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 라무 흉상이 있는 기념문. 루클라 스타벅스를 지나 마을 끝자락쯤에 있다. 이 문을 지나 1시간 정도 더 가야 체풀룽이 나온다.
10. 루클라 마을 상점들 구경도 끝나 본격적으로 땅과 하늘, 산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 경계의 시작은 아마도 네팔 여성 최초로 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어)에 오른 네팔의 영웅 파상 라무의 흉상이 있는 문이 될 것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파상 라무(금요일에 태어났다는 뜻)는 초모룽마에 3년 연속 등정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네 번째인 1993년 성공했지만 하산길에 사망하고 만다. 여기서부터 목적지 체풀룽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우리 걸음으로는 두 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루클라에서 약간씩 고도가 낮아지긴 해도 여전히 2천m 대도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이름모를 들꽃들도 제법 눈에 들어왔다. 코스모스도 활짝 폈다. 히말라야에서 보는 코스모스라 새삼스러웠다. 실타래처럼 꼬였다는 타래난이라는 꽃을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
마을을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마니차와 마니석, 그리고 룽다. ’신들의 나라’ 네팔을 실감나게 해 준다.
11. 마을을 지나다 보면 룽다와 타르초가 수없이 보인다. 룽다는 왼쪽으로 돌아야 한단다. 우리의 탑돌이를 할 때처럼. 또한 마을 곳곳에선 마니차와 마니석도 만날 수 있다. 마니차는 겉에 진언(眞言·만트라)이 적혀있는 원통인데, 안에 경문이 들어 있어 한 번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는 모르긴 해도 글자를 모르는 이들도 마니차를 많이 돌리기만 하면 여러 번 읽은 셈이 된다. ’신들의 나라’ 네팔이 실감나는 풍경들이다.
짐 나르는 좁키오. 해발고도 4천미터 이상에 산다는 야크보다는 확실히 털이 적다.
12. 좁은 길에선 사람뿐 아니라 좁키오도 자주 눈에 띈다. 좁키오(Zhopkyos)는 수 야크와 암소와의 교접으로 나온 동물인데 야크가 주로 해발고도 4,000∼6,000m에 이르는 고원에서 활동하는 데 비해 좁키오는 그보다 낮은 곳에서 활동이 가능해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에 흔히 만날 수 있다. 우리를 가이드한 셰르파 쏘남이 일러준다. 좁키오가 다가올 땐 낭떠러지 쪽이 아닌 그 반대쪽에 서야 한단다. 만에 하나라도 좁키오 뿔에 받히기라도 하면 곧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그대로 죽음일 테니까.
셰르파 전통복장을 한 여인과 기념촬영 한 장~
13. 산바람이 점점 차가와지기 시작했다. 걸을 땐 땀이 나다가도 잠시 쉬면 등짝이 시원해지면서 금세 추워지는 게 산이었다. 체온 관리를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 마을 체풀룽에 세워진 토토 하얀병원.
14. 모퉁이만 돌면 체풀룽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아까부터 모통이만 돌면 된다던 게 벌써 몇 번째였는지 모른다. 믿고 싶은 마음 반, 또 속이겠지 하는 마음 반으로 걸었는 게 두 시간 남짓 흘렀다. 모퉁이를 돌았다. 저기 멀리서 ’토토 하얀병원’ 십자가가 보였다. 정말 다 왔구나!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체풀룽 아주머니들. 스커트 앞에 앞치마처럼 걸친 스트라이프 천은 셰르파 족 전통복장이란다.
15. 1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산다는 체풀룽 마을. 대원들은 도착하자마자 집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근데, 전력이 방전됐다. 의료 장비 체크는 뒤로 미루고 일단 전등불만 밝힐 수 있게 된 것도 오후 5시. 산마을은 이미 어두워졌다. 발전기는 오후 6시께야 고쳐졌다."여기 오는 사람은 만능맨이 돼야 해"라는 심재호 부대장의 말이 귓전을 때렸다.
