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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킬로미터를 달려 외르 지방의 아롱쿠르 마을까지 가는 동안 아담스베르그의 젖은 옷은 다 말랐다. 약속 장소인 카페로 가기 전에 그는 손바닥으로 구김살을 편 뒤 그 옷을 다시 걸쳤다. 사람들이 하도 앉아 반들반들해진 긴 의자에 앉은 아담스베르그는 방금 홀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떠들어 자신의 졸음을 깨운 한 무리의 사람들을 뜯어보았다.
“내 말 듣고 싶어?” 금발의 키 큰 남자가 손가락으로 모자를 약간 밀어 올리면서 물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저 사람은 말할 것이다,라고 아담스베르그는 생각했다.
“그런 트릭에 대해서 말해 줄까? 내 말 듣고 싶어?”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 때문에 목이 말라.”
“정말 그래, 로베르.”
커다란 몸짓으로 여섯 개의 잔을 채우고 있던 그 옆의 다른 사내가 맞장구를 쳤다.
장작처럼 키 큰 금발의 사내 이름이 로베르구나. 그리고 그는 목이 마르다. 식욕을 돋우는 전주(前酒) 아페리티프가 시작되었는데, 모두 고개를 어깨에 파묻고 손에는 잔을 들고 턱은 앞으로 내민 것이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삼종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는 그때가 바로 남자들의 장엄한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또한 마을 일을 의논하고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자, 위엄도 있지만 하찮기도 한 시골풍의 수사학이 난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담스베르그는 이런 시간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시골 마을 회의에서 늘 되풀이되는 말들을 들으며 때로 근엄한 노래 속에 자랐던 그는 시골 마을 회의의 리듬과 주제, 그리고 주제의 변주와 대위법(對位法)과 항상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로베르가 방금 바이올린의 첫 번째 활을 놀리자 다른 악기들이 모두 적당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만고불변의 순서 같았다.
“제가 좀 더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왼쪽에 있던 사내가 말했다. “그것 때문에 갈증만 나는 게 아니라, 어지럼증까지 일어난다니까요.”
“맞습니다.”
아담스베르그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회의 진행에 없어선 안 될 역할을 맡은 그 사람을 더 잘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역할은 마치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처럼 대화가 한고비 넘어갈 때마다 끼어들어 앞선 대화에 구두점을 찍는 것이었다.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키도 작고 야윈, 다른 곳처럼 거기에도 당연히 있는 사람이었다.
“그 짓을 한 놈은.” 테이블 끝에 있던, 허리가 굽고 키 큰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아니야.”
“짐승이야.”
“짐승보다 더한 놈이지.”
“맞습니다.”
주제 도입부였다. 아담스베르그는 수첩을 꺼냈다. 습기가 채 가시지 않아 휘어져 있었다. 거기에 배우들 각자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노르망디의 두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담스베르그는 그들에게서 천둥 번개의 신 토르의 후예로, 파리 광장에서 커피를 들고 있는 친구 베르탱의 모습을 보았다. 이들 모두 사각 턱에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머리카락은 밝은 색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푸른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아담스베르그가 노르망디의 이 습기 찬 초원 지방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보기엔.” 로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무언가에 신들린 젊은 녀석일 거야.”
“맞아, 신들린 녀석일 거야. 하지만 젊은 놈은 아니야.”
대위법이었다.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반론을 제기했다. 모두들 연장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들린 젊은이도 나이 먹으면 신들린 늙은이가 되기 때문이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로베르가 투덜거렸다.
로베르는 힘든 역할이긴 하지만, 연장자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어.” 연장자가 받아쳤다. “분명한 사실은 그 짓을 한 놈이 신들린 녀석이라는 거야.”
“야만인이지.”
“네, 맞습니다.”
주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발전하고 있었다.
“한 번 죽인 사람을 또 죽인 것을 보면 그 말이 맞아.” 로베르 옆에 있던 사람이 끼어들었다. 다른 사람보다는 덜 금발이었다.
“말이 안 돼.” 로베르가 말했다.
