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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山 이상완
전남 고흥 출생(1945), 수필가, 서울대 언어학과 졸(1974),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원 수료, 아랍어 및 고대 이집트문화사 전공(1977∼1979), 미국 죠지타운 대학원 졸(이슬람문학 및 중동관계 전공)(1984∼1986), 주이집트, 주리비아, 주미대사관 및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근무(20년), 바로영어전문학원 경영(서울:1992∼2012), 《한강문학》(2020) 추대등단, 저서:《사하라》(김영사, 1987), 현)향토사연구 및 SNS 블로거, 발표작품:〈조선시대 천재 이야기꾼-어우당 유몽인〉, 〈오리정에 묻힌 슬픈 로맨스-화가 나혜석 이야기〉, 〈한국 미술계 큰 별이 지다-화가 천경자 이야기〉 외
월산 할배 4손녀 육아 관찰기 .3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이 상 완
미국 코네티컷주, 쉘톤Shelton에 있는 하얏트 호텔에서 추수감사절 연휴 여행의 첫날 밤을 보냈다.
간밤은 혜리가 자다가 서너 번이나 갑자기 “앙앙!”하고 울어대며 온 식구들의 잠을 깨운다.
요즈음 혜리는 윗 어금니 이빨이 나오느라 이앓이를 하면서 무척 예민해졌다. 아릿니는 이미 앞니 4개와 양쪽에 각각 한개씩 어금니가 나왔다.
그런데 윗니는 앞니 4개와 왼쪽 어금니는 이미 나와 있는데 오른쪽 어금니가 요즈음 솟아 나오려고 해서 자다가 통증을 참지 못하고 울음소리로 악을 써대며 호소를 한다.
혜리가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혜리 맘과 할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안아주고 한동안 도닥거려 잠을 재운다. 모두가 혜리 이앓이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아침 7시에는 기상을 한다.
왜냐하면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의 아침 식사가 라운지 식당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 호텔들은 숙박객들에 대부분 간단한 아침 식사를 공짜로 제공한다. 아침 식사라 해야 간단한 부폐식 식사다. 빵, 쏘세지나 베이컨, 달걀 스크램블러, 과일 쥬스, 커피 , 그리고 과일 등이 주요 메뉴다. 그야말로 너무나 간단한 경양식이지
만. 사람들은 이런 간단한 호텔 식사를 그래도 듣기 좋게 〈콘티넨탈 브렉파스트>라고 부른다.
어쨋든 우리 6식구가 호텔 1층 코너에 있는 식당 겸 라운지에서 아침 식사를 떼운다.
라운지 창 밖을 보니까 시멘트로 포장된 호텔 현관 진입로와 그 뒤에 자리 잡은 주차장 바닥은 간 밤에 내린 소낙비로 흥건히 젖어있다. 어제 초저녁 무렵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덮힌 잿빛이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잿빛 구름 속에 구멍 뚫린 하늘이 언뜻언뜻 파랗게 보인다.
아침 최저 기온이 화씨(F) 30도라 하니 빙점의 초겨울 날씨다. 화씨 32도가 섭씨 0도이니 영(0)하의 날씨가 분명하다.
오전 11시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다음 행선지인 콘코드 왈덴 호수로 향한다. 자동차로 3시간 쯤 소요되는 거리다. 간밤에 온 비로 차도는 조금 미끄럽게 보인다. 중간에 1시간 반 쯤은 아린 맘이 운전대를 잡는다. 아린이는 아이패드 테블릿에 티니핑 만화를 틀어 주니까 차 멀미를 잊고 만화에 몰입하여 조용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혜리가 차멀미를 하는지 계속 악을 쓰며 울어 댄다. 게다가 지하 핵실험(?)을 했는지 방사능(?) 냄새가 차 안에 가득하다.~~ㅋ ㅋ !
이런 저런 이유로 행선지와 중간 지점인 스터브릿지(Sturbridge) 타운에 있는 버거킹 빵집에 들렸다 가기 위해서 탑승차는 잠시 고속도로를 빠져 나온다. 우선 급선무로 혜리의 지하 핵실험 물질(응가)을 버거킹 화장실에서 처리하고 혜리에게 기저귀를 갈아 입힌다. 그리고 각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에 버거킹 빵과 콜라로 점심을 요기한다.
이제 운전대가 아린 맘에서 다시 아린 아빠에게 교대된다. 빗방울이 차창에 뿌리고 차도 앞길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해서 오가는 차량들이 모두 전조등을 켜고 운전을 한다.