16. 한쪽에선 의약품 세팅과 의료장비 체크에 들어갔다. 심전도기, 산소호흡기, 천식환자용 기기, 간단한 수술기구, 초음파 의료기기 세척기 등 각종 의료기기를 체크하던 의료진들이 농담처럼 한마디한다. "오~ 병원 수준 굿! 우리 병원보다 나은데요." 하지만 대략난감이다. 의약품 목록 리스트도 찾을 수 없고, 1년 전에 약품 구매를 마친 상태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어서 일부 유효 기간이 지난 것도 있었다. 아무래도 의료를 모르는 사람들이 일괄 준비를 하다보니 군데군데 허점이 있었을 것이다.
쏘남(빨간 모자 쓴 이) 아들 롯지(게스트하우스)에서 네팔 막걸리인 ’창’을 마시는 사람들.
네팔인 싼티와 루클라행 소형기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 싼티는 7년 정도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지만 네팔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한 실력파다.
17. 오후 9시30분…사방이 캄캄하다. 맞은편 롯지를 하는 쏘남네 가족이 잠든 지는 이미 한두 시간 지난 것 같다. 하늘엔 반달, 날이 흐려 별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들은 각자 필요한 잠자리를 확보하느라 부산했다. 아직도 고산지대에 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 나로선 평소처럼 간편한 옷차림으로 한국에서 공수해온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갔다. 하지만 네팔 현지 유경험자들이 화들짝 놀란다. 그렇게 잠들면 추워서 큰일난단다. 다시 담요를 하나 더 깔고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 하나를 또 덮어준다. 그리고 핫팩도 하나씩 챙겨준다. 네팔사람인 싼티도 레깅스를 꺼내 입는다. 나도 레깅스를 꺼내입었다. 정말 만반의 준비다. 머리엔 비니모자를 꺼내 썼다. 고소증을 이겨내려면 머리가 따뜻해야 한단다. 등산용 양말을 꺼내서 신고, 겨울용 등산바지에 구스다운 자켓까지 입고 잠들어야 할 처지다. 세수? 찬물에 ’고양이세수’를 하고 양치질만 겨우 마쳤다. 이거 원, 산악 극기 훈련이 따로 없다. 해발고도 2,660m 체풀룽에서 맞는 첫 밤이다.
파상 라무 흉상이 있는 기념문. 루클라 스타벅스를 지나 마을 끝자락쯤에 있다. 이 문을 지나 1시간 정도 더 가야 체풀룽이 나온다.
10. 루클라 마을 상점들 구경도 끝나 본격적으로 땅과 하늘, 산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 경계의 시작은 아마도 네팔 여성 최초로 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어)에 오른 네팔의 영웅 파상 라무의 흉상이 있는 문이 될 것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파상 라무(금요일에 태어났다는 뜻)는 초모룽마에 3년 연속 등정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네 번째인 1993년 성공했지만 하산길에 사망하고 만다. 여기서부터 목적지 체풀룽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우리 걸음으로는 두 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루클라에서 약간씩 고도가 낮아지긴 해도 여전히 2천m 대도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이름모를 들꽃들도 제법 눈에 들어왔다. 코스모스도 활짝 폈다. 히말라야에서 보는 코스모스라 새삼스러웠다. 실타래처럼 꼬였다는 타래난이라는 꽃을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
마을을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마니차와 마니석, 그리고 룽다. ’신들의 나라’ 네팔을 실감나게 해 준다.
11. 마을을 지나다 보면 룽다와 타르초가 수없이 보인다. 룽다는 왼쪽으로 돌아야 한단다. 우리의 탑돌이를 할 때처럼. 또한 마을 곳곳에선 마니차와 마니석도 만날 수 있다. 마니차는 겉에 진언(眞言·만트라)이 적혀있는 원통인데, 안에 경문이 들어 있어 한 번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는 모르긴 해도 글자를 모르는 이들도 마니차를 많이 돌리기만 하면 여러 번 읽은 셈이 된다. ’신들의 나라’ 네팔이 실감나는 풍경들이다.
짐 나르는 좁키오. 해발고도 4천미터 이상에 산다는 야크보다는 확실히 털이 적다.