“왜 말이 안 돼?” 연장자가 잘라 말했다. “그놈은 오로지 사람을 죽이려고만 했어. 그래서 옆구리에 총을 두 방 쏜 거야. 그게 전부야. 몸은 사용도 안 했어. 그런 것을 뭐라 부르더라?”
“살인.”
“맞아, 그거야.”
아담스베르그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주의를 기울였다. 연장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슬쩍 쳐다보았다.
“하지만, 30킬로나 떨어진 브레티이는 다른 동네잖아. 그런데 왜 우리가 이 난리지?”
“우리의 명예도 함께 걸린 일이잖아. 로베르, 그것도 몰라?”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브레티이 출신이 아니야. 파리 사람 냄새가 나. 앙젤베르, 그렇죠?”
연장자의 이름은 앙젤베르였다.
“파리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신이 더 잘 들리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해.” 그가 말했다.
“그들의 생명력도 말입니다.”
테이블 주변에 잠시 침묵이 도는 것 같더니 몇몇이 흘깃흘깃 아담스베르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모임에선 처음에는 낯선 사람을 의식하여 잠시 무게를 따져보다가 이내 무시하거나 자기들 모임에 받아들이는 것이 상례이다. 노르망디도 다른 곳과 대동소이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까다로운 정도일 것이다.
“왜 저를 파리 사람이라고 보시는 거죠?” 아담스베르그가 차분하게 물었다.
연장자가 아담스베르그 테이블의 맥주잔 옆에 놓인 책을 턱으로 가리켰다.
“티켓을 보게.” 그가 말했다. “책갈피에 꽂아둔 티켓 말일세. 파리 지하철 티켓은 우리도 알아본다네.”
“저는 파리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롱쿠르 사람도 아니잖소.”
“피레네 사람입니다. 산동네 말입니다.”
로베르가 한 손을 들었다가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면서 말했다.
“가스코뉴 출신이군.”
“베아른 사람입니다.” 아담스베르그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제 재판이 시작되면서 배심원들의 심사숙고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산동네 친구들이 골치 아픈 건 그들 잘못이 아니지.”
연장자보다는 나이가 덜 들었지만 머리숱이 하나도 없는 일레르라는 사람이 말했다. 그는 테이블 끝에 앉아 있었다.
“언제 말인가?” 아주 짙은 갈색 머리의 사람이 말했다.
“너무 따지지 말게, 오스왈드. 다 지난 일 아닌가.”
“브르타뉴 사람도 그래, 아니 어쩌면 더할지도 몰라. 베아른 사람은 우리에게서 몽생미셸을 빼앗아 갈 생각은 안 하잖아.”
“그렇고말고.” 앙젤베르가 맞장구쳤다.
“분명해.” 아담스베르그를 자세히 살피던 로베르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당신은 해적선에서 내린 사람들의 흔적이 하나도 없군요. 그렇다면 베아른 사람들은 어디서 내려왔나요?”
“산에서요.” 아담스베르그가 대답했다. “산이 그들을 용암 지대에 토해 내자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서는 굳어졌죠. 그것이 베아른 사람이 되었답니다.”
“맞습니다.” 회의 진행의 구두점 역할을 맡은 사내가 말했다.
사람들은 낯선 이가 아롱쿠르에 왜 왔는지 그 까닭을 밝힐 것을 침묵 속에 강요하고 있었다.
“저는 지금 성을 찾고 있습니다.”
“그랬군. 오늘 거기서 음악회가 있다지.”
“그중의 한 주자를 따라왔습니다.”
오스왈드가 안주머니에서 지역 신문을 끄집어내 펼쳤다.
“그 오케스트라 사진이 여기 있네.”
시골의 이런 자리가 흔히 그러하듯 절차에 따라, 아담스베르그는 그들 테이블로 초대받았다. 아담스베르그는 술잔을 들고 가서 오스왈드가 건네주는 신문을 보았다.
“여기, 이 비올라 연주자예요.”
“이 예쁜 여자 말인가요?”
“네.”
