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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식과 장인(匠人)의식의 미학
-장윤우의 詩
장윤익(문학평론가. 前경주대학교총장)
1. 시인의식과 장인의식
시인의식과 장인의식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예술정신이다. 장윤우(張潤于)의 시는 시인의식과 장인의식이 오랜 산고(産苦) 끝에 다시 만나서 형상화된 작품들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도주보》와 《학원》, 학생시집 『사인부락(四人部落』등에 발표한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천부적인 예술가의 기질로 주목을 받았던 학생시인이었다. 그는 그 후에도 끊임없이 많은 시를 창작하여 12권의 시집을 上梓하였으며 시 애호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장윤우의 본격적인 시의 출발은 1963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작인 『겨울 東洋畵』라고 하는 말이 옳을 것이다. 시인 자신을 비롯한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장윤우의 시 창작을 「겨울 東洋畵」로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바탕이 되어 전쟁과 허무, 생활과 조형이 오버랩 되거나 시인으로서의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활동으로 인식했다.
동양화는 동양적인 토착정서를 기반으로 해서 화륙법(畵六法)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정서에 가장 가깝고, 허무와 여백이 깃든 무위자연의 세계를 묘사하여 유현(幽玄)한 감동으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사군자(四君子)의 정을 담은 그림이다. 여기에 덧붙인 ‘겨울’은 그 정적인 요소를 더욱 깊게 하는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가 나타낸 시적 효과를 한층 더 고조시켜 「겨울 東洋畵」의 시적 분위기를 살려낸 것이다.
이러한 장윤우의 예술적 기질은 ‘어느 분야를 기반으로 해서 예술의 미학을 전개할 것인가’하는 시와 그림의 갈림길에서 조형의 세계를 바탕의 예술로 선택했다. 어떻게 보면 화가의 길을 택한 것은 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윤우는 미술을 전공함으로써 시 예술의 폭을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은 동일하다. 장윤우 시인은 시를 통한 동양적 정서와 조형, 생활과 허무의 만남이 예술적 아름다움을 최대로 고양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장윤우의 시는 이러한 종합예술의 미학으로 시작한다. 그는 시가 대중과 동떨어져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선전문구로 타락해서도 안 되며, ‘구조물의 형상’이 생활의 일부로 되는 ‘오자인생(誤字人生)’의 삶을 장인의식으로 시적 형상화를 시도한 시의 세계를 전개했다. 그의 시는 이와 같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다른 시인들과의 구별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2. 동양적 정서와 조형기법
1) 동양적 정서와 기법
화롯불 놓고
천년이
조용히 흘러 간다
九霞山 붓에서
玉같이 구슬려 나오는
四君子의 情에
겨울밤이 화안히 핀다
月田 선생께서
이르기를
〈책을 萬卷 읽으라〉
평생에 가슴 속에 심고
畵六法에 앞서
마음이 淨해야지
心과 身이 갈앉고
눈시울을 서서히 들어
유연히 벽을 대하니
모두 형통하다
(「겨울 東洋畵」1,2연)
장윤우는 동양적 정신을 소중히 여긴다. 정적(靜寂) 속에서 정결한 마음으로 붓을 드는 예술의 경지를 그는 시인의식으로 받아들인다. “玉같이 구슬려 나오는/ 四君子의 情에/ 겨울밤이 화안히 피는”것을 그는 천년이 흘러간 동양의 정신과 동양화의 기법으로 인식한다. “心 과 身이 갈앉고/ 눈시울을 서서히 들어/ 유연히 벽을 대하니/ 모두 형통하다”고 하는 시행들은 예술을 대하는 이 시인의 장인정신의 진지함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인의식을 화육법의 기법으로 그려낼 때, 고적(孤寂)은 예술창조의 기본이 된다. 여기에서 ‘겨울 동양화’는 “따끈한 정종”과 “수꿩”의 소박한 이미지와 조화되어 무욕(無慾)으로 이어지는 한편의 시로 태어난다. 장윤우는 여백과 허정(虛靜)을 이 시의 정서로 삼으면서도 기법에 있어서는 긴장의 고삐를 바싹 조이고 있는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러한 동양적 정서와 한편으로는 긴장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기법의 참신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엉킨 나무가 綠色의 繪畫를
던지고 있다
……(중략)……
숨가쁜 씨앗들은 外界를 驚異의 눈으로
얘기 주고받을 것이다.