12. 좁은 길에선 사람뿐 아니라 좁키오도 자주 눈에 띈다. 좁키오(Zhopkyos)는 수 야크와 암소와의 교접으로 나온 동물인데 야크가 주로 해발고도 4,000∼6,000m에 이르는 고원에서 활동하는 데 비해 좁키오는 그보다 낮은 곳에서 활동이 가능해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에 흔히 만날 수 있다. 우리를 가이드한 셰르파 쏘남이 일러준다. 좁키오가 다가올 땐 낭떠러지 쪽이 아닌 그 반대쪽에 서야 한단다. 만에 하나라도 좁키오 뿔에 받히기라도 하면 곧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그대로 죽음일 테니까.
셰르파 전통복장을 한 여인과 기념촬영 한 장~
13. 산바람이 점점 차가와지기 시작했다. 걸을 땐 땀이 나다가도 잠시 쉬면 등짝이 시원해지면서 금세 추워지는 게 산이었다. 체온 관리를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 마을 체풀룽에 세워진 토토 하얀병원.
14. 모퉁이만 돌면 체풀룽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아까부터 모통이만 돌면 된다던 게 벌써 몇 번째였는지 모른다. 믿고 싶은 마음 반, 또 속이겠지 하는 마음 반으로 걸었는 게 두 시간 남짓 흘렀다. 모퉁이를 돌았다. 저기 멀리서 ’토토 하얀병원’ 십자가가 보였다. 정말 다 왔구나!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체풀룽 아주머니들. 스커트 앞에 앞치마처럼 걸친 스트라이프 천은 셰르파 족 전통복장이란다.
15. 1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산다는 체풀룽 마을. 대원들은 도착하자마자 집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근데, 전력이 방전됐다. 의료 장비 체크는 뒤로 미루고 일단 전등불만 밝힐 수 있게 된 것도 오후 5시. 산마을은 이미 어두워졌다. 발전기는 오후 6시께야 고쳐졌다."여기 오는 사람은 만능맨이 돼야 해"라는 심재호 부대장의 말이 귓전을 때렸다.
16. 한쪽에선 의약품 세팅과 의료장비 체크에 들어갔다. 심전도기, 산소호흡기, 천식환자용 기기, 간단한 수술기구, 초음파 의료기기 세척기 등 각종 의료기기를 체크하던 의료진들이 농담처럼 한마디한다. "오~ 병원 수준 굿! 우리 병원보다 나은데요." 하지만 대략난감이다. 의약품 목록 리스트도 찾을 수 없고, 1년 전에 약품 구매를 마친 상태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어서 일부 유효 기간이 지난 것도 있었다. 아무래도 의료를 모르는 사람들이 일괄 준비를 하다보니 군데군데 허점이 있었을 것이다.
쏘남(빨간 모자 쓴 이) 아들 롯지(게스트하우스)에서 네팔 막걸리인 ’창’을 마시는 사람들.
네팔인 싼티와 루클라행 소형기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 싼티는 7년 정도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지만 네팔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한 실력파다.
17. 오후 9시30분…사방이 캄캄하다. 맞은편 롯지를 하는 쏘남네 가족이 잠든 지는 이미 한두 시간 지난 것 같다. 하늘엔 반달, 날이 흐려 별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들은 각자 필요한 잠자리를 확보하느라 부산했다. 아직도 고산지대에 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 나로선 평소처럼 간편한 옷차림으로 한국에서 공수해온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갔다. 하지만 네팔 현지 유경험자들이 화들짝 놀란다. 그렇게 잠들면 추워서 큰일난단다. 다시 담요를 하나 더 깔고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 하나를 또 덮어준다. 그리고 핫팩도 하나씩 챙겨준다. 네팔사람인 싼티도 레깅스를 꺼내 입는다. 나도 레깅스를 꺼내입었다. 정말 만반의 준비다. 머리엔 비니모자를 꺼내 썼다. 고소증을 이겨내려면 머리가 따뜻해야 한단다. 등산용 양말을 꺼내서 신고, 겨울용 등산바지에 구스다운 자켓까지 입고 잠들어야 할 처지다. 세수? 찬물에 ’고양이세수’를 하고 양치질만 겨우 마쳤다. 이거 원, 산악 극기 훈련이 따로 없다. 해발고도 2,660m 체풀룽에서 맞는 첫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