로베르가 다시 잔을 들었다. 두 번째 잔을 마시기 위해 잠시 뜸 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는 이런 자리에 으레 출현하는 그렇고 그런 케케묵은 문제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 여자와 낯선 남자는 과연 어떤 사이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었다. 애인? 부인? 누이? 친구? 그도 아니면 사촌 간인가?
“당신이 이 여자를 따라왔다고요?” 일레르가 다시 물었다.
아담스베르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노르망디 사람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옛날에나 그랬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그런 사람을 직접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침묵에 대한 굳은 믿음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는 순진한 촌사람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남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다 보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게 되고, 자신을 많이 드러내다 보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인 듯싶었다. 별다른 수단이 없던 이들은 연장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앙젤베르 노인이 손톱으로 면도하지 않은 턱을 문지르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집사람이라서 따라왔겠지, 뭐.” 드디어 노인이 결론을 내렸다.
“한때는 그랬었죠.” 아담스베르그가 대답했다.
“지금도 따라왔잖아.”
“아, 그거야 잘해 주려고 그러는 거죠.”
“맞습니다.” 구두점 사내가 말했다.
“여자는 말이야…….” 앙젤베르 영감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와 하룻밤 지냈다고 해서 다음 날도 붙어 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네.”
“같이 자는 순간에도 싫어질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멀어지면 다시 찾고 말입니다.” 로베르가 훈수를 두었다.
“우린 헤어졌어요.” 아담스베르그가 말했다.
“이제야 속 시원히 알게 되겠군.” 오스왈드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함부로 대했죠. 신사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거지요.” 아담스베르그가 해명했다. “저는 말입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친구, 그래서 여자들에게는 걱정거리였을 이 친구야말로 시골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수를 딸 만한 사람이었다.
“자, 여기 앉게나.” 앙젤베르가 자리를 권했다.
초면에 예의를 갖추어 말을 올리던 말투에서 어느새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것은 노르망디 촌사람들이 산골 출신의 또 다른 촌놈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였다. 그에게 백포도주 한 잔이 건너왔다. 이렇게 해서 이들 모임에 신입 회원이 하나 들어왔는데, 다음 날이면 온 동네에 말이 퍼질 것이었다.
“브레티이에서 누가 사람을 죽였어요?” 술을 제법 마신 뒤에 아담스베르그가 물었다. 이런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 잔도 비우지 않고 그런 질문을 던지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쯤은 아담스베르그도 알고 있었다.
“죽이다니? 살인을 말하는 거예요?” 오스왈드가 호주머니에서 다른 신문을 꺼내 아담스베르그에게 주면서 손가락으로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결국.” 아까의 화제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로베르가 말했다. “처음에는 못해 주다가 나중에 잘해 주는 게 더 좋아, 특히 여자한테는 말이야. 그러면 걱정거리도 덜하지.”
“알게 될 거야.” 노인이 말했다.
“알게 될 거야.” 구두점 사내가 맞장구쳤다.
아담스베르그의 눈은 신문 기사에 고정되어 있었다. ‘브레티이의 기상천외한 살육’이라는 기사에 그의 몸에선 본능적인 야성이 꿈틀거렸다. 신문을 다시 들어 제목을 보았다. ‘서부의 위대한 사냥꾼’이었다.
“당신도 사냥꾼이오?” 오스왈드가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이해가 잘 안 되겠구먼. 이런 사슴은 말이에요, 더군다나 뿔이 여덟 개로 가지를 친 사슴은 이런 식으로 죽이는 게 아니거든요. 이건 너무 잔인해요.”
“일곱 갈래였어.” 일레르가 바로잡아 주었다.
“아, 그래요.” 오스왈드가 뻣뻣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놈은 여덟 가지예요.”
“일곱이야.”
두 사람의 대결에서는 파국의 위험마저 풍겼다. 앙젤베르가 이들을 뜯어말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 사진으로는 일곱 갠지 여덟 갠지 정확히 구별하기 힘들어.”
모두 한 잔씩 마시고 나서야 흥분이 가라앉았다. 남자들의 모임에 말다툼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낯선 사람이 있는 이날 저녁에는 어느 정도 필요했던 것이다.
