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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로: 교대역 1번-(버스)-강화 교동도 화개정원-(버스)-대룡시장-교동제비집-(버스)-교동향교-(버스)-망향대-(버스)-강화도 외포리 서울횟집-(버스)-교대역
산케들: 淸泫 부부, 현동 부부, 大仁 부부, 慧雲 부부, 새샘 부부, 素山, 松潭, 종훈, 大慶, 如山, 正允, 百山, 牛岩, 元亨, 長山, 回山(21명)
12월의 세 번째 산행 아닌 여행날인 12월 18일 일요일 송년여행날은 서울지역 최저기온이 영하 13도로 올 들어 가장 추운 날로 예보되었고, 실제 기온은 영하 12.4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어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산케 스물 한 명 모두가 시간 맞춰 교대역 1번 출구에 대기 중인 금호고속버스에 올라 9시 정각 교대역 출발.
전세버스 타고 멀리 다녀온 송년산행 기록을 찾아보니 2016년 12월 18일 873차 안산 대부도 송년산행 이후 무려 6년 만이다.
대인 대장이 정성스레 준비한 김밥과 과자-사탕-견과류, 청보화제과의 맛난 쿠키, 그리고 산타가 주는 디저트 사과 한 조각씩 먹는 도중 우릴 태운 버스는 올림픽대로-김포한강로-강화대교-교동대교를 차례로 지나, 출발 1시간 반 후인 10시 30분 첫 번째 방문지인 교동도 화개정원 주차장에 내려준다.
행정구역이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인 교동도喬桐島는 2014년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가 연결됨으로써 비록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들어갈 때 검문소를 거쳐야 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높을 '교喬'에 오동나무 '동桐' 자를 쓰는 교동이란 지명의 유래는 고구려 장수왕 때 마을 이름이었던 '큰 나무뿌리 마을'이란 뜻의 '고목근현高木根縣'이 통일신라시대에 '큰 오동나무' 즉 '교동喬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교동도는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피난 내려와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
특히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실향민들은 연백군의 시장인 '연백장'을 본 따서 지금의 대룡시장을 만들었는데, 이 대룡시장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조성됨으로써 60~70년대 많이 사람들이 모였고 왕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된 이후 해마다 1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특히 주말에는 대룡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강화도와 함께 교동도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왕족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이것은 고려 수도인 개경(개성)과 조선 수도인 한양(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죄인을 감시하기 쉬웠을 뿐 아니라 왕족을 사대부나 백성과 함께 국경지방이나 먼 지방의 섬으로 보내기 어렵다는 측면을 모두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려 23대 왕 고종高宗은 몽고군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여 강화에서 생을 마쳤다.
강화도나 교동도로 유배된 고려 왕은 21대 희종熙宗, 22대 강종康宗, 30대 충정왕忠定王, 32대 우왕禑王, 33대 창왕昌王이고, 조선 왕은 10대 연산군燕山君과 15대 광해군光海君이, 그리고 조선 왕족에는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경안군, 인조 소생인 숭선군·낙선군·효명옹주, 소현세자의 손자이자 경안군의 아들인 임창군과 임성군, 인조의 손자 복평군,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장남인 은언군, 흥선대원군 손자이자 고종 조카인 영선군이 있다.
화개華蓋정원은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259m의 화개산 일대에 조성한 테마정원으로서, 지금은 임시개장한 상태로서 무료 입장이다.
화개산이란 이름은 산이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솥뚜껑으로 만든 포토존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화개정원에는 모노레일을 타거나 걸어서 화개산 정상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현재 스카이워크는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화개정원은 5색色 테마정원이란 이름으로 5종류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아래쪽에서부터 연못이 있는 물의 정원, 연산군 유배지가 있는 역사문화정원, 고향땅 시골 풍경의 정취를 느끼는 추억의 정원, 5km 바다 건너 북한 고향땅을 다시 찾는 밝은 미래와 희망을 담은 평화의 정원, 그리고 사람에게 유용한 식생을 심어 힐링 효과가 충만한 치유의 정원이 그것이다.
주차장에서 정면의 모노레일 탑승장과 오른쪽 매표소 사잇길을 따라 눈이 제법 쌓여 있는 화개정원으로 접근.
10시 43분 화개정원 입장
화개정원을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물의 정원의 연못, 폭포, 폭포 바로 뒤 연못나무, 그리고 화개산 정상의 전망대 스카이워크.
연못 위에 있는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하트, 루돌프 사슴, 홍학과 같은 크리스마스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마침 트리 뒤로 노란 모노레일이 지나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2022년 송년산행의 첫 번째 기념촬영!
