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기행문(2012.6.23-6.26)
- 제17회 중한일서화가작품전에 다녀와서 -
초우 문복희(가천대학교 교수)
카뮈의 스승으로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그의 책 『섬』에서
“여행이란 일상적 생활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라고 했다. 따라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자는 감정을 일깨워 활력을 주고 새로운 눈을 갖도록 하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우리 북경 여행도 이러한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사실 이번 북경 여행의 목적은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북경에서 개최되는 제17회 중한일서화가작품전에 참가하기 위함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11명이었다. 한국동양서예협회 임원 6명(林 炫 圻(회장). 文 福 姬(부회장), 金 正 熙(청주지회장), 裵 鍾 洙(이사), 李 貴 香(이사). 金 永 洙(사무총장)과 송강문화진흥원 임원 5명(鄭 圭 澤(원장). 鄭 水 溶(부원장), 鄭 泰 庚. 鄭 錞 澤, 安 英 姬)으로 구성되었다.
우리 일행은 2012년 6월23일(토) 11시 인천공항에 집결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국 수속을 마치고 OZ333편으로 13:00에 인천을 출발하여 14:30 북경에 도착하였다. 오랜 세월 중국의 수도로 이어져오면서 수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북경에 도착하니 웅장하고 깨끗한 신공항에서 이금석(37세)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장을 풀기 전에 내일 중한일 작품이 전시되는 수도체육관 전시장으로 향했다. 미리 우리가 출품한 작품들을 점검하고, 중한일작품전 준비에 노고가 많은 중국 주최측 임원들을 행사 전에 먼저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전시장에 도착하니 조용(趙勇) 회장님과 이벽강(李碧江) 부회장, 권충걸(權忠杰) 비서장이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한국 출품작 30편과 중국 242편, 일본 14편을 미리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한 후 전시장을 나왔다.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은 우리일행은 저녁식사로 북경 오리구이를 먹었다.
중국 격언에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진정한 사내가 될 수 없고, 북경오리구이[北京烤鸭/베이징덕]를 먹어보지 않으면 평생의 한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계 3대요리 중 하나인 북경오리구이는 청나라 황제 건륭제와 서태후가 건강식으로 가장 즐겨먹던 중국 전통 요리로,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여러 국가 원수들의 방문 일정에 항상 맛보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다. 우리도 북경시내 전통식당에서 넉넉하게 오리구이를 먹고 왕부정 거리로 향했다.
중국인들은 하늘의 비행기와 땅위의 자동차만 빼곤 다 먹는다고 하는데 과연 왕부정 거리에는 기상천외한 먹거리가 많았다. 꼬치의 거리로 유명한 왕부정 거리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으로 보이는 갖가지 음식들보다 많은 인파 속의 퀘퀘한 음식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퀘퀘한 냄새와 함께 갖가지 꼬치와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번데기나 양
꼬치로 시작해 메뚜기, 해마, 불가사리, 날다람쥐, 전갈까지 게다가 이 전갈은 살아있었다. 꼬치 외에 중국 전통과자나 튀김 등 많은 길거리 음식들도 눈에 띄었다. 중국 전통과자로 추정되는 것 중 엿 같은 것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떡치는 모습과 유사했다. 두 사람이 “허이, 허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번갈아 나무망치로 내려치고 있었다. 거리를 둘러본 우리 일행은 음식은 사먹지 않았고, 나는 30위안(한화 6,000원)을 주고 내 발에 꼭 맞는 중국 전통신발(쑥색)을 한 켤레 구입했다. 참고로 전갈 꼬치의 가격은 25위안(한화 5,000원)이었는데 전갈을 먹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왕부정 거리투어를 마치고, 북경 근교까지 30분을 달려 우리가 묵을 개성흥봉호텔에 도착, 체크인을 한 후, 첫날 하루 일정을 마쳤다.
6월24일(일) 둘째날 호텔식으로 조식을 하고, 한중수교 20주년기념 <중한일서화가작품대전> 오픈식을 위해 수도체육관에 9시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방명록에 자필 서명을 하고 지정해놓은 행사장 자리에 앉았다. 개막식은 11시에 시작되었다. 출품작가들과 국내외 저명한 서화가들이 200 여명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거행되었다. 먼저 중국서법대가 이탁선생님의 축사가 있었고, 한국동양서예협회 임현기회장님의 멋진 축사가 뒤를 이었다. 끝으로 중국 측 조용 회장님의 인사말과 내빈 소개 후 기념촬영이 있었다. 전시장 오픈식과 함께 작품을 돌아보며 한중일 삼국은 한자문화권의 공통의 문화 기반 위에 교류가 이어져왔음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각국
작가들의 명작품을 감상하며 서로의 작품에 표현된 독자성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더욱이 국제 서예 교류의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수도체육관 별관에서 이루어진 휘호대회이다. 각국의 대표들이 직접 붓을 들고 써내려가는 멋이 국제교류전의 절정이었다. 우리 측에서 임현기 회장님은 “不動心(부동심)”과 “踈通(소통)”을, 김정희 지회장님은 “關心(관심)”을, 배종수 이사님은 “無塵無光(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번쩍거리지 않고) 佛祖圓光靜萬山(부처님이 하늘에서 비치니 만산이 고요하다)”를 일필휘지로 써놓았다. 중국 측의 유명한 서예가들도 많이 참여했지만 특히 닭(鷄)과 말(馬) 그림의 대가인 유묵상(劉墨祥) 화가가 돋보였다.
