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live/JgrddGcH58A?si=zFtzhCYY4H__r5-C
요한계시록 강론 64
요한계시록 16:17-21
일곱째 대접
다섯째 대접이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니 자기 말을 교리로 삼아 율법적인 행위를 먹는 죄 가운데서 하나님을 비방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 반면, 여섯째 대접이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아짐으로 요단강을 말려 언약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들이시듯 유브라데강을 말려 동방에서 왕들이 하나님께로 와서 오는 길을 예비하신 은혜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더러운 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와 전쟁을 위하여 표적으로 천하의 왕들을 모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율법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도둑 같이 오심이었지만 교회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 부끄러움이 없는 복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성경에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16절)라고 하였는데 헬라어 본문으로 보자면 “세 영”, “왕들”이라는 단어가 없다.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을 모았다, 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이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그 곳으로’라는 말이다. 15절에서 “내가”라는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어로 16절까지 연결된 문장이다. 그러니까 여섯째 대접을 쏟음으로 세 더러운 영이 비진리로 십자가를 대적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시온산으로 모아 최종적인 승리를 드러내시는 ‘하르마게돈’은 십자가 사건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요엘 선지자는 십자가 사건을 “여호와의 날”로 이렇게 선포하였다.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 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욜 2:1-2)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17절). 일곱째 대접을 공중에 쏟음으로써 이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의 총체를 보게 된다. “공중”이란 ‘아에르’는 ‘공기, 공중’이라는 뜻인데 단순히 물리적인 대기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18절에서 “우렛소리”와 21절에서 “우박”에 표현과 연관하여 볼 때 이는 분명 출애굽 때 열 재앙 중에서 우박을 내리신 일곱 번째 재앙을 반영한 것이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24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출 9:22-24)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라는 표현이 본문에서 “공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대기 중의 공간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살펴본 것처럼 물리적인 자연 현상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같은 단어를 다른 본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를 보면 “공중”이란 악한 영의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아에르)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1-2)
14:6에 보면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표현된 “공중”은 ‘메수라네마’로 문자적으로는 ‘중간 하늘’이라는 뜻이다. 즉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보도록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전한 것인데 하늘과 땅의 중간 영역에서 선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중간 영역에서 땅을 지배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곱째 대접에서는 공중에 영원한 복음 대신 대접을 쏟음으로 최종적 심판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복음을 드러낸 때와 달리 이제 일곱째 대접을 공중에 쏟음으로 악한 영의 권세에 대하여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되었다!”라는 선언 ‘기노마이’는 모든 것이 ‘완료되었다, 완성되었다, 성취되었다’라는 뜻이다. 일곱 대접에 대한 서론격인 15:1에서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헬, ‘텔레오’)”라고 하신 말씀대로 일곱째 대접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절정에 이르러 완성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라고 하였는데 성전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근거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선언하시니 하늘 성전의 보좌에서 “되었다!”라고 응답하신 상황이다. 온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루어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엇이 온전히 성취되었는가? 한마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부족했던 것이 이제 일곱째 대접을 쏟으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것에 대하여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째 대접까지 심판이 행해짐으로써 온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을 확증하시는 묵시의 차원에서 선포이다.
요한 사도는 일곱 인(6:1-8:5), 일곱 나팔(8:6-11:19), 일곱 대접(16:1-21)을 말씀하시기 전에 2:1-3:22에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완성된 일곱 교회에 대하여 먼저 전하였다. 그렇다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 안에서 “되었다!”라는 말씀이 된 자들이다. 완성된 것, 확정된 것 안에 있기에 바울 사도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이라고 선언하였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이런 믿음 안에 있는 것이다. 내 것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나의 힘을 나의 힘으로 삼지 않는 마음으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 죽음에 안에서 생명으로 사는 자가 성도이다. 그렇다면 땅의 것에 관심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공중을 넘어 하늘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하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18절 이후의 일곱째 대접의 말씀은 “되었다!”라는 말씀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18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와 연관되어 있는데(4:5, 8:5, 11:19) 출애굽 때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며 말씀이 주어지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시내 산의 이 모습은 곧 성막으로 재현해 주셨고 성막은 하늘 성전을 지상에 보여주신 것이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늘 성전이 온전히 드러난 것이다. 이 땅의 진동으로 흔들릴 수 없는 하늘 성전을 보여주신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 27:51-54)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19-20절). “큰 성 바벨론”이란 이미 14:8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벨론은 죄인들이 자기 이름을 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힘을 상징한다(창 10:10, 11:1-9). 소돔과 애굽과 같은 것으로 곧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11:8)으로 예루살렘이다. 그러면 “바벨론”은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땅의 성전에 매여 율법적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니 한통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용(12:4, 9)과 바다의 짐승(13:1)과 땅의 짐승(13:11), 혹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16:13)의 관계가 깨어진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이 주어짐으로 십자가를 대적하는 존재는 대적할 수 없는 상태가 되나 하나님의 맹렬함(헬, ‘뒤모스’), 열심에 의해 자기 백성들을 구별해 내시는 재앙(헬, ‘플레게’)이 된다.
“섬”이란 어디에 있든지 바다로 차단 된 곳으로 심판을 나타낸다. 요한 사도가 밧모섬에서 이 땅은 심판 아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일곱 교회에 서신을 보냈다. “산악”이란 복수로 ‘산들’인데 죄인들이 시온산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를 의미한다. 여섯째 인 재앙에서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6:14)라고 하였는데 이제 일곱째 대접이 쏟아짐으로 사라지고 발견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세상 가운데서 죄악된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바벨론과 관련된 것들을 소멸하시며 종교적 권세를 발견할 수 없도록 하늘의 권세로 바꾸시는 구원을 이루신다.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21절). “한 달란트”는 약 34㎏ 정도의 무게이다. 이런 우박이 떨어진다면 이 땅에 남아날 것이 있을까? 이 말씀 역시 실제 이런 우박이 내린다는 자연 현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시편 105:32에 보면 “비 대신 우박을 내리시며 그들의 땅에 화염을 내리셨도다”라고 하였다. 비는 하늘에서 주어지는 은혜를(신 11:14, 시 84:6, 욜 2:23), “우박”은 하늘의 심판을 상징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에게는 말씀이 은혜의 비로 주어져 생명을 누리나 십자가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말씀이 우박의 재앙으로 주어져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모독, 헬, ‘블라스페메오’)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그 하늘의 은혜를 이렇게 선언한다.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6-29)
교회 됨의 정체성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중의 한 가지가 하나님의 심판을 알기에 종말을 사는 자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안다는 것은 심판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로 이 땅을 이미 끝내셨다는 확정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기에 땅의 것에 관심 가진 자가 아니라 하늘의 것에 관심을 가진 자이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202401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