“이게 말이야.” 로베르가 뭉툭한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냥꾼이 한 게 아니야. 그 친구들은 손도 대지 않아. 더군다나 칼까지 대는 일은 그들 명예에 어긋나는 짓이지.”
“명예라고요?”
“그런데 이건 뿔과 다리를 잘라놓았잖아. 그 친구들은 손을 댄다고 해도 기껏 재미 삼아 배만 가르는 정도지. 이건 미친놈 짓이야. 그런데 에브뢰의 경찰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 줄 알아? 한 일이 없어, 아무것도! 이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이야.”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니까요.” 반박하는 사람이 두 번째 나타났다.
“말 다한 거야? 어떤 놈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간에 이런 식으로 죽일 때에는 이미 심상찮은 일이 시작되었다는 거야. 그놈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냐 이 말이지. 이건 연습 삼아 한 거야. 살인자가 말이야.”
“그래요.”라고 말하는 아담스베르그의 눈에는 뒤 아브르의 열두 마리 생쥐가 떠올랐다.
“그걸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찰들은 얼간이, 진짜 멍청이들이야.”
“하지만 그건 사슴이잖아요.” 또다시 이의 제기가 나왔다.
“알퐁스 자네도 멍청하긴 마찬가지군. 장담하지. 내가 경찰이라면 그놈을 꼭 찾아낼 수 있다고 말이야. 그것도 눈 깜짝할 새에.”
“나도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담스베르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자네도 알고 있구먼. 이 베아른 양반도 내 말이 옳다잖아. 알퐁스, 내 말 잘 듣게나. 경찰들이 왜 멍청하냐 하면, 미친놈 하나가 그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단 말이야. 잘 들어. 자네도 알겠지만,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틀린 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이 베아른 사람도 동의합니다.” 연장자가 다시 잔을 채우고 있을 때, 아담스베르그가 맞장구쳤다.
“아하, 자네도 알고 있었군. 하지만 베아른 양반은 사냥꾼이 아니잖아.”
“네, 저는 사냥꾼이 아니고 경찰입니다.” 아담스베르그가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앙젤베르는 자기 잔에 반쯤 따르던 포도주 병을 쥔 채 잠시 멈칫했다. 아담스베르그와 눈이 마주쳤다. 결투가 시작되었다.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파리 경찰 강력과 과장은 손을 내밀어 마저 잔을 따르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앙젤베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는 경찰을 싫어해.” 여전히 팔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앙젤베르가 말했다.
“경찰 좋아하는 동네는 어디에도 없어요.” 아담스베르그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여긴 다른 동네보다 더해.”
“예전에 경찰이었다고만 했지, 경찰을 좋아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어요.”
“그럼 지금은 경찰을 좋아하지 않아?”
“당연한 말씀이죠.”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노인은 이 뜻밖의 대결에 집중하는 듯했다.
“그러면, 지금은 왜 그러는데?”
“제가 버릇이 없어서 그렇죠 뭐.”
재빨리 튀어나온 대답을 다들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담스베르그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티를 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맞습니다.” 구두점의 사나이가 결론을 맺었다.
그러자 영화의 스톱 모션처럼 멈춰 있던 앙젤베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담스베르그의 잔이 다시 채워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담스베르그가 죽은 사슴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언제 일어난 사건인가요?”
“한 달 전이오. 흥미 있으면 이 신문 가져가요. 에브뢰의 경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멍청한 놈들.” 로베르가 말했다.
“이게 뭐죠?” 사슴 옆에 있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담스베르그가 물었다.
“사슴의 심장이지.” 일레르가 역겨운 듯이 말했다. “그놈이 사슴 옆구리에 두 방을 쏘곤 칼로 심장을 도려내서 완전히 곤죽을 만들어놓은 거야.”
“흔히 이렇게들 하나요? 사슴의 심장을 끄집어내는 것 말입니다.”
또다시 침묵의 순간이 잠시 흘렀다.
“이야기해 드려, 로베르.” 앙젤베르가 명령하듯 말했다.
“정말 놀랐어요.” 로베르가 말하기 시작했다. “산동네 출신이 사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놀랍네요.”
