한부 일한
27:01
것일까 주원장이 처음 그 원을 건국하고 예 가장 중요한 것은
27:07
한자의음을 통일하는 거였습니다 한자음을 통해서 과거제를 실시하고 또
27:13
그 인재들을 양성해서 그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점을
27:18
통일하기 위한 거였죠 또 무엇보다도 그 전에 그 원해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27:25
그예 원나라의 그 다 하기 위해서 새로운 한을 만들어서 시행하는 것이
27:33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그 무정을 그 편하게 되었던
27:42
거죠 명은 조공관계 있던 조선까지 문자를 이용해 강력한 지배력을
27:47
행사하고자 [음악]
27:54
했다 외교 모이라 집을 잡아 태조 이성계의
28:01
책봉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가 한게 특히 문자가
28:09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그런 것이 일중에 표전문 사건에서 볼 수가 있는데요 그 임에는 바로 정도전이
28:17
바로 그 중국의 조선의 독자적 그런 그 말하지면 문명의 독자적인 그런
28:22
건국을 하려는 사람을 잡아들여서 길들이려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표전문
28:28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소 중화를
28:35
지향한 보수적인 양반 지배층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고 나선 건
28:40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명과의 충돌은 나라의 근본을 위협하는 일일 수도
28:46
있기
28:54
때문이었다 반대 상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역시
29:05
과를의었다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섬기는 도리에 어긋난다는
29:11
[음악] 것이다 그때 중국이라 것은 단순하게
29:18
나라라는 패권국 외에 중화 문명이라는 우리나라 많은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29:25
그 문명세계에 대한 도전이 아니냐 는 두 가지 의미가 말리의 그대 속에
29:31
들어 있는데 어 사실 그 문제는 실질적으로 둘다가 위험한 큰 문제였고
29:37
훈민정음 창제 프로젝트가 무산될 수 있는 그런 그 요소를 담고
29:44
있었지요 상소에 다소 거친 표현까지도 쓰여 [음악]
29:52
있었다 언문을 만드는 일은 스스로 오캠을 자취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30:02
상도에서 얘기한 내용은 제종 당신이 오랑캐들이 하는 짓을 하려고
30:08
한다라는 문맥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사실은 그 오랑캐라고 지칭했던
30:13
존재들은 다 사실은 황제국을 칭했던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감히 사실은 아 명의 황제와 같은 위치에 버금 가려고
30:20
하느냐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라고 사실은 경고하는 입장이었던 거죠
30:29
심혈을 기울여 만든 훈민정음이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지도 모르는 긴박한
30:38
[음악] 상황 신하들의 반대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세종은 문이 백성을 편안하게
30:46
하기 위함인데 무엇이 그러냐며 신하들을 강하게
30:52
[음악] 압박한다는 이중 를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31:00
설득하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최만리의 상소가 올라왔을 때 바로 그 세종이 했던 답변 중에서 업문 어
31:07
삼강 식도를이 그 펴내면 결국이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결국은 신이나 효자가
31:14
많이 나올 것이다 결국이 얘기는 훈민정음을 통해서 사실은 유교적인
31:19
규범이라는 이런 것들이 더 공고화 될 수 있고 그 바탕 위해서 왕권이 강화될 수 있다고 기 생각을 했었던
31:25
것이죠 결국 이런 논리에 사실 은 지배층이 쉽게 반박을 할 수는 없을
31:31
것으로 생각이 되고요 또한 세정은 반대하는 신하들을
31:37
오게 가두고 정창선 등의 관직을 박탈합니다
31:42
신하들의 반대가 확산돼 명과의 외교적인 마찰까지 이어질 것을 염려한
31:48
세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음악]
31:55
민정음 창당 비웃 나라 문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32:01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사원이 있던