광장 위의 연산군 유배지가 있는 역사문화정원.
교동도 유배문화관에는 유배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교동도 유배문화관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연산군 유배지로 간다.
아래 사진의 초가가 연산군 위리안치소圍籬安置所.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관리에 적용된 유배流配(죄인을 귀양 보내던 형벌)의 형태 중 하나인 안치安置란 일정한 장소에 죄인을 격리하여 구속시키는 형벌로서 집 둘레에 가시(주로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가두는 위리圍籬안치(위치 또는 가극加棘안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가두는 절도絕島안치, 위리안치된 죄인이 기거하는 방 안에도 가시를 둘러쳐 가두는 가장 가혹한 천극栫棘안치, 본인의 고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가벼운 본향本鄕안치 따위가 있다.
이곳 고구리에 만들어진 연산군 위리안치소는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강제 폐위되어 교동도에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2달 뒤인 11월 죽을 때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재현해 놓았다.
위리안치된 초가 주위에는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많이 달린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초가 울타리문에는 군졸이 지키고 서 있으며, 초가 옆에는 유배 당시 연산군이 타고 온 소가 끄는 수레(우차牛車)도 있다.
초가에 위리안치된 연산군 모습
연산군 유배지 위로 올라오니 화개정원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솥뚜껑 포토존 가운데 두 번째인 이뚜껑포토존이 눈에 들어온다.
돌탑을 많이 세워 놓은 추억의 정원
추억의 정원을 지나면서 올려다본 화개산 정상에 있는 스카이워크 모습
길 오른쪽의 평화의 정원
위로 올라갈수록 가까워지는 스카이워크는 한층 웅장하다.
스카이워크 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뻥 뚫리지 않을까.
그리고 아래쪽보다 지대가 높고 찬 바람도 솔솔 불어서 그런지 모두들 춥다면서 소릴 지르고...
여기서 뒤돌아본 교동도와 바다 건너 북한 황해도 풍광.
넓게 펼쳐진 논 뒤쪽 끝에 보이는 2개의 언덕 사이의 아주 작게 보이는 언덕이 좀 있다 들릴 예정인 망향대이고, 그 뒤 서해 바다를 건너면 북한 땅이다.
솥뚜껑 포토존 중 마지막인 칠뚜껑 포토존 옆을 지난다.
길 왼쪽 아래 '화개정원'이란 표지판과 함께 서 있는 엄청 크게 만든 고니 조형물은 입에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있다.
스카이워크 오름길 입구 지킴터 근무자가 공사 중인 스카이워크 쪽으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우릴 막는다.
이 지점에서 바라본 서해 바다와 북한 땅 황해도 연백군.
근무자에게 부탁하여 북한 땅을 배경으로 두 번째 인증샷 촬영.
여기서 발길을 돌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도중 처음 지났던 광장을 지나 화개정원을 빠져나간다.
화개정원에서 차를 타고 5분 후인 11시 51분 대룡시장 주차장에서 내려 대룡시장으로 걸어간다.
대룡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군에서 여기로 피난 온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 고향의 시장인 연안시장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골목시장으로 1960~70년대의 시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색적인 곳.
감자칩(깡자칩), 고구마칩, 옥수수 튀김과 함게 커피와 티를 파는 송화 칩스 Chips.
'어서오시겨 대룡시장' 표지판과 시장 거리의 다양한 모습들.
골목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가게마다 밖에 내놓은 공짜 포, 칩, 땅콩 등 갖가지 먹거리를 열심히 먹고 다니느라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공짜로 집어먹는 게 미안했던 지 대경은 양손에 큰 보따리를 힘들게 들고서 귀차.
대룡시장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2층 건물 교동제비집에 들린다.
이곳은 교동도 관광안내소로서, 교동도와 관련된 다양한 디지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자전거를 빌려 타고서 섬을 돌아볼 수도 있다.
교동제비집이란 이름은 뜨거운 남쪽나라에서 올라온 제비들이 한반도에서 특히 교동도에 많다고 해서 붙였다고 하는데.....
혹시 북한 고향땅에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실향민의 바램을 강남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제비로 표현한 건 아닐까??
교동제비집 바로 앞에 만들어놓은 제비 조형물
1층에는 교동도 특산 농산물 판매하는 카페가 있고, 벽에는 제비 조형물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기념사진들이 걸려 있다.
1층 복도 의자에 앉아 무료로 주는 유자 향기가 나는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려본다.