“어른들 뒤를 따라만 다녀서 그래요.” 아담스베르그는 인정했다. “저는 그물만 놓았어요. 애들은 다 그랬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것 말고 다른 건 해본 적이 없어요.”
“사슴을 잡으면.” 로베르가 설명했다. “제일 먼저 껍데기를 벗겨냅니다. 태피스트리로 팔리거든요. 다음에는 사슴 고기 중에서 최고로 치는 ‘오뇌르’라 불리는 오른쪽 앞발과 허벅다리를 떼내죠. 내장은 건드리지 않아요. 그런 다음에 안심을 베어내죠. 그리고 머리를 떼어내는데 뿔 때문이죠. 작업이 다 끝나면 사슴을 그 가죽으로 싸둡니다.”
“맞아.”
“하지만 심장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예전에는 사람에 따라 달랐지만 지금은 변했죠. 요즘 심장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어요.”
“예전엔 누가 그렇게 했나요?”
“그쯤 해두게, 오스왈드, 다 지난 이야기야.”
“이 녀석이 원한 것은 사슴을 죽여서 사지를 절단하는 것뿐이야.” 알퐁스가 말했다. “뿔도 갖고 가지 않았잖아. 사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조차 유일하게 가져가는 것이 뿔인데 말이야.”
아담스베르그는 카페 문 위의 벽에 달려 있는 커다란 사슴뿔을 쳐다보았다.
“그래, 희한하게도 말이지. 된장!”
‘젠장’을 ‘된장’이라고 말하는구나, 하고 아담스베르그는 속으로 헤아렸다.
“야, 소리가 너무 크잖아. 좀 작게 말해.” 앙젤베르가 카운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카페 주인이 젊은이 둘과 도미노 게임을 벌이고 있었는데, 젊은이들은 이쪽 남자들 자리에 들어오기엔 경륜이 부족해 보였다.
로베르가 주인에게서 눈길을 돌리더니 아담스베르그를 향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르생이야.”
“무슨 말인가요?”
“이곳 출신이 아니란 말이오. 캉 출신이라고.”
“캉은 노르망디 아닌가요?”
여러 사람의 시선이 아담스베르그를 향했는데, 겸연쩍어하는 어정쩡한 표정들이었다. 이 산골 출신에게 자기들만의 비밀 이야기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이는 것이었다. 그리 기분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캉은 바스노르망디잖아.” 앙젤베르가 설명했다. “여기는 오트노르망디이고.”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똑같이 보면 안 되지. 오트노르망디가 진짜 노르망디거든.”
그의 비틀어진 손가락이 카페 문 위의 사슴뿔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오트노르망디가 아롱쿠르 카페의 높이로 줄어든 것 같았다.
“주의하게. 저쪽 칼바도스 사람들은 거꾸로 말할 걸세. 그대로 믿으면 안 되네.” 로베르가 부연 설명을 했다.
“네, 알았습니다.” 아담스베르그는 다짐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동네는 정말 안된 게, 주야장천 비가 온다네.”
아담스베르그는 창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기의 비는 정말 지긋지긋해. 하루도 쉬지 않고 오니 말이야.” 오스왈드가 말했다. “여긴 비가 그렇게는 안 와, 오더라도 살짝 적시는 정도지. 당신 고향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지요?”
“아닙니다. 급류가 흐르는 포 골짝과 오소 골짝 사이에는 엄청나게 옵니다.”
“그래, 맞아.”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앙젤베르가 말했다.
남자들의 대화가 으레 그렇듯 무겁고 둔중한 분위기에 익숙한 아담스베르그였지만 노르망디 남자들의 대화는 그들의 명성에 어울리게 다른 곳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너무 아꼈다. 이곳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서 낱말 하나하나를 더듬으면서 진행되다 보니 진도 나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절대 강하게 말하지도 않고 또 어떤 문제에 직접 접근하는 것도 아니었다. 식사 자리에 어떤 문제를 꺼내놓는 것이 살코기 한 점을 내던진 것인 양 그들은 줄곧 변죽만 울렸다.