아무래도 운전 기술이 능한 아린 아빠가 운전을 하니까 안심이 된다.
아린 맘이 차 멀미를 조금 한다고 해서 나는 앞 좌석을 양보하고 맨 뒷좌석에 앉는다.
가다가 중간 중간 핸드폰에 있는 네이버 지도를 체크해 본다. 현재 위치를 알리는 파란 점이 차도를 표시한 선상에서 깜박거리며 콘코드 방향으로 조금 씩 접근해 간다.
네이비 지도 오른 쪽에 왈덴 호수라는 우리말 표시와 함께 고구마 모양의 호수 지도가 나타난다.드디어 왈덴 호수 주차장에 도착했다. 정각 오후 2시 반이다. 동절기에는 오후 4시까지 왈덴 호수 관광지역의 입장이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1세간 30분 동안 여유가 있는 셈이다. 우선 주차장 근처에 있는 헨리 쏘로우 동상과 그의 오두막 집을 복제한 캐빈을 구경한다. 그리고 사진 촬영도 하고 캠코더에 동영상 촬영도 한다.
평상시에는 입장료가 30 달라인데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무료 입장이라고 해서 모두들 공짜라니까 웃는 얼굴에 표정이 밝아진다. 주차장 주변에 있는 거목의 활엽수들의 낙엽들을 이미 떨구어 내고 나무 밑줄기의 기둥 아래 수북히 쌓여 놓고 있다. 구름은 잔뜩 끼어있고, 빗방울도 한 방을 두 방울 떨어진다. 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싸늘함이 뺨을 스친다. 아린이와 혜리도 차에서 내려서 두건이 달린 겨울 점퍼를 단단히 챙겨 입고 엄마 아빠의 손에 매달린 채 헨리 쏘로우가 200여 년 전에 살았다는 오두막집 유적지와 매일 산책을 했다는 호숫가 산책 길로 향한다. 이 월산 할배가 이곳 헨리 쏘로우가 2년 2개월 그러니까 26개월 동안 호숫가 숲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사실상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고 하는 왈덴 호수를 2002년 5월과 2016년 7월에 2번이나 방문을 했었다.
(참조 ~두 번째 왈덴 호수를 방문했던 월산 할배의 탐방기:2016년 7.31 방문 후 블로그에 올린 글 및동영상)
(아래 클릭하면 왈덴 호수 제 1차 탐방기 볼 수 있음)
https://blog.naver.com/swlee8585/220782133940
나는 평소에 법정스님이 쓰신 저서 <무소유>를 감명깊게 여러 번 읽었었다. 그런데 법정스님이 미국에 서너 번 온 적이 있는데, 그럴 때 마다 다른 곳보다는 이곳을 우선 먼저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3번이나 왈덴 호수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에 영향을 받아 나도 미국에 오면 최소한 이곳 왈덴 호수를 3번은 방문하겠노라고 나와의 약속을 했던 것이다. 드디어 이번 방문으로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물론 아린 맘과 아린 아빠가 내 심정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고 3번 중에서 두 번을 마련해 준 것이다.첫 번 째 방문을 했을 때는 결혼 전이어서 딸과 우리내외 3명이 뉴욕에서 버스를 타고 보스톤까지 와서 그곳에서 택시로 왈덴을 방문했었다. 택시 기시가 1시간을 기달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주마간산 격으로 헨리 쏘로우의 복제 오두막집과 호수만 구경하고 돌아왔다. 진짜 오두막 집터와 산책길은 구경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두번 째는 작은 딸이 결혼을 하여 사위가 차를 렌트하여 1박 여행으로 왈덴 호수와 헨리 쏘로우의 오두막집 유적지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는 결혼 직후라 아린이나 혜리도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4살 된 아린이와 2살 된 혜리를 대리고 이곳 왈덴 호수를 방문하니까 감개가 무량하다.
물론 아린이와 혜리는 미국에서 출생하여 미국시민권을 소유하고 있고, 또 미국에서 앞으로 살게 되니까 앞으로 이곳은 방문하게 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두 손녀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미국에서 결혼하여 살게 되면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아마 두 손녀들은 그 때 자기를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이렇게 자랑하겠지,~~ㅋ ㅋ.
