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터 나는 촉감에 대한 확인작업에 바짝 취미를 붙였다.
아침을 여는 티타임 부터 그 작업은 시작된다.
나의 입술에 닿는 그 컵의 경계(근과 경의 접촉)에 바짝 긴장하며 알아차리려 한다.
찻잔을 입술에 대었다 떼냈다 하면서 그 촉감에 대해 면밀히 살피는데 그러한 살핌은 얼마간의 집중을 요하기에 지금 차를 마실 시간이라는 것을 잊기 일쑤이다.
그래서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다시 데워야하는 부작용이 있다 ..전기요금 할증요인
그외에 길을 걸을 때도 땅을 짚는 발바닥의 촉감에 무진장 집중한다. ... 이로인해 앞사람과 부딪히거나 약속장소에 늦는 부작용이 있다.
얼마전 사우나를 갔다. ..
나는 소음인이라 냉탕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한증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냉탕은 필수 코스이니 냉탕에서 느껴지는 그 고통은 감내해야한다.
나는 여기에서도 촉감을 잡아보리라 마음 먹었다.
나의 신체와 그 차디찬 물이 접촉되는 경계면을 주시하면서.. 이 <외부 경계인 물>의 감촉은 어떠한 모습으로 알려질까? 하는 맘으로 물속에 전신을 담근다.
나는 거기서 예측못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
평시는 냉탕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 냉탕에 들어가기는 참 괴로운 일이다" 라는 마음이 앞서곤 한다.
그러한 선입견으로 탕에 들어갔을 때... 냉탕에서 짧으나마 작은 지옥을 만난다. 뼈속까지 스미는 그 냉기는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다.
서서히 조건이 바뀌어 냉기가 다 사라질때 까지 나는 지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일체 조건은 무상하여 항상 바뀌게 마련이니 그 지옥은 언제까지 지옥이기만 하지 않다.
그런데 촉감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즉 <차가운 물은 고통이야! 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들어선 냉탕은 나에게 그토록 두려움을 주던 그 냉탕이 아니었다.
거기에 지옥은 없었다. 촉감을 잡겠다는 일념이 지옥을 날려버린 것이다.
냉탕에 들어섰을 때의 감촉, 촉감은 무엇으로 알려지나?
"이건 물이다!"라고 알려질까? .. 아니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했을 때... 즉 정념의 순간 .. 그것은 차가움이라는 상으로 알려지고 차갑다는 느낌으로 알려진다..
그 현재의 순간에 집중되었을 때.. 그 자리에 물은 없다. 차가움이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바른 집중은 과거를 날려버린다. 바른 집중은 욕탐을 날려버린다.
욕탐은 과거의 악업이 현재에 보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바른 집중이 과거를 날리고 그 과거의 악업을 날려버린다.
왜인가? 통어된 바른 집중에는 늘 현재의 순간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통어된 바른 집중에는 늘 지금 이 자리의 연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 계속 자신을 현재의 순간으로 한정하며 통어한다.
<차갑다>, <차갑다>, <조금 덜 차갑다>,< 조금 더 더 덜 차갑다>, <차가움이 사라졌다>
촉감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일체를 통어한 정념의 자리에 딱 알고자하는 그만큼의 촉감이 알려졌다.
<<<차갑다>>> 라는 상이 알려졌고 그 차가움은 또한 무상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현재순간에 집중한 결과.... 평시 차가움에 몸을 떨며 유쾌하지 않은 감정으로 형성되던 그 불쾌감은 어디에서도 찾을길이 없다.
나에게 드러난 것은 오직 <차가움> 뿐이었으며 그것마저 일체 조건은 무상하다는 제행무상의 사실앞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면 차가움은 느낌 아니던가?
"야 임마 차가움이 느낌이고 불쾌감이잖아 !" 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차가움은 .. 그냥 차가움이었다.
차가움이 반드시 불쾌감이었던 것은 아니다.
불쾌감은 사라졌고... 차가움이 알려지며 그 차가움 자체는 <유쾌한 것도 아니고 유쾌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저 냉탕은 차갑고 고통스러운 것' 이라는 마음을 일으키며 들어갔을 때의 냉탕은 내가 일으킨 선입견 그대로 차가우며 고통스러운 지옥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이 배제된 즉 과거를 버리고 현재의 이 순간에 집중하여 드러난 냉탕은 고통이 아니었다.
<유쾌한 것도 아니고, 유쾌하지 않은 것도 아닌... 어떠한 유 불쾌의 감정도 없는 > 것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즉 그 순간만큼은 분명 평정의 마음이었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 순간 ..