“왜 젠장이라 그러세요?” 문 위의 벽에 걸려 있는 사슴뿔을 가리키면서 아담스베르그가 물었다.
“왜냐하면 저건 뿔갈이 때 떨어진 뿔이거든요. 폼 나게 장식하는 데 쓰이지요. 가서 보면 알 거요. 뼈 아래 맷돌이 있어요.”
“저게 뼈예요?”
“당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앙젤베르가 이 무식한 사람을 자기들 자리에 끌어들인 것을 원망하듯이, 알퐁스는 비통하게 말했다.
“그래, 뼈야.” 노인이 말했다. “저기 튀어나온 건 사슴의 머리뼈야.”
“아니, 그럼 당신은 저게 사람의 두개골인 줄 알았단 말인가요?” 로베르가 말했다. 잠시 몽상에 젖어드는 듯했다.
“저 위의 생각으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오스왈드가 말했다.
“맞아요. 그렇게 무겁지는 않겠군요.”
“경찰한테 편리하겠군.” 아담스베르그는 사슴뿔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해.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맞습니다.”
다들 자기만의 생각에 골똘히 잠겨들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침묵의 순간이 세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경찰 노릇 말고 당신이 아는 게 뭐요?” 오스왈드가 물었다.
“너무 캐묻지 마.” 로베르가 명령조로 말했다. “이 사람은 자기 원하는 것엔 능란해. 그건 그렇고, 저 사람이, 당신이 무엇에 정통한지 물었잖소.”
“여자겠죠.” 오스왈드가 말했다.
“그래, 그렇지 않다면 아내와 헤어지지도 않았을 거야.”
“맞습니다.”
“여자에 정통한 것하고 연애에 능한 것하고는 아무 관계 없어. 특히 여자 문제는 더 그래.”
앙젤베르가 기억을 떨쳐 버리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 사람한테 설명 좀 해줘.” 하고 일레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내장이 열린 사슴 사진을 더듬었다.
“이건 해마다 뿔갈이를 하는 수사슴이야.”
“뿔갈이는 왜 하죠?”
“거추장스러우니까. 암컷을 차지하려고 싸울 때에만 쓰이지. 그게 끝나면 떨어지는 거야.”
“안됐군요.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데.” 아담스베르그가 말했다.
“아름다운 것이 다 그렇듯, 이것도 복잡하고 까다로워.” 앙젤베르가 말했다. “뿔이 너무 무겁기도 하고, 또 나뭇가지에도 잘 걸린다는 걸 알아야 해. 그래서 짝짓기 싸움이 끝나면 저절로 떨어지는 거지.”
“말하자면 싸울 때만 사용하는 대포 같은 것이지요. 일단 여자를 얻고 나면 무기를 버리지요.”
“여자는 정말 복잡하고 까다로워.” 로베르가 말했다. 아까부터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예쁘잖아.”
“내 말이 그 말이야.” 노인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쁠수록 더 까다롭다니까. 여자를 다 이해하긴 힘들어.”
“아닙니다.” 아담스베르그가 말했다.
“자네도 알게 될 걸세.”
네 명의 남자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포도주 잔을 동시에 털어 넣었다.
“이렇게 떨어진 뿔을 뿔갈이 뿔이라고 불러요.” 일레르가 다시 설명했다. “숲에 들어가면 버섯처럼 주울 수 있어요. 사냥한 사슴뿔은 칼로 잘라내야 하지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건 살아 있는 놈에게서 떼낸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놈은 살아 있는 사슴뿔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배가 열린 사슴 사진을 다시 보며 아담스베르그가 혼잣말을 했다. “그놈은 죽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어. 아니면 사슴의 심장이든지.”
“맞습니다.”
첫댓글 경호를 받는 카미유는 음악가네? 지금 노르망디에서 연주할 거고? 아담스베르그는 연주회 들어러 갔다가 사슴 사냥법에 대한 의견교환 술자리에 끼어들고 있고...나, 잘 따라가고 있지?
니가 굴케야 그런 줄 알겠다. 자주 굴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