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가 성장기
김은영
지난밤에 새벽 배송 택배를 시켰다. 아침에 눈을 뜨니 프레시백을 내놓으라는 문자가 와있다. 거실에 나와보니 아무것도 없다. 혹시나 해서 잠옷 차림으로 현관 밖에 나와 보니 계단 아래 프레시백이 놓여있다. 어찌 된 일인지 냉장고 김치냉장고를 보니 여기저기 잘 보관되어 있다. 남편이 잘 정리해 놓은 모양이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다.
남편은 신혼 때 열이 40도 가까이 되는 나를 차 뒷좌석에 태우고 카센터에서 차를 들어 올려 고치고 친정에 데려다준 일이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얼굴이 파래지며 팔이 돌아가는 열성 경련이 왔고, 그때에서야 놀란 남편은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이 사람이 나를 곯려주려 이러나 싶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 휴일에 잡채를 해 먹겠다고 식육점에 가다 식육점 입구에서 발이 부러졌다. 절뚝거리며 병원에 가는 나에게 왜 그렇게 못 걷느냐며, 정형외과에서 목발을 받아 나오는 내게 왜 잘못 걷느냐며 짜증을 냈다. 몇 주 깁스를 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없는 내게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그에게 부부로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너무도 서운했고 괘씸하기까지 했었다. 남편에게 나에 대한 배려라는 부분에선 체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남녀 심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남편의 그 짜증은 걱정의 다른 모습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서운함에 대해 “자기가 아픈 걱정이 되어 그런 거지?”하고 말했더니 눈꼬리가 내려간다. 그 후로는 내가 아파 병원에 갈 일 있으면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데려다준다.
올여름 편도가 곪아 한 주 동안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해 누룽지를 끓여 먹는다, 요구르트를 먹는다, 난리를 쳐도 죽 한 번 사다 줄 생각하지 않다가 내가 닭죽을 먹으러 가자니까 그제야
“ 내가 죽 사다 주려고 했는데........”
뒷북을 친다. 에휴, 꼭 내 입으로 말을 해야 하니. 원!
애처가는 남편이 스스로 얻게 되는 이름은 아닌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애처가로 만드는 것일 것이다. 말 하지 않아도 잘 알아서 척척 해주면 좋으련만. 이번 나의 생에서는 이미 그른 일이다. 그러니 애처가를 만들어 줄 밖에.
안과를 간다고 나서는 남편에게
“농협 주차장 입구에 파는 붕어빵 좀 사다주면 안 돼요?”
하니 붕어빵 6마리 사 와서 둘이 세 마리씩 나누어 먹는다. 애처가로 성장하는 순간이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잔뜩 담가놓고 급한 수업이 있어 끝내고 나오니 설거지가 말끔하게 되어 있다.
“ 어, 내가 말 안 했는데 설거지해 놨네. 댕큐!”
하니
“아이 뭘,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한다. 해가 어느 쪽에서 떴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