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ERN, STRAVINSKY & MAHLER
베베른 관현악을 위한 파사칼리아,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스트라빈스키 나이팅게일의 노래
말러 교향곡 6번
피에르 불레즈, 지휘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Accentus Music ACC30230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오케트라는 유명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는 별개의 악단으로, 일종의 유스 오케스트라이다. 2004년 당시 이 음악제의 행정감독이었던 미하엘 헤플리거와 손을 잡고 이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인물이 바로 피에르 불레즈였다. 매년 음악제 기간 동안 세계 각지의 재능 있는 젊은이를 (130명가량) 모아 근현대의 걸작을 연구하고 연주하게 하는 것이 이 오케스트라의 일차적인 존재 이유이며, 이러한 기회에 젊은 지휘자와 작곡가를 육성하는 것 역시 이 오케스트라의 활동에 포함된다. 여기 실린 녹음들은 2010년 8월 25일과 9월 1일 및 5일의 공연 실황이다.
두 장의 CD 가운데 첫 번째는 그야말로 불레즈의 장기에 해당하는 곡들만 모아놓고 있다. 첫 수록곡인 베베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사칼리아’는 비록 불레즈 자신의 DG 녹음만큼 날카롭지는 않지만, 아직 후기낭만주의의 영향이 다분한 작품임을 감안하면 이와 같이 다소 여유로운 해석도 결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각 단원들은 악구마다 변화하는 분위기와 음색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불레즈의 지시에 최대한 열정적으로 응하고 있다. 뒤를 잇는 같은 작곡가의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의 경우 한층 엄밀하고 정확한 표현이 요구되는데, 이런 점에서는 아직 다소 미흡한 면이 있지만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각 단원들은 최대한 명확한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 곡을 연주할 당시 그들을 짓눌렀을 긴장감은 분명히 일부나마 연주에도 반영되고 있다.
첫 장을 마무리하는 스트라빈스키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다이내믹의 진폭이 좀 더 크고 악센트가 더 날카롭게 구사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특히 ‘중국의 행진곡’에서 이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연주 자체에는 어떠한 실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가 악상의 성격과 그것이 요구하는 음색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준은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장은 상당히 양호한 수준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두 번째 CD 전체를 채우고 있는 말러 교향곡 6번의 경우에는, 좀 가혹한 것 같지만 앞서와 동일한 판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여기서 불레즈가, 빈 필과의 녹음(DG)에서는 철저하게 관철했던 자신의 도그마를 많이 약화시켰거나 혹은 타협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진폭이 작지 않은 템포나 이따금 드러나는 성부 간의 심한 불균형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예증에 더 가깝다. 1악장 첫머리는 비교적 무난한 출발을 보이지만, 제2주제부에서 일시적이나마 국면의 주도권을 쥐어야 할 현악기군은 너무 미약하고, 유난히 두드러지게 뒤뚱거리는 목관은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뿐이다. 제시부 반복 부분은 너무나 희미해 억지로 끌려나오는 것 같고 2주제부의 반복 부분이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은 목관이 실수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숨어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전체 관현악 가운데 그나마 강단을 보여주는 것은 타악기 파트 정도이며, 따라서 선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전체 밸런스를 망치고 있다는 오명 또한 뒤집어써야 한다. 발전부 중간의 ‘소방울 에피소드’는 상당히 섬세하게 처리되었지만 막상 소방울은 간 데 없다는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잘 짜인 밸런스를 바탕으로 최후의 분투를 시도하는 재현부 후반는 분명히 찬사를 보낼 만하지만 아쉽게도 오래지 않아 끝나 버린다.
여기서는 스케르초가 2악장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스케르초 주부는 별다른 표정이 없지만 트리오는 유난히 간결한 프레이징 때문에 분명 의도치 않았을 천진함을 획득하고 있으며, 마지막 주부는 앙상블이 썩 좋지 않지만 그 때문에 폭력성이 더욱 부각되는 역설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안단테 악장은 음영이 섬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소박하면서도 정감 있게 연주되었다. 다만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소방울은 여기서도 지나치게 묻히고 있다.
피날레 도입부의 금관 파트는 기량이 모자라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타악기군의 단호한 제지가 아니라면 전체 악상이 몽유병 환자처럼 흐느적거렸을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순조롭게 힘을 더해가 다다르는 해머 타격은 다소 둔하게 들리지만 목질적인 느낌만은 역력하며, 현악기군은 악상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힘과 생기를 더해가는 다소 기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코다에서의 다소 건조한 트롬본 푸가토에 뒤이어 울리는 최후의 절규는 그야말로 완전 연소를 암시하듯 처절하다.
이 음반에 대해, 특히 두 번째 장에서 지나치게 많은 결함을 지적한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유스 오케스트라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가산점’을 일절 배제하고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평가했다. 이들이 현재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머지않아 그럴 자격을 획득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의미 있는 활동을 기록하는 것은 또한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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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표지를 올리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