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에서 20**0630
백두산 천지에서 두만강으로
이도백하-백두산-용정-연길-도문-훈춘-방천
6월 30일에 민족의 영산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백두산에 올랐다.백두산白頭山 천지를 오르는 길은 북한 쪽인 동파와남파는 분단으로 갈 수없고, 중국 쪽인 북파와 서파로 갈 수 있다. 북파는 험준한 산세며, 서파는 완만한 고산지대를 이룬다. 북파코스는 일반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가장 쉽게 오르는 길이이여서 일행도 이길을 택했다. 해발 1700m의 백두산 환승주차장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한 후, 지프로 능선을 따라올라 천문봉 아래 기상대 앞에서 하차했다. 여기서 5분 정도 걸어오르니 천문봉(해발 2670m) 정상에 도착하여 펼쳐진 천지를 내려다 보았다. 이곳은 안개일수가 연평균 267일에 달해, 천지의 절경을 보기란 행운에 가까워, 백번 올라가야 두번 정도 볼 수 있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백두산 정문매표소ㅣ이도백하는 백두산 관광의 출발지이자 경유지로 백두산 북파 방면 해발 500m 지점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이다. 백두산 등산로 초입까지는 약 34㎞이며, 북파까지는 약 100㎞이다. 일행은 호텔을 출발한지 한 시간 후에 북파 여행의 베이스캠프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로, 북파 입구 버스주차장에 도착했다. 정문 매표소까지 걸어가 입장권을 구입한 뒤, 비룡폭포[장백폭포]로 먼저 가기로 하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비룡폭포 가는 길,버스에서 내리면 먼저 반기는 건 흐르는 온천수에 삶은 달걀[3개 ¥10]과 옥수수[¥5] 맛이다.
백두산 비룡폭포[长白瀑布]에서ㅣ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은 비룡폭포는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68m 높이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어 수직 암벽을 때리면서 힘차게 떨어진다. 쑹화강[松花江의 원류이다. 노천온천에서 폭포까지는 1km 떨어져 있는데, 수십 군데에서 온천수가 솟아나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온천은 83℃이고,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온천군이 끝나고 가파른 산책로를 좀더 오르면 눈앞에 폭포가 장엄하게 나타난다.노천온천에서 20여분 걸으니 비룡폭포에 다다랐다.
백두산은 압록강(925.5km), 두만강(610km), 송화강(1,927km)의 발원지로,화산활동으로 생긴 천지가 있rh,주변에는 2,500m 이상의 봉우리 16개가 둘러쌓는데 6개는 북한에 7개는 중국에 속하고 3개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부부 l 비룡폭포를 보고,다시 버스를 타고 백두산 산허리 길을 따라 천지를 향해 올라갔다. 다시 지프차를 갈아타고 산정까지 가는 동안 U자형 커브길이 18번이나 나타나는 험로이다. 중간쯤 오르는데,가이드를 통해 한국에서 전화가 내게 와 차를 세우고 전화를 건네준다. "아빠,천지로 오르지,생신 축해해요!!" 딸내미로부터 백두산에서 회갑축하 전화를 받았다. 25분 정도 올라가 기상대와 휴게소가 위치한 환승주차장에 도착했다.이곳에서 산위로 걷는데 갑자기 안개비가 내리며 오리무중,비옷을 꺼내 입고 5분정도 걸어 오르니, 백두산 천지가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는게 아니라,자욱한 안개에 가려 천지는 꼭꼭 숨어 있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l 누구나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민족의 성스러운 백두산 천지에 왔다. 더없이 청명한 날씨를 마났다면 천지의 아름다운 비경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꿈에 그리던 천지에서 환희로웠을 테지만,천지는 안개옷을 벗지를 않았다. 천문봉 부근에서 안개옷을 입은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1시간 정도 천지에 머문 후에,차가 대기중인 휴게소로 내려왔다.천지를 보고 구비구비 길을 내려 백두산 정문을 나서 대절버스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비룡폭포와 백두산 천지에 다녀와 일행들의 상기된 표정이 매우 보기가 좋았다.점심식사 후,용정시로 향했다.
간도間島 용정 해란강 다리위에서ㅣ‘간도’하면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이자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고토故土,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벌어졌던 독립운동의 근거지 이미지이다. 간도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동쪽의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에 해당하는 지역이다.요약하면,넓게는 랴오닝성遼寧省을 포함한 서간도와 두만강 북부 북간도를 함께 이르며, 좁게는 중국 동북지역 지린성吉林省의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만을 지칭한다.연길,도문,돈화,훈춘,룡정 및 화룡시와 왕청,안도 두개현으로 구분되었으며 수부는 연길시에 두고있다.
일송정一松亭과 해란벌ㅣ 용정은 굽이굽이 흐르는 해란강을 중심으로 한없이 넓은 해란海蘭벌과 멀리 세전世田벌이 펼쳐있다. 옛 선조들이 농사를 지었고, 일송정 바로 밑에 늘어선 수천 가구의 동성촌東姓村은 조선족의 대집성촌이다.일송정은 용정시내 남쪽 4km 떨어진 비암산 산봉우리 정상에 있는 정자로 선구자의 노래 이미지로 한민족 정신에 깊이 각인돼 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일제시대에 중국땅 용정에서 조국을 찾겠노라 다짐하던 노래다.가슴에 와닿는 가사에 눈물이 난다. 너무 슬픈 우리 과거,잃버린 간도 땅에...
尹東柱(1917∼1945)ㅣ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서시」·「자화상」·「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쉽게 쓰여진 시」 등 윤동주 시인의 대표 작품들이다.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다.