-〈試作〉중에서-
이 밤
풍경소리 호올로 높고 슬프기만 한데
우러러
밤서리와 별빛을 이고
저 머나먼 곳
永劫의 빛을 바라고 나는 가자
-「산수도」에서-
「試作」과 「산수도」는 시인의 창작의도가 동양적 정서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녹색의 회화는 서양화와 더 가까울 수도 있으나 “엉킨 나무”와 “숨가쁜 씨앗들이 外界를 驚異의 눈으로/ 얘기를 주고받는” 시적 분위기는 역시 자연에 동화되는 동양적 정서에서 나온 기법이다.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이 정적(靜寂)의 경이로움으로 승화한 시학이다. 장윤우 시인은 시가 형상화되는 과정의 정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창작의 기법으로 사용한다.
‘산수도’는 여백과 여유가 있는 그림이다. 산수는 영겁의 빛을 바라는 동양적 정서의 대상이 되어 동양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요즈음은 한국의 정서를 담은 한국화라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다.
“이 밤/ 우러러”와 “밤서리의 별빛을 이고” 사이에는 여백과 여유가 있고, “저 마나먼 곳/ 永劫의 빛을 바라고 나는 가자” 사이에는 무한대의 공간적 거리를 가진 여백이 있다. 이것은 동양화만이 가지고 있는 기법의 특성이다. 장윤우의 시인의식은 이러한 동양적 정서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시와 조형의 만남
장윤우 시인의 장인의식은 시와 조형의 만남을 통해서 승화되고 있다. 조형은 서양적인 양식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동양적인 조형 양식도 예술의 최고 경지로 작품화되어 우리의 문화적 유물로 남아 있다. 석공예, 목공예, 섬유공예, 금속공예를 막론하고 우리의 조형 공예가들은 장인(匠人)정신에 몰두한 예술의식으로 작품을 창작하여 세계인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공예를 전공하고 있는 장윤우 시인은 공예와 시의 만남을 시 공예전을 통해서 몇 차례 시도한 적이 있다. 이것은 시와 조형의 만남을 통해서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의미도 된다. 「쇠젓가가락에 대한 斷見」도 그 중 하나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조형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긴요한 용구
절묘한 장단은 타악기의 몫을 넘고
단구(短軀) 두 개로서 온몸을 휘감는 짜릿함
식음의 자족(自足)함은 역사의 증인이려나
공작인(Homo Fabel)으로서
영구불멸한 너와의 동행을 감사한다
(「쇠젓가락에 대한 斷見」의 전반부)
조형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긴요한 용구인 ‘쇠젓가락’을 공작인으로서 영구불멸의 동행을 감사하는 정신은 역시 장인정신이다. 금속 공예품은 인간의 생활과도 밀접해 있지만 장식용구로도 사용되어 왔다. 금관과 철은 바로 고대국가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장윤우 시인은 “식음의 자족(自足)함을 역사의 증인”으로 삼아, “단구(短軀) 두 개로서 온몸을 휘감는 짜릿함”으로 시화한다. “가장 슬플 때 가장 사랑스럽고/ 너를 두드림으로서 울고 웃는” 것을 인간들에게 보내는 것은 시와 조형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손가락이 떨고 있는” 예술의 감동으로 나타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彫塑室」도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철근이 엉겨 붙은 구조물/ 페치카 위엔 빨간 과일이/ 빛을 내”는 조형은 금속공예와 회화가 시로 승화되는 아름다움의 빛이다. 시와 조소가 만나는 “잉태를 위한 時空의 정지”는 시가 태어나는 강렬한 감정의 “마치엘 熔融”이 된다. 이렇게 장윤우의 시세계는 시와 조소의 만남을 통해서 그 영역을 확대해간 것이다.