32:06
터다네 이곳은 어 외교부청사 남편에 있는 곳인데 어 옛날 사원이 있던
32:12
터입니다 사원은 통번역을 담당하는 통역관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기도 하고 외교
32:19
임무를 기르는 그런 장소이기 됐습니다이 바로 북편에 승무원이라고
32:25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관청이 함께 52 정 상당히은 공간을 지하고
32:34
있었습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면서 사원의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 중국어만
32:41
가르치던 사원이 세종때 와서는 만주어가 추가되 몽골과 일본까지
32:46
모두네 나라의 외국어를 가르치게 된다이네 나라는 모두 지리적으로
32:54
조선과 가까우면서도 스스로의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중기에 사원에서 교제로 쓰인
33:00
교과서를 보면 당시에 외국어 교육 수준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해 한다
33:06
세종은 역대 임금보다 이웃나라의 언어와 문자에 대한 관심이
33:17
다 사원에서 가르친 네개 외국어 외에도 조선에려는 다
33:28
있 산스크리트 문자와 티 문자 그리고 중국 서북지역에 있던 서하의 문자가
33:35
[음악] 그것이다 그중 한글 자모의 기원으로
33:42
많이 거론된 것이 원나라의 파스파 [음악]
33:54
문자다 스를 제 람은 조선후기 실학자
33:59
이익이었다 이익은 그의 저인 성호사 정음은 몽골
34:06
문자인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34:12
주장했다 그로부터 년뒤 실학자이자 문학자 있던 유희도 그의 저서 문에서
34:19
한글이 파스파 문자의 글자 모양에 의지했다고 했다 파스파 자란 어떤
34:26
자인가 제국이 상당히 그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영토 내에 있는 그
34:32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 당시에 국사 있던 라마승 어 파스파 테 명령을
34:39
내려서 만든 그런이 표의문자가 되겠습니다 그것은 어 티벳 문자를
34:44
조금 변형을 해서 만든 아주 모양은 조금 유사하긴 하지만 조금 다른 그러 자형이 되겠습니다 파스파
34:51
문자는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를 직접 비교해 보기로 했다하고 있 이거
34:58
니은 같은 경우는 전혀 다르거든요 다네 그다음에 나 바 파
35:05
그다음에 요거에 유성음 바네이 파스파 문자는이 표음 문자라고
35:11
하지만은 완벽한 우리말의 그이 음절 단위에 음소 단위의 그런 표 문자는
35:17
아닙니다 자영상이 그 비슷한 것들이 이제 보이기는 하죠 그런데 모방을
35:23
했다고 하면은 어 진짜 그 전반적인 그 체계적으로
35:33
계상 전 가지고는 그을 사을 전혀 찾을 수가
35:40
없거든요 문자를 본다는 방 고전에 옛글자 거했던 또하나의 문자가
35:48
있다 월산 자리한 유서깊은 사찰 덕주사 라마지 임금 경의 덕공
35:56
다 되었다는 제지는 불확실한 거고 그런데
36:02
사찰 뒤쪽에 독특한 모양의 문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산스크리트
36:11
우리가 스님들이 공부하던 불경을 새겨 놓은 비석인 인도 문자인 산스크리트
36:17
문자로 되 있다 이미 통일 신라 시대부터 불경 서적을 통해이 땅에
36:22
들어온 문자다이 비문은 산스크리트로 된
36:29
대불정수능엄신주 경인데이 비문을 봤을 때는 통일
36:35
신라부 고려 말까지 스님들께서 많이 공부를 하시고 연구를 하신 자료인 거
36:47
같습니다 조선중기 학자인 성현은 용재 총화에서 한글의 산스크리트 문자
36:53
원서를 제기했다
36:58
페니키아 상인에 의해 전 세계로 뻗어나간 페니키아 문자가 인도로 전해지면서 산스크리트 문자가 되었다
37:06
알파벳 계열인 산스크리트 문자는 훈민 정원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와 글자 체계를
37:13
[음악] 가졌다 국민 정음이 근본적으로 음소
37:21
문제입니다에 그래서 산스크리트 하고는 거리가 있고요 어 해서 어 사실상 그
37:31
훈민정음이 그쪽과 어떤 관련성 이것은 맥락을 집기가 매우 어렵다는
37:38
얘기죠 구체적으로 훈민정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문자들의 모양을 본땄다
37:46
그나 그런 문자들의 원리를 직접 받아들였다고 하는 적극적인 증거는
37:52
확인할 수 없습니다 주변 문자의 연관성이 적어
37:59
보이자 자방 고전의 천은 한자의 글씨체인 전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38:05
최근까지 힘을 얻기도 했다 한자란 원래 이제 상형 문제잖아요 근데 이제이 그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면서