용정 '윤동주序詩시비'에서ㅣ정연휘 시인 부부,김원우 수필가 부부,조관선 소설가 부부이다.용정에 터를 잡은 조선족은 황량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채소를 심어 잘 살아보겠다고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들은 비옥한 땅에 벼농사를 지었으며 중국인들은 밭곡식을 주로 지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가옥 형태를 보면 중국인의 지붕은 ㅅ자 형이고 한인족의 지붕은 ㅁ자형이기에 가옥 형태로 조선족과 중국인의 주택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대성중학교 윤동주시비를 보고,전시관을 관람하고 간도의 젖줄 해란강을 바라보며 두만강으로 향했다.
용두레우물龍井ㅣ용정龍井은 용두레의 한자표기로,한인들이 간도 개척시 최초로 발견한 우물이다.룽징시[룡정Lóngjǐng,龙井,龍井]은 면적 2591km², 인구 26만명,한인족 비율이 67%이다. 일송정이 있고, 시인 윤동주의 고향으로 그의 무덤이 있다. 동남쪽으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에 접해 있다. 동북쪽으로는 연길,도문에 접해 있다. 백두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았고 도시 가운데로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이 흐른다.용정과 연길은 버스로 약 4시간이 걸린다.우리나라 지도상에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는 첩첩산중인 줄 알았는데 넓고 광활한 평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은 1909년10월26일이다.중국 훈춘 안중근 의사가 할빈역에서 이등방문 저격 전날 마지막 유숙터에서
도문에 있는 권하세관이다ㅣ연길에서 약 한 시간 차로 도문에 도착했다.도문은 길림성 동부에 있는 교통 요충지로 철도가 있으며 길림.장춘.하얼빈.단둥.심양.북경 등지로 잇는 여객열차의 출발지라한다. 중국땅에서 북한의 남양시가 강 건너에 보인다. 조선으로 갈 수 있는 최하류의 관문이고,우리 일행이 도문대교 아래 두만강에서 뱃놀이한 곳이다.
중조는 도문대교 절반을 국경을 나뉘고 있다.이 부근에는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를 격파한 봉오동 전투의 전적지가 있다고 한다.우리는 관광상품을 파는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두만강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4인승 왕대로 만든 뗏배가 수십척이 계속 관광 손님을 태우고 두만강 상류를 노저어 오르내리고 있었다."김정구의 두만강 푸른 물은" 강폭이 좁은 곳은 5.60m 밖에 안되어 바지를 걷고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고 넓은 곳은 200여m로 강 이쪽과 저쪽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도강은 잠시 사이에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중조국경 두만강 뗏배놀이ㅣ두만강에 배를 타고 유람할 수 있는 도문변경 관광지다.한국인들이 두만강을 배타고 유람하는 것은 두만강노랫말처럼 아픔이 있고 직접 두만강에서 배를 타며강건너 북한을 바라보는 감회는 중국인들은 알리가 없다.배를 타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꽤 많다. 두만강은 총 길이 610㎞, 국경하천 길이 547㎞, 유역면적 3만 3,269.5㎢(북한 1만 743.5㎢, 중국 2만 2,526㎢)로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든다. 강 유역은 대부분 임산자원이 풍부한 임야지역이며, 유역 내에서는 감자·귀리·아마 등의 특수작물을 주로 재배한다.
뗏배를 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다가 승선하여 두만강 물길을 따라 도문 철교 방향으로 향했다. 강 오른쪽은 중국 영토이고 왼쪽이 북한 땅이다. 뗏배에서는 국경은 없었다.두만강물은 북쪽 지역으로 흐르고 있었다. 북한 쪽에는 낡고 퇴색한 건물이 있었고 숲 속에서 국경을 지키는 북한 병사의 깡마른 초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다시 한번 북한의 산하를 바라보았다. 조국의 산하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는데,북한에서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데,중국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한민족의 비극이 언제 종료되려나 ~~두만강 뗏배놀이를 마치고,두만강 조중 국경지대 도로를 따라 조러국경지대로 이동하였다
중조국경 두만강 도문에서 뗏배놀이 [20**0702]
중조러 3국국경 방천지도
방천[중국-북한-러시아 3국경지역] 철도다리가 러시아와 북한이 통하는 국경철도이다. 철도 왼쪽 지역이 러시아, 두만강을 경계선으로 철도 오른쪽은 조선땅 그리고 두만강과 러시아 국경 틈새로 보이는 하얀색 건물까지가 중국 영토이다. 왼쪽으로 조금 보이는 호수도 러시아 땅.그리고 사진 끝에 아주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바다이다.
중러조 3국 국경 두만강 방천에서ㅣ방천은 길림성 훈춘시 방천촌에 위치한다.사진 뒤의 다리는 조러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이다.방천은 훈춘시 중심에서 75km 정도 떨어져있다. 일행이 도착 때에는 날씨가 맑아 삼국국경 전망대위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삼국의 땅을 한눈에 볼수 있을 뿐만아니라,두만강 해구도 볼수 있었다. 여기서 '닭울음 소리는 삼국이 듣는다'고 한다.두만강하류 동해입구 중, 조, 러 3국변경에 위치한 방천촌은 중국의 유일한 조선,러시아와 잇대인 변방이다.육안으로 조선의 함북 두만강시와 러시아의 빈해 하싼구 및 동해를 내다볼수 있는 방천은 3국변경이 둘도 없는 천혜의 관광 여건을 제공한다.
중국 베이징광장에서
중국 만리장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