“우리는 4살, 두살 때부터 왈덴 호수를 방문했고, 이곳에서 살았던 헨리 쏘로우라는 이름도 알았단다. 그는 자연환경 운동의 선구자였고 그리고 폭력 정권에 대한 비폭력 저항 운동의 선구자였던 평화주의자였단다. 그뿐만이 아니고 자연을 너무 좋아해 지연 자체가 하나님의 대령을 품고 있다고 믿는 초월주의자였단다”
내가 5년 전과 7년 전에 왔을 때 처럼 왈덴 호수는 여유롭게 잔물결을 지으며 날 환영해 주었다.
아린이와 혜리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왈덴 호숫가 호변의 산책 길을 걷는다. 나는 뒤따라 가면서 바삐 바삐 캠코터로 우리 가족의 행복한 순간 순간들 담는다.
산책로 좌우에는 커다란 키다리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줄을 서있다. 소나무들이 활엽수 사이에서 낙엽을 떨구고 나목들이 되어버린 앙상한 숲속에서 독야청청을 뽐내고 있다. 가을 바람에 실려오는 솔 향기가 산책을 하는 우리네 식구들의 영혼을 해맑도록 힐링을 해 준다.
10분 쯤 걸으니 산책로가 끝나는 호숫가 계곡 언덕 위에 헨리 쏘로우의 집터가 보인다. 유적지에는 2평 남짓한 터에 누군가가 돌기둥을 박아 놓고 돌기둥 사이에 서로 쇠사슬을 쳐서 보호막을 해 두웠다. 그 앞에는 헨리 쏘로우의 사진과 그가 이끗에서 살게 된 스토리가 쓰여진 안내판이 소게되어 있다. 그 안내판과 유적지 사이에는 올막 졸막한 돌맹이 탑들이 돌무지처럼 모여있다. 이것들은 헨리 쏘로우의 무소유의 삶과 초월 주의를 흠모하기 위해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저 돌맹이 탑 중의 하나는 법정 스님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방문 기념으로 쌓은 것일 거라는 환상이 갑자기 나의 뇌리에 떠오른다. 그리고 나머지 수 많은 돌맹이 탑들은 나처럼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이곳을 방문한 불교 신자들인 한국 사람들이나 재미 교포들이 쌓은 것이리라! 나도 돌맹이 하나를 싸놓은 돌탑 위에 올려 놓는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 인지 4시가 되니까 왈덴 호수는 어스름이 벌써 내려 앉는다. 우리네 식구들은 서둘러 산책길을 되돌아서 왈덴 호수변 모래사장을 밟으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 |
헨리 쏘로우 (Henry Thoreau) 사진 (1817~1862:향년 45세) |
이때 아린 맘이 한마디 한다.
“아버지, 왈덴 호수 경관이 올 때 마다 느낌이 다르네요. 아버지가 왈덴 호수를 좋아하니까 내년에도 가을에 미국에 또 오세요. 단풍이 있을 때 이 곳에 와 보면 더욱 흥취가 있겠어요!”
“그래, 고맙다! 내 나이 팔십이 가까워지는데 미국에 오는 것도 내년이 마지막일 께야!”
우리네 식구가 모든 차에 탑승하고 오늘 숙박하게 될 콘코드에 인접한 버링톤에 있는 하얏트 호텔로 가기 위해서 탑승차는 대로로 나온다.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인데 오가는 차량이 벌써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닌다.
어둠이 금새 깔리며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 연휴 여행의 두 번째 날이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헨리 쏘로우 오두막집 터 탐방 기념사진 (2021년 11월 26일 ) | 쏘로우를 추모하는 조약 돌탑들 |
아린아, 혜리야!
너희들이 성장하여 이 글을 읽고 왜 법정 스님이 왈덴 호수와 쏘로의 옛 집터를 3번이나 방문했는지를 그리고 이 월산 할배도 따라하기 비슷한 일이지만 3번이나 탐방을 하였는지가 궁굼하다면 법정스님이 왈덴 호수를 방문하고 소감과 이유를 이렇게 글로 남겼단다.
이 글 말미에 첨부했으니 이 다음 성장했을 때 왈덴 호수와 쏘로우 옛집터를 방문하기 전에 꼭 한번 쯤 읽어 보기 바란다.
<법정스님이 왈덴호수와 헨리 쏘로우 옛 집터를 3방문했던 사연은?>
‘월든’을 다녀왔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호숫가 숲속에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그리움의 터,
그 월든을 다녀왔다.
