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비장전〉의 구체적인 줄거리는 신구서림본과 김삼불 교주본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한양에 살던 김경(金卿)이 제주목사에 제수되자, 서강에 사는 배선달을 불러 예방의 소임을 맡긴다. 사또 일행은 제주도로 가는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대풍을 만나 위험에 처하지만, 다행히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때 마침 배에서 내린 배비장은 정비장과 기생 애랑이 이별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애랑은 갖은 아양과 애교를 부리며 정비장이 가진 재물을 모두 빼앗고, 입고 있던 의복을 벗겨낸다. 정비장은 자신의 보검을 내어주고, 앞니까지 뽑아서 애랑에게 준다. 모든 광경을 지켜본 배비장은 정비장을 조롱하면서, 자신은 결코 여색을 가까이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한다. 이에 방자는 배비장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사또를 비롯한 다른 무리들이 기생과 함께 즐길 때에, 배비장은 도덕군자를 자처하며 도도하게 군다. 그러자 배비장을 곯려 주리라 작정한 제주 목사 김경이 배비장을 훼절시킬 기생을 찾고, 애랑이 이 일에 자원한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목사 및 다른 비장들과 함께 한라산 놀이를 떠난 배비장은 기생 애랑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애랑의 자태를 잊지 못해 상사병이 날 지경에 이른 배비장은 방자를 시켜 자신의 마음을 담은 서신을 그녀에게 전달한다. 방자는 서신을 애랑에게 전달하고, 애랑의 허락을 받은 배비장은 한밤중에 개가죽 두루마기에 노벙거지를 쓰고 담 아래 구멍을 통해 애랑의 집으로 들어간다. 애랑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간 배비장은 그녀와 함께 운우의 정을 나눈다. 이때 갑자기 바깥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애랑은 배비장에게 자신의 남편이 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함소리의 실제 주인공은 방자이다. 몸을 숨길 곳을 찾던 배비장은 애랑의 말에 따라 자루 속으로 들어가고, 자루 속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묻는 방자의 물음에 애랑은 거문고라고 답한다. 방자가 자루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퉁기자 배비장은 거문고 소리까지 내며 벌벌 떤다. 잠시 방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배비장은 자루 밖으로 나와 다시 애랑의 권유대로 피나무 궤 속에 숨는다. 그러자 애랑의 남편으로 가장한 방자가 들어와 자신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와 궤를 불사르라 했다고 말한다. 애랑은 그럴 수 없다며 만류하는 체하고, 방자는 궤를 공평하게 나누자며 톱질을 시작한다. 그러자 배비장은 궤 속에서 업궤신 흉내를 내며 이 궤를 계집에게 주라고 소리친다. 이에 방자는 궤를 강물에 버리겠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한 뒤, 궤를 짊어다 동헌 마당에 내려둔다. 배비장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궤 안에서 바다에 당도했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어부에게 살려달라고 구원을 요청한다. 드디어 배비장이 헤엄을 치면서 궤 밖으로 나와 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관청 마당이었고, 목사와 육방 관속, 기생들이 둘러서서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김삼불 교주본은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바로 이 장면에서 끝이 난다. 김삼불은 교주본의 '일러두기'를 통해, 60장 이후는 문장과 어법이 이전과 달라 후인에 의해 덧붙여진 것으로 판단해 교주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활자본인 신구서림본 〈배비장전〉에는 김삼불 교주본에서 제외한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피를 당한 배비장은 겨우 배를 구해 떠났지만 어느 객사에 갇히게 된다. 그러자 애랑이 그곳으로 찾아와 그를 위로하면서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얼마 지나 배비장은 김경 목사가 자신에게 정의현감직을 제수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배비장은 목사의 주선에 의해 애랑을 첩으로 맞아들이고, 정의현감으로 부임해 선정을 베푼다. 고을에는 배비장의 송덕비가 세워지고, 배비장은 목사 김경의 집안과 대대로 절친하게 지낸다.
〈배비장전〉의 주제는 우선 지배층의 허위의식 혹은 위선적인 행태에 대한 비판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에서는 배비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공허하고 위선적인 유가윤리 혹은 호색성을 풍자한다. 구대정남(九代貞男)을 자처하던 배비장을 훼절시키고, 나아가 알몸으로 만들어 망신을 주는 전 과정에는 익살맞고 재치 있는 재담, 유쾌하고 즐거운 해학이 담겨 있다. 그러나 배비장의 위선적인 모습을 폭로하는 과정 자체가 애랑과 방자라는 피지배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를 읽어낼 수 있다. 한편 〈배비장전〉을 관인사회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입사식(入社式)으로서의 신참례(新參禮) 의식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보거나 관인사회의 비리와 야합상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시각에 의하면, 배비장을 희화화하는 궁극적인 의도 역시 배비장을 당시 관료사회의 관습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배비장전 (한국전통연희사전, 2014. 12. 15., 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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