38:13
각 나라마다 각기 다른 자양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진시황이 전국을
38:19
통일하고 난 다음에 이러 복잡한 자을 이제 하나로 통일할 필요를 필요성을 느꼈겠죠 그래서 자기네들 진나라가
38:27
유이 우든 그러한 문자를 위주로 해서 어 그 통일한 문자의 자형이 바로이
38:34
전서체 되겠습니다 전서체 자전을 통해 글씨
38:41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황제의 글씨 답게 선의 곡선을 살린 글씨체로
38:46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38:52
전각이라는 전서체 글씨로 도장을 새기는 풍습이 이어져오고 있다
39:01
서의 전문가를 찾아 한자의 전서와 민정은 글씨체를 직접 비교해 보기로
39:14
했다 과연 훈민정음과 한자의 전서체 사이에 어떤 유사한 점이 있는 걸까
39:28
한문 서체에서이 해서와 예서 전서가 있는데
39:34
훈민정음에서는 각이 그 흑과 흑이 연결되는 부분이 각이 져 있고 수직과
39:41
수평을 또 항상 유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획과 획이 연결되는 부분들에서는 각이 딱딱 항상 저 있는
39:48
반면에 훈민정음과 다리 어 전설에서는 획과 획이 연결되는 부분이 둥글게 돼
39:56
있고 또 어 회 어떤 것이 전체가
40:01
둥글면서 부드럽게 되 있다는 것이 훈민 정과는 좀 다른 점이라고 볼 수가 [음악]
40:08
있습니다 두 글씨체의 닮은 점은 회계 굴기가 일정하다는 것뿐이다 자방
40:13
고전의 전자를 전서체로 보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40:19
훈민정음에서 어 자방 고전이라고 하는이 말은 어
40:27
소위 그 거대한 명명에 대한 그 중국에 대한 그 외교적인
40:35
수사였다 어떤 관련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40:40
봅니다에 이제 당시 명 초는음 그 영락 제라 하는 이런 사람들은 대하게
40:47
뭐 멀리 서인 도까지 진입하고 이런 것인데 사실 조선으로서는 굉장히
40:55
두려운 존재지요 에 그래서 새 문자를 만들고 이래 하는 상황에서 어 자연히 그 외세
41:04
하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그 입장에서 아마 그런 표현을 썼지 않나
41:10
명분의 구해지 않는 세종의 실용주의와 강력한 리더십 덕분으로 민정은 중화
41:17
질서에 두터운 벽을 뚫고 빛을 보게 되었다
41:28
백성들에게 배우기 쉽고 알기 쉬운 문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세종의 정신은
41:33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41:40
본부에서는 매년 가을 유네스코 세종대왕상 시상식이
41:46
열린다 유네스코 세종대왕상 세계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나 단체에게
41:53
주어지는 상이다
41:58
올는 이민자 교육을 하는 독일의 한 교육기관
42:07
상을 par Que deset inv construit sur
42:15
desti c'est Que ET uneo au 15e sicle o
42:21
effectivement linguistique nit duvel enit
42:27
comment LE RO ET les g qui on trava avec lui l'p on trou UN systme
42:33
tellement bien
42:40
fait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42:46
있다 세계적 과학잡지 디스는 지난 94년 7월에 한기를 었 한
42:56
세 적고 이성적인 문자라고
43:01
평가했다 조선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던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은
43:08
뜻뜻 문자 표의 문자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단어 문자란 말이죠 어 그리고 우리 그 조상들이
43:16
다 그 공부하 사람들은 다 한자를 배웠는데 그런 상황에서 음소 문자를
43:23
만들어서 썼다 하는 것은 굉장히 혁명적인 발성의 전원이 있었기 때문에
43:29
가능한 것이었죠 문자는 유관 역사 발전을
43:35
통해 진화해온 문명의 산물이다 중화 체제에 두터운 벽을
43:40
뚫고 독창적인 문자로 탄생한 훈민정음은 어찌보면 기적과도 같은
43:46
일이다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백성의 문자를 향한 세종의
43:52
집념이었다 l
43:59
[음악]
한국어 (자동 생성됨)
채팅 다시보기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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