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왜 행복한 결말이어야 하는가? 동화를 쓰면서 가장 힘든 일은 마무리를 짓는 일이었다. 아동학을 공부하면서 아이들의 빈곤을, 고통을 그리고 싶었고, 그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동화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의 부모가 어느날 사울이 바울이 되듯 회개하고 아이들을 안 때리게 되는 것이 아니고, 빈곤한 아이들이 어느날 흥부가 박타듯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결말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의 현실 고발로 시작한 동화 쓰기를 하면서 동화가 왜 아동소설과 다른지를 알아나갔다. 동화가 아동소설과 다르게 왜 환타지적 요소가 중요한지-아이들의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아이들은 물활론적, 인과론적, 마법적인 사고를 한다-알게 되었다. 그래 환타지는 환타지라고 치자. 그러면 왜 해피앤딩이어야 하는가? 우선 내 안에 해피앤딩이 없었다. 나는 인생이 비극이라고 보고 살아왔다. 인생에서 즐거움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더 많아보였다. 얼마전 읽은 이건범의 '내 청춘의 감옥'에서 지은이는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세상은 대부분 고통스럽게 행복은 아주 짧게 스쳐갈 뿐이다. 그리고 그 짧은 행복의 기억은 가슴 깊은 곳에서 매우 은밀하고 뜨겁게 꿈들거리며 고통보다 강한 힘으로 우리 삶을 끌어간다." 그래 아이들에게 고통보다 강한 힘을 주는 동화를 써 보자. 그런데 그 힘이 나에게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여전히 내가 쓰는 동화는 행복한 결말이 나와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동화는 꼭 행복한 끝을 맺어야 하는가? 세상이 그렇지 않음에도?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 해피앤딩을 그리면 그건 사기아니야? 아이들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줄? 그러면서 읽은 책. "낙관성 학습" 낙관성 학습에서 다루어진 내용 중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은 아동기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아이들 자체가 우울증을 성인보다 훨씬 덜 경험하는데 아마도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같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논의했다. 똑같은 현실을 겪고도 아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긍정적인 해석을 하며 낙관적인 결론을 맺는다. 아이들이 부정적이고 우울하다면 어린시기에 자살이나 마음의 병으로 죽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가 종족보존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낙관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생후 6개월까지 아이들은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엄마에게서 받아서 태어난 면역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리고 6개월정도 지나서 충분히 강해졌을 때부터 병에 걸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이 아이들에게 왜 필요한지, 왜 동화의 중요한 요소여야 하는지 수긍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또한 낙관적이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행복한 주문을 건다. 다 잘 될거야. 어제 워킹데드 10화를 보면서 아기 주디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헐리우드 영화는 본질적으로 동화야.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아이들은 죽지 않고 영웅은 살아남으며 늘 해피앤딩이니까. 젊었을 때 나는 헐리우드 영화는 유치하다고 안 봤다. 난 심각하고 고통스럽고 머리아픈 영화를 참다운 영화라고 즐겨보았다. 인생은 나에게 어려운 책이었다. 늙은 나는 이제 헐리우드 영화가 좋다. 심각한 건 머리아프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심각한 얼굴로 인상쓰며 늘 침을 뱉던 짝사랑하던 선배가 떠오른다. 그러면 무엇이 행복한 결말인가? -- 요기까지 쓰고 아이 데리러 나가야 해서 글을 맺습니다. 다음번에 제가 쓰고 싶은 건 행복한 결말이란 무엇인가? 동화를 읽으면 왜 가난해지나? ----- 요즘 동화는 안쓰고 이 책 저 책 읽으며 이 생각 저 생각하는 걸 글나라 문우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좋은 동화를 써야지 다짐하지만 단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제 생각과 마음이 감정이 동화와 함께 정진하고 있다는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
첫댓글 동화를 쓰면서 갖게 되는 생각을 솔직히 말해주신 글이라
올립니다.
참고로 영화강의를 들어보니 미국사람들은 행복한 결말을 좋아해서 영화를 그렇게 만든데요.
그렇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관객이 들지 않아서 돈 벌이가 되지 않죠.
헐리우드식 결말이죠. 하지만 다른나라들은 그렇게 영화 만들지 않죠? 심성선생님~
ㅎㅎ 다른 나라나 미국이나 나라를 떠나 해피앤딩을 좋아하는 영화인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결말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영화인들이 있죠. 미국도 헐리우드 영화사 안에도 그런 성향들은 나누어지는 것 같고요.... 결국, 대중성과 작품성 중 무엇에 더 집중하냐가 결말을 떠나 국경과 시대를 초월 해 각각의 영화사들의 특징을 구분짓는 것 같아요. 다른 분야의 작품들처럼요.... 그게 해피앤딩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맞아요.
좋아하는대로 영화를 맹글어서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기만하는 해피엔딩에는 반대에요.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도 있잖아요. 지나친 긍정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불행한 것은 다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희망을 안고 있는 건 소중하겠지요.
맞아요. 긍정의 배신 정말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죠.
해피가 아니면 견디지 못하는 뭐 해피해피한 날들이 날분분입니다.
해피하지 않은 영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해피를 외치지만 진정 해피하지 않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