과거의 선입견을 배제한 그 정념의 순간, 그간 내가 늘 겪어왔던 <차가움은 고통이다>라는 등식은 바로 과거의 욕탐으로 얼룩진 경험들에 식이 住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오로지 <차가움>이라는 인식만이 있는 그 순간은... 정념에 의해 드러난 오롯한 현재만의 순간이고, 그것은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한 바른 주시의 순간이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려는 노력인 정념이다.
나는 이 짧은 순간동안의 알아차림에서 몇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마음은 의도를 따라 드러나고,
마음은 우리가 보고자하는 것을 보여준다.
즉 세상은 내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조건은 무상하다는 것
감촉(물, 색온)은 수온으로 알려진다는 것
하나의 마음에 색수상행식이 모두 관여하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마음은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놈 하나만을 감지한다는 것... 등 여기 열거한 것 이상의 많은 사실들이 알려졌다.
그리고 우리카페에서 늘 즐겨사용되는 말의 의미가 그야말로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스스로의 행위가 스스로를 규정한다.
즉 스스로 일으킨 업이 스스로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네가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었고 ... 네가 만들어낸 너의 우주안에서... 네 스스로 너를 규정해낸 것이다.
이 사우나 냉탕에서의 체험은... 이러한 명확한 앎을 선사해주었다.
스스로의 행위가 스스로를 규정한다!!!
첫댓글 호흡연습은 아니지만..
체험이니까.. 이곳 게시판이 더 적절한 듯 하여 ^^*
제가 과거 적은 바 있듯, 수행이 부딪히거나 약속시간에 늦는 등의 민폐를 발생시키면 곤란합니다. 또한 냉탕에서 집중하는 것은 저체온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집중을 요구하는 수행은 안전한 장소에서 해야 합니다.
뭐든...하다 보면, 늡니다. 알아차림등 [정]과 관련해, 글만 읽어선 '감'을 잡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직접 해봐야만 합니다. 보는 만큼, 망각도 하지 않고 이해도 있습니다. 기억하고 이해한 만큼, 보는 것이구요. 그리고 드러난 일체(보고 기억하고 이해한 것)는 방편이란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일체가 드러나도록 연습하는 까닭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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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정]에 관심이 생겼구요, 행할 마음이 들었다면요. [경]등에서 어떤 내용을 접하면요. "그 내용을 어떻게 [정]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인지" 즉 "어떠한 행위로 그 내용이 확인될 수 있을 것인지"...나름 대로 연구도 해보세요. 그래서 나름 대로 찾은 방법에 따라 한번 행위해 보구요, 미진하면 다시 연구해서 해보구요.
수행이란 것은, 최소한 불교에서는요. 타성에 젖어서는 절대 어느 수준 이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끊임 엄이 연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재미 있는 작업이예요. 재미가 있으면요, 성과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즐겼으면, 그만인 것이거든요. 결과와 무관하게 재미있었던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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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즐겁고 유익한 시간 보내길 바란다는...
정말 좋은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또 한번 눈이 떠지는 것 같습니다.
[정으로 얻어 알게 된 것 조차 방편이라는 점을 기억한다.] .. 이 말씀을 읽는 순간..제가 요즘 옭아매고있는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이러저러한 순서대로 하면.. 이러저러한 결과가 일어난다> 라는 책 등의 설명에 따라... 꼭 그렇게 되고싶은 열망을 갖고 있으나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망하고 있었거든요.
부처님의 말씀을 확인하는 작업, 그것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지도를 받아 하는 것은 당연 옳은 행위이고 당연히 나아갈 바지만, 그 하나에 고착되어 이거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꼭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앞으로는 지도에 따라 행하되.. 그날 행한 바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찾아내고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의문점 또한 거듭 확인하려는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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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악몽을 꾸었어요. 무시무시한 꿈이었죠. 깜짝 놀라 새벽에 눈을 떳습니다.
그리고는 호흡법을 해 보고 싶어서 마치 귀신처럼 소파에 앉아 호흡법을 하다가.. 그만 울뻔 했습니다. 그 절망감이 얼마나 심하던지...
오늘 방문객님 답변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시 호흡법을 내던져버렸을지도 모를일이지요.
성과를 떠나서, 꾸준히 하는게 좋습니다. 제가 종종 말하듯, 수행은 완전 노가다예요. 그리고 노가다인만큼, 보이든 안보이든, 행한 만큼의 성과는 있는 겁니다.
네 말씀하신대로 충실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