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의 대가이자 명재상으로 이름난 류성룡의 고향은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다. 류중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류성룡은 김성일과 동문수학했으며, 21세 때 퇴계 이황에게서 “하늘이 내린 인재이니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칭찬을 들었다. 선조는 류성룡을 일컬어 “바라보기만 하여도 저절로 경의가 생긴다”라고 하였고, 이항복은 “어떤 한 가지 좋은 점만을 꼬집어 말할 수 없다”라고 했으며, 이원익은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ㅡ 신정일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명예가 날로 드러났으나, 아침 저녁 여가에 또 학문에 힘써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서 조금도 기대거나 다리를 뻗는 일이 없었다. 사람을 응접할 때는 고요하고 단아하여 말이 적었고, 붓을 잡고 글을 쓸 때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뜻을 두지 않는 듯하였으나 문장이 정숙(精熟)하여 맛이 있었다. 여러 책을 박람(博覽)하여 외우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한 번 눈을 스치면 환히 알아 한 글자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