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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배우, 우아함과 클래식 룩의 상징, 히치콕의 뮤즈 등 시대를 대표하는 독보적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그레이스 켈리가 스크린에 환생한다. 그녀가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인 니콜 키드먼의 몸을 빌어 그레이스 켈리를 그리워하는 국내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의 탄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라 비 앙 로즈>(2007)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내 호평 받았던 올리비에 다한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지난 제 67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우아함과 비현실적일 정도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레이스 켈리와 니콜 키드먼. 이 두 여배우의 주요 작품들과 우아하지만 치열했던 그녀들의 삶에 대해 되짚어보기로 한다.
그레이스 켈리는 미국 필라델피아 최대 부호 가문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부터 빼어난 미모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며, 10살 때부터 아동극단에서 활동하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브로드웨이와 TV를 중심으로 연기활동을 하다 할리우드의 프로듀서 델버드 만의 눈에 띄어 <14시간>(1951)에 단역으로 캐스팅된다. 비록 비중이 적은 역할이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여신으로서의 삶이 시작 된다.
이듬해에 서부극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1952)에서 게리 쿠퍼의 상대 역으로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그레이스 켈리는 존 포드 감독의 아메리카 어드벤처 영화인 <모감보>(1953)에 여성스럽고 조신한 여인 ‘린다’역으로 출연해, 클라크 케이블을 사이에 두고 50년대 최고의 야성녀로 일컬어지는 에바 가드너와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소위 청순미와 요염미의 대결이었던 이 작품을 통해 그레이스 켈리는 1954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후 그레이스 켈리는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를 시작으로 <이창>(1954), <나는 결백하다>(1955)에 연이어 출연하며 ‘히치콕의 뮤즈’로 떠올랐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내포한 그레이스 켈리를 매우 아꼈던 히치콕 감독은 그녀가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도 시나리오를 직접 들고 모나코를 방문해 배우 복귀를 제안하기도 했다.
히치콕 감독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히치콕의 금발’로 불리던 그레이스 켈리는 1955년 출연한 영화 <갈채>를 통해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기존의 세련된 도시 여인의 이미지를 벗고 알코올 중독과 함께 슬럼프에 빠진 중년 가수 ‘프랭크’(빙 크로스비)의 재기를 돕는 헌신적인 아내 ‘조지 엘진’ 역을 맡아 청바지와 허름한 셔츠, 뿔테 안경을 쓴 시골 여인을 연기했다. 이전의 우아한 이미지를 잊게 만드는 그녀의 완벽한 연기는 모든 스태프들을 감동시켰다. 마지막 촬영 날 전 스태프들이 그녀에게 “우리의 진정한 시골 소녀에게 다음 해 아카데미 수상 전까지 이 상패를 오스카 트로피 대신 간직해 주십시오”라고 새겨진 감사패와 기념 선물을 선사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했다. 스태프들의 염원대로 그레이스 켈리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그 명성을 다시 한 번 떨치게 된다.
할리우드 데뷔 후 불과 5년 만에 여배우로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그레이스 켈리는 1955년 4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나라,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의 레니에 3세는 1955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뒤 1년 여간 만남을 이어갔다. 그레이스 켈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던 레니에 3세는 영화 <상류사회> 출연을 앞두고 있던 그레이스 켈리에게 무려 12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청혼을 한다. 이에 그레이스 켈리가 영화 <상류사회>(1956)에서 레니에 3세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출연해 프로포즈를 승낙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로부터 1년 후 1956년 4월 12일, 할리우드 은퇴를 선언한 그레이스 켈리는 레니에 3세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와 유럽 왕실의 결혼’이라는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녀는 ‘현대판 신데렐라’로 불리며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 전통 방식으로 모나코 대성당에서 성대히 치뤄진 두 사람의 결혼식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각국의 수장들과 정재계 인사, 할리우드 스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로 일제히 몰려들었다. 각국의 사절단들이 그들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연이어 방문하였고, 결혼식이 열리는 동안에는 유럽 전역이 축제의 분위기였다.
특히, 이 세기의 결혼식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입었던 웨딩 드레스는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았다. 수녀들이 한 땀씩 정성껏 떠낸 레이스로 상체를 감싼 정숙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드레스와 까르띠에 티아라, 동일한 컬러의 레이스 헤어피스와 길게 늘어뜨린 면사포, 둥근 볼륨 형태의 치마자락과 몸매를 한층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허리 장식까지 갖춘 그녀의 웨딩 드레스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보여, 지금까지도 수 많은 예비 신부들이 가장 원하는 웨딩 드레스로 손꼽히고 있다.
결혼 후에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화제가 되었고, 그녀의 헤어스타일, 의상, 가방은 물론 장신구까지도 유행이 되었다. 그녀는 왕가의 안주인으로 살면서 세 자녀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사는 듯 했지만 1982년 가을, 모나코 근교의 여름 별장에서 자동차를 직접 몰며 왕궁으로 돌아오던 중 발생한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52살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막내 딸 스테파니 공주와 함께 해안도로를 달리던 그레이스 켈리가 차량과 함께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다행히 공주는 사고차량에서 탈출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레이스 켈리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이 사건에 대해 모나코 왕실은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그레이스 켈리의 부주의를 사고원인으로 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첫 번째는 마피아 암살설이다. 카지노 사업으로 수입을 챙기던 마피아 조직이 모나코의 카지노 유입에 강하게 반대하던 그레이스 켈리를 제거하여 사업 확장을 꾀했다는 설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모나코가 관광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레이스 켈리가 이에 배타적인 왕실 일가와 잦은 갈등을 빚자, 왕실 측에서 암살을 지시하고 사고사로 덮어버렸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이에 모나코 왕실은 강력하게 사실 무근임을 주장 했지만 뒤를 이어 남편과의 불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설이 떠돌면서 그레이스 켈리와 왕실 사이의 긴장을 암시했다.