2층 계단 앞에는 한반도 지도에 무궁화꽃을 가득 꽂아 놓았고, '소원 통일'이란 시가 적혀 있다.
교동제비집 2층의 디지털 갤러리
2층 복도에 걸린 교동도 풍경화 패널들
교동제비집에서 다음 장소인 교동향교로 버스로 이동하여 10분 후인 12시 30분 도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인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 때인 1127년 화개산 북쪽에 만든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향교이며, 그 후 조선시대 영조 때인 1741년 지금 위치로 옮겼다.
향교鄕校는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 백성들의 교육을 위해 국가에서 세운 지방 교육기관.
고려 충렬왕 때인 1286년 안향安珦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가지고 온 공자상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교동향교에 모셨다고 한다.
교동향교 홍살문 앞
향교 뒷산 왼쪽 뒤로 보이는 화개정원 전망대 스카이워크
홍살문을 지나 들어가면서 바라본 교동향교 전경
솟을삼문인 교동향교 외삼문
명륜당明倫堂은 지금의 교실에 해당하는 강학講學(학문을 닦고 연구함) 공간의 핵심 건물이다.
명륜당 건물의 특징은 짝수 칸을 만들지 않는 우리나라 목조건물에서 특이하게도 앞면 4칸 옆면 2칸의 짝수 칸 건물이라는 점.
명륜당 좌우로 유생들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명륜당 뒤로 난 계단 오르면서 본 명륜당과 오른쪽 언덕 위에 위치한 제향祭享(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또는 제사의 높임말) 공간 정문인 내삼문.
기단 위에 세운 제향공간의 핵심 건물인 대성전大成殿은 앞면 5칸 옆면 1.5칸 건물로서, 유교 성현의 초상화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이제 교동도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인 망향대는 지금까지 들린 곳의 반대인 교동도 북쪽 끝에 있다.
교동향교에서 출발한 버스는 15분 후인 13시 망향단 표석 앞 도착.
보통 망향대라고 부르는데 입구 표석에는 주변을 바라보는 '대臺'가 아닌 제사 지내는 '단壇'으로 되어 있다.
망향대 입구 바닷가 논에는 많은 쇠기러기 떼들이 군데군데 모여 부지런히 모이를 쪼고 있다.
망향대 오르는 길 옆 울타리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실향민들이 쓴 글과 함께 해바라기 스티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주축이 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연안읍에서 직선 거리 3km 떨어진 이곳에 1988년 8월 15일 망향대望鄕臺를 준공했다.
이곳에는 전망대(망향대)와 제단(망향단), 그리고 북한을 가깝게 볼 수 있는 망원경 2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실향민들은 해마다 여기서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산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울타리 앞 게시판에는 한국전쟁과 북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망향대, 망향단, 망향대 제작자와 협찬자 비석, 그리고 비석 옆 전망대에는 북한이 훤히 보이는 망원경 2대가 설치되어 있다.
망향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교동도 북쪽 끝과 서해바다 건너 북한 황해도 연백군의 연백평야.
망원경을 통해 북한 연백평야와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잘 보였다.
이것으로 교동도를 마무리하고 점심 식사가 예약되어 있는 강화도로 출발.
원래 교동도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답사를 다녀온 결과 교동도 식당의 규모도 아주 작을 뿐더러 주말에는 단체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강화도로 나가게 된 것이다.
망향대에서 버스 타고 30분 후 오후 1시 48분 강화도 외포리 회센타의 서울횟집에 도착.
횟집 2층에 준비된 식탁에 21명의 산케들이 마주 앉아 백산 회장의 인삿말로 뒤풀이 시작.
소산이 가져온 문배주 한잔 들고 백산 회장의 '백두산' 건배로 뒤풀이 시작!
메인 생선회 안주가 나오기 전 사이드 반찬 메뉴가 전복, 멍게, 산낙지, 가리비 등등 장난이 아니다.
맨 뒤 테이블에 자리 잡아 앞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산케들만 촬영.
오후 4시쯤 외포리에서 출발한 버스는 고속터미널역에 일부 산케들을 풀어놓은 뒤 5시 반에 교대역에 도착하여 대인 대장 부인께서 선물한 교동섬 쌀로 만든 떡가래를 들고 내리면서 즐거웠던 교동도 송년산행을 마무리!!!
