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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 ||
주제어 | 예성 성결교 | ||
자료출처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 성경본문 | |
내용 |
일제 암흑기
성결교회는 외국인 선교사가 오기 전 정빈, 김상준 두 선생이 처음 시작한 한국인의 손으로 세운 교회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간직한 자생적인 교단이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7년에 한국교회 대부흥운동과 함께 성결복음이 처음으로 이땅에 씨앗을 내렸다. 당시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기독교를 향해 폭압에 칼날을 들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결교회는 순교자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굳건히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선교운동은 오순절운동에 못지않게 요한웨슬레의 부흥운동을 이어 받아 성령운동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가 극에 달했던 1943년 재림교리가 천황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성결교회는 마침내 강제 해산을 당하고 말았다.
교단 재건 및 분열
성결교회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박해의 역사를 딛고 다시 재건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한번 한국동란과 교단분열이라는 깊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한국동란으로 교단산하 100개 이상의 교회가 폐쇄 및 파괴되고 수많은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순교 또는 납북되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1951년 4월 교단 최초로 국군에 군종목사를 파송했다. 또 교계의 불어온 자유주의 신학의 바람으로 1961년 4월 14일 N.C.C 및 N.S.E 등 연합회기관 가입 문제가 발단되었고 이에 복음진리 수호라는 고통의 산고 속에 합동특별총회를 개최함으로 성결교회가 다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
교단 성장기
현재 본 교단 예수교대한성결교회(이하, 예성)는 1974년 78개 교회에서 2007년 현재 국내외 1,300교회로
증가하는 등 폭발적인 부흥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고(故) 김응조 목사의 사택에서 시작돤 신학교는 6개의 단과대학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성결대학교로
발전하여 성결교의 성장과 함께 경이적인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교단의 현재
예성은 2005년 10월 27일 ‘예성 100주년 비전선포식’을 개최하였고, 2007년 4월 24일부터 26일까지는
광주광역시에서 2,000여명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100주년 연차대회 및
제86회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또 역사적인 교단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예성 100주년
기념대회’를 2007년 5월 20일 성결대학교 대운동장에서 개최했다. 예성 산하 전국지방에서 모인 목회자와 성도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100주년 기념행사는 교단의 선교 100년을 마무리하고, 100년 이후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교단의 비전을 확인하고 선포하는 힘찬 도약의 시간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