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알지는 신라 탈해왕 때 경주지역 시림(始林:鷄林)의 금궤짝에서 태어났다. 탈해왕은 알지를 하늘에서 내려준 아들이라 하고 금궤짝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김(金)이라 지어주었다. 이리하여 알지가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알지의 7대손이며 13대왕인 미추왕(味鄒王) 이후 김씨가 왕위에 올라 신라 56명의 왕 중 38명이 김씨였다. 알지계는 이후 600여 관향으로 나누어졌는데 뚜렷이 현존하는 본관은 약 50여 개이다. 이중에서도 신라 29대 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와 신라 45대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 신무왕의 후손인 김영이(金令貽)를 시조로 하는 영산(永山:永同)김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가 신라 56대 경순왕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경순왕에게는 9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중에서 넷째인 은열(殷說)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다. 첫째는 망국의 한을 안고 입산했고, 둘째는 나주김씨, 셋째는 경주김씨 영분공파(永芬公派), 넷째는 경주김씨 은열공파(殷說公派), 다섯째는 의성김씨, 여섯째는 강릉김씨, 일곱째는 언양김씨, 여덟째는 삼척김씨, 아홉째는 울산김씨의 1세조가 되었다. 그밖에도 구안동(舊安東)·청풍(淸風)·김녕(金寧)·도강(道康)·전주(全州)·양근(楊根)·영광(靈光)·안산(安山) 김씨 등이 그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다. 그외에 선산(善山)·상산(商山)·수원(水原)·안로(安老)·연안(延安)·순천(順天)·고령(高靈) 김씨 등이 경주김씨계이다. 그리고 알지계에서 다른 성으로 갈라져나간 성씨도 있다.
김행(金幸)은 안동권씨로, 김순식(金順式)은 강릉왕씨로, 궁예의 후손 순백(珣白)은 광산이씨로, 궁예의 17세손 세광(世光)은 감천문씨(甘泉文氏)로, 경순왕의 아들 은열(殷說)의 13세손 영규(永奎)는 수성최씨(隋城崔氏)로 분리되었다.
강릉김씨의 시조는 신라 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이다. 그는 공이 있어 명주군왕(溟州郡王:江陵)으로 봉해졌고 그 지역을 식읍으로 받았던 것에 근거한다.
강화김씨는 경순왕의 후손으로 개성파(開城派), 숙천파(肅川派), 의주파(義州派)가 있는데 개성파의 1세조인 성(晟)이 하음(河陰:江華의 옛 이름)백(伯)에 봉해진 것에 근거하고 있다.
경주김씨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명종(鳴種)과 넷째 아들 은열(殷說)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후에 후손들 중에 출세한 인물이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파가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으로 명종의 후손인 영분공파(永芬公派)와 은열의 후손인 대안군파(大安君派)·병판공파(兵判公派)·백촌공파(白村公派)·정백공파(正伯公派)·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태사공파(太師公派)·장사랑공파(將仕郞公派) 등이 있다.
고성김씨는 수로왕의 막내 동생인 말로왕(末露王)을 시조로 하고 그가 고성에 도읍을 정했던 것에 근거한다.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그와 후손들이 광산에 살았던 것에 근거한다.
금산김씨는 경순왕의 후손인 김정보(金正寶)를 시조로 하고 고려 후기에 그의 13세손인 신(侁)이 금주군(錦州君)에 봉해진 것에 근거한다.
김녕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의 후손인 김시흥(金時興)을 시조로 하고 고려시대에 그가 김녕군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김해김씨는 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있다. 김해의 지명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는데 고려 후기에 이르러 김해부가 설치됨으로써 김해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이 번창함에 따라 수로왕의 13세손인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150여개로 분파되었다. 이중에서 고려 때의 목경(牧卿)을 1세조로 하는 경파(京派:永堅·永瑞·永貞·永純)와 아우 익경(益卿)을 1세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克己·完·汝水·世器)와 관(管)을 1세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克一·馹孫·大有)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도강김씨는 경순왕의 후손인 김희조(金希祖)를 시조로 하고 그가 고려 말기에 도강백(道康伯)에 봉해졌던 것이 근거한다.
부안김씨는 경순왕의 큰아들인 마의태자를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이 부안부원군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상산김씨는 경순왕의 후손인 김수(金需)를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이 상주에 세거하여 상산부원군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서흥김씨는 은열의 후손인 김보(金寶)를 시조로 하고 그의 손자가 서흥군에 봉해졌던 것을 근거로 한다.
선산김씨는 알지의 후손인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고 그가 고려초에 선산군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또 같은 선산김씨가 있는데 이는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인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고 있다. 안동김씨는 알지의 후손인 숙승(叔承)을 시조로 하고 고려시기의 장군인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안동김씨가 있는데(新安東金氏),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고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신안동김씨는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로 유명하다.
언양김씨는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김선(金鐥)을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인 취려(就礪)가 고려시대에 언양군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연안김씨는 알지의 후손인 김섬한(金暹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광김씨는 은열의 손자인 김심언(金審言)을 시조로 하고 고려 때 오성군(筽城君:영광의 옛 이름)에 봉해진 것에 근거한다.
울산김씨는 경순왕의 아홉째 아들인 김덕지(金德摯)를 시조로 하고 있다.
의성김씨는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인 김석(金錫)을 시조로 하고 그가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의성군에 봉해진 것에 근거한다.
청도김씨는 은열의 후손인 김지대(金之岱)를 시조로 하고 오산군(鰲山君:청도의 옛 이름)에 봉해진 것에 근거한다.
청풍김씨는 은열의 후손인 김대유(金大猷)를 시조로 하고 그가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풍산김씨는 경순왕의 후손인 김문적(金文迪)을 시조로 하고 그가 고려시대에 풍산백에 봉해졌던 것에 근거한다. 이들 본관중 안동·광산·경주·연안·김해·청풍·강릉·의성·선산·상산 김씨가 유명한 인물을 다수 배출했다.
김씨는 전국에 걸쳐 거주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영남에 다수 거주하고 있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에 따르면, 가구수 310만 2,537호와 인구수 992만 5,949명으로 성씨 중에서 인구 순위 1위이다.
李離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