시 「마르셀․뿌르스트」는 시와 조형의 만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칩거하며 일체와의 인연을 끊고서야/ 드디어 남겨놓고 간 불후의 명작”에서 시와 소설의 만남을 시적 형상화로 시도한 것은 예술의 최고 경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감성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술적 승화는 장르를 초월하여 작품화 된다.
3. 전쟁의 현실과 생활의 시학
1)전쟁과 현실
내가, 형제가
말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戰場
山野는 벙커가 되고
벌집이 되고
沃畓은 캐타빌라와 군화
깡통과 껌으로 찢겨 버렸다
그래도 이 땅엔 평화가 온 것이다
웃음이 되살고
밥물 끓이는 연기가 오르게 됐다는 것이다
(「戰爭」 셋째 연)
장윤우 시인은 「그 겨울 전차의 포신이 느린 그림자」에서 전쟁을 현실의 문제와 연계하여 시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전쟁은 현실이며, 언제나 타의에 의해 빚어진 희극이기 때문에 “내가, 형제가/ 말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戰場”이었다. “山野는 벙커가 되고/ 벌집이 되고/ 沃畓은 캐타빌라와 군화/ 깡통과 껌으로 찢겨버린” 비명 소리 뒤에는 “권력자의 勳章"과 ”무기상인들의 경쟁입찰” 이 야합한 “회심의 축배”가 있는 것이 전쟁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처참한 전쟁의 현상에 분노한 시인은 “다신 전쟁에 가담하지 말자/ 전쟁상인들의 동조자가 되지 말자”고 경고의 소리를 외친다. 그리고 다시 “번들번들한 포신 위/ 한 마리/ 피로한 나비여/ 전쟁은 정말 끝난 것인가”를 되묻는 평화에 대한 갈망은 처질한 소리로 들린다. 전쟁이 만들어간 현실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지를 깁고/ 비들기를 올려”도 ‘권력자들의 훈장’과 ‘전쟁상인들의 경쟁입찰’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쉽사리 정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윤우 시인이 전쟁의 생리를 조명하여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50년대의 전쟁과 이 시를 창작한 당대의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전쟁의 본질을 시화했기 때문이다.
나는 게,
옆으로만 기며
구멍의 크기, 방위, 얼룩, 반사율과
포옴을 강제 당했다
彈痕 無數한
地下壕속에서도
살아왔던 몸이다
-〈비오는 날 落塵에 傷한 게 등〉에서
전쟁의 현실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게처럼 옆으로 기어 가드라도 살아야 하고, 지하호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전쟁이 생리이다. 군대의 훈련은 적을 죽이는 것과 내가 살아남는 훈련이다. ‘낙진에 상한 게’처럼 “지하호속에서도/ 살아왔던 몸”이 시인이 의식하고 있는 전쟁의 현실이다. 장윤우는 전쟁을 대상으로 우리 현실이 처한 많은 문제들을 시화하여 공감을 얻고 있다.
2) 생활과 허무의 형상화
郊外地의 어둠 속에서
눈밭을 살라 먹는
연탄불에 미치고 있다
열아홉 구멍의 색색 빛깔에
구름이며, 학, 대나무, 거북을 보다가
언 듯 샤갈의 나는
흰 말 갈기를 연상하고
이 나이에 추운 이유를 알았다
한 족기 맥주라도 들고
아아 가고 싶은 곳은 교외선
석탄 하치장(下置場)이였다
(「십구공탄」의 전반부)
십구공탄은 60년대와 70년대 우리 서민생활의 전부라고 할 만큼 가장 친근한 생활연료로 사용되었다. 장윤우 시인은 “교외지의 어둠 속에서/ 눈발을 살라 먹는/ 연탄불에 미치고 있다”는 표현으로 연탄이 차지하고 있는 생활의 의미를 시화하고 있다. 연탄은 생활뿐 아니라 예술의 대상이 되어 우리들과 한층 더 가까운 존재로 확대된다.