뉴욕 불광선원에서 수계법회를 마치고다음날 일행 다섯이 길을 나섰다.매사추세츠 콩코드 근교에 있는 월든 호반은10월 말 단풍이 한창이었다.
맑은 호수에 비친 현란한 단풍을 대하자다섯 시간 남짓 달려 온 찻길의 피로도 말끔히 가셨다.
『월든』을 읽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그 현장에 다다르니 정든 집 문전에 섰을 때처럼 설레었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아주 평화로웠다.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둘레 1.8마일,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3km 조금 못미치는 거리다.
평일인데도 호반에는 드문드문 방문객들이 있었다.
그 현장에서 『월든』을 읽는 여인도 있었고, 고무보트를 타고 한가로이 낚싯줄을 드리운 사람도 눈에 띄었다.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두엇 있었다.
호수의 북쪽에 150여 년 전 소로우가 살았던 오두막의 터가 돌무더기 곁에 있다.거기 널빤지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내가 숲 속에 들어간 것은 인생을 한 번 내 식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즉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소로우”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 곁에 오두막 그대로의 모형을 지어 놓았다.
출입구 맞은 쪽에 벽난로가 있고 좌우 양쪽에 큰 들창이 있다.
소로우가 장만한 가구 중 일부는 그가 손수 만든 것이다.
단칸집 한 쪽에 나무 침대가 있고 탁자와 책상이 들창을 향해 놓여있다.의자도 세 개 있다. 커튼은 그 집에 필요가 없었다.
소로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와 달 이외에는 밖에서 들여다 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콩코드의 한 숙소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다시 월든을 찾았다.이른 아침의 월든은 전날 석양에 보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아침 호수는 정신이 번쩍 들만큼 신선하다.
남향인 오두막 터에서 수목 사이로 바라보이는 월든은 아름다웠다.오두막은 호수에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고 둘레가 낮은 언덕으로 되어 있어 내가 만약 집터를 잡더라도 바로 이 지점을 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두막 가까이에 모래 섞인 땅을 갈아 강남콩을 심고, 한쪽에 감자와 옥수수, 완두콩과 무 등을 가꾸었다. 그는 달빛이 밝은 밤이면 호숫가의 모래톱을 거닐기도 하고 플루트로 주변 숲의 메아리를 깨우기도 했었다.
어느 날 일기에 그는 이렇게 써놓았다.
“오늘 저녁 나는 월든 호수에 보트를 띄우고 앉아 피리를 불었다.”
콩코드 박물관에는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책상과 의자와 침상과 연필, 눈 위에 신는 설피 그리고 그가 불었던 피리도 함께 있다.
소로우는 체구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침상이며 의자와 책상이 표준치보다 작다. 소로우는 하루에 4시간 이상 걸었다고 한다.
그는 ‘산책’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갖 세속적인 얽힘에서 벗어나 산과 들과 숲 속을 걷지 못한다면 나는 건강과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것 같다”
소로우가 숲 속에서 홀로 지낸 지 1년 째 되던 해 여름, 구두방에 수리해 달라고 맡긴 구두를 찾으러 가다가 세금징수원과 마주친다. 몇 년 동안 밀린 인두세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인두세란 그 당시 매사추세츠가 20세에서 70세까지의 모든 남성에게 부과한 세금이다.
소로우가 다른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서도 유독 인두세만은 거절한 이유는 의사당 앞에서 버젓이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까지 가축처럼 팔고 사는 흑인 노예제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토확장을 위해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킨 정부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친척 한 사람이 그가 모르게 세금을 대납하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석방되자 그는 크게 분개하여 출옥을 거부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사건은 그에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역사를 바꾼 책들’ 중의 한 권인 그의 <시민의 불복종>이 나오게 된다. 이 글은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에게 커다란영향을 끼쳤다. 불의의 권력과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왜 당신네 미국인들은 돈 많은 사람이나 군인들 말만 듣고 소로우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요?”
2년 2개월 동안 월든 숲 속에서 지낸 이 기간이 소로우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운 시기였다.
그는 학생으로서 월든에 갔었지만 그곳을 나올 때는 스승이 되어 있었다.소로우의 생애를 가자 충실하게 기록한 영국의 전기작가 헨리 솔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콩을 심고 콩밭을 매는 일은 자연을 배우고 삶을 배우는 과정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전 미국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여 남길 수 있었던 것
보다 『월든』을 씀으로써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훨씬 더 훌륭한 것이었다”
소로우의 생활신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그대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나 되도록 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그대의 삶을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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