2022. 12. 19 새샘
첫댓글 극강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산케들이 함께하여 모처럼 뜻깊은 송년산행을 즐겼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 수고해 주신, 백산 회장을 비롯한 봉사부께 감사드리고,
대인 대장의 사전답사, 완벽한 준비와 진행에 감동 먹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장문의 기행문을 남겨준 새샘께도 감사드립니다~
청보화표 제과는 뒷날 아침밥으로 참 좋았으며,
이제 다양성까지 가미되어 명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내년에 더 기대됩니다..^^
산케 열정이 대단하신 혜운회장이 보여줄 내년 산행이 기대 만땅!
큰행사의 첫번째 댓글...차기 회장의 마음가짐이라 여김.
잦은 출격이 나의 건강도 지키고, 동무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리라.
꼭 가보고 싶었던 망향대를 소상하게 설명해주신 새샘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새해에 뵙겠습니다
중산의 취향에 딱 맞는 명품관광지.
서울올 기회있으면 안동댁과 함 가기를 강추합니다..^^
새해엔 중산과 함께 산을 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봅시다!
2022년 송년산행이 집행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많이 여유롭고, 많이 즐겁고, 많이 행복했습니다.
화개정원에서 바라본 교동도는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언뜻 생각났습니다. 유명한 강화쌀을 생산하는 넓은 들판,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해산물은 삶을 풍족하고 여유롭게 만들고, 좋은 인심을 바탕으로 좋은 유대감을 만들어 교동도를 명품의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으며, 후손들을 위한 좋은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연산군을 포함한 많은 대군들의 유배형에서 인생의 허무함과 어리석음도 느낀 하루였습니다.
멋진 장문의 감상문을 올려준 여산감사의 내년 활약이 기다려집니다.
@새샘 박성주 원래 소리가 요란하면 실속이 없어요..ㅊ
이젠 글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욕을 먹더라도 한마디 해야겠소.
내년에는 후기에 댓글을 달아야 산행을 마치는 과거의 전통으로 돌아가길 여산 감사에게 부탁드리오.
@百山 이주형 댓글 담당은 백산 몫..^^
@장만옥 소인은 이제 영광스런 평민이랍니다^^
대인대장이 2 번이나 사전답사를 하면서 세심하게 준비하여 처음 가보는 교동도 구경을 잘
했습니다
세밀 하고 긴 후기를 올려준 새삼주필께 감사ᆢ
1 년동안 노심 초사 고생한
백산 회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3번이나 답사 다녀 왔다고 들었음~
올 해 최다 산행 수상자로 선정됨을 축하합니다.
최강 추위를 마다 하고 송년산행에 함께
해 주신 산케 가족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산에서 자주
봅시다~~^-^~
대인 대장님 22년도 4/4분기 산행대장 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산케들이 교동도는 처음이었을 겁니다. 덕분에 교동도 관광 잘 했습니다.
이렇게 산행대장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후임이 참 어렵습니다. 또한 봉사란 어떤 것인가를 소리없이 잘 보여주신 대인 대장께 감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대인 대장의 완벽한 준비와 진행 덕분에 6년 만의 송년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올 해 대인의 등장은 산케의 큰 복이라.
6년만의 나들이에 소풍가듯이 들뜨고 짝지들과 오붓이 거니는 모습이 해피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 차곡 차곡 쌓여갑니다.
모두의 협조로 멋진 하루를 보냈습니다..
망향단에서 새들이 전부 강건너 우리 쪽 논에서 모이를 먹는걸 보니 우리라도 잘 먹여야 겠지요..
언제나 듬직한 장산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송년산행 즐겁게 잘 했군요!
대인대장이 3번이나 답사를 했다니 정성이 대단했네요!
올 해도 저물어가네요.
세월이 어찌 이리도 빠른지...
1/4~4/4분기 대장을 성심껏 봉사한 회산, 장산, 원형, 대인의 노고와 새샘주필의 수년에 걸친 산행기에 다시한번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6년만의 송년산행이라니 새삼 놀라웠고, 이제는 해마다 이어져 부인들도 우리 산케와 동행하여 즐겼으면 합니다.
송년산행을 한층 빛내는건 다름아닌 20개를 훌쩍 넘긴 댓글입니다.
과거 후기에 124개의 댓글과 답글이 달리던 시절...
그때가 산케의 전성기 였나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새샘주필께 건의합니다.
산행기를 카톡방에 올리는 것에 반대함.
후기에 관심이 있으면 카페에 들어와서 보면될 것을 너무나 쉽게 후기를 접하니 가치가 떨어 진다고 사료됨.
요즘은 굳이 PC에 접속 안해도 휴대폰에서 카페에 있는 후기를 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