“열아홉 구멍의 색색 빛깔에/ 구름이며, 학, 대나무, 거북을 보다가/ 언듯 샤갈의 날으는/ 말 갈기를 연상하고/ 이 나이에 추운 이유를 알았다”고 말하는 시적 화자는 찰나와 영원의 의미를 석탄을 통해서 확인한다. 석탄 하치장이 주는 일상(日常)은 시인의 눈과 미적인 감수성을 통해서 시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과된 생활의 감성은 독자들의 가슴에 충격으로 나타난다. 시적 화자가 “이 나이에 추운 이유를 아는 것”은 나이와 더불어 ‘석탄하치장’의 생활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근거가 된다.
사람의 생활은 항상 허무를 동반한다. 나이와 더불어 자신에 대한 회의(懷疑)가 쌓일수록 무상을 느낀다. 불안과 우수는 자기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오자인생(誤字人生)’의 참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드물게 화창한 날
집안에 나 혼자 뒹굴며
아까운 나이를 손가락으로 되짚으며
괜스리 술잔에 獨白하는
中年客이라면 너절한 꼴일까
먼지 쌓인 書家에 걸맞는
낙서로 꽉찬 인생의 머리에
하얗게 내리는 無常
눈가에 주름과 한숨으로 찌르는
좋은 날 오후의 무심한 江
남는 거라곤 찡그리게 하는 배설물
誤字투성이
(「誤字 인생」의 전반부)
“아까운 나이를 손가락으로 되짚으며/ 괜스리 술잔에 獨白하는/ 中年客이라면 너절한 꼴일까”를 말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장윤우 자신의 자화상이다. 장윤우 시인은 자화상을 잘 그린다.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반추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낙서로 꽉찬 인생의 머리에/ 하얗게 내리는 無常”의 표현을 통해서 허무를 시의 미학으로 변용한다. 여기서 발견한 ‘誤字인생’은 “비인 盞으로 自嘲의 저녁을 맞는” 시인 박정만의 무상을 장윤우 자신의 허무의식으로 반영한다. 허무는 시인의식을 더욱 강하게 하는 감수성으로 승화되어 이 시를 낳게 한 것이다.
“어느결에 55회째나 이른/ 까페 <설파>에서의 詩낭송은/ 明洞의 골목에/ 별난 감회를 던지기도 하거니와”로 시작되는「詩人會議」도 위의 「誤字인생」에 나타난 허무와 무상을 중심축으로 시화한 작품이다. 매주일 마다 박수를 받으며 열리는 시낭송회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허무의 시간으로 느끼는 시의 화자는 “오늘 내리는 비는 눈물인가 기쁨인가/ 술을 마시면서/ 詩와 눈물을 마시면서/ 이렇게 흘러가는” 시인의 시간에서 자신의 허무를 표출한다.
“同人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시인의 무상(無常)을 장윤우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고 시도 시인도 시간 속에 흘러가는 무(無)의 존재라는 것을 예리한 감성으로 형상화한다. 생활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허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시적 승화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 장윤우 시의 매력이다. 이들 작품 이외에도「貧家記」,「헌 책방」,「도시의 바다」등 상당한 양의 작품들이 이 경향에 속한다.
3) 시의 다양성과 대중성
장윤우의 시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동양적 정서와 조형, 전쟁과 일상, 허무와 가족, 산과 풀잎, 술과 여행 등을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중과 접근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 시인이다.
장윤우는 목로주점에서 서민들과 상대하면서 쓰는 투박한 언어를 시어로 사용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다. 상징이나 비유 대신에 일상에서 느낀 것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의 접근을 쉽게 한다. 그는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시는 항상 대중들과 가까운 자리에 있다.
장윤우는 한국 시인들 중에서 시화전을 가장 많이 한 시인이다. 서울에서만 전시한 것이 아니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전주, 제주 등 전국 순회 시화전을 35회 이상을 하고, 일본의 토오쿄오와 미국의 뉴욕과 로스안젤레스의 해외 시화전을 3회 이상 전시함으로써 시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는 시화전만이 아니고 시공예전도 열어서 시와 그림, 시와 공예(Craft)의 만남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대중화의 전령사가 되기도 했다. 칠순(七旬)의 나이임에도 청춘을 구가(謳歌)하는 듯이 활발한 창작 활동(문학과 미술,조형)을 계속하고 있는 저력(底力)을 주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