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인
전남 진도 사천리 운림산방 아래 감나무집, 진도 초·중, 광주고등학교졸업, 시집:《당신의 바다》, 《몽유진도》
화양연화 외1편
박 남 인
친구가 지리산 둘레길 밧줄로 묶어 이사를 갔다
이건 삽화가 아니다
산수유 꽃 변방의 넋두리도 아니다
빈 집에 들어와 매듭을 풀지 못하고
우리들의 전화는 정곡을 피우지 못한다
돈이 필요해 선배
술 한 모금이 촛농처럼 걸린 목울대
홀로 탱자울타리를 친 시인의 소리 없는 향기와 비명을
누가 꽃인 듯 바람인 듯 대신 흘린다
두 번째 새벽 화양연화를 본다
누구에게나 절정은 산수유처럼 피었다 가고
개옹물이 말라가는 죽림 바닷가 갯샘 바람으로
60대 갈증을 실팍한 궁둥이에 담던 소설가 자운누님은
텃밭에서 호미로 찍은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늘 돈에 시달리면서 백 한 살 아버지 곽학암 어른
반주로 아침노을 홍주를 놓치지 않았다
팽목항 뻘밭 은조리 둠벙 길길 튀어 오르던 삼별초 여인
개나리를 징그럽게 미워하던 여인
맹골바다 독거도 미역귀에 뜨거운 골짜기를 파며
누구에게나 갯샘 하나는 파며 산다
서둘러 우유잔을 기웃거리며
찔레꽃이 주는 길을 다 걷지 않고도
상처를 노래하는 이가 저녁 창가에서
백조들의 노래를 작은 갤러리에서 부르는 풍경이 오버랩되는
가설무대 도시인들의 검은 강을 생각한다
9개월째 바다가 없는 섬 아내의 거실
화양연화 계단 오르기를 꿈꾼다
아침마다 나의 물병으로 세례를 받는
카네이션 화분과 가시 없는 선인장
세상은 굴욕적이지도 가을이 아득하지도 않고
비릿한 한 모금이 고이는 저 임회면 만선 닻배 흐르는
간첩바다 갯샘처럼 한 세상 바다를 거슬러 기다리며
목마름을 하루에도 몇 차례 넥타이를 매는 연어
늘 변곡점에서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화양연화가 있을
뿐이다
내 세상은 못 바뀌고 자꾸 등을 돌린다
기시감은 없다
돈을 빌리는 시인
새 정부에 줄선 소설가
그대는 아직도 화양연화인가
하룻밤 추위에 또 다른 아침햇살을 판 매화접목이여
새벽 등을 뒤집으며
차마 장무상망長母相忘
시창 덩그러니
세한도歲寒圖를 멍하니 바라본다.
하사미 마을에서 보낸 겨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수많은 기억들이 너울로 떠다니는 저녁
해송 숲 아래 갯샘은
뜨거운 엉덩이들의 실팍한 순정이 흘러나왔다
여귀산은 후박나무 치마아래 한 소설가의 욕망과 인연을 쌓았다
달빛 하나가 맴돌다 다랭이골 탑립으로 돌아가면
누구에게나 과녁으로 흔들리는 하얀 찔레꽃
하사미는 벌바위 이끼 옷을 입고
숭어를 잡는 대바꾸들이 갯샘을 마시며 살았다
바지락을 캐는 춘심이는
우초 화가의 작은 갤러리 귀천에서
이산 저산 꽃이 피어나는 한잔 술에
노래를 불렀다
제사상 기웃거리는 홀애비도 바다에서는 그저 너울이다
어떤 시린 밤들도 늘 그만치의 염도로 차오르는 갯샘
누구나 한 생의 솔바람 대바꾸로 살아가는 것
나무나무 나무야
다시마 혼건짐에 빙의된 바위들을 부르는 여인들이 너울너울 춤춘다
하사미 바닷가는 뜨거운 오줌 싸며 바지락을 캐는 갯샘 아짐들
꿈이로다 남도 삼백리
갯벌따라 춘설 치마로 쓸고 다니던
자운토방 장독대 금줄 묶은 소설가 여인도
신발의 딸 너울판이었다
탑 그림자와 찔레꽃 욕망과 가시를 키우는 갯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