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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祖)와 종(宗)의 어원(語源)은 이렇습니다.
1392년 역성혁명이 성공을 거두자 개국공신들 사이에서는 이성계의 4대 선조에 대한 존호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때 탁월한 식견으로 조祖와 종宗에 대한 교통정리를 한 이가 삼봉 정도전 이였습니다.
태조원년 1392년 11월 6일 태조실록 황조실 책호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공이 있는 이는 조(祖)로 하고 덕(德)이 있는 이는 종(宗)으로 한다.
이렇게 해서 조선의 역사에서 시호를 정할 때는 삼봉 정도전의 공덕(公德)지침이 근간이 되어 내려왔다고 합니다.
북한산에서 하산하면서 조(祖)와 종(宗)에 대한 논쟁(論爭)이 장황하게 펼쳐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조(祖)는 조상이 되는 거고, 종(宗)은 그 조상을 받드는 후계손(後繼孫)이 되는 거라고, 듣는 순간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충무공 같은 경우는 나라에 지대한 공을 세워서 어명(임금의 명령)에 의해 시호(諡號)가 내려지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시호가 내려지면 이를 두고 국불천지위(예전에, 큰 공훈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사람의 신위를 이르던 말)라 하여 그 자손으로 하여금 자손만대 에 이르기까지 중간시조로 섬길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를 요약하여 말하면 족보상에서는 중시조中始祖라 말하기도 하며, 00파 또는 ***파라 하기도 합니다.
2. 해서 뉘집 자손(子孫)인고? 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충무공(중시조)파 참찬공 길자 동자 27대 손(孫) 산행이며, 제 아비의 함자는 대자망자입니다.
이를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충무공은 나라에서 시호를 하사받은 국불천지위를 말하는 것이며, 참찬(오늘날 차관지위)공 길동은 국불천지위를 하사받을 수 있는 분인데, 국가의 전란으로 인해 시호를 하사받지 못하였거나, 기타 등등의 사정으로 인해 시호를 하사받지 못한 분에게 유림에서 회의를 거쳐 그에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하고 받드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를 두고 유불천지위(儒不遷之位)라 말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친구의 이야기는 상당히 의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한자어(漢字語)로 그 의미를 이해하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었으며, 삼봉 정도전이 교통정리를 할 때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조(祖)와 종(宗)에 대한 이야기 끝>
3. 천자국(天子國)의 황제폐하(皇帝陛下)와 제후국(諸侯國)의 전하(殿下)
오랫동안 중국이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천자국을 자처해왔다.
천자가 경기(京畿) 즉 수도=중국를 정하고 봉국(封國) 즉 여기서 제후를 봉하여 나라를 안정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즉 천자가 경기(수도)를 제정한 것은 경기의 실존적 의미가 천자국을 의미하는 말이겠으나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후한시대의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대통령과 같은 통치자를 지칭하는 말로 들린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민족을 동이족이라 했으며, 동이족은 중국에서 동쪽을 바라본 동쪽오랑캐 즉, 조선을 의미하는 말이다.
(상촌선생집 제51권 구정록 상(求正錄上 참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자국의 지위는 이러한 역사를 지닌채 변질되어 왔으나
들은 이야기로 말하자면 중국이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천자국을 자처해오면서 힘의 논리로 밀려난 봉국(제후국)들에 대해서는 통치자의 칭호를 중국처럼 황제폐하(皇帝陛下)라 함을 엄격히 규제 하였으나 조선에서 유일하게 황제폐하를 천명하고 나선 분이 있었으니 이는 고종황제이시다.
이 또한 청일전쟁 덕에 어부지리로 거머쥔 지위였다.
이때부터는 조선이라는 나라도 대조선제국이 되었다.
황제를 모시는 국가가 된 것이다.
4. 천자는 무엇이며, 황제폐하는 무엇인가?
문헌을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집약해보면 이렇게 귀결이 된다.
천자(天子)는 글자 그대로 하늘님의 아들이라는 거다.
하늘님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니 그 나라는 당연지사 천자국이라는 거다.
그리고 통치자를 황제폐하 또는 천자라 한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임금 또는 전설의 제왕인 오제와 버금가는 지위라는 거다. 그리고 황제폐하라 하는 것은 요즘말로 대통령각하라는 말과 동일시 취급되는 말이다.
그러니 황제(대통령)라 해도 될 터인데, 굳이 황제폐하(각하)라 하는 까닭은 그 지위를 격상하여 부르기 위함이다.
해서 중국은 황제의 아들이 책봉되면 태자라 했으며, 백성들은 하늘의 백성이라 하여 황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태양의 색인 붉은 황색을 즐겼다.
황제는 붉은 도포를 황제의 상징으로 즐겨 입었으며, 백성들은 온갖 치장에 붉은색을 사용하는데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붉은색 글씨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평소에 본인의 이름이나 타인의 이름을 빨간 연필로 작성하는데도 익숙해 있다.
5. 봉국(제후국)은 어떠했는가?
우선 제후국이라 함은 조공을 받침으로 해서 오늘날 동맹국과 같은 지위격상을 유지할 수가 있었으며, 조공을 바치는 행위는 그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선으로 들어올 때 그에 상응하는 문물이 들어오므로 해서 국가간 상거래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은 제후국으로서 천자국과 동급일 수는 없었다.
같은 역할 같은 직급이라 하여도 같은 명칭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우선은 조공을 받는 중국이 천자국임을 자처하니, 조선은 자연스럽게 땅의 백성으로 그 지위가 격하된다.
그리고 그 백성을 다스리는 군왕을 전하라 하는 까닭은 “태산아래 뫼이로다” 라는 싯귀가 있듯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곳이 전각(殿閣)이니 전각(殿閣)보다 더 높은 곳을 오를 수는 없을 터 전하라 함이 옳다 하여 조선의 군왕을 지붕밑에 전하(殿下)라 하였으며, 전하의 아들이 군왕의 대를 잇기 위해 책봉되면 세상의 자식이라 하여 세자(世子)라 하였으며, 전하에서 받침이 빠진 저하(邸下)라 불리웠다. 그리고 우리는 붉은색 글씨는 죽은 자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한번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중국의 백성과 동일시 될 수 없다하여 마지막 가는 사람에게만 큰 아량을 베풀어 그나마도 허용된 것이며 군왕에 한 해서만은 그러한 복식관계로부터 자유롭게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작금에 이르러서도 우리가 빨간색으로 이름자를 쓰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문화가 그렇게 젖어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대모화사상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 실감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