이처럼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의문점들이 현재까지 남아있지만, 공식적인 그녀의 사인은 ‘운전 미숙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알려졌다. 그레이스 켈리의 유해는 모나코 왕가의 가족묘에 안치되었으며, 장례식에는 각국 대표와 왕족을 포함한 400여명의 귀빈들이 참석해 그녀를 애도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에 함께 출연했던 제임스 스튜어트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우리의 삶 속에 부드럽고 따뜻한 빛을 가져다 줬다. 그녀를 바라보는 매 순간이 휴일 같았다. 우리 모두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신의 은총이 있길, 왕비 그레이스 켈리”. 할리우드 역사 상 가장 우아한 배우이자, 모나코의 위대한 왕비로 기억되고 있는 그레이스 켈리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아이콘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2014)에서 그레이스 켈리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 20년 이상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진실로 다채롭다.
1967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성장한 그녀는 친구들의 대사까지 모조리 외워버리는 야무진 꼬마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다. 10대 시절의 대부분을 필립 스트릿 극단 무대에서 보낸 그녀가 당시 극단의 관객이자 영화학도였던 제인 캠피온 감독으로부터 격려의 편지와 함께 ‘내 단편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20대가 된 1989년에는 해양 스릴러 영화 <죽음의 항해>에서 샘 닐의 상대역을 맡으며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이듬해인 1990년, 니콜 키드먼은 영화 <폭풍의 질주>(1990)에서 상대배우였던 톰 크루즈와 사랑에 빠진 뒤 비밀 결혼식을 올리며 ‘가장 사랑 받는 할리우드 커플’이 된다.
이후 <파 앤드 어웨이>(1992), <배트맨 포에버>(1995) <여인의 초상>(1996)등의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배우’로 이름을 알린 니콜 키드먼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투 다이 포>(1996)에서 성공을 위해서라면 살인 청부도 마다하지 않는 야심 넘치는 기상 캐스터 ‘수잔’ 역할을 통해 자신의 연기력과 가능성을 증명한다.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로 그 해 골든 글로브를 비롯해 보스턴 비평가협회상과 런던 영화비평가상을 수상,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모든 의혹들을 종식시키며 여배우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한다. 하지만 골든 글로브 수상 후에도 ‘연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뉴욕 액터즈 스튜디오에서 처음부터 다시 연기를 공부하는 등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니콜 키드먼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톰 크루즈와 함께 한 마지막 작품이자,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2000)은 수위 높은 대담한 베드신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니콜 키드먼은 정숙한 얼굴 뒤에 일상의 권태와 일탈의 욕망을 숨기고 있는 ‘엘리스’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후 톰 크루즈와 이혼한 니콜 키드먼은 한층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2001)는 니콜 키드먼을 세계적인 여배우로 성장시킨 작품이다. 연기와 노래는 물론, 춤까지 완벽하게 연기한 니콜 키드먼의 아름다운 외모와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으며, 그녀는 그 해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의 영광을 얻게 된다. <물랑 루즈>가 니콜 키드먼에게 인기와 명성을 안겨줬다면, 2003년에 개봉한 <디 아워스>는 그녀에게 명예를 선사했다. 전설적인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다룬 이 영화에서 매부리 코 분장을 통해 파격적인 외모 변신을 한 채 열연한 니콜 키드먼은 ‘생애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2003),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2004), 정치스릴러 <인터프리터>(2006), 사진 작가 디앤 아버스를 연기한 <퍼>(2006),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어머니로 열연한 <래빗 홀>(2010) 등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에서 곧 깨질 듯 연약한 스토커가(家)의 안주인 ‘이블린’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니콜 키드먼이 그레이스 켈리 역할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매체들은 뜨거운 관심과 함께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니콜 키드먼이 할리우드 여배우로서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며, 큰 키와 아름다운 몸매와 하얀 피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외모로 격조 높은 클래식 스타의 향기가 느껴지는 배우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니콜 키드먼은 데일리 헤럴드(Daily Herald)와의 인터뷰에서 "그레이스 켈리를 연기한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나 또한 그녀처럼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결혼식을 올렸고, 여전히 여배우로서의 삶과 평범한 삶을 동시에 꿈꾼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주부로서의 인생과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진실한 결혼 생활을 원한다. 그레이스 켈리 또한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전세계가 주목하는 여배우이자 어머니, 아내이자 여자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고민과 갈등이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솔직히 밝혔다.
또한, 니콜 키드먼은 그레이스 켈리가 여배우로서의 명성을 뒤로하고 사랑을 선택한 후 수 많은 할리우드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끝내 할리우드로 돌아오지 않은 것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언제나 사랑이 가장 먼저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사랑이 인생의 핵심이다.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정말 기뻤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비록 트로피를 가졌지만, 내 인생에 가장 외로운 순간이었다.”는 니콜 키드먼의 인터뷰는 최고의 여배우였지만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과 고통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렇듯 그 누구보다도 그레이스 켈리의 삶과 고민을 이해했던 그녀이기에,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그레이스 켈리'는 기대될 수 밖에 없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서는 그녀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당시 느꼈을 외로움과,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레니에 3세’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아함과 기품, 빼어난 연기력, 인생과 가치관 마저 닮은 두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니콜 키드먼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할리우드와 모나코 왕실을 모두 가진 단 한 명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지난 18일부터 관객과의 만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