휘호대회가 끝나고 점심 식사는 건너편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조용 회장님과 중국 측 임원들의 초대로 이루어졌다. 회전 테이블에 밥과 반찬들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모두 풍성한 중국 전통요리였다. 밀전병에 채소와 과일, 그리고 오리, 닭, 소, 돼지고기 등이 양과 질이 넘치도록 올라오고 술과 함께 흥겨운 연회석이었다. 한중 양측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감사하고 축하하며 문화 교류와 우의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매년 한국, 중국, 일본국과의 서예교류전을 하면서 각국 작가들과 우의를 다져왔는데 이번에도 조용 회장님의 초대로 우리들은 행복한 교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중 서예가들의 물 같은 짧은 만남이 다음을 기약하며 끝이 날 무렵,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처럼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만족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비내리는 오후, 북경 시내로 나왔다. 북경은 중국의 수도이며,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중국의 수도라는 명성답게 교통이 잘 발달되어있고, 천안문 광장, 자금성, 만리장성, 이화원, 용경협 등이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북경의 한낮 기온은 보통 34도 정도지만 습기가 많지 않은 날씨이다. 우리는 먼저 천안문 광장에 들어섰다.
중국 최대 규모의 광장인 천안문은 1651년에 지어져 그 이후의 역사를 지켜본 중국 역사의 현장이다. 천안문 광장에 들어섰을 때 천안문 사건이 떠올랐다. 1976년 제1차 천안문 사건과 1989년 제2차 천안문 사건 등이 이어지며 중국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된 이 광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오직 눈에 띠는 것은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모택동의 사진이었다. 천안문 광장을 멀리하며 우리의 발길은 자금성으로 향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금성(紫禁城)은 옛 명칭으로, 현재는 일반적으로 “고궁(故宮)”이라고 부르며, 1406년 明나라 때 건립하기 시작하여, 1420년에 완공하였다. 자금성은 明나라와 淸나라에 걸쳐 24명의 황제(皇帝)가 기거했던 황궁(皇宮)이다. 자금성을 돌아보니 과연 웅대하고 다양한 색채를 가진 궁전식의 건축물이었다. 명(明), 청(淸)의 궁정생활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위대한 역사적 유적이었다. 태화전, 중화전, 건청궁, 교태전 등은 역대 황제나 황후, 황비와 궁녀들이 여전히 생활하는 곳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자금성을 나와 북경 시내 인력거 투어를 한 후, 모택동이 즐겨 먹었다는 모가요리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석식 후 마지막 일정으로 7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금면왕조(金面王朝) 공연 관람이 있었다. 금면왕조는 2억에 달하는 거액 투자와 200명 프로급 연기자의 열연으로 만들어진 중국 정통 대형 뮤지컬이다. 다행히 자막이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나와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뮤지컬의 장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무대가 돋보였으며, 그 중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수백 톤에 달하는 홍수가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물을 무대로 쏟아부어 내리는지...과연 대가급 창작팀의 투철한 노력의 결정체였다. 웅장한 기세와 심금을 울리는 음악은 공연장을 나와 숙소에 돌아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 있었다.
6월25일(월)은 호텔식으로 조식을 하고 이화원(頤和園)을 향해 7시50분에 호텔을 나섰다. 청나라 서태후의 별장으로 유명한 이화원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보존이 잘된 황가의 정원이다. 이화원 면적의 3/4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호수는 사람을 동원해서 바닥을 파낸 완전 수작업 인공호수이다. 여기서 파낸 흙은 60m의 만수산을 쌓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화원에서 볼만한 곳 중의 하나가 창랑이다. 길이가 778m로 중국에서 가장 긴 복도인데 내부 천장과 벽에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끝없이 그려져 있었다. 창랑을 조금 거닐다가 우리일행은 유람선을 타고 호수의 경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화원이 어찌나 넓은지 우리가 둘러 본 곳은 아마 이화원 전체의 1/5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 우리의 일정은 만리장성이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북방의 적을 막기 위해 전국 시대 때 제나라에 의해 처음 착공된 후 진시황제 때까지 세워져 현존하는 오래된 성곽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만리장성은 인간이 지은 건축물 중 유일하게 지구 밖 우주에서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건축물로, 실제로 보니 그 규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케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만리장성 길을 1시간 이상 걸으며 중화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우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늦은 저녁, 피곤한 다리를 발맛사지로 달래며 우리의 하루 일정이 끝났다.
6월26일(화)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에 중국중의과학원을 방문하여 간단한 건강 상담과 진료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 전에는 중국 측 조용 회장님과 권충걸 비서장이 오셔서 우리 일행을 재래시장으로 안내했다. 우리들은 재래시장에서 서예용품과 서화 작품을 둘러보고 연적이나 붓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바쁘신데도 <제17회 중한일서화가작품>도록을 가지고 나와 우리와 시간을 함께해준 중국 임원진은 한결같이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일행을 배웅하였다.
조용 회장님을 비롯한 한중 작가의 교유는 잔잔하지만 변함없는 맑은 물과 같았다. 우리의 교분을 옛글에 비유한다면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단술 같다. (君子之交 淡如水, 小人之交 甘若醴)”는 『장자(壯者)』의 글과 통한다. 군자의 사귐은 늘 변함없는 물맛과 같으며 또한 물처럼 한 곳으로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에 반해 소인의 사귐은 순간의 즐거움에서 달콤함을 찾는다는 것이다. 한중 서예작가들의 물 같은 만남을 뒤로 한 채, 평양관에서 북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 일행은 4시30분 아시아나항공(OZ 334편)으로 북경 신공항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북경의 역사적 의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행복한 여행이었다. 또한 일상의 감정을 깨워 활력을 준 멋진 여행이었다.
북경기행문(2012.6.23-2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